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2화 (2/176)

#002

***

조민호가 굳이 김태환 선생 제안을 받아준 것은 단순히 적지 않은 진료비 때문은 아니었다.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여기에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이 정도 큰 병원에서 괜찮은 환자 고객을 찾으면 좋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아버지나, 이제 고3에 오른 여동생은 눈물을 글썽였다. 두 사람은 혼수상태에 빠진 조민호 때문에 이미 정신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특히 아버지 조철영은 반쯤 폐인이 되어 있었다.

“이놈아, 내가 그렇게 몸조심하라고 했잖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부짖는 조철영은 결국 병실 바닥에 쓰러졌고, 여동생 조지현 역시 눈시울을 붉히면서 몸을 돌렸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처를 떠올리면서 반쯤 넋이 나가버렸다.

다음에 병실을 찾는 이는 은근히 자기 자랑하기 좋아하는 박진민이나, 과내 카사노바 별명을 가진 김영탁 두 사람이었다.

조민호는 거의 반세기 만에 보는 두 친구가 반갑기만 했다.

“복학은 같이 하자. 난 어학연수 갔다 온다고 1년 쉬웠고, 영탁은 유럽 여행 가서 2학기 그냥 건너뛰었으니까.”

“취업난 때문이구나.”

“말마라. 작년 졸업 선배 중에 고작 38%만 취업하고, 나머지는 다 백수야.”

두 사람은 조민호가 회복된 것을 축하해주면서도 앞날에 대해 걱정부터 했다.

IMF에 비하면 2005년은 나름 나은 편이지만 대학생 취업난은 빈익빈 부익부였다.

조민호는 새삼 마의에게서 의술을 배운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고, 마의도 나름 자신에게 의술을 전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떠올린 마의 얼굴은 공포와 두려움에 질린 얼굴이었다.

박진민은 석연치 않은 얼굴로 조민호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뒤늦게야 말투와 분위기가 이전과는 많이 다른 것을 깨달았다.

“민호야, 너 좀 변한 것 같아.”

“죽다가 살았는데, 당연히 변해야지.”

“그런가.”

김영탁은 오히려 유럽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 터라 입에 버터를 바른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호들갑을 계속 떠들었다.

“반갑다.”

조민호는 진심으로 가족과,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이 즐겁기만 했다.

***

조민호는 남은 삼일 동안에 CT를 확인하면서 자신의 변화, 특히 손상난 뇌조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가 사용한 것은 절대혼원신공의 정수에 해당하는 혼원기다.

이 혼원기는 심검을 수 만개로 쪼갰을 경우와 비슷하다.

허약한 신체와, 허접한 내기로는 만들어진 혼원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불균형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가 현경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결국 시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났다.’

조민호는 삼재심법을 시작으로 해서 우여곡절 중에 이류 심법 몇 가지를 기반으로 자신 만의 독특한 무학을 창안했다.

그가 일류지경 당시만 해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절정을 넘어서서 초절정을 통과한 후에 화경에 도달하면서 문제가 조금씩 드러났는데, 바로 순수하지 못한 내기 축적이 문제였다.

화경 아래 단계에서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화경 끝자락에 도달하면 서서히 이 오염된 기운이 무학 상승을 방해한다.

불행히도 이 어긋난 기운을 배출할 방법이 없다. 단전을 이루는 기운 자체가 하나의 기운이 아니라, 여러 기운이 혼합되며, 그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신체다.

조민호는 순수한 기를 무난하게 다룰 수 있는 삼재심법을 사용해서 기를 조금씩 모으면서 결국 대부분 기운을 외부로 배출해버렸다.

지금 현대의 기는 그 양도 적었지만 순수한 기는 더 작았다.

여기에 조민호 단전에 특성에 맞는 기운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피식 웃으면서 이 상황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이 상황을 벗어나면 전생에서 도달하지 못한 무의 끝자락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부수적으로 그 순수한 기운을 이용해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렇다고 환자만 치료하는 재미없는 한의사 인생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다. 굳이 자격증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고, 한 달에 환자 두 명 정도만 치료해서 필요한 돈만 벌 생각이다.

‘괜찮은 환자가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역시 설득인가?’

조민호는 휘파람까지 불면서 느긋하게 자판기로 다가갔는데, 두 눈에 들어온 캔 사이다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현대 문명의 정수 캔 음료수.

그는 그 뜨거운 탄산음료 기억을 떠올리면서 사이다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잉.

힘찬 자판기 소리.

하지만 캔 사이다는 나오지 않았다.

그도 이런 예상치 못한 난관조차 즐기면서 기꺼운 마음으로 버튼을 몇 번 누르고, 손바닥으로 자판기 옆면을 두들겼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민호는 슬그머니 화가 나서 주먹으로 자판기를 내리치려고 했다.

자판기와, 조민호 사이에 귀여운 소녀가 쑥 끼어들어서 버튼을 꾹 눌렀다.

놀랍게도 캔 사이다가 튀어나왔다.

“자판기 고장 나서 여기 버튼을 5초 정도 눌러야 동작해요. 여기 있어요.”

“어, 고맙다.”

“말만 하지 말고요.”

하나 사 달라는 얘기다.

조민호는 사이다 하나를 더 뽑아서 소녀에게 내밀었다.

소녀는 캔 사이다를 든 채 홀짝이면서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307호 혼수상태 오빠 맞죠?”

“?”

이제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는 인형 같았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 있었는데,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오빠는 어떻게 회복한 거에요?”

“운이 좋았어.”

“하지만 대뇌와, 심지어 뇌간 손상 환자는 절대로 회복할 수 없데요.”

“그런 지식은 어떻게 알아?”

“옆에서 늘 듣는 소리가 그거니까요.”

조민호는 그제야 이 소녀가 우연히 자기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아파?”

“엄마가 아파요.”

“아, 그렇구나.”

그도 난감했지만, 곧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는데, 어차피 앞으로 돈을 벌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몇 년이나 걸리는 한의사 대신에 전문 마사지사라는 점을 고려했다.

“엄마도 나처럼 건강을 회복했으면 하니?”

“네.”

소녀는 그다지 크게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병원 내에서 신의 기적이라는 조민호를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조민호는 물론 마시지 직업을 통해서 환자를 치료하려면 무엇보다 명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았는데, 특히 참작한 것은 이 VIP 병실이다.

“이름이 뭐야?”

“미연요.”

“이 오빠가 아직 전문 자격증은 없지만, 치료 마사지를 좀 해. 아마 너희 엄마 치료에 도움이 될지 몰라. 하지만 보호자 허락이 있어야 해.”

“저, 정말로 울 엄마 치료할 수 있어요?”

최미연은 벌써 눈물을 글썽였는데, 애초에 조민호의 이런 반응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다.

“일단 환자를 봐야 아는데, 다만 병원에는 비밀로 하고 싶어.”

절망에 빠져 있던 최미연은 펄쩍 뛰었다.

“정말이요? 노, 농담으로 하는 말 아니죠? 거짓말이면 저 정말 화낼 거에요!”

“이 오빠는 뇌사 상태에서 회복했잖아.”

“알았어요.”

최미연은 정신없이 병실을 향해서 뛰어갔다.

조민호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고심에 잠겼다.

***

최영준 차장은 최근 매가박스 인수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특히 후계 구도 문제에 관련해서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벌써 7년째 입원 치료받는 것 때문에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

다른 재벌 3세와는 달리 한 여자만을 사랑한 최영준은 나름 회사 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후계 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단 한 번의 교통사고.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오늘도 척수에 손상을 입어서 전신마비에 걸린 아내 병실을 찾았다.

이 병원에 살다시피 하는 최미연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빠, 정말이라니까요. 민호 오빠는 뇌사 상태에서 회복했다니까요!”

“미연아, 이 아빠 좀 힘들어.”

“그러니까. 제 말 좀 들어달라니까요. 아빠가 가서 직접 만나 보면 되잖아요. 그 오빠가 정말 엄마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니까요!”

최미연은 평소와는 달리 충혈된 눈을 한 채 악바리처럼 최영준을 계속 괴롭혔다.

하지만 최영준 역시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서 전국 방방 곳곳을 다니면서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심지어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서 굿판까지 해봤다.

다 소용없었다.

그가 그렇다고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고 있는 딸 최미연을 계속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는 오히려 딸을 이용해서 헛수작을 부린 쓰레기를 용서할 생각이 없어서 결국 병원 휴게실에서 캔 사이다를 홀짝이는 조민호를 만났다.

‘어.’

“조민호입니다.”

“미, 미연이 아빠 되는 최영준입니다.”

그도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사기라고 분노했지만 깊은 시선을 한 채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민호를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최영준은 나름 언론 재벌가에 태어나서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고, 어느 정도 사람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조차 마치 아버지 최석준 회장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조민호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조민호는 비록 허술한 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지만 마치 탈속한 선비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소탈했다.

조민호는 뜻밖에 최영준이 우려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만족했다.

일테면 사기꾼이라던지.

그것도 아니면 가짜 한의사식 마녀 사냥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시작이 좋네.’

조민호는 굳이 과장된 이야기나, 한의사 타령 같은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시골에 아는 지인 통해서 마사지를 배웠다고 이야기했고, 앞으로 전문 마사지자 자격증을 따서 그쪽 분야에서 일 할 거라고만 간단히 언급했다.

“일단 환자를 먼저 보고 싶습니다.”

최영준도 잠깐 망설였지만 팔을 붙잡은 채 눈물을 흘리는 절박한 표정을 한 딸 미연을 보자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후유, 좋습니다.”

***

얼핏 생각하기에 기를 이용해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데, 사람마다 모두 저마다 기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의학에서 흔히 말하는 체질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최영준의 처 정연희는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음기가 강한 경우다.

따라서 이 환자 특성에 더하는 치료를 한다면 오히려 상태는 더 나빠진다.

교통사고 났을 때는 두통이나, 구토와 같은 가벼운 질환이 시작이지만 잘못된 처방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대추혈, 도도혈, 신주혈의 손상이 심해졌다.

정확히는 오염된 후천지기가 오히려 이 경혈에 손상을 줬다.

“혹시 한약을 섭취했습니까?”

“네?”

“아마 약효가 지독했을 테니, 산삼 같은 경우입니다.”

최영준도 조민호가 처의 목 부근을 계속 지압하는 모습을 보자 흠칫했다가 뒤늦게야 5년 전에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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