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설마 이 함정 기사를 이용해서 우릴 토사구팽 시킬 생각인가?’
물론 오해였지만.
최영준 차장은 굳이 더 설명해주지 않았다.
***
‘메이저리거 탄생과 수출 경제학’는 한국대 야구부 승리 기사와 함께 중아일보 메인을 가득 채운 채 기사로 나갔다.
중아일보를 받아보는 구독자는 다들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고, 뒤늦게 유연진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대 야구부 주장으로 있는 그의 경력은 호화찬란했고, 특히 폭력 사태로 1년 정지당한 것부터 시작해서 볼거리는 많았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해서 각 프로야구 단에서 버려진 그의 모습은 너무 파란만장해서 슬픈 비극을 주제로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였다.
재미있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괴물이라는 닉네임까지 아는 구독자는 과거 추억을 떠올리면서 이 기사를 읽었다.
-아, 유연진 말하는 거구나.
반향은 당연히 있었다.
-어떻게 팔 부상을 회복했는지 모르겠지만, 폭력 이전에도 대통령배 대회에서 별로 성과가 없었잖아.
부정적인 반응이 늘어났지만, 이 노이즈 마케팅 덕분에 한국대 야구부에 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조민호도 야구 시합 구경에서 색다른 재미를 봤고, 다른 친구와 같이 느긋하게 야구 시합 구경이라는 생소한 활동에 흥미를 느꼈다.
마냥 TV를 보는 것과 친한 친구와 같이 활동하는 것은 조금 차원이 달랐다.
그건 전생에서도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조민호도 직접 유연진의 선천지기가 스탯 20 넘은 것을 확인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어.’
삼재심법과 같은 후천지기를 키울 수 있는 수련이 없음에도 유연진은 기합을 끌어올리면서 스스로 선천지기를 쌓아갔다.
그 힘이 쌓일수록 그 기백은 점점 커졌고, 상대를 압박했다.
정신 스탯 역시 같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감정과 정신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지구력은 자기 선천지기 특성을 일부 확인한 것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 변동폭이 생각보다 더 컸다.
체력과 근력 역시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조민호도 이 생소한 광경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결국 그 변화를 좀 더 유연진 옆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는 결국 지압 마사지사 겸 임시 코치로 8강전에 같이 합류했고, 유연진 팔 상태를 비롯한 다른 선수 건강을 챙겼다.
선천지기가 팀 단위에서도 어떻게 변화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다.
“마음대로 던져.”
역시 그의 추측대로 변화는 있었고, 의문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그리고 이번 8강 상대는 요즘 한창 우승 후보로 무섭게 떠오르는 성균관대였다. 정교하지 못한 컨트롤에, 정신력이 부실한 정민현을 선발로 내세울 수 없어서 유연진이 선발로 나섰다.
유연진은 오늘따라 맑은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면서 호흡을 골랐다.
다시 이렇게 꿈에 도전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조차 못했다.
그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이를 악문 채 참으면서 덕아웃에서 무서운 기세를 보이는 성균관대 타자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제 걸릴 것이 뭐가 있겠나.
이미 지난 시합 통해서 유연진은 자기 육체에 대한 모든 점검을 끝냈다.
유연진은 팔이 부서지도록 투구를 시작했다.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로 그냥 찍어 눌렀다. 압도적인 파워 피칭, 정교한 와인드업, 거기에 교묘한 체인지업까지 다 섞었다.
고작 대학 수준의 타자가 칠만한 공은 아니었다. 특히 공 끝이 살아서 움직이는 150km의 정교한 코너윅은 보는 관객의 감탄을 절로 나오게 하였다.
상상을 초월할 시합 전개에 성균관대 야구부를 살피러 나온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은 다들 당황했다.
-재 정말 유연진 맞아?
-야아, 유연진 자료 가져오라고 했잖아. 이게 무슨 자료야?
-씨팔, 팔 고장 나고 나서는 정말 별것 없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필이면 유연진이야!
-이 새끼들아, 그냥 서류만 주면 다냐. 왜 저 새끼가 저렇게 날뛰는지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할 것 아냐.
관객석 한쪽을 차지한 부산한 스카우트들은 다급하게 감독에게 전화까지 해서 초지급으로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인력이 없으면 홍신소에게 의뢰라도 맡기란 말이야!!!
조민호는 힐끗 시끄러운 시장바닥 상인 같은 스카우트들 모습에도 이미 오성 그룹 때문에 상당한 대비를 해 놓은 터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
유연진은 지난 시합 상대를 찍어 누른 성균관대를 상대로 이전과는 조금 다른 피칭을 선보였다.
-파아앙!
무시무시한 강속구 하나로 정면에서 갈아버렸다. 1회, 2회를 지나서 6회에 이르는 동안 단 하나의 히트조차 날리지 못했다.
가끔 성균관대도 공을 쳐 내기는 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내야 아웃이 되는 정도에 불과했다.
홍기연이 자기 실수를 만화라도 하려는 듯 안타 하나로 1점을 겨우 얻어서 1:0으로 우승 후보 성균관대를 함락시켰다.
-와와아아!
-세상에 노히트노런이야!
-풍비박산 난 팀으로 우승 후보를 무너트리다니!
이번에는 물리학과도 함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 역시 이 기적 같은 승리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연진을 빼고 나면 지금 남은 한국대 야구부는 전부 만년 후보에 지나지 않았고, 그나마 쓸만한 사람은 4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는 성웅 이순신처럼 침몰하는 배를 거느리고 신형 군함으로 무장한 함대를 무참하게 박살 냈다.
“......”
조민호조차 아쉬워하면서도 자신의 생소한 감정 변화에 피식 웃었다.
‘재미있네.’
늘 무학 완성을 위해서 전공책만 들다 보다가 이렇게 관객석도 아니고, 덕아웃에서 지켜보는 일도 나쁘지 않았다.
***
준결승과 결승전 한국대 시합은 8강과 비교하면 오히려 더 수월하게 끝났다.
특히 유연진은 결승전 상대 중앙대를 상대로 삼진 15개를 포함해서 결국 퍼펙트 시합으로 완벽하게 찍어 누르면서 ‘귀환 유연진’ 시대가 왔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수십 명의 스포츠 기자들은 단 한 줄이라도 인터뷰를 하려고 연일 카메라를 든 채 한국대를 찾아와서 유연진에 대한 뜨거운 취재 경쟁을 벌였다.
“......”
김원준 과장과 양봉석 대리만큼은 뒤에 물러나서 물끄러미 불구경이나 했다. 그들은 다른 언론사와는 달리 최영준 차장에게 사전 지시를 받아서 너무 많이 인터뷰하고, 다량의 사진도 찍었으며, 너무 장황한 조사를 해서 기사 자료가 넘쳤다.
김원준 기자와 알고 지내던 한 동이 일보 김미애 기자가 비난조로 시비를 걸었다.
“김 선배, 정말 너무 합니다. 혼자 그렇게 다 먹다가 배탈 날 겁니다. 아니 이 업계 관행 모릅니까. 모든 한국 기자를 적으로 돌릴 겁니까?”
그는 한때 사귄 적이 있던 그녀가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나도 몰랐다.”
“뭘 모릅니까. 정말 개소리도 예술입니다. 아직 남 뒤통수치는 버릇 못 고쳤습니까. 그 여자 생각하면 진짜 구역질 납니다.”
“최영준 차장님 지시받아서 움직인 게 다야.”
어디서 구한 것인지 병원 진단서까지 가져와서 얼굴에 들이밀었다.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늘어놓는 겁니까? 최소한 유연진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힌트라도 줄 수 있었지 않습니까. 여기 진단서 보세요. 이전과는 달리 수술해도 완치가 어렵고, 설사 수술 잘되어도 재활 자체가 어렵다고 합니다!”
김원준 과장은 정말 불법으로 추정되는 유연진 진료 자료를 세세하게 확인하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최영준 차장님은 어떻게 유연진 회복을 안 걸까?’
“정말 몰랐다니까.”
그녀도 그제야 김원준 과장이 진실을 말하는 것을 깨닫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러면 유연진이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완치를 완벽하게 알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그 타이틀 기사는 뭡니까. 아주 대하 장편 소설이던데요?”
“최영준 차장님 명령이었다.”
“아니 그러면 최영준 차장이 이미 사전에 다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을까.”
‘......안 그러고야 이 일이 설명이 안 되겠지.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잖아?’
“가만 그러면 아직 그 유연진 부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아닙니까? 아니 기사로 나간 적이 없네요. 아, 선배 고맙습니다.”
허겁지겁 동료를 불러 멀어지는 김미애 뺨은 특종을 발견했다고 뒤늦게 깨달아서인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김원준 과장은 한때는 사랑했던 그녀 모습에 쓰게 웃고 말았다.
“과장님,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나도 몰라. 우리 최 차장님이 그냥 단순히 금수저가 아니라 능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그 양반이 얼마나 악명이 자자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과거 연예인 지망생 불러 모아서 섹스 파티도 즐기고, 마약도 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조용 좀 하지만 그 사모님 혼수상태가 아니었다면 과거랑 똑같았을 겁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그분도 회복되......, 맞다. 사모님도 7년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는 소리가 있었지?”
“어, 그게 사실이었습니까?”
“우리 회장님 집안일인데, 다들 쉬쉬할 수밖에 없었잖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왜 다른 언론사에서도 쉬쉬한 것은 이상했어. 단 한 줄의 기사도 없었으니까.”
“......”
두 사람은 그제야 서로 시선을 마주치면서 동시에 소리쳤다.
“분명히 뭔가 있어!!”
사실 많이 늦은 셈이다. 아마 최영준 차장이 중아일보 후계자가 아니었다면 벌써 많은 언론을 통해서 흘러나갔을 것이다.
조민호는 기자 중에 특이한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쯧.’
***
유연진 귀환 스토리는 언론에서도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대 야구부도 언론, 특히 중아일보 때문에 관심의 집중이 되면서 역시 이곳저곳에서 많은 곳에서 시선을 받았다.
덕분에 그 유탄을 제대로 맞은 이는 바로 정성근 이사장이었는데, 자칫해서 이 와중에 횡령과 같은 불법 행위가 폭로되면, 그때는 수습할 수 없었다.
그는 유연진과 협상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존에 횡령한 자금을 자기 개인 자산을 이용해서 일일이 메꾸었다.
가로채 간 연구 목적 기금에, 뇌물 형태의 추가 보조금까지 다시 받은 담당 교수들은 정성근 이사가 드디어 미쳤냐고 고개를 갸웃했다.
정성근 이사장은 직접 정승원 총장과 같이 한국대 야구부를 찾아가서 앞으로 충분한 야구부 지원을 비롯한 다양한 협력을 약속했다.
“약속 지키세요!”
그는 물론 아주 입에 재미를 붙인 말을 앵무새처럼 남발하는 유연진 때문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오히려 기자들 눈치를 살폈다.
“알았으니, 앞으로 그 말은 자중해. 내년 신입 부원 충원을 위해서 이미 고등학교 야구부에도 사람을 보냈으니까. 감독도......자네 요구대로 다시 뽑겠네.”
“약속 지키면 이런 말은 안 합니다.”
“그놈의 약속은 틀림없이 지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