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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50화 (650/651)

제650화: 그렇게 사는 것(3)

맨 선두에 마낙춘이 있었는데 부드럽게 웃는다.

상 위에 간단힌 회접시와 어군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소스 몇 개가 달랑 놓였다.

누가봐도 초라할 상이었지만 방 안 분위기 때문인지 오히려 살짝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마낙춘은 자리를 잡고 앉아 소주를 땄다.

“사장님이 왜 자리를 잡죠?”

권총수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자리 잡으면 안 됩니까?”

“아닙니다. 난 괜찮아요.”

설미주는 환영했다.

아직은 둘만 있는 자리가 어색했다.

마낙춘이 옆에 있어 주면 훨씬 분위기도 좋고 즐거울 듯 싶었다.

분위기가 올라서인지 설미주의 술잔 넘기는 속도가 빠르다.

그 시간 오민철은 채명천, 강순태 경리과장을 포함한 회사 간부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좌석 분위기는 약간 무거웠다.

오늘 자리를 마련한 사람은 오민철이었고 그가 털어놓는 말에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지만 웃고 난 이후 누구도 더는 웃지 못했다.

오민철의 말을 곱씹어 볼수록 심각했기 때문이다.

“중이 자기 머리 못 깎는다고 했습니다.”

오민철이 빛나는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내가 잘 아는데 권대표 이대로 놔두면 혼자 늙습니다.”

오늘의 안건은 권총수를 장가보내자는 것이었다.

때마침 보육원 출신 설미주가 나타났다.

오민철은 권총수가 좋은 일을 많이 하다보니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께서 설미주를 보내주었다면서 열변을 토했다.

“그런 것 있죠. 공부 잘하는 놈들이 운전 못하는 것.”

“네에?”

“그게 무슨?”

직원들은 오민철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한마디로 권대표가 IS를 상대로 총질은 잘하는데 여자 다루는 데는 개초보라는 거지.”

“지금 말씀은 약간 동의할 수 있지만 앞서 말한 공부 잘하는 사람이 운전 못한다는 건 어디서 나온 말입니까?”

“강과장, 내가 뱉으면 받아 적기만 해. 어디서 따져.”

“죄송합니다.”

오민철이 눈을 부라렸고 강순태가 고개를 꾸벅했으며 주위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고 웃음 참기에 바빴다.

“내가 알아보니까 설미주라는 분 역시 과거 누구와 사귀고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어. 한마디로 텔레비전에 나와 이빨질만 잘할 뿐 정작 자기의 사랑은 만들지도 가꾸지도 못한 숙맥이라는

뜻이지.”

“그러니까 오이사 말은 둘을 저대로 내버려두면 절대 결혼 못 한다?”

“그렇습니다. 두 년놈 모두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꺼냅니다.”

“년놈, 크크크.”

“왜 웃어요. 년놈이 아냐?”

홍보이사 정태경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어떡하면 좋겠어? 오이사에게 좋은 생각 있어요?”

채명천이 물었다.

커어!

오민철은 잔을 비우며 이마를 찡그렸다.

“작전에는 정석과 역습이 있죠. 정석은 말 그대로 전투기로 때리고 보병이 진군하는 겁니다. 역습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에서 적을 이기기 위해 펼치는 테크닉한

게임이고.”

전쟁터에서 총알 한 방 쏴보지 못한 이들이다 보니 오민철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 수긍을 했다.

“힘의 축구냐 기술 축구냐?”

“그렇지 바로 그거야.”

조금 전에는 노려보더니 지금은 강순태를 손가락으로 치켜 세운다.

“그럼 우리가 취할 작전은 뭔가?”

채명천이 물었다.

“아무리 권 대표를 훑어봐도 우리쪽이 설미주씨 쪽에 비해 불리할 것이 없는데.”

“바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딸리는 건 없죠. 그러나 이 작전만큼은 정석이 통하지 않습니다. 기습, 또는 게릴라전으로 나가야 합니다.”

“두 사람에게 맡겨 놓으면 끝도 한도 없다?”

“강과장.”

“예 이사님!”

“연서대학 나왔다고 했지?”

“경제학과요.”

“어쩐지, 상당히 똑똑하군. 권 대표 스스로는 죽어도 여자 부모 찾아가 결혼 허락해 달라고 청탁 못한다고, 여자에게 청혼은 더욱 죽사발 되는 것이고.”

기대할 것 없다는 뜻이다.

“오이사 말대로 권대표 성격에 설미주씨에게 청혼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야.”

채명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침묵하고 있던 정태경 이사가 헛기침을 했다.

“해요. 이 자리는 누구든 어려워 않고 할 말 하는 민주적인 자립니다.”

오민철이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오이사님 얘기처럼 내가 본 대표님은 결코 그런말 함부로 꺼내거나 할 분이 못됩니다. 요즘 남자들처럼 아무데서나 무릎 꿇고 꽃다발 바치는 청혼 따위는 등 떠밀어도 못하죠. 내

생각은 오이사님 방법이 가장 나을 듯 싶습니다.”

“기습이나 게릴라전?”

“최선인 것 같은데요.”

본격 토론이 시작되었다.

갈수록 사람들 눈이 빛났고 술좌석은 길어졌다.

벤츠가 멈췄다.

아파트 앞이다.

밤이 깊어 입주민들의 통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미주.”

권총수는 핸들을 쥐고 있었고 설미주는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뒷좌석에 앉아 잠들었다.

술을 마시고 내공을 일으켜 몸속 주기를 모조리 태워버려 핸들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설미주는 음주운전이라고 겁을 냈다.

하지만 오면서 음주 단속에 걸렸어도 전혀 측정되지 않는 것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미주.”

두 번째는 조금 내공을 담아 불렀다.

화들짝 놀라며 골아 떨어진 설미주가 눈을 떴다.

“어엇!”

그녀는 놀라면서 흐트러진 머리를 바로 다듬더니 창밖을 기웃거렸다.

“어디죠? 어 우리 아파트잖아요.”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이윽고 뒷문을 열고 설미주를 내리도록 했다.

“나만 실컷 잤네.”

미안한 모양이다.

“술 잘 마시던데.”

“아냐 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오늘은 분위기도 좋고 해서.”

설미주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사실 권총수보다 더 마셨다.

그런데 술 잘 마시더라는 말이 뭔가 자신의 흠결을 짚는 느낌이 들어 강력히 부인한 것이다.

“가자, 엘리베이터 앞까지 데려다 줄테니.”

충분히 혼자 갈 수 있다.

하지만 설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설미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설미주가 흘끔 거린다.

권총수는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걸었다.

손 하나만 넣고 다른 손은 밖에 두면 안될까.

아직까지 어떤 남자에게도 잡혀 보지 않은 손인데 믿을 수 없게도 지금은 자신이 남자의 손을 잡아 보고 싶었다.

“어군 사장님과 아주 친해?”

“조금.”

조금 친해 보이지는 않았다.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고, 특히 마낙춘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결혼이었다.

일도 중요하지만 이제 결혼할 때도 되지 않았냐.

중매를 서는 매파처럼 자신에게 사귀는 사람 없냐고 물었고 권총수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늘어 놓았다.

마석춘이 왜 허락도 받지 않고 자신들 자리에 합석했는지 그는 그 이유를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았다.

몹시 어색한 좌석이었는데 마낙춘이 합석하며 분위기가 훈훈해졌고 음식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분명한 사실은 권총수가 굉장히 서툴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남자 앞에서 능숙하지 못하는 편인데 권총수는 한 술 더 떴다.

그건 분명한 사실 하나를 의미했다.

여자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고 지금 엘리베이터 앞까지 데려달라고 응석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걸음을 멈춘 권총수가 스위치를 누르며 말했다.

“회사는 내일부터 나간다고 들었어?”

“그걸 어떻게 알아?”

설미주가 깜짝 놀란다.

초저녁 권총수를 만나러 가기 전 차영종 국장에게 내일부터 출근하겠다고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아직 알리지 않았는데 권총수가 알고 있다.

“전화 했던데.”

“누가?”

“차 국장이라는 사람이 내일부터 설미주 차장 근무하게 되었다면서 심려를 끼쳐 드려 미안 하대나.”

“그 사람이 왜 너에게 미안해. 웃기는 사람이잖아.”

그르릉!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그만 들어가.”

“고마워.”

권총수는 아무말 않고 가볍게 웃었다.

권총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버튼을 누르고 있는 설미주를 한 번 더 바라보더니 등을 돌렸다.

권총수가 걸어간다.

설미주는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번 돌아나 보지’

설미주는 권총수가 사라진 곳을 보며 중얼 거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남자들은 곧장 잘 돌아보았다.

하지만 권총수는 그냥 돌아서자 다시는 보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문득 이별에 익숙해지면 떠날 때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는 어느 수필집 내용이 떠올랐다.

“수많은 삶을 보아온 우리 대표님이죠.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동료, 이미 죽어버린 아들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어머니의 전화, IS에 딸이 끌려간 아버지가 흘리는 피 눈물.”

권총수가 잘 웃지 않는다고 불평하자 오민철이 대답해주었다.

삶이 굴곡질수록 웃음이 얼굴에서 멀어져가는 건 사실이다.

갑자기 가슴이 욱하고 치밀어 오른다.

탁!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설미주는 손가락으로 고인 눈물을 슬쩍 닦았다.

친구들을 못살게 했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차갑지는 않았다.

외롭게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삶 자체도 외로운 것이다.

외로운 것보다 더 잔인한 고문은 없다.

10층에서 내린 설미주가 아파트 현관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다 깜짝 놀란다.

집안에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오니?”

어머니가 나온다.

“엄마, 아직 안 잤어?”

그러다 안으로 들어선 설미주는 또다시 놀랐다.

아버지가 돋보기를 낀 채 책을 보고 있다.

“12시가 다됐는데 주무시지 않고 뭔 일이래?”

“잠이 오니?”

한 번 그런 큰일을 당한 이후 부모님은 제 시간에 들어오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어느 부모들처럼 전화하여 어디냐, 누구와 있는 거냐, 몇 시에 들어올 거냐고 묻지는 않는다.

설미주가 전화를 하여 사정을 설명해 주면 몰라도 철저히 기다리고 참는다.

자식이지만 어른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

부모님은 그걸 존중하는 것이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 아빠. 전화해준다는 걸 깜빡 했어.”

“술 먹었니?”

술 냄새가 난 듯 어머니가 바라본다.

“바오로와 마셨어. 총수.”

홱!

권총수라는 말에 책을 보던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왜 놀라는데?”

어머니가 흘긋 아버지를 살피듯 본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자거라!”

어머니 역시 아버지를 따라 안방으로 사라졌다.

설미주는 닫힌 안방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일단 씻고.”

곧장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실로 뛰어 들어갔다.

권총수는 눈을 떴다.

겨울의 새벽 5시는 어둡다.

자리에서 일어난 권총수는 추리닝 차림으로 나갔다.

아침 기온 영하 10도라고 했는데 산 밑이어서 더 춥다.

마당의 바위에 결가부좌 하여 운기조식에 들어간다.

움직임도 없고 호흡도 발견되지 않는 대웅전의 석가모니불 같았다.

조금씩 몸에서 경기가 뿜어나오더니 노랑색으로 변해간다.

대력금강심법이 완전히 소화됐을 때 나타나는 금광반야불상이다.

어둠이 밀려나고 마당은 황금빛 기운으로 넘쳐났는데 어디선가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저건 뭐야.”

권총수는 뒷집 아주머니 소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권총수의 전신이 이글거리는 황금 불꽃으로 덮였다.

“여...여보!”

대문 밖 아침 등산을 나가던 60대 부부가 이글거리는 황금불꽃에 놀라고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찍으려 했다.

스으으!

하지만 황금불꽃은 순식간에 권총수의 몸으로 사라졌고 권총수만 홀로 바위에 결가부좌 하고 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밖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아는 체를 했다.

“괜찮아요?”

여자가 묻는다.

“아무 일 없습니다. 다녀오시죠.”

부부는 주춤거리며 물러나더니 쑥덕거리며 산으로 사라졌다.

권총수는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 거렸다.

‘멈출 수는 없는 건가’

권총수는 거실로 들어가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왔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권총수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느껴진다. 몸과 영혼이 나눠지는 것 같은 이 기분, 우화등선 초입에 있다’

내공이다.

내공이 날로 높아간다.

우화등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다.

동정지체인 몸을 파괴하는 것이다.

동정지체가 파괴되면 내공은 두 단계 아래로 떨어진다.

즉 육식귀원을 넘어 우화등선 초입에 있는 현재의 내공이 순식간에 등봉조극에 머무르는 것이다.

이후 아무리 수련을 해도 다시는 우화등선을 할 수 없다.

권총수는 담배를 끄고 들어가 샤워장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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