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4화 (14/176)

#014

“미국 대사 예정자라는 것도 이미 압니다.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게 저희가 원하는 겁니다.”

“정확히 어떻게 도와달라는 겁니까?”

“그것은 대사님이 완치된 후에 저절로 아실 겁니다. 상식적인 수준의 도움이니, 무슨 미국 이익에 위해가 되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흠.”

그도 평소라면 절대로 이 대화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자기 생명과 관련이 있을 일을 그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보증을 한 사람이 최영민 전 국정원 팀장이었다.

“좋습니다.”

“아, 그리고 치료비는 현금 1억 선불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버트 힐은 결국 아는 한국인 채널 통해서 1억을 보냈고, 최영민 전 국정원이 보낸 전 요원의 안내를 받아서 경기도 외곽에 있는 국정원 안가에 도착했다.

마치 비밀 첩보 작전처럼 이루어져서 지나치기는 하지만 그는 충분히 이해했다.

“여기 누우시면 됩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린 조민호는 천연덕스럽게 툴툴거렸다.

“치료 조건에 제 정체는 비밀이라고 적혀 있습니다만?”

“알겠습니다.”

***

로버트 힐은 이미 많은 요원을 많이 만나고, 다뤄 본 경험이 있는 터라 머쓱한 표정을 한 채 조민호 눈치를 보면서 옷을 벗었다.

마사지용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엎드렸지만, 머릿속은 정말 복잡했다.

‘최영민 팀장이 허튼수작을 부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조민호는 역시 선천지기 흐름에 우선 합격점을 줬고, 뜻밖에 오염된 기운이 거의 없다는 점에 눈빛을 반짝였지만, 환자 상태에 고민했다.

숨뇌에서 출발해서 심장 등의 내장 기관에 분포하고 있는 미주신경이 뒤틀려 있었고, 심장 블록에서 출발한 혈액 부종이 곳곳에서 나타났는데, 음기가 너무 차서 인체 경혈 곳곳이 막혀버렸다.

“상태가 좀 심각합니다.”

로버트 힐은 어눌한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네?”

“아, 참 미국인이었군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바로 시술하겠습니다.”

“......”

로버트 힐은 수행원까지 따돌리고 여기 온 것이 잘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최영민 팀장과는 과거 동아시아에서 몇 가지 공동 작전을 벌이면서 그의 인품이 어떤지 잘 알았다.

‘불안해.’

그는 뒤늦게 후회했다.

조민호는 테이블 밑에 있는 고정된 줄을 일을 당겨서 일일이 로버트 힐 사지를 하나씩 묶었다.

로버트 힐은 자신이 공포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는 된 것처럼 두려워했다.

“무, 뭐하는 겁니까?”

“약간 아플 겁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단단히 고정했습니다.”

그는 화들짝 놀라서 억지로 바동바동거리며 테이블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최대한 참겠습니다.”

“안 됩니다.”

조민호는 단호한 말을 끝으로 더 로버트 힐 요구를 받지 않았고, 심지어 계속 반항하는 그의 입에 가죽 재갈까지 물렸다.

“욱욱욱.”

그는 미국 대사란 직위를 참작해서 다른 환자와는 달리 다소 거칠게 치료를 할 생각이었는데, 백회와 풍부를 기준으로 잡았다.

심유혈을 통해서 미주신경 비틀림을 바로 잡고, 울혈이 맺힌 경혈을 혼원기로 천천히 녹였다.

공포에 질려 있는 로버트 힐 입장은 깡그리 무시했고, 자세한 설명 따위는 하지 않은 채 백회와 풍부를 시작으로 혼원기를 강제로 집어 넣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이 기혈을 기준으로 잡아서 심유혈을 지속해서 자극했다.

으드득.

뒤틀린 경혈이 물리적인 압박과 혼원기 때문에 빠르게 바로 잡혔다. 즉 분골착근까지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수준의 작업이었다.

-으아아악!

로버트 힐은 의식이 깨어 있는 채로 근골이 뒤틀린 무시무시한 통증에 입에 재갈로 물렸지만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 안가는 방음이 생각보다 잘 되어 있었다.

다만 밖에서 최영민 전 국정원 팀장 부탁을 받은 전 국정원 요원 몇 사람은 희미한 비명에 움찔 몸을 떨면서 슬그머니 안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들은 조민호가 지금 로버트 힐을 고문하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의심했지만, 최영민 팀장 지시를 떠올리면서 일단 참았다.

비명은 놀랍게도 계속 이어졌다.

5분을 넘겼다.

-크허허헉!

이곳에 온 이들은 심각하게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 사이 10분을 넘겼다.

-크허거헝!

고통과 울부짓음이 혼합된 비명은 듣는 사람 오금을 쭈뼛하게 만들었다.

-크하하앙!

결국 15분을 넘긴 앓는 소리는 이제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통증이 심해서 이제 포기한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자 그들은 안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다행히 앓는 소리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으아악......아, 어, 아?”

이전 환자의 치료는 혼원기를 순리에 따라서 돌려서 치료한 것이라면 지금은 근골을 강제로 뒤틀어서 혼원기 힘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형태만 살짝 바뀌었을 뿐이지, 치료를 빙자한 분골착근의 고문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 환상적인 효과다.

경혈 곳곳에 남아서 동맥질환을 넘어서 심장마비로 가던 그 경혈이 혼원기와 물리적인 압력에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심지어 신유혈을 통해서 파고든 혼원기는 뒤틀린 미주신경을 바로 잡고, 크게 문제가 되는 미주신경 일부분을 태워버렸다.

양기 속성의 혼원기가 빈맥을 일으키는 경혈을 바로 잡았다.

조민호는 이번 치료 결과에 꽤 만족했지만 곧 선천지기 스탯 2 정도가 소모된 것을 발견했다.

힘과 혼원기가 서로 상부상조해서 보완한 결과였는데, 어떻게 보면 미주신경 절단, 인공 페이스메이커, 제세 동기 이식에 등가 되는 치료 패턴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방식은 근원적으로 차이가 존재했는데, 바로 치료를 담당한 혼원기가 각 경혈에 일정 기간 잠복해서 치유를 돕기 때문이다.

순수한 선천지기 스탯이 16에 도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었다.

부작용은 인간이라면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눈물을 주르르 흘린 로버트 힐을 조금 전에 경험한 그 끔찍한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었는데, 조민호가 줄을 풀어도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조민호는 정신 스탯 120만을 이용해서 선천지기와 후천지기를 동시에 끌어올려서 무시무시한 안광을 뿜어냈다.

마치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태양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로버트 힐도 조금 전에 경험한 고통 때문에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그 눈빛을 마주하고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고, 차마 그의 눈을 더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조민호는 로버트 힐 뇌주변의 선천지기 흐름이 쪼그라들어서 자신이 원한 형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원한 작업이 성공한 것을 확인하자 음산하게 히죽 웃었다.

“제가 살다 보니, 간혹 뒤통수치는 인간을 많이 만나 봤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마음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맛만 살짝 보여 드렸습니다.”

“......”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로버트 힐 모습에 피식 웃었다.

“협박하자는 것이 아니라, 괜히 딴생각 말라는 일종의 조언입니다. 아 치료는 물론 끝났습니다. 한 번 일어나 보십시오.”

로버트 힐은 마왕을 본 사람처럼 공포에 가득한 시선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는데, 평소 일어난 현기증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는 갑자기 이질적인 몸 때문에 조민호에 대한 분노와 원한을 잊어버린 채 바닥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었다.

“어? 이건.......”

“원래 통증을 동반한 치료는 효과가 더 좋습니다. 용건이 끝났으니, 약속 지켜 줄 것으로 믿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 잠깐만......”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그럴 겁니다만 이성이 돌아오면 대충 상황을 짐작할 겁니다.”

“몇 가지 질문이......”

“어떻게 치료되었는지 질문하지 마십시오. 제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간혹 필요한 부탁만 도와주십시오. 참 이 서류는 박상철 과장의 프로필인데, 미국으로 튄 이 인간을 좀 찾아주십시오.”

로버트 힐을 서류를 받으면서 조민호를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무지막지한 고통.

인간 같지 않은 조민호.

특히 마지막에 보인 그 악마 같은 기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소름이 오싹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기 몸 상태가 한창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할 정도라는 것을 체감했다.

그것은 조금 전에 그가 가진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기적이었다.

‘마, 맙소사 정말 마사지만으로 스톡스 증후군을 치료한 거야? 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정말 그자가 악마라도 되는 거야?’

아마도 외부에 이 기적 같은 조민호의 치료 능력이 알려진다면 세상이 뒤집힐 일이었다.

로버트 힐은 재검진을 받으려고 오성 의료원으로 향했고, 곧 정밀 검사를 받고 난 후에 반쯤 의혹에 잠겨 있는 이승구 박사를 확인했다.

“정말 완치군요.”

“네? 정말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아, 아닙니다. 오성 의료원이 한국 최고 병원입니다.”

이게 로버트 힐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빌어먹을.”

이승구 박사는 이제 화가 나서 진료표를 사무실 바닥에 패대기치고 말았다.

***

로버트 힐도 처음 최영민 팀장에게 제안받았을 때는 치료 받고 나서 적당한 수준으로 요구 들어주고, 분위기 봐서 대충 타협 봐서 좋게 넘어가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조민호 치료를 받고 난 후에는 그는 도저히 그런 마음 자체를 먹을 수 없었다.

비록 몸은 건강해졌지만, 정신적인 압박과 두려움은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았다.

그 자신은 마치 악마와 거래를 한 사람처럼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여분의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결국 악마의 인장을 얻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심지어 과거 NSC에 있을 때 따로 모아둔 자료와 아는 인맥을 최대한 활용했다.

문제는 로버트 힐이 아직 미국 대사 예정자였다.

설사 미국 대사가 되었다고 해도 직접 한국 검경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그는 적당한 적임자로 대통령 비서실장 박현목을 선택했고, 조용한 한옥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갑자기 무슨 일 때문입니까?”

“아마 X파일 사건 때문에 곤란한 일이 많을 겁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도청 파일이고, 그것을 비공식적으로 보고받은 이가 전 대통령 아들이란 점은 이번 정권에 큰 발목이 될 겁니다.”

박현목 비서실장은 별 달리 대답하지 않았는데, 혹시나 도청이 되지 않을까 그것을 더 염려했다. 더욱이 미국 대사 예정자 로버트 힐이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걱정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설마 실장님을 협박하려고 이 자리에 나왔겠습니까. 이것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그가 내놓은 테이프는 놀랍게도 그 도청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그중에 나온 또 다른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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