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46화 (646/651)

제646화: 마지막 전쟁(2)

권총수는 눈을 좁혔다.

“사장님께서 하셨다고?”

목소리가 처음과 달리 푸근했다.

화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 구장철은 더욱 다부지게 대답했다.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윗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도 아랫 사람의 본분 아니겠습니까?”

권총수는 구장철을 빤히 바라보았다.

구장철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두려운 모양이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번복하는 말은 내뱉지 않았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오민철이 들어섰다.

“형, 여기 구 사장님 당장 병원으로 데리고 가.”

“살려 준다고?”

움찔!

권혜림이 몸을 떤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마치 농담하듯 내뱉는 오민철에게 질린 것이다.

“사장님 어떻게 했기에 병원행입니까? 우리 대표님 열 받으면 좀체 살려주는 것 좋아하지 않는데.”

오민철이 부축해 일으켰다.

“조심 하십시오.”

오민철은 휘청거리는 구장철을 데리고 사라졌다.

거실에는 둘만 남았다.

“태산이 동산을 떠 받치고 있었군.”

구장철을 태산으로 지칭한다.

그의 그릇이 크다는 뜻이다.

반면 의리를 지키며 목숨까지 내놓는 부하직원을 보면서도 낯짝 좋게 앉아 있는 권혜림을 동산으로 표현했다.

“받침돌이 든든하면 그 집은 무너지지 않지. 하지만 그런 집에 사는 주인들 대부분이 형편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 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든든하게 받쳐준 아랫사람들 덕이라는 걸

모른다는 거야. 지가 잘난 줄 알아. 우리나라 기업 오너라는 인간들 대부분이 그렇더군.”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를 피워 문다.

벽에 걸린 동양화를 한참 바라보더니 돌아서서 말을 이었다.

“혜림아!”

흠칫!

갑자기 이름을 부르자 권혜림이 놀란다.

“너와 내 몸속에 흐르는 피가 같다는 걸 난 부인하지 않는다.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사람이 권철태씨이고 어머니가 오설지라는 여자니까. 넌 권철태씨의 동생 권철무씨의 딸이고? 너

와 난 사촌지간인 셈이다.”

꿀꺽!

권혜림이 침을 삼킨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날 어떻게 평가하는지 모르겠다. 반면 내가 본 널 포함한 권씨들의 됨됨이는 너무 슬프기까지 했다. 단 한 명에게서도 사람다운 모습을 찾아보지 못했다고 하면 너무

잔인한 표현이 되는 걸까.”

권총수가 천천히 소파로 다가왔다.

“조금 전 구 사장님을 데리고 나간 형님께서 그러더군. 구제불능의 집안이라고 말이다. 사람이라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것이 도리지. 오설지라는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나까지

죽이기 위해 권철태의 아내 현미정은 사람들을 풀어 서울 시내에 있는 모든 보육원과 아이들 쉼터를 이 잡듯 수색했지.”

“미...미안해요.”

권혜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신 제가 사과하면 안 될까요? 정말 잘못했어요.”

“그렇지.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알고, 남에게 피해를 끼쳤으면 금전으로라도 보상해 줄지 아는 것, 그것이 인간이지.”

“아...앞으로 그렇게 살겠습니다. 오...오라버니.”

“아냐. 넌 변하지 않아.”

“네?”

“절대 사람이 안 된다는 얘기다.”

“오라버니!”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오라버니라, 나에게 동생이 있었군.”

“앞으로 잘할게요.”

“거듭난다는 것이 쉬운 건 아니지.”

그러면서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드르륵!

창문을 열자 겨울 바람이 밀려 들어온다.

“아담이 아내 하와와 한자리에 들었더니 아내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외쳤다. ‘야훼께서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하와는 또 카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카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번쩍!

권혜림이 고개를 돌린다.

“때가 되어 카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야훼께 예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드렸다. 그런데 야훼께서는 아벨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고 카인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권혜림의 눈이 더욱 커졌다.

“카인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야훼께서 이것을 보시고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느냐? 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느냐? 네가 잘했다면 왜

얼굴을 쳐들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잘못 먹었다면,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 죄에 굴레를 씌워야 한다.’ 그 뒤 카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가자고 꾀어 아우 아벨을 살해했다. 야훼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드르륵!

권총수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서 권혜림을 바라보았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네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시면서

꾸짖으셨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땅이 입을 벌려 네 아우의 피를 네 손에서 받았다. 너는 저주를 받은 몸이니 이 땅에서 물러나야 한다. 네가 아무리

애써 땅을 갈아도 이 땅은 더 이상 소출을 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다’하고 말했다”

파르르!

권혜림이 어깨를 떨었다.

무섭다.

필시 성경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가슴이 서늘할까.

“카인이 야훼께 하소연하였다. ‘벌이 너무 무거워서, 저로서는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아주 쫓아내시니, 저는 이제 하느님을 뵙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카인의 말에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게 못하도록 하여주마. 카인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내가 일곱 갑절로 벌을

내리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야훼께서는 누가 카인을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그에게 표를 찍어주셨다.”

권총수가 다가온다.

저벅저벅!

권혜림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카인은 하느님 앞에서 물러나와 에덴 동쪽 놋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카인이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았다. 카인은 성읍 하나를 세우고,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의 이름을 에녹이라 하였다.”

권총수는 다가와 다시 소파에 앉더니 권혜림을 향해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창세기에 나오는 성경말씀이다. 인간이 저지른 인류 최초의 살인에 대한 구절인데 형이 동생을 죽인 사건이지. 해석을 하면 이렇다. 농부인 카인은 곡물을 기르고 양치기인 아벨은 양을

쳤는데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낼 때 카인은 곡물을 바치고 아벨은 첫 새끼 양의 고기를 바쳤다. 그런데 하느님은 아벨의 것만 받고 카인의 것은 받지 않았다는 거지.”

권혜림은 마른 침을 삼켰다.

“카인은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앙심을 품고 동생 아벨을 들판으로 꾀어내어서 돌로 쳐 죽였지. 다른 이도 아닌 피를 나눈 가족을 살해했으니 그 죄는 무거웠을 것이고 하느님은

격노하여 카인을 추방했으며 이때 카인은 하느님이 자신을 버리면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기고 죽이려 들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그에게 표식을 주고 카인을 죽이는 자는

7배의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한다.”

권총수는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딸칵!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길게 연기를 뿜었다.

“여기서 명심할 것이 있다. 야훼는 카인을 추방하기 전에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줬다. 먼저 동생인 아벨에게 앙심을 품었을 때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죄가 네 문

앞까지 이르러 너를 노리고 있는데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니?’ 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카인이 아벨을 죽였다. 두 번째로 ‘네 동생은 어딨냐?’라고 물어

스스로 고백하도록 유도하지만 카인은 뻔뻔하게 ‘제가 제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따진다.”

“내...내가, 아니 우리 가족들이 카인과 다를 바 없다는 건가요?”

“난 너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 그렇지만 넌 내 배려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내 목에 칼을 겨눴다.”

“오라버니는 하느님이 아니잖아요.”

“강호는 강자가 곧 신이다.”

“강호?”

“살려는 주겠다. 대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도록 해주마.”

“잠깐!”

스으윽!

권총수가 손을 뻗어 권혜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머리를 통해 강한 열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아!”

승광(承光), 상성(上星), 신정(神定). 세 곳의 혈도(穴道)를 눌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혈을 짚어 잠에 빠지도록 했다.

권혜림의 두 눈이 감겼다.

그녀는 한 시간 가까이 푹 자고 난 뒤 깨어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권총수라는 사람이 누군지 그녀의 기억 속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오시(午時:11시부터 1시)와 자시(子時:밤 11시부터 1시), 그렇게 하루에 두 번씩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자해를 하고 자살을 시도할 만큼 고통은 심할 것이다.

물론 고통은 길지 않는 십여 분간 정도이지만 거의 탈진이 될 정도로 강도는 크다.

권총수는 내가 강기를 일으켜 집안에 남았을 수도 있는 자신의 모든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고 태워 버렸다.

권총수는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경호원의 시신을 향해 걸어가더니 오른손을 뻗었다.

삼매진화를 일으켜 완전히 재로 만들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CCTV에는 전혀 찍히지 않았고 오민철과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간 흔적까지 철저히 지웠다.

경찰에서 아무리 CCTV를 살펴도 출입자는 없을 것이다.

또한 깨어난 권혜림에게 무언가 질문을 해도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 못한다.

더욱이 권총수란 이름 석 자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홍나영과 남자친구 또한 모든 기억을 잃었다.

구장철 역시도 오늘 일은 전혀 알지 못한다.

자신이 왜 병원에 입원 했는지, 서울에 큰 병원 놔두고 왜 지방의 조그만 병원에 있는지 기억 못한다.

대문 앞으로 걸어나갔다.

산봉우리로 구름이 몰리기 시작했다.

눈이 올 것이다.

“끝났어?”

오민철이 차에서 내린다.

“구장철은?”

“세명의원이라는 곳에 쳐박아 놨어. 지금쯤 마누라가 병원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걸!”

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별장을 떠났다.

권혜림이 깨어났다.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자신의 별장이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

소파에 앉아 잠을 잔 것에 스스로 놀란 얼굴이다.

권혜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 하나를 꺼내 마시면서 중얼 거렸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권혜림은 창문을 열고 어두워 오는 밖을 잠시 바라보더니 문을 닫았다.

안방에 있는 핸드백을 들고 윗도리 코트를 걸쳐 입은 권혜림은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차량 벤츠가 주차해 있다.

차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권혜림은 멈칫하며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경비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아 관리원이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현관을 나오면 항상 다가와 인사를 하는데 오늘은 조용하다.

탁!

차로 들어가 문을 닫고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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