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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22화 (622/651)

제622화: 국경의 싸움(1)

그건 놀라움과 당황함이었다.

“그리고.”

“말해요.”

구장철이 주저하자 다그치듯 쳐다보았다.

“우리와 태산의 컨소시엄으로 얻어 낸 사우디 공사 건에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사건이 있었더군요.”

“어떤 사건요?”

“우리와 태산이 최종 심의위에서 탈락하고 프랑스와 일본 건설사 두 곳이 경합을 했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우리가 수주했잖아요.”

“권총수씨가 끼어들어 방향을 우리 쪽으로 튼 모양입니다.”

“아!”

권혜림은 휘청거리며 의자에 주저 앉아 버렸다.

너무 뜻밖의 소식이고 충격적이었다.

“정말이에요?”

“사우디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권총수씨에게 감사 인사는 했느냐는 전화가 걸려와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한데 전화가?”

“정찬추 미래전략실장이 받았다고 합니다. 태산까지 금시초문이라는 듯 무척 당황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인 감정을 짓누를 줄 아는 법을 배웠다는 말씀을 회장님께 전해주시오’

사우디경제기획부장관으로부터 받은 축전의 마지막 말이 모호했다.

그런데 이제 해석이 된다.

권총수는 국가적 이익 앞에서는 개인적인 원한을 잠시 뒤로 미룬 것이다.

파악!

권혜림은 탁자 위에 있는 물컵의 물을 마시더니 사정없이 던져 버렸다.

머그컵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구장철은 어금니를 물었다.

전달하는 자신도 사실 무척 놀라고 있었다.

설마 권총수가 공사수주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권총수를 겪어 보지 못했고 백서그룹의 임원으로 있다보니 권혜림의 감정 속으로 편입 될 수 밖에 없었다.

최고 경영자가 적대감을 보이므로 그 밑에서 밥먹고 살려면 권총수에 대해서 같이 미워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이왕 같은 편이 된 마당에 일을 저지르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스스로 아이디어도 짜내고 공격 일선에서 모든 걸 지휘했다.

그런 적이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던 사우디의 대형 유전개발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힘을 썼다는 것이 그야말로 상상 밖이다.

“흐흠!”

구장철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무서운 적이다.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가슴이 뛴다.

권혜림은 굳은 얼굴로 꼼짝 않고 있었다.

권혜림의 얼굴은 만찬장에서도 펴지지 않았다.

반면 김정은의 얼굴에는 미소가 넘친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하지만 놀라운 건 김정은 말고는 누구도 웃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김정은만 웃고 나머지는 표정이 없다.

어떻게 살까.

그의 앞에서는 누구도 웃지 않는다.

웃으면 금방이라도 목이 날아가는 듯 완전히 경직되어 있었다.

저 사람의 기분에 따라 모든 것이 좌우되고 혼자서 결정을 내리는 이 숨 막히는 체제속에서 과연 이 사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한두 푼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다.

잘못하면 엄청난 손해만 안고 철수해야 하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

미래가 투명하지 않은 나라이다 보니 중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도 북한에 함부로 발을 들여 놓지 않는다.

사업과 사기가 백지 한 장 차이라지만 자칫하면 홀라당 당하는 것이 이런 정치적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오정철이 슬며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오진우의 뒤를 이어 노동당의 실세중 한 명이자 군부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 또한 허수아비다.

직책만 그럴 뿐 김정은의 명령이면 그가 거느리는 군인들이 그의 목을 딸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직책과 직위를 갖고 있지만 허울뿐이고 김정은 마음대로인 국가인 것이다.

“사업은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위원장 동지께서는 백서그룹에 대해 무척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 금강산 사업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쨍!

두 사람은 들고 있는 잔을 부딪쳤다.

권혜림은 단번에 마셨지만 오정철은 잔을 입에 대고 시늉만 할 뿐이었다.

김정은이 돌아갔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북한 관계자들 얼굴에 웃음기가 비쳤고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잘해보자면서 백서그룹 직원들과 얘길 나누며 술잔을 비운다.

긴장이 풀어진 탓인가 분위기는 좋아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권혜림의 얼굴 표정이 불편했다.

권총수였다.

아무리 곱씹어도 이해가 안된다.

자기 같았으면 국가 이익이고 뭐고 백퍼센트 판을 깨버렸을 것이다.

결코 한국 기업이 절대 수주 못하도록 막았을 텐데 그는 백서그룹 총수가 누군지 알면서도 사우디 고위층에 부탁하여 자신을 도운 것이다.

적남사 사찰 살인사건도 권총수의 작품이 분명하다.

또한 쿠아치가 프랑스군 특수부대에 생포됐다는 뉴스도 알고 있었다.

한국을 들어왔던 아까올라는 사막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훤히 알고 있다’

모든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걸 권총수가 모르지 않는다.

“즐겁게 웃으시죠.”

구장철이 다가와 귓속말로 전달했다.

북한 사람들이 너무 경직되어 있는 권혜림을 보며 어디 아픈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속이 조금 쓰려서, 제가 위궤양을 갖고 있거든요.”

“위궤양이면 술이 안 좋을텐데.”

오정철이 염려스런 시선을 했다.

“괜찮습니다. 오늘 처럼 기분좋은 날은 위궤양이 아니라 암이 걸렸어도 마셔야죠. 자 다 같이 건배해요.”

권혜림이 잔을 들어 올리자 참석자 모두가 일제히 따라했다.

“위원장님의 건강과 백서그룹의 내일을 위하여 건배.”

“건배!”

일제히 소리치며 술을 마셨다.

분위기가 점점 익어간다.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면서 마음이 가벼워지고 권혜림도 활달한 표정으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 시간 권총수는 오민철과 도로 위에 있었다.

저녁 비행기로 연변에 도착하여 조식만의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내일 조식만과 함께 북한을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부우웅!

차는 연길시에 있는 카이로스 호텔에 도착했다.

조식만이 차에서 내려 미소를 지었다.

“내일 10시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조식만은 두 사람과 악수를 한 뒤 호텔을 떠났다.

두 사람은 조그만 캐리어를 끌고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호텔답게 한복을 입은 여종업원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권총수는 영어로 말을 했다.

한국인인줄 알았다가 유창한 영어가 나오자 여직원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판단한 듯 재빨리 영어로 응대했다.

‘가급적이면 호텔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십시오’

조식만이 던진 말이었다.

이 지역 호텔과 유흥가를 무대로 북한의 국가 보위성(우리의 국정원에 해당)요원들의 활동이 왕성하다고 했다.

때로는 조선족으로, 가끔은 중국인 사업가로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며 아름다운 여자를 내세워 목표물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물론 얼굴이 많이 알려진 권총수는 마흔 초반 가량의 평범한 사내의 얼굴로 변장해 있었다.

오민철도 평소와 달리 콧수염 하나를 붙였고 중절모에 두꺼운 뿔테 안경으로 원래 얼굴을 감췄다.

객실로 들어간 두 사람은 가장 먼저 도청을 포함한 여러 감시장비가 숨겨져 있는지부터 훑었다.

탐지기를 조식만이 준비해 주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조사는 가능했다.

소리가 나는 물건도 아니고 냄새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내공을 이용해 찾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결가부좌하여 대력금강심법을 극성으로 끌어 올린 뒤 오감을 이용해 살피면 알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탐지기 하나면 간단하니 수월한 쪽을 선택한 것이다.

화장실까지 꼼꼼하게 살피던 오민철이 이상무를 외쳤다.

두 사람은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고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명태구이를 주문했다.

권총수는 습관처럼 주위를 훑었는데 두 눈이 살짝 빛났다 다시 잠잠해진다.

‘둘!’

권총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민철이 눈을 치켜뜨며 이마를 찌푸렸다.

‘창문쪽 한 명, 오른쪽 구석 화분 있는 곳 한 명.’

권총수의 말에 오민철은 돌아본다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돌아볼 필요도 없으며 자신이 처리할 것도 아니다.

권총수처럼 초절정의 고수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기운을 감지하고 한 번에 살핀다.

그런데 누군가를 경계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긴장하는 사람과 일반인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부드럽고 유순한 기운을 지닌다.

일체 주위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기운도 안정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이나 신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다르다.

서릿발이다.

모든 기운을 바짝 끌어 올린 채 주위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에워쌓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권총수의 눈을 속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한 명은 북한사람이다.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건 복장과 피부를 보면 알 수 있다.

맥보란이 전해준 CIA에서 북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꼽아 놓은 자료중 재밌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일반 주민은 말할 것도 없고 관리라는 사람들도 까무잡잡한 피부에 강팍한 인상이라는 것이다.

그건 풍부한 영양섭취와는 거리가 멀고, 많은 고생을 해 온 사람들이 갖는 전형적인 외모라고 했다.

피부는 검은 편이고 얼굴은 까칠하며 주름살이 낀다.

아무리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했어도 마치 애리조나 옥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뉴욕 나들이를 위해 아무리 때 빼고 광을 내도 두드러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입구 구석 이른바 고무나무로 불리는 화분 옆에 앉은 사내는 자연스럽다.

약간 기름진 얼굴도 그렇고, 스테이크를 먹는데 칼질 포크질 모두 여유가 넘친다.

최소한 북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둘 모두에게서 나타난 공통점은 무척 뿜어나오는 기세가 강하다는 것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정보국 사람들에게서 흔하게 드러나는 섬세한 살기였다.

누군가를 죽이려 할 때 풍기는 살기는 난폭하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하지만 섬세한 살기는 경계가 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둘 모두 일반인은 아닌 것 같지?”

오민철이 눈을 좁히며 물었다.

“그렇다고 우릴 감시 하거나 주목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신경쓸 것 없어.”

그때였다. 북한 사람으로 보이는 창가에 있는 사내와 화분 옆에 앉은 사내 모두 20여초 간격을 두고 핸드폰을 귀에 댄다.

파팟!

권총수의 눈이 다시 한 번 번뜩인다.

둘 모두 이쪽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데 열중했다.

그건 전화를 걸어온 사람으로부터 지시를 받는다거나 아니면 설명을 듣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권총수는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려 통화 내용을 엿들으려는데 어느새 전화기를 내리고 있었다.

확실했다.

맥보란이 말해준 정보 분야에 관계하는 사람의 특징중 하나가 표정 없이 빠르게 몇 마디 주고 받고 전화를 빨리 끊는다는 것이다.

실내에서의 전화통화가 길어지면 무조건 주위의 이목을 끈다.

뿐만 아니라 통화가 길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는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간단해야 한다.

“봤지?”

권총수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봤어.”

전화를 끊는 두 사내는 약속이나 한 듯 주위를 스윽 훑어 본 뒤 다시 식사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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