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1화 (11/176)

#011

“혹시 무슨 다른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최영준 차장은 조민호의 비범한 능력을 알았지만, 그 마사지 효과가 정말 심장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이제 확인하고는 반쯤 넋이 나가버렸다.

그는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오재호 박사는 오성 의료원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명성이 높고, 한국 의료계에도 꽤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뭐 지병이 완치되었다면 좋을 일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전 그냥 입소문만 듣다가 그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는 김지수를 쳐다보았다.

김지수 역시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최근 몇 개월 자신의 삶이 마치 마약중독자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시선을 피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에게도 따로 보고하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네!”

김지수는 말괄량이처럼 크게 대답한 후에 후다닥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고, 최영준 차장은 정중하게 인사는 했지만 죄 짓은 사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오재호 박사는 다시 이제까지 기록한 모든 김지수 진료기록부를 확인하면서 중간 치료 기간이 뚝 잘린 진료기록만을 붙잡았는데,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아가씨 질환은 완치할 방법이 어렵습니다.’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리고 이걸 어떻게 회장님에게 보고하지?’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김지수의 심장 질환은 적지 않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오성 그룹 주치의였던 오재호 박사도 그런 이들 중의 하나였고, 김지수의 갑작스러운 완치를 어떻게 할 지 갈피를 못 잡았다.

김지수 아버지는 무려 20년 전부터 이 질환을 앓는 막대 딸을 보면서 내내 괴로워했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썼다.

고작 20대 초반 나이의 막내딸에게 막대한 지분을 넘긴 것도 그 원인이었다.

유전적인 소인과도 관련이 있는 김지수 질환이 완치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당신 딸은 심방세동이 완치되었다고 한다면, 칭찬보다는 그러면 10년 동안 당신이 한 게 뭐했냐고 질책할 것이 뻔했다.

최악은 막내딸 심장 부정맥을 이용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 최소한의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오재호 박사는 결국 자기 후배 중에 믿고 지내는 척추와 뇌질환 관련 전문가 윤현종 과장을 비롯한 자기 측근 전문가를 불러 모아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말 기묘한 일입니다.”

“그렇지?”

“맥박수 자체가 너무 빠른 것도 문제인데, 심박출량이 자체가 줄어들어서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아닙니까? 약물치료를 통해서 줄일 수는 있겠지만, 이걸 어떻게 완치한다는 말입니까?”

“맞아. 당연한 이야기지. 그런데 완치가 되었어.”

“설마 회장님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까?”

“아니. 지금 보고하면 그 원인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내려올 것이 뻔하잖아. 거기에 지금까지 내가 한 10년 동안 삽질은 무능으로 찍히고. 그러면 결국 자네들도 다 피해를 볼 거야.”

“끄응.”

윤현종 과장은 이미 두 달 전에 김지수가 미국 병원에서 치료받은 진료표까지 꺼내서 의구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 내용을 살폈다.

“이 심전도 결과를 보십시오. 이때만 해도 상태가 생각보다 나빴습니다. 회복은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어서 최악의 경우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뻔했습니다.”

오재호 박사는 발끈해서 버럭 소리쳤다.

“야아, 윤 박사, 재수 없는 소리는 마!!!”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주제를 바꾸었다.

“혹시 그전 남자친구 일 때문인가?”

“실연당해서 절망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이번에 회장님이 노골적으로 상대 집안을 압박했다는 소리도......”

한국 최고 외과와 내과 전문의가 모였지만 김지수 예후에 대한 것만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참석한 이들 중에 심장 전문의 이승구 박사가 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뇌사 환자가 갑자기 회복하고, 7년 전신마비 환자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완치되었습니다. 이 임상 사례와 비교하면 이 경우도 운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승수 박사를 쳐다보았다.

이승구 박사도 무안한지 질책을 듣기 전에 지난주에 있었던 서울대 심포지엄에서 논란이 되었던 김태환 박사 발표 내용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환자 때문에 직접 한국 병원 김태환 박사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파악했다.

당시 한국 병원은 갑작스러운 박상철 과장의 100억 투자가 취소된 것 때문에 내부적으로 소란스러웠고, 김태환 박사는 그 틈을 노려서 공개적으로 두 사람의 치료 과정을 마치 자기 실적인 양 발표해버렸다.

오재호 박사는 뒤늦게 이승구 박사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적적인 임상 사례를 확인하면서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뭔가 과장되거나, 잘못된 것이겠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기사 한 줄 본 적이 없네.”

“심포지엄에서 공개적으로 발표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환자 중에 한 사람이 중아일보 최 회장의 큰 며느리입니다. 그쪽에서 당연히 손을 썼을 겁니다.”

“중아일보?”

“이거 진료기록부 조작이네요. 설마 이걸 믿는다는 말입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이승구 박사도 피곤한 얼굴로 딱히 더 설명하지 않았다.

대뇌 손상 회복만 해도 황당한데, 뇌간 조직 일부 손상을 입은 환자가 멀쩡하게 회복했다니.

아는 만큼 본다고 이승구 박사는 김태환 박사와는 격이 다른 인물이라서 더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따로 조사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오재호 박사가 지방 방송을 제압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두 가지는 전혀 달라. 심방세동과 뇌사 환자는 비교할 바가 아닐세.”

이승구 박사는 부정적인 분위기도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제가 한 번 이 세 가지 사건을 조사해보겠습니다.”

“자네는 혹시 이 사건이 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건 모르겠지만, 원인 불명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이 뇌사 환자 경우만 파도 뇌 치료 분야에 혁신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게. 지수 양에게는 내가 따로 말해둘 테니, 내막을 잘 알아봐.”

“알겠습니다.”

***

의술 분야에서 천하일절로 꼽히던 마의에게서 의술을 배운 조민호는 민감한 심방세동이 어떤 질환인지는 몰랐지만, 기혈 흐름을 통해서 뭔가 문제가 있는지는 알았다.

그의 순수한 혼원기 역시 다른 부작용이 줄 수가 없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설사 과하다고 해도 인간의 선천지기 범위 안이라서 자연스럽게 희석되니까.

하지만 조민호가 다른 때와는 달리 김지수와 선을 그은 것은 심장 경혈을 치료하면서 강제로 동기화시키는 과정에서 남은 선천지기가 김지수 심장 속으로 파고든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뒤늦게야 흡수라는 것을 알았고, 곧 그 방식이 마치 강제로 뇌에 낙인을 새겨서 세뇌하는 무학 이치와 비슷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행이라면 심장은 뇌와는 달라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마치 미세 환골탈태와 비슷한 그 현상은 조민호조차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하면서 귀찮아 아예 내버려둬 버린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조민호(25살), 무인(Lv.3)

[경험치] 77/80

[스탯]

[체력] 21, [근력] 22, [민첩] 21, [후천지기] 14,

[선천지기] 16, [정신] 1,283,233

조민호는 수수께끼 퍼즐을 푸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선천지기 스탯을 다시 살폈는데, 최소 선천지기를 따라가는 후천지기는 배제했다.

‘음기를 흡수했군.’

김지수는 태생적으로 음기가 강했고, 울혈이 주기적으로 누적되면서 혈류 정체가 심해지면서 심실에 이상이 생겼다.

다행이라면 꾸준한 자기 관리 덕분에 겉으로 봐서는 심장이 약한 사람처럼 보였고,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치료 동기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민호가 그 음기를 흡수한 것이다.

선천지기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두 사람의 특성 자체가 많이 닮아서 효율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좋았기 때문이다.

무림에 있을 때는 이런 현상 때문에 혼원기가 흡기마공과 비슷했다.

실제로 조민호가 무차별적으로 선천지기나 후천지기를 흡수한다면 그 대가로 세상에 전무후무한 마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조민호는 오히려 이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경험을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이 생소한 지식을 느긋하게 바라봤다.

그는 수리물리학도 자기 무학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확신했으며, 더욱 대학 강의 수업에 집중했다.

최근 조민호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그런 모습을 지켜본 이유미가 슬그머니 맞은 편 자리에 앉았고, 조민호 눈치를 보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민호야.”

“어.”

이유미는 감정이 전혀 담겨 있는 무심한 민호 말투에 입술을 깨물었다.

“요즘 많이 활기찬 것 같아. 몸도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언제부터 헬스한 거야?”

조민호도 그제야 턱을 들어서 계속 전공 공부를 방해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아서 완전한 남남을 보는 듯한 시선을 접한 이유미는 움찔 놀라서 크게 당황했다. 그녀가 아는 소심한 조민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말이야. 민현이하고는.......”

“민현하고 사귀는 거 들었다. 앞으로 두 사람 행복하기 바란다. 더 듣고 싶은 말 있어?”

“미, 민호야, 그게......”

“너도 참 어떻게 전 남자 친구 앞에 와서 계속 얼쩡 거리냐. 어장 관리라도 할 생각이야? 아서라. 난 관심 없다.”

이유미는 북풍한설을 떠올리게 하는 조민호 말투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한 편으로 그 사나이다운 그 태도에 마음이 두근거리는 이질적인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침 조민호를 찾아온 검푸른색 최고급 정장을 한 최영준과 고급스러우 재질에 루즈핏 반말 오피스룩으로 멋을 낸 김지수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여기 있었군.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조민호는 자기 환자가 직접 자신을 찾아온 것에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학교까지 찾아오다니, 무슨 일입니까?”

“실례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래도 자네가 급히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인사하는 김지수를 보자 혀를 차면서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책 한 번 보기 힘듭니다.”

이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민호야.......”

“그만.”

두 사람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폈다.

조민호는 입원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 양 선을 확 그었다.

“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인데, 새로 사귄 남자 친구를 잘 지내라고 이야기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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