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5화 (15/176)

#015

“이 친구는 국정원 요원이 아니라, 김용철 이사란 친구입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토사구팽당할 것을 염려해서 도청 파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그도 깜짝 놀랐다.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 미소를 짓은 로버트 힐은 부드럽게 말했다.

“아 이걸 어떻게 얻었느냐고 묻지는 마시고, 검찰에 자료가 넘어간다면 국정원 전 차장에 대한 혐의도 모두 사라지고, 정권 차원에서 이번 사건도 한결 깔끔할 겁니다.”

또 다른 제안은 최근 미국 행정부와 몇 가지 갈등이다.

한미 간에는 미묘한 문제지만 청와대로서는 간단하지 않았다.

로버트 힐의 도움을 얻어서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한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최영민 수사를 불구속으로 전환하고, 가능하면 무혐의로 수사 종결해주십시오. 저랑 안면이 있는 친구입니다.”

박현목 비서실장은 정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정말 그거면 됩니까?”

“네.”

“그렇다면 잘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는 로버트 힐과 헤어지면서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미국 대사 파워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하다. 대통령이라 해도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갑질 하는 위치다. 그런 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 자세일 리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오만한 인간이 이렇게 부드럽게 나오는 걸까? 정말 모르겠네.’

***

대통령 비서실장이 서울 중앙지검장에 한마디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죄도 없는 사람이 그 대상이라면 더 쉽다.

최영민은 이미 대충 지시가 어떤 식으로 내려가는지 잘 알기에, ‘나가도 됩니다.’이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서울 중앙지검에서 빠져나오면서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풀면서 정치 검사 김도영 뺨을 툭툭 치면서 피식 웃었다.

“애송아, 조심 좀 하자.”

“......”

김도영 검사는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별 달리 반항하지 못했고, 그것은 동행한 수사관 역시 다르지 않았는데, 다들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다.

그들은 설마 이제 은퇴해서 힘이 없는 50대 최영민 전 국정원 팀장이 이런 식으로 힘을 발휘할지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 봐서 이번 수사팀에 합류했다고 찍히면, 저기 울릉도 가서 평생 썩어야 했으니, 다들 오히려 불안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크하하하.”

최영민 전 팀장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통쾌하게 웃으면서 서울 중앙지검을 당당하게 나섰다. 그는 새삼 한 사람 모습을 떠올렸는데, 솔직히 부탁하면서도 긴가민가했다.

그 역시 로버트 힐과 잘 알고 지내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위해서 직접 나설 줄지는 몰랐다.

호가호위란 거 누구보다 잘 안다.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결과는 석방이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는 새삼 조민호 능력에 경이마저 느꼈다.

‘이제부터 애들을 불러 모아야겠어.’

***

최영민 전 국정원 팀장은 자유의 몸이 되기가 무섭게 최영준 차장을 만나서 감사 인사를 했고, 곧 한 가지 지시를 받았다.

그는 아는 인맥 통해서 이학준 비서실장이 하는 일을 방해했다. 따지고 보면 개인 의료 정보를 이리저리 마음대로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점을 이용했다.

심지어 누락시킨 X파일 일부를 이학준 비서실장에게 보내서 협박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X파일을 보고는 경악했고, 조민호에 관한 모든 조사 작업을 접어야 했다.

사실 그도 김지수 행적에서 마사지를 받았다는 것까지 조사 중이었는데, 그때는 이미 김지수가 다른 마사지사를 고용해서 추가로 받은 후라 이게 치료 행위인지, 새로 취미가 생겼는지 구분하지 못했다.

만약 이학준 비서실장이 시간만 넉넉했다면 결국 조민호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오성 X파일 폭탄 때문에 이 일을 뒷순위로 미루어야 했다.

조민호는 최영준 차장 통해서 이 깔끔한 상황을 보고받고 만족했다.

“좋네요.”

“그쪽 전문가네.”

“하긴 공작, 첩보 그런 일만 한 분들이니.”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재정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따로 경호 회사를 차린 것 같은데, 그쪽으로 워낙 발이 넓은 분이니,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그는 정말 대만족했다.

“박상철 과장 추적도 기대해보겠습니다.”

“그것은 로버트 힐 대사님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어.”

“훌륭합니다.”

조민호는 솔직히 지금 현대에 와서까지 무슨 조직을 만들어서 번거로운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최근 자기 손발이 되어줄 사람 필요성을 느껴서 번거로운 일을 좀 했지만 여기까지다.

‘딱 좋아.’

문득 그는 지금까지 묵묵히 고생해준 최영준 차장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굳이 시간 내서 도와준 일은 정말 고맙습니다. 혹시 제가 최영준 차장님에게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지금 당장은 생각나지 않아.”

최영준 차장은 눈빛을 반짝이면서 예의상 한 말이지만 생각을 해보았다.

***

최영민 팀장은 조민호가 예측한 것보다는 처절하게 움직였는데, 그들은 마치 전생 조민호의 수하처럼 알아서 행동했다.

그들이 지능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조민호조차 집중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웠다.

조민호는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대학 생활에 좀 더 집중했다.

그런데 최영준 차장이 드디어 한국대 조사 결과를 가지고 나타났다. 박상철 과장이 뜻밖에도 이곳 한국대를 찾아와서 정성근 이사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정보였다.

“특이한 펀드 관련 이야기였는데, 정성근 이사장이 아무래도 어디선가 자금을 얻어서 투자한 모양이야.”

“작지 않은 투자 같은데, 돈은 어디서 난 겁니까?”

“한국대 야구부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돌렸다는 소리가 있어.”

“한국대 야구부라......”

조민호는 왠지 이 일도 자신과 연관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자신이 퍽치기를 당했다는 것은 따로 자신을 조사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스포츠 매니악인 박진민에게 야구부 관련된 질문을 해보았다.

“유연진 팔 부상이 재발해서 전력이 개판이잖아. 거기에 이사장이 갖은 압력을 다 넣어서 박살났어.”

“그렇군.”

***

조민호도 유연진 사정을 보자 그냥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고, 자기보다는 최영준 차장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최영준 차장은 기자라는 신분을 최대한 활용해서 유연진에게 떡밥을 던졌다.

유연진도 처음에는 치료비 1억에 자기 팔이 치료 가능하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팔꿈치 부상이 재발 난 일에 이미 익숙해져서 자포자기였고, 차라리 다른 진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는 결국 주말에 최영준 차장 소유 건물 한 안가를 찾았다.

최영준 차장은 흥미로운 눈길로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유연진을 쳐다보았는데,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토미 존 수술을 받아서 유망주에서 멀어진 그를 누구보다 잘 기억했다.

잠깐 이야기만 나눴는데, 유연진은 괜히 고등학교 시절 최고 유망주라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을 붉혔다.

유연진은 물론 뒤늦게 최영준 차장이 중아일보 전략팀 차장이라는 사실과, 그의 아내가 7년 전신 마비에서 회복했다는 것을 듣고는 경악했다.

조민호는 분위기가 괜찮다는 확신을 가지자 우선 상대 경혈부터 확인했다.

‘토미 존 수술이라.’

투수에게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부상은 팔꿈치 인대와, 어깨 회전근 부상이다. 어깨 부상은 수술해도 쉽게 낮지 않지만, 팔꿈치 인대 수술(토미존 수술)은 수술 자체는 쉽지만, 재활이 쉽지 않다.

이 팔꿈치 인대 수술은 손상난 인대를 제거하고, 힘줄을 떼 내서 팔꿈치 이루는 뼈에 구멍을 내서 끼우는 시술이다.

수술 자체는 1시간이면 간단히 끝날 정도인데, 재활 훈련이 무려 1년 이상이다.

상당히 인내심이 필요한데, 이 난관을 유연진이 잘 극복했지만, 대학에 와서 그만 또 무리하다가 재발할 것이다.

이유는 대학 내의 알력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감독만 무려 5번이나 바뀌었다.

결국 주장 유연진은 감독이 없는 상황에서 홀로 팀을 이끌어 갔는데, 대학 이사장이 신규 선수 유입을 막는 것과 같은 다양한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지금까지 힘겹게 버텨 왔다.

조민호도 처음에는 근육이 찢어진 어깨 회전근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것과는 격이 좀 낮은 팔꿈치 인대였다.

더욱이 이전 수술은 오성 의료원(?) 전문의가 해서인지 깔끔하게 잘 끝났다.

문제가 된 것은 수술한 인대가 너덜너덜해서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조민호는 선천지기 스탯 3을 대응되는 혼원기를 이용해서 팔꿈치에 근접한 척택, 공최, 연결, 심지어 경거까지 사용해서 자극했다.

특히 화기가 넘쳐나는 유연진 체질을 생각해서 음기로 낮추었고, 늘어진 인대라고 해도 신체 조직이었기에 치료는 순조로웠다.

아니 정확히는 혼원기 특성 레벨을 몇 번에 걸쳐서 조정해서 유연진 특성에 맞추었다. 특이한 점은 딱 특성 혼원기에서 인대 회복이 더 빨라졌다.

이 부분은 전생에서 마의에게서 배우면서 얻은 것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렇게 적용한 것은 현대에 와서 처음이었다.

기존 치료와는 달리 마치 전침을 사용한 것처럼 지속적인 혼원기 변동은 세포를 활성화해서 치료 회복을 가속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유연진의 선천지기 스탯이 무려 19를 넘었다.

‘재능이 제법이네.’

정확히는 세계 일류 선수가 가지는 기량과 비교해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사상 최고의 유망주 소리가 그냥 나오지 않은 셈이다.

그는 지난 로버트 힐 치료할 때 사용한 물리적인 지압법을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극해서 같이 했다.

‘효과가 좋아.’

최근 민첩을 비롯한 신체 스탯이 20을 넘어간 덕분인지 혼원기 순도 역시 꽤 증가한 탓에 이 작업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조민호도 한 가지 간과한 일인데, 자기가 작업한 혈이 단순히 팔꿈치만 아니라, 치료한 경혈을 통해서 호흡기와도 연결된 점이다.

즉 선천지기가 폐 조직으로 파고들면서 폐활량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면서 지구력이나, 체력 역시 증가했다.

조민호는 크게 개의치 않은 채 다시 서서히 회복을 시작한 인대가 안정을 얻는 것을 발견했다.

“잘 끝났다.”

“벌써?”

“신경을 많이 썼다.”

유연진도 처음과는 달리 지압 과정에서 부상당한 부위가 너무 상쾌하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 신선한 감각을 즐기다가 지압이 끝났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치료비는 1억이다.”

“진담이냐?”

“어.”

유연진도 이미 다른 환자 치료에 대한 것을 들었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얼굴로 천천히 일어나서 팔을 돌려보았다.

놀랍게도 그 어떤 통증도 없었다.

아니 더 이상한 것은 토미 존 수술받기 전보다 더 감각이 예민했다.

그는 정말 이상해서 오른손을 계속 쥐었다, 펼치기를 반복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손끝의 감각이 상상 이상이었고, 심지어 꽉 쥘 때 파워 역시 한창 전성기 시절을 능가한 것을 확인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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