#019
김대웅 교수는 효린 빌딩 매입과 관련된 비사를 제법 알았다. 이 건물 지분은 단순히 정성근 이사장만이 아니라, 그의 파벌도 다 관련이 있다.
채권자 숫자도 모두 25명이 넘는데, 이들이 김대웅 교수를 조직적으로 따돌려서 퇴출해버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성근 이사장은 무영 그룹을 통해서 다른 대학에도 압력을 넣어서 김대웅 교수가 다시는 대학 교수직을 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그들은 효린 빌딩 내의 휘트니스 센터와, 골프 연습장에서 친목 파티를 하면서도 자기 내부 단결을 더 도모했다.
그도 효린 빌딩 매각 소식에 이것들이 재산 빼돌린다고 오해하고 신고해버린 것이다.
물론 한 가지가 더 있다면 펀드 투자인데, 이게 또 작전 세력과 연결되어 있었다.
김정환 검사도 원래 이쪽 작전 세력을 추적 중에 마침 신고받고 난 후에 정성근 이사장이 큰 역할을 한다고 봤다.
한국대 임직원 중에는 의외로 그런 사실을 아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불구경이나 나온 것처럼 옆에서 속삭였다.
조민호조차 예상치 못한 전개에 혀를 내둘렀다.
“사필귀정인가.”
유연진은 일축했다.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내가 했던 말까지 뒤집지는 않아......”
“기자가 연진 너 때문에 저렇게 많은데, 그럴 수도 있어. 잠깐만......”
그는 손을 들어서 유연진 입을 막고는 힐끗 압수 수사를 지휘하는 창백한 안색의 김정환 검사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왜 그래?”
“아니다.”
‘상태가 심각하네. 저 몸으로 검사할 수 있나. 가만 김정환 검사라고 했지. 한 번 알아봐야겠어.’
최영준 차장은 조민호가 따로 시간 내서 알아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김정환 검사에 대해서 생각보다는 잘 알았다.
‘요즘 보기 드물게 괜찮은 검사라.’
***
효린 빌딩에 대한 수사는 안 그래도 유연진 때문에 뜨거운 한국대 분위기 속에서 곧 언론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평소에도 시끄러운 일이지만 지금은 특히 이 수사가 더 뜨겁기만 했다.
재학생 분위기는 이미 횡령 관련된 학내 소문을 들어서 아는지 딱히 놀랍다거나, 갑자기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성근 이사장을 시작으로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소환되는 관련 교수와, 임직원을 그저 멍하니 보기만 했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면 정성근 이사장이 순순히 자기 죄를 인정했다.
정확히는 그 스스로 과거 책임을 통감하고, 사재까지 동원해서 횡령한 모든 돈을 메꾸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수사를 책임진 김정환 검사와, 수사관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검사님, 어떻게 된 걸까요?”
“글세요.”
일단 죄를 지었으니, 처벌은 받아야 한다.
한데 사전에 알아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재산 일부를 내놓다시피 했다.
“정말 이상하군.”
다만 역시 돈을 메꾸기는 했지만 작전주 관련 펀드 관련된 부분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성근 이사장도 고개를 내저었다.
“아는 지인 통해서 투자만 했지, 펀드 내부 사정은 잘 모릅니다.”
김정환 검사도 정성근 이사장의 노력이 없었다면 믿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좀 달랐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연결 고리인 줄 알았는데, 아쉽네. 결국, 로이스 펀드 수사는 따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문제는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조민호는 최영준 차장 통해서 이 수사 내용 결과 일부분을 받고 나서 아쉬워했다.
‘꽝이군.’
***
한국대 횡령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수그러들었지만 유연진 열기는 오히려 이 불씨 때문에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결국 한국 모든 프로 야구 스카우트들도 더 적극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당연히 오성 구단도 포함된다.
오성 구단 단장이 위에 올린 보고서 중에는 유연진 회복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 부분을 깊이 조사했다.
그는 오성 의료원에서 과거 유연진 수술 자료와, 치료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받아서 분석했다.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김지수 완치 치료팀을 통해서 올라갔다.
김건중 회장 역시 이 소식을 이학준 비서실장를 통해서 보고받았는데, 실제 유연진의 피칭 동영상을 보면서 감탄했다.
“굉장하군. 저게 팔꿈치 부상으로 야구 인생 끝난 친구의 투구라고?”
“맞습니다.”
“진짜?”
“네.”
이학준 비서실장도 자신이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믿을 수 없는 불사조 유연진의 압박에 혀를 내둘렀다.
“다시 상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오재호 박사는 슬쩍 이학준 비서실장 눈치를 보면서 오성 의료원에서 시행한 정밀 검진 결과와, 고등학교 시절 유연진의 토미 존 시술 자료까지 가져와서 일일이 설명했다.
“사실 이 수술 결과보다는 재활 과정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정신적으로 수술받았다는 결과 때문에 두려움을 더 느낍니다. 특히 회복 과정에서 공을 던지는 거리를 늘릴 때마다 통증이 심해지면서 그 두려움에 굴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건중 회장도 상기된 표정으로 유연진 동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창 잘 나가던 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어려움을 경험하면 극복하기 어렵겠어.”
“실제로 유연진은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덕분에 우리 의료원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정밀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다리 인대를 사용한 이식 수술 결과는 크게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 와중에 생긴 우울증이 오히려 유연진의 발목을 잡았다.
그 정신적인 고통은 단순히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 부분은 유연진과, 담당의를 제외하고는 아직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더 부언했다.
“정현민이란 친구 어머니가 특히 유연진을 괴롭히면서 고등학교 야구부 생활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대 야구부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정현민 삼촌인 정성근 이사장이 횡령 범죄를 덮기 위해서 야구부를 없앨 용도로 이용했지만 결국 중앙지검에 들통 나서 현재 구속된 상황입니다.”
김건중 회장도 예상 밖의 지저분한 에피소드에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네가 그런 보고까지 받아야 하나?”
오재호 박사는 완전히 이 일에 심취해서 침을 튀겨 가면서 소리쳤다.
“어디까지나 유연진 친구가 거의 벼랑 끝에 섰다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의문의 다른 환자 경우와 비슷하게 완치가 되면서 불사조처럼 부활해서 전성기 시절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였습니다.”
“됐어. 오 박사는 그만 나가 봐.”
“네?”
“왜 더 할 말 있어?”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뭔가 후속 대처라든지, 아니면 추가 조사에 대한 지시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는 묵묵히 보고만 했는데, 그 어떤 반응 자체가 없었다.
“내가 지금 자네에게 이유까지 설명해야 하나?”
“아, 아닙니다.”
김건중 회장은 한쪽에서 이 진단서를 붙잡고 설명해주는 한 의학교수도 밖으로 내 보낸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지?”
다행히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확실히 대상에 오른 이가 있었다.
“아직 확인 중입니다만 가장 유력한 자는 조민호란 친구입니다.”
“조민호?”
이학준 비서실장은 곧 조민호에 관한 조사 내용을 보여주었다.
“가만 이 친구는 설마 그 1번 환자인 그 혼수상태 환자군.”
“네.”
“호오.”
김건중 회장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이학준 비서실장 입을 막았다. 그는 너저분한 변명 따위보다는 진실이 더 급했다.
“조사는?”
“가능한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확인 중입니다.”
“언제까지 가능해?”
“이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기대하지.”
그의 눈빛은 묘한 열기로 번쩍였다. 드디어 막내딸 치료와 관련이 있는 실마리에 몸에 피가 끓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조민호 이 친구는 아닐 것 같고, 분명히 다른 지인이 있어.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명의가 있어.’
***
조민호가 굳이 유연진 치료와, 관심을 둔 것은 정민현에 대한 보복이 우선이었지만 한 가지 더 있다면 바로 일반인의 선천지기 변화에 관한 결과다.
보통 사람도 선천지기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생명 활동의 근간이 된다. 무리하게 일을 할 때에 이 선천지기가 심하게 소진되고, 때에 따라서 수명에도 영향 준다.
여기까지는 조민호도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놀랍게도 일반인도 얼마든지 소통을 통해서 타인에게 선천지기를 전해줄 수 있었다.
유연진을 비롯한 한국대 야구부의 움직임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
자기 특성에 맞지 않은 선천지기는 비록 자기에게는 효과가 없지만, 팀플레이를 통해서 가지고 있다가 타인에게 전해준다.
결국 서로 의지를 하는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이 선천지기가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게 바로 팀 시너지다.
그가 아쉬운 점은 자신은 이런 시너지가 관련된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일테면 야구나, 축구와 같은 스포츠다. 지금도 물론 할 생각은 없다.
조민호가 이 문제에 깊은 고심에 빠져 있을 때 마침 최영준 차장이 김정환 검사 프로필을 보면서 깊은 고심에 빠졌다.
“폐암이네요.”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폐암 3기네.”
“앞으로 장래가 촉망한 검사인데, 참 안 되었습니다.”
최영준 차장은 슬그머니 조민호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치료해줄 생각인가?”
“고민 중입니다.”
그가 번민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현직 검사를 어떻게 지압으로 치유하는가 하는 거다. 일단 당사자가 믿지도 않을 거고, 자칫하면 사기죄로 체포하려고 할 수도 있다.
조민호가 강제로 제압해서 치료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폐암 3기 환자도 치료할 수 있어?”
“아마 될 겁니다.”
“......놀랍네.”
최영준 차장은 굳이 다시 한 번 물어서 의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보다 돌려서 오성 그룹을 감시하고 있는 최영민 팀장을 통해 들은 한 가지 사실을 말했다.
“지금 오성 구단에서 확인한 정보 때문에 오성 그룹에 자네 정보가 넘어갔어. 오성 X파일 사태도 어느 정도 정리했기 때문에 이학준 비서실장이 다시 자네를 조사하고 있네.”
“아프면 직접 본인이 와서 요청하면 간단한 것 아닙니까?”
“그게 재벌 속성이네.”
“남위에 군림해서 자기 뜻대로 부려 먹어야 속이 편한 뭐 그런 선민사상입니까?”
“맞아.”
조민호는 문득 자신이 그래었나 뒤돌아봤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흠, 부하들이 했던가?’
최영준 차장 역시 한때는 그런 재벌 의식에 젖어 있던 터라 지난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슬쩍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조민호도 꼭 날파리가 계속 징징 그리는 것 같아서 인상을 찡그렸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어차피 앞으로 닥칠 일을 참작해서 이미 사전에 준비도 해놓았다.
‘결국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군. 이제부터는 굳이 피해 다닐 이유는 없지. 필요하다면 아군을 더 만들면 되니까.’
정 번거로우면 조민호 본인이 직접 나서면 되는데, 굳이 그러지 않는 이유는 지금 삶의 평화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그의 손에 피가 마른 날이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