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미래 투자 증권 조수현 회장의 친동생이 조철영씨이고, 과거 가족 내에 갈등 때문에 20년 전부터 남남처럼 살게 됨.
-조철영씨도 한 때는 매출 1,000억 중견 기업 사장이었지만 당시 정치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굴복하고 말았음.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갔을 때가 이때쯤 이었던 걸로 들었는데......’
그는 수십 차례 보고서를 읽고 또 읽으면서 꼼꼼하게 살피면서 최근 박상철 과장이 미래 투자 증권에 관한 조사한 부분을 확인했다.
조민호는 석연치 않은 구석을 본능에 따라 느끼자 일단 아버지가 사는 시골 충남 홍성군 장곡면 신동리로 향했다.
‘조수현 회장이 내 큰아버지였다니.’
***
신동리에 있는 저수지를 따라서 피어있는 예쁜 화단은 방문객의 마음을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작은 마을 예산을 통해서 만들어진 지역 신문이 시골집마다 꽂혀 있어서 죽어가는 흔한 마을과는 달리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조철영은 이 마을 신문을 창간호부터 꼼꼼하게 복사해서 마을에 배포하는 일까지 하면서 호젓한 시골 생활을 즐겼다.
여동생은 묵묵히 이런 아버지 옆에서 곧 있을 수능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조민호는 푸근한 두 사람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마사지해서 2억 벌었다는 이야기는 물론 하지 않았다.
“정말 1억 5천만원 로또에 당첨되었어요.”
“이놈아, 거짓말 좀 하지 마!”
그도 꼬장꼬장한 아버지 설득은 포기한 채 여동생이 피곤하다면서 방으로 사라지자 바로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혹시 조수현라고 들어봤습니까?”
“몰라!”
단호한 대답.
하지만 조민호도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사전에 충분한 조사까지 했다. 조수현 회장은 그야말로 샐러리맨 신화를 썼던 당사자답게 그와 관련된 인터넷 정보는 넘쳐흘렀다.
그는 슬그머니 그 복사한 자료를 꺼내서 아버지 앞에 내밀었다.
“저도 어지간하면 아버지 말을 믿겠지만, 이 일은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조철영은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담배를 피웠는데, 그의 심사는 그 어느 때와는 많이 달랐다.
그는 결국 애환이 가득한 눈빛을 한 채 하늘이 무너져라 한숨을 내쉬면서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너에게는 미안하구나. 그래. 수현가 내 친형이다. 너에게는 큰아버지가 되는구나.”
이렇게 시작된 사연은 무려 20년 전으로 거슬러갔는데,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생각보다는 오히려 더 단순했다.
두 사람은 할아버지 유산을 꽤 상속받았다.
조수현는 동앙증권에 입사한 후에도 그 종자돈을 사용해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해서 꾸준하게 재산을 늘려간 반면에 조철영은 당시 건설 분야에 직접 뛰어들었다.
조철영은 제법 능력이 있어서 나름 건설 사업을 순탄하게 풀어갔다.
하지만 문제가 터진 것은 바로 군사 정권의 압력이 생긴 후부터였다.
특히 그의 사업을 노리던 몇몇 재벌은 군사 정권을 등에 업고 정치적인 협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조철영을 압박했다.
조철영은 결국 자금 압박에 시달렸고, 형 조수현를 찾아가서 자금 지원을 부탁했다.
조수현는 당시 권력과, 재벌에 찍힌 조철영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라 냉정하게 거절했다.
두 사람 갈등은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시간이 갈수록 극에 달했다.
조철영은 결국 또 다른 대안으로 남남처럼 지내던 장인어른을 비롯한 일가친척을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청했는데, 그런 중에 조민호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해버렸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아서 반쯤 폐인이 된 채 시골로 내려가서 세상과 연을 끊은 채 살아왔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조철영도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수현 형이 현명했지. 덕분에 앞으로 비빌 언덕이라도 생겼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미쳤던 것 같구나.”
조민호는 마침 남 이야기를 푸념하는 듯한 조철영 모습에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모아 놓은 재산은 이제 하나도 없는 겁니까?”
“여기 땅이 다야. 한 2억쯤 되려나. 다 네 녀석에게 줄 테니, 걱정 말아라.”
“로또 당첨금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로또 같은 헛소리 마. 가만 민호 너 설마 수현 형을 직접 찾아간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는 잠깐 퍽치기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할까 망설이다가 관할 경찰서를 동원해서 범인을 잡았다고 각색한 사연을 슬그머니 했다.
“결과적으로 범인을 잡았지만, 그 배후까지 밝히지는 못했어요. 정말 이상하잖아요. 수현 큰아버지와는 아무런 돈 관계도 없는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조철영도 퍽치기 범인에 대해서 경악했지만 이미 범죄자를 잡았다는 말에 안도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역시 조민호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꺼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결국 돈 때문이라는 이야기인데, 이상하구나. 너도 알다시피 수현 형이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데, 관련될 리가 없어. 아, 설마......”
“혹시 짚이는 거라도 있어요?”
“너희 외가다. 거기 생각보다 재산이 많다. 애초에 결혼을 처음부터 반대한 사람이 장인어른이었다. 결혼 후에도 처음에는 몇 번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어. 그리고 네 엄마가 죽고 난 후에.......”
조철영은 울적한 마음에 결국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조민호는 잠깐 조철영이 감정을 추슬리 때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외할아버님이 누군데요?”
“이충원이란 분이다.”
‘뭐가 이리 복잡해.’
***
조민호는 서울 원룸에 다시 돌아와서는 이충원에 관한 조사부터 착수했고, 불행히도 인터넷을 통해서는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는 결국 간간히 연락하고 지내면서 서로 편하게 지내는 최영준 차장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는데, 이번에는 굳이 다른 조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충원 어르신이라면, 혹시 그 강남 땅 부자를 말하는 건가?
-강남 땅 부자라뇨?
-나도 자세한 것은 몰라. 아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야겠지. 주로 땅이나, 사채업을 주로 하는 분이니까.
그도 딱 여기서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지만, 그 뒤는 좀 달랐다.
이충원은 나름 은행보다 약간 높은 이율로 근실한 돈놀이를 했고, 주로 하는 것은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 재산을 늘려갔다.
그는 어둠 속에서 투자한 터라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영준 차장이 이충원을 알게 된 것은 외환위기 시절에 집안이 어려울 때 무려 500억 가까운 현금을 대출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말고도 내 아는 지인 중에 급히 현금이 필요할 때는 그 분 도움을 많이 받네.
-혹시 그 분에게 최근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은 모릅니까?
-아, 한 가지 있어. 몇 년 전에 가족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그 이후로는 그 어르신도 충격에 빠져서 모든 활동을 접었다고 들었어.
-말씀 고맙습니다.
조민호는 바로 전화를 끊은 후에 뒤늦게 사연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
만약 그의 외할아버지 유산 상속자가 다 사망했다면, 그 유산은 조민호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수천 억 부동산 유산이라면 살해 동기던 아니면 식물인간으로 만들던 개연성이 충분했다.
박상철이 미래 투자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면서 조수현 회장과 혈연으로 묶여 있는 조철영을 연결고리로 통해서 어머니 이희정, 그리고 외할아버지 이충원 사연을 알았음이 분명했다.
조민호는 대충 스토리가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가자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단 그 분을 만나봐야겠군.’
***
조민호는 예상과는 달리 이충원 집 위치까지 알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고, 그 집에는 관리인 몇 사람만 만났다.
그는 뒤늦게 박상철 과장조차 이충원 행적에 대한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퍽치기를 동원했겠지.’
갑자기 막힌 벽에 조민호도 당황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외할아버지가 안전할 것이라 확신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조수현과 박상철 관계다.
문제는 박상철 과장이 사라진 시점에서 20년 만에 조수현 큰아버지를 찾아가서 두 사람이 무슨 관계냐고 묻기 어려웠다.
자칫하면 오히려 불화만 더 일으키거나, 타초경사가 될 수도 있었다.
‘다른 대안이 필요해. 손발이 되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는 전후 사정을 알게 되자 이충원 관리인에게 연락 달라는 메시지만 남긴 채 복학했다.
조민호는 치료를 위한 근간이 되는 혼원기 바탕이 되는 절대혼원신공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물리와 수학 지식이 더 필요했다.
그는 기본 수련 연마에 더 집중해야 할지 잠깐 갈등하기도 했는데, 최영준 차장이 예상치 못한 한 가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박상철 과장이 투자를 명목으로 한국대 이사진을 만나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어.”
자세한 내막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조민호는 결국 박상철 과장이 한국대 내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복학했다.
개강 첫날은 간단한 전공 소개가 이어졌는데, 주로 에르밀 함수를 시작으로 라게르 함수, 초기화 함수 그리고 푸리에 급수 등에 대한 것이다.
‘도통 모르겠군.’
새삼 현대에 와서 머리가 돌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 조민호는 절대혼원신공을 보완하기 위해서 전공 서적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노력했다.
“정말 열심이네.”
다소 비꼬는 듯한 어조가 담겨 있는 말을 하는 이는 조민호 전공책을 이리저리 들추었다.
“누구?”
“민현이다.”
조민호는 순간 당황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 나름 고민했는데, 절친 박진민이나, 김영탁은 기억했지만, 나머지 친구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치트키를 사용했다.
“기억 상실이다.”
“핫.”
정민현은 솔직히 먼저 말을 하면서도 조민호가 자기 전 여친을 꿀꺽한 것 때문에 발끈해서 주먹이 날아올 것을 대비했다.
“완치 아냐?”
“어.”
조민호는 다시 수리물리 전공 삼매경에 푹 빠져 들어갔다.
“나도 문병가려고 했다.”
“그래.”
그는 아예 자신을 무시하는 조민호 행동에 오히려 화가 났다.
“아직 완치도 안 된 놈이 벌써 복학해서 학교 나온 거야?”
“괜찮아.”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서 몇 개월 전의 강의 내용조차 기억 안 날 텐데, 그 복잡한 고등 물리수학을 봐서 이해가 되냐?”
“책보니, 기억 나.”
“내 이름은 기억 안 난다며?”
“안 친했나 보지.”
두 사람은 솔직히 친하기보다는 원수지간에 가까웠다.
정민현조차 어떻게 보면 조민호에게 은근히 시비를 걸었고, 심지어 다음 순서로 조민호 전 여친 이유미를 꺼냈다.
“유미는 기억 나?”
“전혀.”
“너 전 여자 친구야.”
“그런가?”
조민호도 뒤늦게 자기 기억 일부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솔직히 무림에서 얻은 지식과 앞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물리수학 지식이 더욱 더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