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8화: 정말 행복한가(1)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조식만은 박철진과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분 사장님 농업성 차관 박철진 위원입니다.”
박철진이 환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시오. 리마홍 사장님.”
박철진은 권총수의 손을 덥썩 잡았다.
“이쪽은 망고스틴을 수입하시는 강만수 사장님.”
“강만숩니다.”
오민철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환영합니다. 박철진입니다.”
오민철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했다.
이어 박민철은 한쪽에 있는 차량을 가리켰다.
“가시죠!”
2011년 혼다에서 나온 브리오였다.
동남아 시장을 타깃으로 생산해 낸 승용차인데 일본 차답게 그 지역을 가면 아직도 길거리에 흔하게 굴러다니는데 평양에서 노동당 간부가 자랑스럽게 문을 열어주었다.
조식만이 조수석에 올랐고 권총수와 오민철은 뒷좌석에 탔다.
핸들은 박철진이 직접 잡았는데 안전벨트 메라는 말없이 그냥 출발했다.
오민철이 놀란다.
평양시내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와 태산처럼 사방을 에워쌓아 버린 서울의 숨막히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도로는 잘 닦여 있으며 교통경찰이 서 있었지만 차량이 많지 않아 수신호 할 일은 없어 보였다.
조용하다.
고층 빌딩이 있었지만 서울처럼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세워져 있지 않아 가슴이 툭 트인다.
“조 사장님!”
“예 부장동지!”
조식만이 대답했다.
“북경 가보셨지요?”
“그럼요.”
“저도 언젠가 북경을 한 번 갔는데 숨막혀 죽는 줄 알았습니다. 거리를 걸을 수 없도록 사람도 많고 도로는 차량들로 주차장이고, 어휴 우린 살라고 해도 못살겠더군요.”
조식만에게 사전 교육을 받았다.
북한 사람들은 절대 자신들의 사는 모습을 부정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특히 평양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고 했다.
자신들은 평양의 복잡하지 않는 모습을 대내외 과시하고 싶어한다.
개미들처럼 사람과 자동차가 우글거리는 그런 자본주의가 깊게 배인 도시를 은근슬쩍 깎아 내린다.
오염과 매연으로 숨까지 턱턱막히는데 비해 평양은 이렇게 깨끗하고 자연그대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강조한다.
“뒤에 두 분 선생님들 어떠십니까? 평양은 처음이지요?”
“매우 깨끗하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도시임은 분명한데 잘 가꾸어진 도로와 주변 미관이 좋습니다.”
오민철이 슬쩍 칭찬을 던진다.
“강선생은 무역을 하시는 분이시니 외국을 자주 다녀보았을 것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동남아 도시는 거의 가봤죠. 태국 베트남 필리핀 싱가폴 홍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만 평양처럼 조용하고 권위가 풍기는 곳은 처음입니다.”
“강선생 지금 권위라고 했소?”
“고도(古都) 답습니다.”
오민철은 슬쩍 평양이 고구려의 도읍이었다는 걸 강조했다.
“핫핫! 우리 강선생 대단하십니다. 위대하신 위원장 동지께서도 평양의 여유와 넉넉함은 어느 도시에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하셨죠.”
칭찬해주어 싫어할 사람 누구랴.
차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늘을 찌를 듯 삼각뿔 모양의 고층 건물에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어엇!”
이른바 리액션을 넘어 헐리우드 연기급이다.
물론 그중 절반은 진짜 놀란 탓인데 류경호텔이란 글씨가 길게 붙어 있었다.
“저것이 류경호텔이군요?”
“아마 전 세계에서 저 만한 호텔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류경호텔에 대한 자랑이 시작되었다.
오민철은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가며 장단을 맞췄고 조식만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조금은 과묵한 권대표 보다 오이사야 말로 비즈니스에는 적격인 성격이로군’
확실히 권총수의 부족한 부분을 오민철이 잘 채워주고 있었다.
박철진은 한참동안 류경호텔에 대해 자랑을 늘어 놓았는데 권총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짓다 말다를 반복한 상처 투성이 호텔이다.
처음에는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지었지만 자금난으로 프랑스 회사가 덤벼들었다가 포기하고 이집트 회사가 달려 들어 어찌어찌 준공은 했으나 문제는 호텔의 품격이었다.
그냥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5성급으로 주저 앉은 것이다.
물론 지금이라도 돈 많은 기업이 나서서 내부 리모델링을 한다면 가치는 달라질 것이나 북한이란 체제에서는 어느 기업도 투자한 만큼 이익이 산출되지 않기에 꺼린다.
차가 멈췄다.
7층 건물인데 제법 컸다.
얼핏 우리나라 조그만 구청 건물을 연상 시켰는데 ‘노동당 교육위원회’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우리 같으면 각 부처인 셈이다.
미닫이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자 경비로 보이는 두 사람이 거수 경례를 했다.
박철진은 미소를 지으며 경비에게 농담 한 마디를 던지더니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비상시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식만을 포함해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전력 부족으로 멈춘 것이리라.
농업성은 2층에 있었다.
길게 뻗은 복도가 있고 각부처의 간판이 문 설주에 붙어 있었다.
“들어오시오.”
사무실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업무에 열중이었다.
박철진은 자신의 방으로 일행을 데려갔고 문을 열고 말했다.
“리경화 동지, 우리 차 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관동지.”
여자 한 명이 일어나 사무실 구석으로 걸어갔다.
문이 닫히고 네 사람은 둥근 탁자를 놓고 앉았다.
사무실 벽에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이 나란히 있고 그 아래로 김정은 사진이 걸렸다.
박철진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컴퓨터 화면을 보며 말했다.
“평양시민이 소비하는 오렌지와 망고의 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식만이 확보한 풍년상회 진짜 리만홍 사장의 말에 의하면 일 년에 평양으로 들어가는 오렌지만 오십 톤이라고 했다.
문제는 평양에 사는 시민들이 자신들만 먹는 것이 아니라 오렌지를 다량 구입해 지방의 일가 친척들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지방에서는 오렌지를 볼 수가 없다.
그렇게 될 경우 당연히 부족 현상이 생긴다.
망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20톤을 늘릴 생각입니다.”
“그럼 70톤이 되는 것입니까?”
권총수가 물었다.
변체환용으로 완벽한 풍년상회 리만홍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오렌지는 중국 하이난 섬 것보다 캘리포니아 산이 더 품질이 좋습니다. 브라질 것도 좋죠. 물론 가격도 저렴합니다.”
박철진이 이마를 찡그렸다.
미국산이란 말에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고 리경화라는 여자가 쟁반에 커피 세 잔을 가져와 놓고 나갔다.
“자 들면서 얘기하죠.”
세 사람은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오민철이 놀란다.
의외로 커피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권총수와 달리 오민철은 커피에 대해서 조금 아는 편이다.
“향기가 좋습니다. 배네수엘라산 커피인 모양입니다.”
박철진의 눈이 커졌다.
맞다.
베네수엘라 정부로부터 수입하거나 사들이지는 않는다.
북한의 재외공관원들이 당 고위 간부들을 위해 그때그때 개인적으로 구매하여 보낸다.
김정은이 피우는 시가 역시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자체적으로 구입하여 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20톤의 오렌지를 더 늘려달라는 것이군요?”
“그렇소. 하지만 미국산은.”
미국은 북한의 적대적 원수인 나라다.
“그런 것이라면 걱정 하지 마세요. 결코 미국산 브랜드를 달고 들어오지는 않을테니까.”
박철진의 눈이 커졌다.
“생산지 변경은 국제무역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죠. 브라질로 바꾸죠.”
“그건 상관없소.”
권총수는 눈을 빛냈다.
“제가 얻는 이익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박철진의 눈이 커졌다.
“얼마의 이윤을 남기든 절반은 차관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중간 도매업자를 빼버리면 부장님 몫은 당연히 더 커집니다.”
차관님 주머니란 말에 흠칫하며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걱정 마세요. 우리의 대화는 누구도 엿듣지 못하고 도청도 하지 못합니다.”
박철진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하자 조식만이 거들었다.
“부장님 가끔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죠. 오늘도 그런 이상한 일 하나가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정히 불편하시면 나갈까요.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박철진이 고개를 저었다.
보위성 요원들이 각지 각처에 퍼져 있다.
손님으로 변장해 있고, 직원으로 숨어 있으며 때로는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곳이 북한이다.
차라리 사무실이 주변 직원들 눈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안전하다.
물론 직원중 누군가도 보위성과 연이 닿고 있겠지만 그래도 훨씬 낫다.
인간이란 동물은 묘하여 부부나 식구가 아닐지라도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고 동일한 공간에서 일을 하다보면 무시못할 정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그 정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앞선다.
“대신 가격 결정은 제가 합니다.”
“그렇다고 터무니 없이 비싸면.”
“그럴리 있습니까? 우리 평양시민들 주머니 사정 잘 고려할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조금 비싸다고 한들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비쌀수록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의 액수는 커진다.
북한에서도 구두 계약도 법적 효력을 갖는다는 말에 권총수는 계약서는 쓰지 않기로 했다.
이런 일에서 계약서는 나중 문제가 됐을 때 발목을 잡는 덫이 된다.
평양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대동강변 옥류관 주차장에 혼다 브리오 한 대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오민철은 주차장을 가득 채운 자동차들을 보며 놀란 표정을 했다.
비록 서울의 어느 주차장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고급 승용차들은 아니지만 많은 차량을 보면 이곳 옥류관 출입자들의 면면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한 TV에서 이곳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는 북한 사람들 인터뷰가 나온다.
모두들 판에 박은 듯 맛을 자랑하고 어떤이는 냉면 맛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위원장님 운운하며 정치 선전을 하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오민철은 또 놀란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의외로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많았다.
물론 양장을 한 여성들도 있었지만 한복 차림이 월등했다.
그러나 오민철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들 눈에는 근사하게 비칠지 모르지만 마치 사진속에 보던 6,70년대 우리나라 어머니들 모습이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한복을 입은 부모님 세대들이 멋있기보다는 가난에 찌든 주름살 가득한 얼굴이어서 더 슬프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그렇다.
한복이 민족의 주체성이나 자주성을 한껏 고취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인들이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세 사람은 여자 직원이 안내해준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조 동지는 전번에 나와 같이 식사를 했으니 맛을 알 것이고 두 분은 드셔보았습니까?”
“처음입니다.”
“평양냉면이 유럽에서도 인기입니다.”
오민철은 유럽 어느나라에서 인기냐고 물으려다 눈치를 챈 권총수의 전음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자제 해’
전음이 차갑게 들린다.
적당한 선에서 그만둘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박철진이 지나치게 부자 행세를 하니 오민철의 눈에 거슬린 것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설명하면 오히려 가슴이 통할텐데 박철진은 끝없이 북한의 경제 사정이 넉넉하다고 했다.
정말 이들의 눈에는 가난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