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0화: 개박살(2)
우당탕!
으흑!
이번에는 두 명의 사내가 쓰러지며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역시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119입니까? 여긴 적남사, 사람이 다쳤습니다. 어서 오세요.”
간단한 설명을 하고 재빨리 문을 열어본 청명은 끝내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으하학!”
방안에는 휴대폰만 몸서리치고 있을 뿐 사내들 모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청명스님 입술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동시에 들이닥쳤다.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전쟁통에 벌어진 집단 학살과 같은 방안 풍경에 구급요원은 물론이고 경찰들까지 섬칫 한 듯 뒤로 물러난다.
“푸후!”
피비린내가 콧구멍을 파고든다.
삐뽀삐뽀 하는 소리가 들리며 이번에는 강력계 형사들이 탄 차량이 도착했고 사복차림의 형사 셋이 나타났다.
“이런 젠장!”
울신경찰서 강력3팀장 하부동 경감은 입을 떡 벌렸다.
연쇄 살인사건도 경험했고 교통사고로 세 명이 사망한 사건도 둘러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칼로 난자가 된 다섯 구의 시신은 20년 경찰 생활중 단연 처음이었다.
동행한 형사들도 말문이 막힌 듯 열린 방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과학 수사팀이 도착해 기초적인 사건 조사에 들어갔으며 부상당한 오른쪽 끝방의 다섯 명이 구급차에 실려 떠났다.
“뭐야? 도대체 재들 누가 불렀어.”
하부동 경감이 들이닥치는 언론사 취재 차량을 보며 소리쳤다.
“막아! 아직은 안돼.”
뒤이어 도착한 두 명의 형사까지 포함한 넷이서 기자들을 막기 시작했다.
형사들이 가로막자 기자들은 취재의 자유를 이런식으로 막으면 심각한 언론탄압이라면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비켜!”
“안돼!”
일주문 앞은 소릴 지르고 막아서는 기자와 경찰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뉴스속보가 떴다.
울신에 있는 모 사찰에서 다섯 명이 살해당하고 다섯 명이 중상을 입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녁 지상파 방송국 메인뉴스 끝머리에 속보로 앵커가 직접 멘트를 했다.
“지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경북 울신 모 사찰에서 다섯 명이 살해되었고 다섯 명이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찰측에 의하면 이들은 자주 오던 불자들이며
오늘 회의가 있다고 하여 방을 제공했다면서 왜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자신들로서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 네, 현장 연결 된 것 같습니다. 김원수 기자.”
“네 여긴 사건 현장인 사찰입니다.”
마이크를 든 남자 기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권총수는 그 시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끓였다.
식탁에 앉아 홀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 틀어놓은 텔레비전 뉴스 소리는 정확하게 들리고 있었다.
사상초유의 집단 학살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과거 1987년 용인의 한 공장에서 32명이 집단 변사체로 발견된 오도양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지금쯤 몇 사람은 무척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목적은 한 가지다.
더 이상 나에 대한 살의를 갖지 마라.
나에게 칼을 겨누면 이렇게 된다.
그것이 이번 사건의 메시지였다.
지이잉!
식탁 한쪽에 올려진 핸드폰이 울리는데 오민철이란 이름이 보인다.
“뭐하냐?”
“밥먹어.”
“자식 청승맞게. 우리 집에서 같이 먹자니까?”
“얻어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빠른데.”
“무슨 소리야?”
“조금 전 종로경찰서 채불수 한테서 전화가 왔어.”
채불수라는 말에 권총수 눈이 빛났다.
“안부전화 한 번 드렸다면서 이런저런 이빨을 까더니 슬쩍 지방에 내려갔다 온 적 있냐는 거야?”
“형사는 형사군. 뉴스만 보고 우리쪽을 의심하다니.”
“처음으로 내가 화를 냈지.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걸 잘 안다면 두 번 다시 이런 모욕적인 전화는 하지 마라.”
“뭐래?”
“미안하다 그러지. 음흉한 새끼.”
권총수는 연길로 출국 준비 잘하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권총수는 마지막 남은 공기속의 밥을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 씹는다.
후루룩!
숟가락으로 떠먹는 김치찌개 국물이 유난히 오늘따라 시원했다.
지잉!
핸드폰이 다시 울리고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권총수는 문자를 살폈다.
‘두 사람이 지금 일식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자를 본 권총수가 곧장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해당한 다섯 사람의 신원이 밝혀졌는데 모두가 충격을 금치 못한 얼굴이었다.
검찰과 경찰의 감시대상인 폭력조직의 우두머리들이다.
각 지역을 대표할 만큼 위력을 보이고 정치인들과도 깊은 교류가 있어 웬만한 사건이 아니면 건들기도 쉽지 않은 거물들이었다.
하부동 경감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며 뜻밖이었다.
실내에서는 다섯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의 지문이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좀 더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외부침입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다섯 사람들끼지 치고박았다는 뜻이다.
치고박을 곳이 그렇게도 없어 가족처럼 한방에 모여 우리 같이 죽자며 칼질을 했을까.
“이것 참!”
도무지 가설조차도 세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만날 수 없고, 더욱이 한 방에 앉아 차를 마실수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왜 만났느냐는 거야. 가만.”
부하 형사들에게 질문을 던지던 하부동은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재빨리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 켜져 있는 컴퓨터 자판을 두들겼다.
탁!
화면을 바라보던 하부동의 눈이 커졌다.
“대한무궁화청년연합회, 바로 이거군.”
“맞아. 그들이 시민단체를 결성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형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하부동의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그곳에는 대한무궁화청년연합회 조직도와 창립목적은 물론 회장단 이름이 나왔는데 맨 위에 오천통이 있었다.
“상임위원에 가독성, 우세종, 서거룩!”
“이거 전부 죽은 놈들 이름 아냐.”
형사들 눈이 커졌다.
“혹시 만나서 회의를 하다 충돌이 발생해 서로 죽이고 죽었다는 것 아닐까요?”
“싸울 수는 있겠지만 죽일 만큼 싸울 바보들은 아니지.”
거대 조직의 우두머리 들이다.
뒷골목이라고 하여 주먹과 배짱만 갖고 지배할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었다.
그곳에도 사람 경영이 필요하다.
불만 있는 자를 다독여야 하고, 능력있는 자를 우대하는 경영의 묘가 요구되는 곳이다.
이들이 주먹만 가진 단순무식할 것이라는 생각은 커다란 오산이다.
그때 책상위 유선전화가 울렸다.
하부동은 전화를 받았다.
“하부동 경감입니다.”
“날세.”
“서장님!”
경찰서장이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예! 예!”
하부동은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지만 갈수록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2분여 통화를 하더니 수화기를 내린다.
부하들은 좋은 내용의 통화가 아니었다는 걸 간파하고 입을 다물었다.
“합동수사를 하라는군.”
“누구와 말입니까?”
“종로경찰서 강력팀.”
“서울 종로요. 아니 그들이 왜 이 먼 시골사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관여를 한단 말입니까?”
하부동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왜 이번 사건에 관여를 하려는 건지 서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어 자신은 알고 있다.
“그쪽에서 이번 사건이 전에 있었던 다른 사건과 상당히 닮은 점이 있다고 보는 것 같아.”
“종로 애들 말하는 겁니까?”
박수문 형사가 눈을 좁혀뜬다.
“이런식의 사건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한 명 뿐이라는군.”
“누군데요?”
모두가 합창하듯 묻는다.
그 만큼 이번 사건은 오랫 강력계 생활을 해온 자신들 조차도 너무 놀라웠다.
면면이 대한민국 밤의 세계를 쥐락펴락 하는 인물들이었고 특히 병원에 실려간 사내들은 사망자들이 가장 총애하는 일급 심복들이다.
그들은 심복들을 데리고 뭔가 의논을 위해 적남사 사찰방을 하나 빌린 것이다.
“권총수.”
서로 얼굴을 돌아본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뜻인데 하부동이 설명 하나를 덧붙였다.
“있잖아. 블랙잭이라는 보안기업의 대표이사.”
“아아!”
“그 사람 날아간다는데 사실입니까?”
박수문 형사가 얼굴에 웃음기를 묻혔다.
자신이 물어 놓고서도 너무 어이가 없는 듯 했다.
“신문에서는 개뻥이라고 했던데.”
정두만 형사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런데 그 자가 왜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거죠?”
“모르지. 나도 그 점이 궁금해.”
똑똑똑!
누군가 사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며 채불수가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박수문 형사가 묻는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난 종로경찰서 채불수입니다. 이번 사건 수사를 지원하기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아 오셨군요. 들어오십시오.”
하부동이 아는체를 하여 크게 말했다.
“들어와!”
채불수가 뒤를 돌아 말했다.
김황식 형사와 조문철 형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종로서 조문철입니다. 김황식입니다.”
두 사람은 차례대로 이곳 수사팀들과 악수를 나눴다.
채불수는 자신들이 여기 오게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했고 권총수에 대한 정보를 풀어 놓았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박수문 형사가 바라보았다.
“권총수라는 사람 진짜 날아갑니까?”
채불수는 웃었다.
“저도 한 번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믿기 힘든 일을 몇 번 보긴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채불수는 그걸 꼭 알아야겠냐는 시선으로 박수문을 바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언젠가 같이 술을 마신 일이 있습니다.”
울신 경찰서 형사들 눈이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옛날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같이 빛났다.
“나란히 앉아 술을 마셨는데 갑자기 화장실에서 걸어 나오더군요.”
옛날 구기동 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란히 앉아 마셨죠.”
옆에 앉은 조문철 형사를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겁니다.”
모두가 눈을 깜빡 거린다.
무슨 뜻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표정들이며 그게 어떻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다.
“그것 말고는 직접 본 건 그다지.”
“그 시간이 얼마나 됐습니까?”
박수문이 다시 묻는다
“글쎄요. 시간을 재어보지는 않았으나 2초, 3초.”
“에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울신 형사들은 혀를 찼다.
“어떻게 옆에서 술 마시던 사람이 2, 3초 만에 화장실에서 걸어 나옵니까?”
“그걸 따지기 위해 여기 온 건 아니잖습니까?”
이제 그만 하자는 얘기였다.
무소속 국회의원 오천통은 일식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상대는 울신 경찰서장 마종두였다.
울신은 자신의 지역구이기도 했기 때문에 마종두는 제대로 허리를 펴지 못했다.
울신에서만 5선을 내리 하고 있는 만큼 오천통의 힘은 곳곳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부탁 좀 합시다. 마 서장!”
“부탁이라뇨. 당치 않습니다. 의원님 말씀대로 할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오천통의 부탁은 한 가지였다.
수사 도중 새로운 사건이 드러날 때마다 언론에 노출되기 앞서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수사기관의 지휘체계에 있는 인물이 아닌 제3자에게 중요한 사실을 흘린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마종두는 오천통의 뜻을 거역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