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조민호는 의식을 회복한 지 일주일 내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는데, 굳이 담당 의사에게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을 점검했다.
외과 신경의 김태환 역시 이상하게도 굳이 조민호를 다른 환자처럼 꼼꼼하게 검사하지 않았고, 분홍색 의상 간호사만 옆구리를 동여맨 붕대를 주기적으로 확인만 한 채 환자를 내버려뒀다.
그는 아직도 무림에서 돌아왔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할 수가 없었지만, 현실을 하나씩 하나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조민호가 무림 전생을 기억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일류 고수가 되고 난 후였다.
그가 당시 무림을 처음 받아들일 때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때처럼 소름 끼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무림 시절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그 과정을 차분히 복기했다.
무림에 있을 때 전생을 기억하면서 조금씩 현대 물리 지식을 떠올렸고,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무학에 응용하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무학을 하나씩 창안했다.
그 무학은 기존 무학과는 이질적으로 보였지만 만류귀종에 따라서 점점 서로 상호 보완하면서 하나로 융합되었다.
그 독특한 무학 성격 때문에 대부분의 정파와 심지어 사파 무인들은 오히려 조민호를 마인으로 규정하면서 시기하고, 질투했다.
특히 뒤늦게 알려진 절대혼원신공은 당대 최고 무인에게도 충격 그 자체였다.
그들도 혼원기 공능을 이해하지 못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리.
기존 무인 집단은 그것을 금기의 마공으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조민호의 무학은 점점 그 위세를 떨쳐갔다.
결국 위기감을 느낀 그들은 하나로 뭉쳐서 조민호를 공격했다.
조민호는 어수룩하게 뒤통수는 맞는 이들과는 달리 오히려 그 기회를 이용해서 자신의 적들을 모조리 다 없애려고 했다.
그 마지막 혈전은 안개에 덮인 듯이 그의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의식을 잃기 전에 당시 자신이 원한 것을 천천히 떠올렸다.
시작은 생존이 목적이었던 무학의 끝을 보는 것이었다.
무학의 정점에 도달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고, 만약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마의를 갈구어서 나름 의술을 익혔다.
‘결국 돌아오기는 한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전생에서 현경에 도달했던 그조차 공해로 찌든 현대 세상에서 다시 내공을 모을 수가 없었다.
‘오염된 기가 더 모여.’
무림에 있을 때 자기만의 힘으로 무학을 만든 시절과 비교하면 오히려 지금 난관이 더 쉬웠다.
이보다 다시 현실 문제에 집중했고, 문득 자신이 퍽치기를 당한 후에 이 병원에 오기까지 기억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특히 자신을 공격해서 갈비뼈와 머리를 공격했던 독특한 그들의 특징을 천천히 확인했다.
‘고작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공격하다니.’
퍽치기에 당한 후에 혼수상태에 빠졌고, 결국 무림에서 다시 전생해서 수라장을 경험했으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 셈이다.
조민호는 가까스로 자기가 처한 환경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에 힐끗 자기 앞에 떠 있는 투명한 창을 다시 쳐다보았다.
[상태창.]
이름:조민호(25살), 무인(Lv.1)
[경험치] 9/10.
[스탯]
[체력] 7, [근력] 5, [민첩] 6, [내공] 5,
[정신] 1,283,232
‘상태창이라니.’
한 때는 게임 마니아였던 그가 상태창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아는 일반적인 상태창과는 좀 달랐다.
달랑 상태창 하나만 띄워 놓고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저 능력 표시만 띄운 채 그걸로 뭘 하라는 지시가 전혀 없었다.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계속해서 집중한 한 가지 결과가 드러났다.
띠링.
[절대혼원기(絶對混元氣)(SSS)를 얻었습니다.]
‘성공이다.’
그는 혼수상태를 가장해서 꾸준하게 소주천을 거듭했고, 다행히 절대혼원신공의 정수가 되는 절대혼원기를 가까스로 얻었다.
그 자신의 영혼에 얽혀 있는 절대혼원기는 전생이 아니었다면 지금 무학 수준에서 얻기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 떠오른 것은 3cm 크기 정도의 안개처럼 투명한 시침 모양이었다.
이 혼원기는 빈곤한 내공과 약해진 신체 때문에 물리적인 공격력 자체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기신(精氣身)의 정점에 올랐던 나는 조금 다르지. 치료에 바로 응용할 수 있으니까. 우선 손상난 뇌세포 회복부터 시작해야겠어.’
***
뇌세포가 일부 손상된 경우에 나타나는 초기 증상 중의 하나가 후경부가 강직되거나, 한쪽 근력이 이상이 생기는 경우다.
여기서 더 심해지면 결국 전신마비, 그리고 코마로 접어든 후에 뇌사에 빠져버리는데, 이 기전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조민후 예후가 바로 딱 전신마비로 넘어가는 시점과 비슷하다.
차라리 뇌출혈로 혈종이 생긴다면 뇌수술을 통해서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충격에 의해서 미세한 뇌 조직 일부가 손상 나서 쉽지가 않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안면혈과 연결이 되는 예명, 풍지, 예풍 모두 4가지 혈이다.
각 혈의 특성에 맞는 혼원기를 일일이 찾아서 나눈 후에 조금씩 밀어 넣었다.
순수한 혼원기는 천천히 이 네 개 혈을 통해서 파고들었고, 곧 손상난 뇌세포에 도달했다.
조민호의 백만이 넘는 정신 스탯 덕분에 이 작업 자체는 특별하게 어렵지 않았다.
비록 공격력 자체는 없는 혼원기이지만 뇌세포 치료에는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조민호는 서서히 뇌세포 조직이 조금씩 복원되는 것을 느끼면서 기억 일부, 특히 현대에 살 때 잃어버린 기억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운이 좋게도 뇌조직 손상이 심하지 않구나.’
조민호 예후는 사실 퍽치기 공격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고, 그 충격 역시 자동차 사고 같은 경우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겉으로 봐서는 심각한 코마에 빠진 것처럼 보였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던 셈이다.
***
김태환 외과 신경의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전화로 박상철 과장을 설득했다. 하지만 박상철 과장은 아예 육십 대 꼰대 못지않을 정도로 말이 먹히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환자는 있을 수가 있지만 뇌간이 손상된 상태에서 다시 살아난 환자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김 선생이 보낸 CT 결과대로라면 조금씩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잖아!
-그것은 CT 특성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뿐입니다. 정 그게 의심스러우면 다른 신경의에게 문의해 보십시오.
-김 선생, 만약 그놈이 깨어난다면 당신이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그 정도는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물론입니다.
-지켜보지. 그리고 앞으로 연락은 내가 할 테니, 지금 폰은 폐기해.
-네.
김태환 선생은 대포폰을 두 조각으로 박살 낸 후에 쓰레기통에 집어넣은 후에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면서 조민호 환자의 CT 사진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CT 사진 결과는 확실히 박상철 과장 지적대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환자 회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식물인간 중에 대뇌가 손상된 사람이 깨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한 번 멈춘 대뇌가 회복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되살릴 수가 없으니, 기적이라고 봐야 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활동을 담당하는 뇌간은 이야기가 좀 다른데, 이 경우는 아예 뇌사 상태로 뇌의 기능이 정지된 것이다.
조민호 상태는 딱 이 교차점에 놓여 있었다.
조민호 가족들은 물론 이런 정확한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
김태환 선생이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떻다고 명확하게 알리지 않았는데, 그저 심각한 혼수상태라고 어물쩍 넘어갔다.
조민호 담당 간호사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인 양 새파랗게 질려서 나타났다.
-기, 김 선생님, 조민호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김 간호사 미친 거야?”
“저, 정말입니다.”
김태환 선생도 처음에는 정신이 나간 년처럼 그녀 말을 무시했지만, 박상철 과장의 협박도 있고 해서 결국 조민호 병실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조용히 병상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조민호가 있었다.
조민호는 물끄러미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이럴 수가!”
김태환 선생은 누구보다 경악해서 입을 딱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둥거렸다.
조민호는 뒤늦게야 힐끗 김태환 선생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이미 계획한 대로 말했다.
“퇴원하겠습니다.”
뜬금없는 말.
“절대로 안 됩니다. 지금 환자분 상태가 어떤지 알고 계십니까? 뇌출혈이 발생해서 뇌세포가 손상된 상태입니다. 다시 정밀 검진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조민호를 설득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특히 조민호 나이나, 직업, 가족과 같은 부분을 세세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조민호는 마치 사전에 대본을 준비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분당.”
“원룸.”
“대학생.”
“아버지, 여동생.”
“혈압을 비롯한 검진 결과는 다 정상으로 이미 나왔습니다.”
추가 테스트가 진행되었지만 조민호 응답은 거침이 없었다.
김태환 선생은 박상철 과장의 협박을 떠올리면서 식은땀을 주르르 흘렸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조민호 퇴원을 막아야 했다.
조민호는 깊은 눈으로 그런 김태환 선생을 쳐다보았다.
“이상하군요.”
“환자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민호 환자와 같은 사례는 전 세계 어떤 병원에서도 없었습니다. 만약 갑자기 다시 혼수상태가 되면 그때는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조민호는 무림이라는 세상에 살면서 별의별 모략을 다 경험해봤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그런 관점에서 김태환 선생을 석연치 않은 눈으로 바라 봤다.
“당장 수술비를 비롯한 막대한 진료비부터가 부담되고.......”
“그것은 우리 병원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병원비를 담당의가 낸다는 말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조민호는 이해하기 힘든 김태환 선생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한 가지를 확인해보기 위해서라도 바로 움직였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네요.”
그는 주섬주섬 자기 옷과 짐을 챙기면서 간호사에게 도와 달라고 눈짓했다.
간호사는 막무가내로 퇴원하겠다는 조민호 눈치를 계속 봤다.
조민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한 가지를 더 걸고 넘어갔다.
“곧 제 친구와 가족들이 올 겁니다. 그러니 정식 퇴원 절차를 밟아주세요.”
완전히 이성을 잃은 김태환 선생은 결국 또 다른 협상안을 내놓았다.
“좋습니다. 그, 그러면 일주일 정도만 시간을 주십시오. 몇 가지 검사를 더 해봐야 합니다. 대신에 병원비는 전액 무료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환자분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3일.”
김태환 선생은 당황했지만, 박상철 과장의 한 말을 떠올리고는 결국 수긍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