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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32화 (632/651)

제632화: 지옥의 일부(1)

조금전 승용차에서와 지금 권총수 얼굴이 다르다.

바뀌어 있는 것이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변체환용을 펼쳐 바꾼 듯 했는데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호텔에서는 계속 그 용모로 움직여야 한다.

호텔 직원들처럼 눈썰미 좋은 사람들도 없는데 전혀 다른 얼굴이 그 객실을 이용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잠깐 소화도 시키고!”

1층에 있는 커피숍이 아직 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오민철이 재빨리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밤10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에는 커피를 좀체 마시지 않는 권총수다.

오민철은 고개를 갸웃하며 뒤따라 들어갔다.

커피숍에는 숙박 손님으로 보이는 다섯 명이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아 얘기를 하고 있었다.

“커피 두 잔 가져다 주세요.”

다가오는 여종업원에 권총수가 말했다.

멈칫!

권총수의 눈을 보던 오민철이 깜짝 놀란다.

권총수의 눈이 거울처럼 투명해 있었다.

그건 일반인의 눈에는 맑은 눈으로 보이겠지만 오민철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살기다.

무림의 고수들은 살기가 강할수록 눈이 맑아진다는 걸 배웠다.

‘형 잘 들어’

귓속으로 전음이 파고들었다.

‘공기가 안좋아. 살기가 넘치는 걸 보마 적지 않은 기관원들이 들어와 있어’

“설마 우릴?”

오민철이 목소리를 낮춰 묻는다.

‘아침에 고요하던 호텔이 저녁에 이토록 살벌하게 변할리 없잖아’

“객실은?”

‘이미 감시에 들어갔을거야. 또한 직원들에게 우리의 인상착의를 확인 했을테고’

우우우!

오민철이 어금니를 물며 한숨을 내 쉬었다.

“어느 정도야?”

‘많아. 여기서 잠깐 기다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숍을 나갔는데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화장실로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권총수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잠영술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간 권총수는 문이 닫힌 식당 안으로 스며 들어갔다.

불꺼진 식당 안은 캄캄했다.

하지만 권총수는 여유롭게 주방을 찾아갔고 선반을 살핀다.

포크와 나이프가 있고, 한쪽으로는 놋쇠로 된 젓가락이 통에 가득 담겨 있었다.

권총수는 젓가락을 한 움큼 거머쥐었다.

대략 이십여 개는 될 것 같았는데 양복 상의 속주머니에 넣고, 한쪽에 진열하듯 놓인 칼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중 중식용 칼을 집어 들었다.

칼날 너비만 10센티가 될 정도로 크고 묵직한 칼이 어둠속에서 번쩍 거렸다.

중식도와 행주 두 장까지 들고 식당을 빠져나와 화장실을 거쳐 커피숍으로 다시 들어갔다.

권총수는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전음으로 말을 이었다.

‘형 내 말 잘들어. 일단 이걸 받아’

행주로 덮어 감싼 중식도를 탁자 밑으로 내밀었다.

“엇! 뭔데 이렇게 무거워.”

‘중식도야. 여기서는 총을 구할 수가 없잖아.’

무슨 일 생기면 그 칼을 사용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오민철의 표정이 변했다.

아무리 칼질을 잘한다고 해도 총알보다 빠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쭈욱!

사태가 생각보다 엄중하다는 걸 절감한 오민철이 단번에 커피를 비운다.

오민철은 엉거주춤 하며 앞서가는 권총수 뒤를 따라갔다.

밤이 깊어지며 호텔은 조용했다.

전력난으로 인해 최소한의 전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껐기 때문에 주위는 상당히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 같이 30발들이 탄창이 끼워진 AK가 들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승용차 한 대가 멈추고 한 사내가 내렸다.

김원홍 보위성 부장이다.

머리가 희끗한 예순 초반가량의 정장 사내가 허리를 숙였다.

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사회안전성 최근백 부장이다.

“상황이 어떻소?”

“아직 불이 켜져 있습니다.”

“몇 층이라고 했소?”

“7층 708호입니다.”

그때 보위성 요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권총이 걸린 탄띠를 김원홍의 허리에 채워준다.

딸칵!

김원홍은 오른쪽 옆구리 권총집에 꽂힌 권총을 한번 만져본 뒤 사내들을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창밖으로 흘러나오던 불빛이 꺼졌다.

순간 불이 꺼졌다는 보고가 들어갔고 지하1층 호텔 관리실에 앉아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김원홍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독 안에 든 쥐야.”

서둘 것 없다는 뜻이다.

사무실에는 김원홍과 사회안전성 부장 최근백, 그리고 세 명의 사내들이 더 있었는데 그들 모두 AK로 무장하고 있다.

“위원장동지께 보고는 드렸습니까?”

최근백이 묻자 김원홍이 이마를 찡그렸다.

“보고가 무슨 필요가 있어요. 사로잡게 되면 놈 모가지만 가져가면 될 일인데.”

처음에는 쉬쉬했다.

그러나 연길에서 활동하는 요원들로부터 블랙잭으로 들어가는 특수부대 전역자들 숫자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보고에 더 이상 숨길 수도 없고 나중 일이 잘못되면 혼자 뒤집어쓴다는 생각에

보고를 했었다.

처음에는 김정은의 반응은 덤덤했다.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저기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던 특수부대 전역자들이 하나둘 탈북을 감행한다는 말에 대노했다.

반역자, 배신자들 운운하며 철저히 막을 것을 지시했고 권총수에 대한 암살지령이 떨어졌다.

또한 이런 사업은 결코 남한의 국정원과 연계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라면서 블랙잭을 국정원의 또 다른 비밀부서로 인식했다.

민간 기업을 빙자한 국정원 공작이니 반드시 막으라는 것이었다.

부욱!

김원홍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끈다.

슥!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10시 50분이다.

“시작해.”

그러자 최근백이 소형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진입하여 놈을 체포해. 즉시 사로 잡도록,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최근백이 무전기를 내렸다.

AK로 무장한 사내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사내들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복도를 이용해 올라왔다.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며 708호를 향해 걸어간다.

고도로 훈련을 받은 듯 일곱 명이 걸어가는데 미세한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문 앞에 도착한 사내들은 총구를 객실 문을 향하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준비한 카드 키를 조심스럽게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리자 문은 힘없이 열린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동으로 켜지는 전등은 이미 호텔측에서 시스템을 정지시켰다.

객실은 캄캄했다.

야전이 아니기에 야시경을 쓰지 않은 사내들의 시선이 주위를 훑는다.

사살도 좋지만 생포에 더 역점을 두라고 했다.

눈을 크게 뜬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어둠에 적응하는데는 필요한 시간이 있다.

우두머리는 재빨리 스위치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들은 AK로 무장했고 상대는 비무장이니 걸릴 것이 없다.

탁!

벽의 스위치를 올렸다.

흠칫!

불을 켜고 주위를 둘러보던 우두머리 장영국이 소스라쳤다.

자신의 주위에 서 있던 부하들 목에 젓가락이 박혀 있었다.

눈을 깜빡거리긴 했지만 말을 하지는 못했는데 목이 뚫린 탓이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꿈인지 싶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가 펴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눈 앞의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같이 들어왔는데 자신만 홀로 살아남았고 부하들 여섯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으훗!”

장영국은 고개를 돌리다 탁자에 앉아 있는 권총수와 오민철을 발견하고 사격을 하려 했지만 양팔이 꼼짝을 않는다.

“형 아까 내가 선물한 칼 있지. 그것 좀 줘.”

“이거!”

오민철이 침대 베개를 들추더니 그 속에서 넓적한 중식도을 꺼냈다.

권총수는 중식도를 받아 살피는데 천장의 형광등 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쿵!

퍼어억!

그때였다. 목에 젓가락이 박힌 사내들이 그제야 넘어지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천천히 다가가더니 장영국 앞에 섰다.

촤악!

눈앞으로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장영국은 갑자기 목에 개미가 기어가는 느낌이 들어 왼손을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꼼짝 않던 팔이 움직였고 손가락이 가려운 부분을 매만진다.

“허!”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어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어 몸뚱이까지 넘어졌다.

권총수는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오민철은 재빨리 장국영이 차고 있는 권총을 뽑아 자기 허리에 꽂아 숨겼다.

칠 층에 올라와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 사람은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무실 분위기는 긴장되면서도 제법 풀려 있었다.

무장한 일곱 명의 보위성 요원들이 실패할 리는 없고 더욱이 이곳은 평양이다.

미국의 네이비 씰이 들어와도 살아나가지 못한다.

보위성 요원들은 전원 군 특수부대 전역자이거나 현역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작전 소화력이 무척 빠르고 정확하다.

“흐흠!”

의자에 앉아 있던 김원홍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슥!

손목 시계를 보더니 사회안전성의 최백근 부장을 돌아보았다.

“지금쯤 끝났을 텐데?”

무전이 와야 한다.

아니면 전화를 이용해서라도 결과가 보고 되어야 하는데 조용하다.

“장 팀장, 장팀장!”

무전기에 대고 호출을 했다.

몇 번을 불러도 일체 어떤 대답이 없자 최백근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호출을 시도 했지만 이번에도 묵묵부답이다.

“올라가봐!”

최백근은 AK를 든 두 명의 사내에게 지시했다.

두 사내가 대답을 하고 총을 거머쥔 채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싹!

싸아아!

그런데 문 밖에서 차가운 겨울 바람 한 줄기가 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정육점 칼에 고기가 갈라질 때 나는 소리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누구도 문밖을 신경쓰지 않았다.

스윽!

그때 문이 열린다.

나갔다가 잊은 것이 있어 급히 들어오는 사내들로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사무실을 들어서는 사람은 전혀 엉뚱했다.

안쪽에 서 있던 사내가 재빨리 AK를 들어 올렸다.

퍼억!

그러나 그의 오른손 검지가 방아쇠에 걸리는 것보다 권총수 손에 들린 중식도가 더 빨랐다.

중식도는 사내의 이마에 박혀 있었다.

어마어마한 중식도가 박혀 있는 사내의 모습에 김원홍과 최백근은 망연자실했다.

저벅저벅!

천천히 걸어간 권총수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내의 이마에 박혀 있는 중식도의 손잡이를 쥐었다.

툭!

이마에 박힌 칼을 뽑아내자 핏물이 흘러내리면서 사내는 뒤로 넘어지며 조용해졌다.

“월터 PPK, 좋은 총이죠.”

오민철이 김원홍이 허리에 두르고 있는 권총을 뽑아들며 웃었다.

스윽!

권총수는 칼날에 묻은 피를 자신의 옷소매에 닦았다.

피를 깨끗하게 닦고 난 권총수는 고개를 돌려 사회안전성 최백근을 돌아보았다.

움찔!

권총수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자 최백근이 깜짝 놀란다.

촥!

권총수의 오른손에 들린 중식도가 또다시 바람을 갈랐고 최백근의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이어 최백근은 목과 몸이 분리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김원홍 혼자뿐이다.

권총수는 김원홍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홀가분하지 않습니까?”

김원홍은 마른침을 삼켰다.

“난 부장님과 불편한 관계를 원치 않습니다.”

김원홍의 눈이 빛난다.

호의적인 뜻이다.

“다시 분명하게 말하지만 내 사업과 남한 정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국정원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밀파된 인물이 섞였는지 합동조사만 할 뿐 다른 부분은 전혀 관여하지 않죠.”

스윽!

권총수는 팔을 쭉 뻗어 담배 한 개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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