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1화: 개박살(3)
오천통의 한 마디면 이른바 유지로 불리는 지역 토호들이 사사건건 경찰 행정에 시비를 걸고 문제를 삼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그들이 들쑤시기 시작하면 피곤해진다.
중앙감사부처에 음해 투서라도 들어가면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으랴.
오천통은 일식집을 나왔다.
운전기사가 모는 차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사건만큼은 자신이 깊숙이 관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대한무궁화청년연합회 상임위원들이라는 걸 감추기 위해 사이트를 폐쇄했고 모든 흔적을 지웠다.
오로지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폭력조직의 우두머리에서 끝내야지 더 확장되어서는 안 된다.
자칫 자신과 권혜림의 관계가 드러나지 말란 법도 없다.
“엇!”
갑자기 운전기사가 소릴 질렀다.
“왜?”
“브레이크가.”
시골 내리막길이다.
운전기사는 진동이 느껴질 만큼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차는 더욱 속도를 냈고 사방은 캄캄한 어둠이다.
사람들 눈을 피해 만들어진 자리이기 때문에 한적한 교외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길은 가파르다.
속도계는 더욱 올라갔고 전방에 급 커브길이 나타났다.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며 코너를 돌아야 하는데 되지 않는다.
쾅!
90킬로가 넘는 고속의 통제되지 않는 차는 그대로 내려가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상당한 높이의 절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추락한 오천통의 승용차 뒤를 랜드로버 한 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랜드로버는 오천통의 차와 달리 속도를 줄이며 여유 있게 커브길을 돌아 나갔는데 차 안에 권총수가 앉아 있었다.
권총수는 앞차의 사고 장면을 목격하지 못한 듯 차를 몰고 사라졌다.
무소속 국회의원 오천통 교통사고로 사망이라는 소식이 아침 첫 뉴스를 장식했다.
백서그룹 미래전략실장 정찬추는 일어나자마자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수많은 커피 종류가 있고 바리스타에 따라 맛과 향 또한 수십 가지로 변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까지 블랙커피, 흔히 하는 말로 커피 그대로는 마시지 못한다.
아무리 참고 마시려고 해도 쓴맛이 입안을 압도해 버려 향이니 맛이니 품평할 가치가 없다.
그래서 집에도 믹스커피를 재어두고 마신다.
배달된 조간신문을 펼쳐 놓고서 시선은 텔레비전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처참하게 우그러진 오천통의 승용차가 화면을 채운다.
모자이크 처리된 화면 사이로 하얀 시트에 덮인 시신이 119에 실리는데 보나마나 오천통일 것이다.
“여보!”
일어난 아내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듯 잠옷 차림으로 바라본다.
그러더니 슬며시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오천통, 그 사람 말하는 것 아냐. 가족회사 이해충돌 운운하며 말썽 많았던 사람.”
정찬추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 뭔 일 있어요?”
눈치 빠른 여자다.
아내 전미연이 슬며시 옆으로 앉는다.
“여보!”
전미연은 흘긋 옆에 앉은 남편 정찬추를 보며 말을 이었다.
“며칠전 모임을 나갔는데 이상한 말이 들리더라.”
“이상한 말?”
“오천통의원 가족회사와 백서건설이 상당히 밀착 되어 있다더라고.”
“그쪽도 건설이니까 소통할 수도 있겠지. 그게 어때서?”
“하긴 뭐.”
전미연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더듬 거렸다.
“왜 이래?”
정찬추가 주저하는 전미연을 돌아보았다.
“권 회장이 죽을지도 모른대.”
화악!
정찬추는 화들짝 놀란다.
“내 말이 아니고 사람들 얘기가.”
“어떤 사람들, 누구야?”
“누군 누구야? 백작(白鵲)회 사람들이지.”
흰 까치(白鵲)는 백서그룹의 사조(社鳥)다.
계열사 임원진 아내들로 백작회라는 모임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곳에서 흘러나왔다는 뜻이었다.
“입 조심해.”
정찬추가 눈을 가늘게 찡그렸다.
“상대 할 수 없는 사람이래.”
“누가?”
“몰라서 그래? 우리도 알건 다 알아. 모두 자기 남편들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그 위치까지 오르는데 여자들 뒷바라지 없었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진짜 우릴
바지저고리로 아나.”
“이 사람!”
“권철태 전 대통령이 낳은 혼외자가 권총수 아냐. 권씨 집안이 순식간에 그렇게 된 것도 복수를 당한 것이고, 권 회장이 어느정도 회사가 안정되자 권총수를 노린다는 말이 있어.”
확실히 발 없는 말이 빠르다.
그건 사실이었다.
권혜림의 행동을 가장 앞장서 막는 사람중 한 명이 바로 정찬추 자신이었다.
권총수는 결코 상대가 될 수 없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번 생애에서는 복수가 불가능하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결국 가로막는 자신은 권혜림의 눈 밖에 났고 그래서 이번 평양 방문에 함께하지 못했다.
“이게 뭐요? 왜 내 이름이 빠졌습니까?”
방북명단을 보던 정찬추 인상이 구겨졌다.
구장철 백서건설 사장이 건네주는 종이에 자기 이름이 없다.
“회장님께서 직접 지목하신 분들만 뽑았습니다. 실장님 이름을 매직으로 지우더군요.”
방북은 엄청난 일이다.
회사 차원을 넘어 국가적 일이기도 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움켜쥐고 있는 주변 강대국 또한 예리한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다.
그들의 눈이 집중되어 있을 때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화면으로 나가야 한다.
북한에 갔다 왔다는 자체만으로 엄청난 무게를 지닐 수밖에 없다.
향후 회사내에서의 위치도 달라질 것이 당연한데 권혜림은 자신을 사정없이 제외시켜 버렸다.
“밥 안해?”
“여보 말 나온 김에 한 가지만 약속해.”
남편 정찬추의 오른팔을 당겨 자신 쪽으로 몸을 틀었다.
“혹시 말이야. 만약에 권회장이 무슨 일 시키면 하지 마.”
“당신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권총수라는 사람 공격하는데 당신을 심부름꾼으로 쓰거나 이용하려고 하면 사표 내란 말이야.”
“밥이나 해.”
정찬추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가 버렸다.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하나는 북한에서 날아온 소식이었는데 백서그룹이 금강산 개발을 하기로 북한 고위인사와 협약을 맺었다는 것이었다.
아직 정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 정부 관계자들 입에서 백서건설이 금강산 개발사로 낙점될 것 같다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적남사 사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피해자들의 신원이었다.
하나같이 대한민국에서 손가락에 꼽는 대규모 폭력조직 우두머리들이라는 소식에 시민들은 놀라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동안 경찰에서는 수사상 필요하므로 피해자들의 신원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했으나 언론은 더는 기다려 줄 수 없다며 터뜨려 버린 것이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오대도시에서 가장 큰 조직들 우두머리들이 왜 모였고 그들은 어떻게 죽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가졌으나 시원한 답변이나 기사는 아직 실리지 않았다.
시민들은 오락적인 재미로 그들의 죽음에 접근했지만 검찰과 경찰은 엄청난 음모가 깔렸다고 판단하여 연일 회의와 토론, 그리고 죽기 전 그들의 행적을 쫓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었다.
북한의 붉은 국기가 펄럭이고 그 아래 두 사람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금수산 태양궁전이다.
북한의 성지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미라처리 되어 있는 곳으로 노동당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김정은을 포함한 간부들 전원이 단체로 참배한다.
차에서 내린 권혜림은 잠시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이미 출국전 북한과 사전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참배에는 문제가 없다.
물론 남한 정부와도 협의가 끝난 상태이다.
다만 가슴이 뛰는 건 말로만 듣던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보게 되었다는 흥분이었다.
시신이지만 미라처리가 되었으니 산 사람처럼 누워 있을 것이다.
“들어가시죠.”
권혜림의 이곳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는 군정지도부장 오정철이 직접 맡았다.
김정은과 독대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을 보냈다는 건 그 만큼 이곳은 북한측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 성지라는 걸 반영하고 있었다.
안내하는 직원 두 명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권혜림과 오정철이 따랐다.
이어 북한쪽 인사들과 백서그룹 인물들이 나란히 줄지어 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문이 열리고 복도를 걸어 이윽고 거대한 청동문이 좌우로 열렸다.
넓다.
차라리 지하 광장이다.
바닥도 금빛이고 기둥과 천장까지 온통 황금빛이 출렁거렸다.
미리 준비해 놓은 대형 조화를 북한군 두 명이 들고 나타났는데 대한민국 백서그룹 회장 권혜림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저벅저벅!
두 북한군은 걸음을 맞추며 안쪽 제단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에 조화를 놓는다.
저벅저벅!
오정철이 제단쪽으로 걸어가자며 손을 앞으로 뻗어 가리킨다.
권혜림은 천천히 오정철을 따라 제단 앞에 섰는데 수많은 생화들 속에 한 사내가 누워 있었다.
검정색 정장 차림의 사내는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김일성이었다.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권혜림은 이어 왼쪽으로 이동했다.
붉은 카네이션 비슷한 꽃들속에 한 사내가 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데 바로 김정일이다.
부자가 나란히 미라 처리되어 꽃속에 파묻혀 있었다.
권혜림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모든 참배객은 무조건 지나가야 하지만 특별이 초대된 권혜림인 만큼 한동안 서서 두 구의 시신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스윽!
오정철이 그만 나가자는 듯 입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혹시 방부 처리된 미라에 어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그러는 것이다.
권혜림은 가급적 발소리까지 죽였다.
평소 자주 신던 하이힐이 아닌 구두를 신은 것도 예를 차리기 위함이었다.
숨이 막힌다.
단 한마디 말도 해서도 안되고 죽은 사람을 땅에 묻지 않고 저렇게 미라로 해 놓았다는 것이 상당히 거북스럽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런 해괴한 나라와 앞으로 교류를 해야하므로 은연중 마음이 무거워진다.
숙소로 돌아온 권혜림은 김정은이 베푸는 저녁 만찬을 대비해 샤워를 하고 입고 나갈 옷을 잘 살피고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면서 구장철 백서건설 사장이 들어왔다.
“지금 막 뻬이징에서 들어온 소식입니다.”
거울 앞에서 가져온 옷을 대보고 있던 권혜림이 고개를 돌렸다.
“일이 몹시 커질 듯 싶습니다.”
“무슨 얘기에요? 뭔 일이 커져요?”
“대한무궁화청년연화회 상임위원 다섯 명이 모두 죽었습니다.”
툭!
들고 있던 옷을 떨어뜨렸다.
구장철이 재빨리 떨어진 옷을 주워 옆에 있는 옷걸이에 걸었다.
“그들이 왜 죽어요? 어떤 사람들인데?”
“무적이라고 우린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영원한 무적은 없나 봅니다. 아직 범인에 대한 단서도 찾지 못한 모양입니다.”
“정말로 그들이 살해 당했단 말인가요?”
“울신에 있는 적남사 사찰에서 회의를 갖던중 모조리 현장에서 숨진채 발견됐습니다. 그들 경호원들 또한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거의 장애를 얻을 만큼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구사장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죠?”
“그 뿐 아닙니다. 오천통 의원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파르르!
권혜림의 눈빛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