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3화 (3/176)

#003

“아, 그게......아는 지인 통해서......”

“잘못한 겁니다. 그때 복용한 약재 때문에 상태가 더 나빠진 겁니다. 아마 그전에는 어느 정도 말도 하고, 손 정도는 움직였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최영준은 눈을 크게 뜨면서 뒤늦게 그 시절을 떠올렸고, 곧 경악했다.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아는 것은 자신과, 한의사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잘못된 처방에 관한 책임을 물어서 한의사를 고소했는데, 알고 보니 피해자가 꽤 나왔다.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앞으로 국세청의 세무조사 명분이 되는 돈의 출처 문제도 있고, 애초에 한의사가 되어서 사람 치유만 하는 무미건조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히 돈을 벌어서 못다한 무학의 끝을 보면서 인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금액은 1억이었다.

“척 보면 알아야죠. 그리고 치료비는......현금으로 1억입니다.”

1억이라니.

보통 사람이라면 욕설부터 퍼붓고, 설사 돈이 좀 있다고 분노했을 테지만 7년 동안 무려 수십억을 사용했던 최영준은 잠깐 망설이기는 했지만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좋습니다. 다만 치료가 된다는 전제하에서입니다.”

“물론이죠.”

조민호 역시 첫 환자 서비스로 굳이 무리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입소문이 나면 그때는 다르지.’

***

정연희 환자 상태는 얼핏 봐서는 장기적인 전신마비 때문에 치료하기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 속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교통사고로 말미암은 충격 때문에 제7경추와, 제1흉추가 심한 압박을 받았고, 이 때문에 2차 피해로 척수가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정작 더 심각한 손상을 가한 것은 바로 음기가 가득한 한약 처방이었다. 그것도 순수하지 못 한 한약을 기반으로 한 오염된 음기였다.

음기가 강한 여자에게 오염된 음기가 가득한 한약처방을 내렸다. 마비가 아니라 쇼크로 사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설사 조민호라고 할지라도 지금 단계에서는 심각한 척수 손상을 치료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환자 경우는 막힌 경혈을 녹이기만 하면 된다.

그는 바닥까지 쥐어짠 기를 이용해서 혼원기를 강화시켰고, 그것을 이용해서 대추혈 부근 경혈을 조금씩 녹여가기 시작했다.

겉으로 봐서는 단순한 목 주변의 지압식 마사지였다.

이 치료는 최영준이 병실 문을 막고, 심지어 CCTV를 꺼버린 후에 진행했다.

조민호는 그 과정에서 조금씩이지만 정연희 체질과 맞지 않는 음기를 조금씩 줄여나갔고, 비록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순수한 내기 덕분에 이 작업을 더 쉽게 진행했다.

그는 뜻밖의 수확으로 자기 특성에 맞는 음기 일부도 흡수했다.

‘역시 예상대로군.’

그것은 전생에서도 체험해보지 못 한 독특한 경험이었다.

자신의 기를 필터링해서 다른 사람과 맞는 기운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염된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작업 자체가 아주 어려워지는데, 서로 기운이 뒤섞여서 그 흐름이 얽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복잡한 기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려면 그것만 해도 간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정해진 몇 가닥 기만 가지고 하는 일이 어려울 리가 없었다.

비록 그 기운이 적다고 해도 말이다.

‘설사 1갑자 기가 있다고 해도 효율은 고작 2할 정도에 불과하고, 타인의 특성에 맞는 기운은 또 다시 2할로 줄어들어.’

설사 10갑자라는 기운이 있다고 해도 비슷하게 적용해보면 효과가 좋지 않았다.

그는 술술 풀리는 이 일에 생각보다는 더 깊이 몰입했다.

과거 겉으로 절대지경으로 숭앙받는 절대자 경지에 도달했지만 정작 지금과 같이 소소한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민호는 기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뜻밖에 재미있네.’

***

최미연은 다른 한국 재벌가 아이와는 많이 달랐는데, 어린 시절부터 병원에 누워있는 어머니 정연희 때문이었다.

그녀는 학교 갈 때를 제외하고는 늘 병원에서만 지냈다.

그녀는 다른 아이와는 달리 조숙할 수밖에 없었고, 이 시련을 경험하면서 돈보다는 오히려 건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병원에서는 늘 죽어가는 환자는 넘쳐났다.

최영준은 계속해서 최미연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엄마만을 생각했다.

늘 병원을 방문하면 엄마가 일어나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를 했다.

그녀가 조민호의 회복을 본 것은 그저 운이 좋아서는 아니었는데, VIP 병실뿐만 아니라, 이 병동 전체 환자를 계속 살펴봤기 때문이다.

최미연은 조민호가 아빠를 설득해서 엄마를 치료한다는 말에 기도했고, 새벽이면 교회에 가서 간절히 기원했다.

하지만 그녀 마음 한구석에는 정말 그게 가능할까 의혹도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한 채 터벅터벅 병원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미연아!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소리.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최미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후다닥 엄마 병실을 향해서 뛰어갔고, 정신없이 병실문을 열었다.

그리고 본 것은.

최영준에게 부축을 받은 채 차창 밖을 내다보다가 자신을 향해서 얼굴을 돌리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어, 엄마?”

“그래.”

정연희는 더없이 맑은 눈으로 최미연을 보았고, 양팔을 벌렸다.

“우리 딸.”

최미연은 총알 같은 속도로 달려가서 엄마 품에 안겼다.

“엄마, 엄마, 흑흑흑, 엄마, 아아앙......”

최미연은 목 놓아서 울었고, 간호사 눈이 충혈된 채 멍하니 두 사람 모습을 쳐다만 봤다.

최영준 역시 멍하니 눈물을 흘리기만 했다.

병실 앞에는 이미 다른 간호사와, 환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려 7년 동안에 전신마비로 있던 환자가 갑자기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이, 이럴 수가!’

***

“이상한데......”

김태환 선생은 갑자기 들려온 뜬금없는 정연희 회복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마비환자 회복이 나름 기뻤다.

그런데 그 담당 환자가 어떻게 해서 회복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추가 조사는 더 어려웠다.

정연희 남편 최영준이 아예 경호원을 병실에 배치해서 그 어떤 약도 투약하지 못하게 막았다.

의사에게 원하는 것은 상태 체크다.

그는 결국 CT 촬영 결과만 가지고 어떻게 해서 환자가 회복되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불행히도 CT 상으로는 그 어떤 흔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좆갔네.’

그는 마침 울린 핸드폰 소리에 대포폰을 받았다.

-어떻게 되었어?

-죄송합니다.

-김 선생, 당신 의사 생활 접고 싶어?

차가우면서 한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솔직히 김태환 선생도 영문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저 병원장 지시받은 대로 응급 차량이 데려온 조민호를 VIP 취급해서 따로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때와는 지금은 예후가 매우 좋아서 퇴원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갈비뼈도 금이 갔고, 봉합 부위도 문제가 심각했었잖아. 내가 원한 것은 조민호를 퇴원시키지 못하게 하는 거잖아. 그게 어려워?!

-그게······. 완치가 되었습니다.

-이 새끼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갈비뼈 몇 대가 나갔는데, 고작 두 달 만에 치료가 되었다는 게 말이 돼?

김태환 선생도 정연희 환자 예후까지 떠올리자 짜증스럽기만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 양반이 완전히 미쳤구나. 당신 그러고도 그 병원에 계속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다른 종합 병원에 갈 수 있겠어? 내 말이 농담으로 들려?!

-죄송합니다.

침묵은 생각보다 길었다.

박상철 과장은 이미 조민호 진료 자료 복사본까지 가지고 있었고, 지금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아, 제기랄, 빨리 서둘러야 했는데......

대포폰은 곧 끊어졌다.

김태환 선생은 박상철 과장에 대한 것을 곧 훌훌 털어버린 채, 기적과 같은 두 환자 자료를 처음부터 꼼꼼하게 확인했다.

두 환자 예후는 한국 병원, 아니 전 세계 병원 그 어떤 곳에서도 보기 드문 기적이었다.

김태환 선생은 다른 것을 떠나서 진심으로 이 두 환자 예후를 조사해서 전신마비와, 뇌사 환자에 관한 현실적인 연구를 해보고 싶었다.

‘두 사람 다 퇴원 안 하면 정말 좋을 텐데......’

***

조민호는 애마 뒷좌석에 가득한 현금다발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는 애초에 한의사 자격증을 따서 환자만 치료하면서 사는 삶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역시 환자에게 치료비를 받는 방식이 문제인데, 굳이 지금처럼 그 자신이 직접 현금을 받지 않기만 하면 된다.

지금 가진 내공은 선천지기를 포함해서 고작 5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선천지기 효율을 생각하면 전생 기준으로 무려 25년에 해당했다.

김태환 선생을 잡아서 고문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지만, 배후를 찾는 것도 있지만 그 퍽치기를 먼저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보다 더 급한 최소한의 신체 단련, 기 수련에 대한 계획부터 짰다.

조민호는 일단 아버지와, 동생부터 안심시켰는데, 그는 시골로 떠나는 조철영 모습에서 석연치 않은 면을 봤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아버지 조철영에게 뭔가 사연이 있더라도 전생과는 달리 지금은 알 이유가 없었다.

***

조민호는 일단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원룸에서 전세 1억 투룸으로 이사했다.

그도 이사 후에 피자와 같은 현대판 먹거리에 매달렸다.

그 맛은 정말 아주 좋았다.

치킨은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은 병원에서 퇴원한 지 불과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생각보다 더 빠르네.’

***

황주식은 침을 탁 뱉으면서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이를 갈았다. 그도 애새끼 하나 때문에 박주명 사장에게 이렇게 까일지는 몰랐다.

오른팔 전두명은 껌을 씹으면서 힐끗 편의점으로 들어간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차라리 저놈 이번 기회에 묻어버리죠.”

“그건 안 돼.”

“영문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새끼야, 입 다물어.”

박주명이 던진 잿덜이 때문에 찢어진 이마를 문지르던 황주식은 표독한 눈빛으로 편의점 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이번 일을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서 밑에 두 놈을 더 동원했다.

마침 기다리던 조민호는 음료수와, 술을 가득 담아서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이어폰을 꽂은 채 어깨를 흔들면서 걸어나갔다.

황주식 일행은 조심스럽게 조민호 뒤를 따랐는데, 이미 봐둔 장소였고, 조금씩 속도를 올리면서 조심스럽게 조민호 뒤에 바짝 달라붙으면서 이미 준비해둔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죽어라!’

뒤를 따른 다른 세 사람은 만약 위해서 양쪽으로 흩어졌다.

조민호가 뒤를 빙글빙글 돈 것은 막 쇠파이프가 뒤통수와 10cm를 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는 마치 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쇠파이프를 피했다.

“어?!”

상상도 못 한 반응에 황주식은 움찔했고, 심지어 조민호 양옆을 막아서든 세 사람 역시 화들짝 놀라서 몸을 세웠다.

조민호는 그 짧은 순간에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팔꿈치를 쫙 펴면서 황주식 가랑이에 집어넣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주식은 달려온 속도 때문에 자기 힘에 주체 못 한 채 두 사람이 있는 옆으로 날아가서 그대로 부딪치고 말았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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