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38화 (638/651)

제638화: 빅토리아(2)

권총수가 앞서갔다.

“욕 바가지로 먹는 것 아냐?”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시리아 알레포 잊었어? 기억 안나?”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최후 격돌을 벌이던 지역이다.

군인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세 배는 넘었고 그중 여자들에 대한 정부군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누가 보든 말든 여자는 무조건 강제로 끌고 갔다.

당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난민 구제 활동을 하던 인도군 장교 몰몬트 대위는 말했다.

‘여자를 왜 강제로 데려갈까요? 그 여자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여자는 말을 듣지 않을까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고 끌려가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끌려가는 여자는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오민철은 부하들에게 누가됐든 여자를 끌고 가려는 사람은 적으로 보고 발포하도록 명령했다.

설혹 부부사이 일지라도 강제로 끌고 갈 정도면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오민철의 지론이다.

도어를 돌려봤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단단한 철문이다.

권총수는 손잡이를 잡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쇠가 달아 올랐고 권총수는 힘을 주어 잡아 당겼다.

끄으으으!

문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면서 열린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권총수가 앞장섰고 오민철이 뒤를 따랐다.

계단 아래로 내려서자 또 하나의 철문이 앞을 막고 있었는데 역시 닫혔다.

권총수는 다시 손잡이를 잡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손잡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위 철판이 시뻘겋게 변했다.

꾸우우우!

또다시 문이 늘어나면서 열렸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목으로 된 도어가 나타났다.

유리가 끼어 있어 안이 들여다 보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닥에 깔린 붉은색 카페트와 정장을 한 두 명의 남자였다.

두 사람은 나직하게 속삭이듯 귓가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고 오른쪽 벽으로는 호텔 데스크처럼 두 명의 여자가 단정한 차림으로 서 있다.

“뭐야? 술집 아냐?”

간판도 없는 술집이 지천이라는 얘긴 들었다.

오로지 단골들에게만 개방하면서 비밀리 운영되다 보니 마약을 비롯한 여러 범죄가 모의된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두 사람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입구에 서 있던 두 명의 사내가 흠칫했다.

모르는 사람은 들어 올 수 없고 전화나 문자로 연락이 오면 안에서 사람이 나가 데리고 들어온다.

“누구십니까?”

오민철은 실내를 둘러보았다.

그때 안쪽 복도에서 여자 한 명이 걸어왔는데 속옷이 보일 만큼의 짧은 미니스커트를 걸쳤고 상의는 가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반팔 니트를 걸쳤다.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꿀꺽!

침까지 삼키는 오민철의 시선에 부담을 느꼈는지 여자가 버럭 소릴 질렀다.

“그만 쳐봐 새끼야.”

워낙 여자가 앙칼지게 소리쳤으므로 모두가 놀라 바라보았다.

“재수없는 새끼가. 그냥 눈구멍을 콱.”

오민철의 표정이 굳는다.

“눈구멍을 콱?”

오민철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뜨며 여자에게 들이민다.

“눈구멍을 콱! 눈구멍을 빨리 콱 해봐.”

씨익!

멈칫거리는 여자를 향해 오민철이 웃는다.

“내 눈 가지고 내가 보는데 왜 아가씨가 욕을 하지. 이 눈은 보라고 달린 거야. 내가 보는 것이 싫으면 보지 말라고 써 붙이고 다니던가.”

“이런 개자식이!”

여자는 오민철의 빰을 후려갈기려 했다.

탁!

여자의 손목을 낚아 쥔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여자와, 어린아이와 노인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운 좋은 줄 알라고.”

오민철이 손을 풀어주었다.

여자도 뭔가 낌새를 느낀 듯 더 이상 소리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거기 두 사람.”

권총수는 스물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두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직원인가?”

“그런데요.”

권총수의 질문에 좌측 사내가 대답했다.

권총수는 본능적으로 평범한 장소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뿐만 아니라 이미 코끝을 파고드는 특이한 냄새를 맡았다.

‘필로폰’

헤로인 코카인과 더불어 대표적인 마약류다.

헤로인과 코카인이 미국과 남미, 유럽에서 활개를 치는 반면 필로폰은 동남아에서 많은 거래를 이룬다.

그때 복도에서 건장한 체구의 사내 세 명이 걸어왔다.

오민철의 눈이 빛났는데 맨 가운데 걸어오는 넥타이 없는 진한 남색 정장의 사내를 바라봤다.

여자를 차로 끌고 가던 두 명중 한 명이다.

“당신들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사내는 거칠게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누가 문 열어 줬어?”

“아닙니다.”

두 사내가 소리쳤다.

“그럼 이새끼들이 어떻게 들어오냐고?”

종업원중 한 명이 재빨리 밖을 나갔다가 금세 뛰어들어왔는데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왜 그래 임마.”

“무...문이 찌그러져 있습니다.”

“뭔 개소리야. 문이 왜 찌그러져.”

“찌그러진 채 열려 있습니다.”

복도에서 나왔던 세 사내중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사내가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그 역시 굳은 얼굴로 들어왔는데 더듬거린다.

“정말입니다. 문이 엿가락처럼 휘어졌습니다.”

“이새끼들이.”

사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재빨리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

“너희들이 그...그런거야?”

오민철이 씨익 웃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조금전에 납치해 온 여자 어딨어? 누구야? 똑바로 말 안하면 문처럼 찌그러질 줄 알아.”

우두머리로 보이는 정장 사내 정명웅이 두 사람을 빠르게 살폈다.

초면일지라도 대충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느낌이 온다.

그런데 감이 오지 않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살짝 한 발 물러선다.

강철문이 쭈그러진 것에 약간 조심성이 엿보이는 질문이다.

“여자 납치해 왔잖아.”

오민철이 한발 나섰다.

“무슨 여자를요. 그런 일 없으니까 돌아가세요.”

“여자만 보고 간다고.”

“이러시면 경찰을 부릅니다.”

“부르세요. 내가 112에 전화 해드릴까?”

오민철이 핸드폰을 꺼내자 정명웅이 살벌하게 웃는다.

“안 되겠다. 연장 챙겨.”

순간 종업원까지 포함한 사내들이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30초도 되지 않아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나타났다.

사내들은 야구방망이를 든 채 빙긋 웃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고, 허락 없이 들어오면 두 다리로 걸어 나갈 수 없는 곳인데.”

휘익!

왼쪽의 종업원 사내가 앞서있는 오민철의 머리를 내려쳤다.

휙!

오민철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벼락처럼 파고들었다.

오민철이 들어 오리란 생각은 못한 듯 멈칫한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민철의 발이 종업원 사내의 사타구니를 찍었다.

오민철이 바짝 붙는 바람에 주춤하던 방망이는 사타구니에 가해진 강한 고통에 힘을 잃었다.

“으어어어...”

종업원 사내는 야구방망이를 든 체 웅크렸다.

빠아악!

오민철이 뛰어오르며 웅크린 종업원 사내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었다.

그리고 종업원 사내의 손에서 떨어지는 야구방망이를 낚아 쥐더니 웅크린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뻑-!

종업원 사내는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이 새끼가!”

빙글!

오민철은 곧장 몸을 돌렸다.

마치 검도를 하듯 옆에서 오는 방망이를 피하며 힘껏 수평으로 휘둘렀는데 다른 종업원 사내가 덮쳐 왔기 때문이다.

빠악!

왼쪽 측면에서 대각선으로 떨어지는 사내의 방망이보다 오민철이 야구선수처럼 타격하듯 휘두르는 수평에 가까운 방망이가 더 빨랐다.

옆구리를 가격당한 두 번째 종업원 사내는 허걱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렸다.

뜨거운 고통이 온몸을 덮는다.

휘이익!

오민철의 몸이 팽이처럼 돌며 오른발 뒤축이 허공을 가른다.

콰악!

고통으로 벼락 맞은 사람처럼 서 있던 종업원이 그대로 엎어져 조용해졌다.

히죽!

오민철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몸을 푼다는 듯 어깨를 슬쩍 한 번 돌리며 말했다.

“덤벼!”

순간 정명웅의 좌우에 있던 사내들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오민철을 후려친다.

캉!

오민철은 떨어지는 사내의 야구방망이를 막고 자세를 낮추며 무릎을 후려쳤다.

빡!

휘청하며 사내가 무릎을 꿇자 방망이로 인정사정없이 머리통을 갈겨 버렸다.

그때 다른 사내의 방망이가 오민철의 머리로 떨어졌다.

데구르르!

오민철은 바닥을 굴러 피했다.

깡!

사내의 방망이는 바닥을 찍었고 오민철은 덤블링으로 일어나더니 방망이로 바닥을 찍고 상체를 세우는 사내의 면상에 구둣발을 박아 넣었다.

꽈당!

사내는 뒤로 벌렁 넘어졌다.

넘어진 사내가 일어나려 하자 야구방망이가 정확히 면상을 갈라 버렸다.

빠아!

피가 튀며 사내는 한 차례 몸을 떨고 축 늘어졌다.

혼자 남은 정명웅은 움찔하며 안색이 변했다.

그의 시선은 부하들과 종업원을 박살 내버린 오민철에게 있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권총수만 바라본다.

오민철도 엄청난 상대다.

하지만 권총수에게서는 더욱 강렬한 느낌이 온다.

오민철을 훨씬 웃도는 완전 선수라는 걸 알아 차린 것이다.

“본의 아니게 피를 봤는데.”

“아이 씨팔!”

정명웅은 투쟁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욕을 뱉으며 달려들었다.

부웅!

있는 힘껏 권총수를 친다.

그러나 그의 손에 들린 야구방망이는 아무것도 때리지 못했다.

오히려 야구방망이가 권총수의 오른손에 잡히고 말았다.

웁!

힘껏 당기려고 해도 꼼짝 않는다.

더욱 있는 힘을 다해 당겨보는데 요지부동이다.

그으윽!

권총수가 방망이를 잡아당겼다.

놓지 않기 위해 힘껏 손잡이를 쥐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툭!

끝내 방망이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권총수는 방망이 손잡이를 쥐더니 정명웅에게 물었다.

“그냥 돌아가려는 마음도 있었지. 남의 일이니 그다지 내키지도 않았고, 그런데 당신들 하는걸 보니 이제는 기어이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조금전 끌고 들어온 여자 어딨소?”

정명웅은 재빨리 오른쪽 허리속에서 사시미 칼을 꺼냈다.

콰아아!

권총수의 손에 들린 야구방망이가 빠르게 움직였고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뻐퍼억!

정명웅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주르륵!

깨진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다.

“저기 안쪽 VVIP룸에 있어요.”

지켜보던 카운터 여자중 한 명이 안쪽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복도를 걸어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룸살롱인데.”

문 하나를 열어보던 오민철이 중얼 거렸다.

“세금도 안내고, 아는 놈들, 특히 사회적으로 얼굴이 팔려있는 놈들이 찾는다는 술집이 있다더니 여기도 그런 곳인가 본데.”

룸마다 손님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만큼 방음장치가 잘되어 있는지 복도에는 소리 하나 흘러나오지 않는다.

복도는 오른쪽으로 휘어졌고 끝에 문 하나가 있었다.

다른 룸들처럼 문에는 역시 호수도 써있지 않았는데 한가지 글귀가 시선을 끌었다.

‘출입금지’

손님은 들어 올 수 없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오민철이 문을 당기자 꼼짝 않는다.

권총수가 나섰는데 그냥 잡아 당겼고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걸림쇠가 터져 나가면서 열렸다.

“어!”

또 하나의 문이 있고 이번에도 강제로 잡아당겼다.

안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상당히 넓은 룸이었는데 거대한 탁자가 있었고 술병과 안주와 잔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권총수의 걸음이 빨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