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2화 (12/176)

#012

***

조민호는 이유미를 삭 무시한 채 두 사람을 데리고 물리학과 건물을 나가면서 캔 커피를 3개 꺼낸 후에 하나씩 주면서 가까운 벤치에 가서 앉았다.

“또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말인데......”

최영준 차장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골치가 아팠지만 일단 급한 대로 김지수에 관한 설명부터 했다.

“여기 지수가 내 사촌이란 것은 저번에 말했는데, 지수 어머님이 내 아버님이랑 형제자매간이고, 그분이 오성 그룹 안 주인이며, 지수가 결국 그분의 막내딸이네.”

조민호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뒤늦게야 김지수가 한국에서 그 유명한 오성 그룹 막내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딱히 자네를 속일 생각은 없었어. 환자 치료한다고 하지만 굳이 알아서 괜히 심적으로 부담 느끼는 것보다 더 나은 것 같았으니까.”

“......”

그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김지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는데, 솔직히 재벌가이니 대단하다는 것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

하지만 설마 그 대단한 오성 그룹 막내딸인지는 상상조차 못했다.

김지수는 평소에는 명품 치장 없이 여느 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늘 그렇게 지내오면서 자연스럽게 서민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물론 자기 신념이 강해서 간혹 불같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은 보통 성격이 강한 사람과 비교해서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녀가 사귄 전 남자친구와도 평범한 데이트를 즐겼고, 실연 역시 다른 일반 여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조민호는 그제야 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했다.

“설마 김지수씨가 완치된 것을 그쪽 오성 그룹 주치의가 따로 조사하는 겁니까?”

“미안하네.”

그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어차피 어떤 형태로든 의사도 관심을 둔다는 것 정도는 예상한 터라 금방 이성을 찾았다.

“누구죠?”

“오재호 박사님 후배인 오성의료원의 이승구 박사란 분인데, 심장 전문의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한 분이네.”

“김지수씨 경우만 조사하는 것입니까?”

“그분이 한국 병원장 통해서 김태환 선생과 같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자네 뇌사 임상 사례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 중이네.”

“아, 그 김태환 선생이라, 그러면 사모님 임상도 포함되겠습니다.”

“그렇지. 다만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는 일은 없을 거네.”

“그건 감사드립니다.”

“천만에.”

그는 문득 김태환 선생 이름을 듣고 나서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혹시 그 김태환 선생과 전에 제가 부탁한 박상철 과장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아, 그거 이야기하려고 했었는데, 한국 병원장 이야기로는 박상철 과장에게 50억 투자를 받기로 했다던데, 갑자기 박상철 과장이 미국으로 간 후에 다 취소가 되었어.”

“그랬군요.”

조민호는 김태환 선생과 박상철 연결 고리까지 듣고 난 후에 잠깐 고민하다가 김지수를 다시 슬쩍 쳐다보았다.

“어차피 그들이 조사해봐야 나오는 것은 없을 겁니다. 정작 문제가 있다면......”

김지수는 조민호의 눈빛을 보자 잽싸게 소리쳤다.

“전 모르는 사실입니다.”

그는 힐끗 최영준 차장을 쳐다봤다.

“최 차장님이 폭로하지 않겠죠?”

“내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다른 한 분이 더 입을 열 이유도 없을 거고, 결국 두 분만 입 다물면 별일 없습니다.”

“하지만 결국 회장님 귀에 들어가면 뭔가 행동을 보일 거야.”

“조용히 있을 리는 없겠습니다. 그렇죠. 김 회장이 문제기는 문제입니다.”

조민호가 원한 것은 다루기 편한 적당한 수준의 VIP 고객이지 김 회장처럼 부담스러운 이들이 아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힐끗 주변을 돌아보다가 곧 수상한(?) 몇 사람을 발견했다.

“사촌 경호원이네.”

“그렇겠습니다.”

그는 잠깐 고민을 거듭했는데,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낼 바에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면서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모른 척하죠.”

“괜찮겠나?”

“어차피 지수 씨만 입 다물면 알 방법이 없습니다. 거기에 시간이 흐르면 결국 알게 되겠지만, 그때쯤이면 저도 적지 않은 아군 울타리를 쌓겠습니다. 그리고 막말로 오성 일가라고 해도 다 멀쩡한 법은......”

“언니가 병이 있어요. 샤르코 마리 투스 병이라고 일종의 유전병이에요.”

“흐음.”

조민호는 실연의 아픔을 경험하던 김지수가 도대체 누구 편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입맛을 다시면서 지금은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거기까지만 합시다.”

“네.”

그리고 그는 꽤 부드러운 시선으로 허겁지겁 여기까지 달려와서 자신을 걱정해준 최영준 차장을 쳐다보았다.

“고맙습니다.”

“내가 고맙지.”

조민호는 그가 괜찮은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불쑥 오른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전력을 기울여서 돕겠네.”

최영준 차장 역시 조민호 손을 꽉 잡으면서 이미 아버지 최석준 회장 경험을 통해서도 더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했다.

***

최영민의 교묘한 증거 누락 때문에 오성 X파일 사건은 처음부터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정작 불법자금에 대한 정치권, 재벌, 검찰, 언론에 관한 조사가 아니라 오히려 언론 제보자 체포가 중심이 되어버렸다.

대학가에서 이 사태에서 맹렬한 시위를 벌이면서 떠들었다.

실상 도둑 잡으라고 소리쳤는데, 정작 고성방가죄로 도둑 잡으려고 하는 사람을 정작 체포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 사건의 사령탑이나 마찬가지인 김건중 회장 처지에서 겨우 한숨을 돌렸는데, 특히 자신을 따르는 막내 녀석이 이 사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매우 걱정했다.

“막내는 어때?”

이학준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난주에 한국에 들어와서 정밀 검진을 받는 중입니다.”

“그놈은?”

“그쪽 집안 어른과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고, 그 친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아가씨와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다른 문제는 없어?”

“아가씨가 심적으로 고통받는 것을 고려해서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

“수고했어.”

“아, 그리고 오 박사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오재호 박사는 평소라면 그저 주치의답게 느긋한 모습이겠지만 오늘만큼은 다소 딱딱한 얼굴로 이 회장 서재에 들어섰다.

오히려 두 사람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오재호 박사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오재호 박사는 한숨을 내쉰 채 들고 온 김지수 진료 차트와 이후 추가로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 파일을 내밀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김건중 회장 표정이 괴이하게 변해서 평소 감정 없는 이학준 비서실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막내가 완치라고?”

“네.”

무려 20년이다.

김건중은 오성가 유전병 때문에 막내가 고통 받는 것을 지켜봐 왔는데, 자고 일어나니 그 막내가 완치되었다는 보고서를 받았다.

그는 다소 황량한 표정으로 이학준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닙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차가운 눈으로 오재호 박사를 쳐다봤다.

이미 어느 정도 단단히 각오했던 오재호 박사는 유리컵으로 맞는 참혹한 일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에 안도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제가 아는 모든 전문 인력을 동원해봤지만,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아빠!

마침 옥처럼 키운 막내 김지수가 후다닥 뛰어와서 가자미 눈으로 서재 분위기를 살피면서 김건중에게 뽀뽀까지 한 후에 파이팅 포즈를 취한 후에 잽싸게 사라졌다.

“으음.”

세 사람은 멍하니 그런 김지수 행동을 쳐다봤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죽어가던 좀비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모습은 멀쩡하다 못해 건강미마저 넘친다.

“오 박사, 이게 다인가?”

“뇌간이 손상 입은 환자 중에 다시 멀쩡하게 깨어난 사람은 전 세계 임상 사례를 뒤져봐도 없습니다. 심지어 7년 넘게 전신마비가 되었던 환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추가로 알게 된 고령으로 만성 기관지염을 앓던 환자 역시 비슷합니다. 이 환자에 비하면 아가씨의 심방세동 완치는 큰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그 원인이 뭔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 실장님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저희 인력만으로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김건중 회장 역시 처음에는 오재호 박사에게 분노했지만, 보고서를 다시 살피면서 의혹을 느꼈고, 그건 이학준 비서실장 역시 비슷했다.

특히 오재호 박사는 한국 내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히는 실력자다. 그런 그가 자존심까지 아예 대 놓고 모르겠다고 할 정도면 진심이라고 봐야 했다.

“오 박사, 내 솔직히 하나 묻겠네. 이게 상식적으로 맞는 건가?”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그 뇌사 환자를 찾아가서 따로 부탁할 계획입니다. 특히 손상난 뇌간 조직이 어떻게 회복되었고, 지금 예후가 어떤지는 정말 중요하니까요.”

“막내도 그런가?”

“아가씨는 심장에 구조적인 이상이 있는 분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심방세동이 있는 분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심방세동 환자보다 더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김건중 회장은 뒤늦게야 오재호 박사가 막내 이야기를 계속 꺼낸 이유를 깨닫자 이 실장에게 김지수를 호출했다.

다시 나타난 김지수는 우유에 빨대를 꽂은 채 쪽쪽 빨아먹으면서 시치미를 뚝 뗐는데, 전 남자 친구 일 때문에 앙금이 많이 있었지만, 조민호 때문에 이제는 흐릿하기만 했다.

“무슨 일 있어요?”

“아,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뭔데요?”

“혹시 최근에 병원 가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

“그런 적 없어요.”

“그러면 혹시 네가 심장이 나쁘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듣거나, 뭐 그런.......”

김지수는 겉으로야 내색하지 않았지만, 조민호 모습을 새삼 다시 떠올리면서 김건중 회장과 비교했다. 두 사람은 이상하게 별 반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아니 조민호가 오히려 더 나았다.

그녀도 아빠 김건중 회장을 좋아한 터라 비슷한 조민호를 만난 후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특히 그 치료 후에는 마치 자신이 최면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이해하기 정도로 더 심해졌다.

“전혀 없어요. 뭐 남자 친구에게 차인 덕분에 울화가 치밀어서 미칠 뻔한 적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는 오히려 몸이 더 좋아졌어요.”

“그렇구나.”

그는 억지로 환한 미소를 한 채 힐끗 다른 두 사람을 교대로 쳐다보았다.

오재호 박사는 망설였지만 이미 정밀 추가 검진을 하면서 수십 차례 질문해본 내용이라서 더 질문하지 않았다.

김지수가 건강미를 뽐내면서 사라지자 김건중 회장은 이유야 어쨌든 이제까지 가슴 한구석을 꾹 누르고 있던 앙금이 사라지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 실장, 한 번 따로 조사를 해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잔뜩 긴장한 채 식은땀을 흘리는 오재호 박사를 쳐다본 후에 황당한 임상 사례에 진심으로 말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조금 전의 김지수 모습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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