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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18화 (618/651)

제618화: 상임위원(3)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나마나.”

권총수는 잠시 말을 끊었다.

“블랙잭에 대한 어떤 항의나 간섭 그런 것이겠지.”

“제까짓 놈들이 뭔데.”

“다른 분야는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체제를 흔들 수도 있는 전쟁 사업이기 때문이지.”

“하긴 그 자식들 심정 모르는 건 아니다. 그들이 핵을 개발한 것도 체제유지 때문이지. 미국에 밉보인 나라들의 수장들의 모가지가 하나둘 날아가는 걸 보면서 얼마나 가슴 졸이겠어.”

“흐음!”

권총수는 창가로 걸어갔다.

‘그 여자가 돌아오면 북한의 공기를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되겠지’

오민철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만큼 혼자 속으로 중얼 거렸다.

지이잉!

오민철이 탁자 위에 놓인 권총수의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전화왔어.”

권총수는 생각에서 깨어나 액정을 바라봤다.

나도출이라는 이름이 찍혔다.

“나 과장.”

영업부에 과장이라는 직함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권총수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서 듣기 시작했다.

오민철이 권총수의 표정을 살폈지만 표정 변화가 없어 어떤 내용을 보고하는지 유추할 수 없었다.

“알았습니다.”

권총수는 전화를 내리고 소파에 앉았다.

오민철이 바라본다.

무슨 전화인지 빨리 말해보라는 재촉이다.

“출장 준비해.”

“무슨 출장, 또 사우디야?”

“출장 가는 것 싫어?”

“아니 그게 사실은 요즘 집사람이 아파.”

“아프긴 뭐가 아파. 어제 오후에 안부 전화했는데 목소리만 생생하던데.”

“감기 때문에 고생해.”

“적남사라는 절 알아?”

오민철의 말을 끊으며 묻는다.

“적남사?”

“울신 근처 어디엔가 있다는데, 그곳에서 비밀 회의가 열린다는 거야.”

“비밀회의라니 누가?”

“대한무궁화청년연합회 상임위원들이 적남사라는 절에서 만나는가봐.”

오민철은 이마를 찡그렸다.

상임위원들이 만나 회의를 하는 것이 문제 될 건 없다.

문제는 그들 면면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폭력조직의 수괴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반성하기 위해 절에서 모임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절이란 본디 산속에 있어 사람들 시선을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는 장소다.

“절간에서 모임이라, 안 봐도 훤히 보이는군.”

오민철의 눈이 좁혀졌다.

뭔가 낌새를 챈 듯 했다.

“진작에 사람 잡으러 가는 출장이라고 얘기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오민철은 권총수 더러 주차장에서 기다리라면서 나갔다.

권총수는 펴놓은 노트북을 끄고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 본 뒤 문을 나섰다.

차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여주가는 길로 빠졌다.

흰색 랜드로버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오민철이다.

“참 오랜만에 오는군.”

“아 형수님 친정이 여주라고 했죠?”

“여주 하면 떠오르는 것 없냐?”

오민철이 뭔가 자랑할 것이 있는 듯 목소리를 깔았다.

“여주, 도자기?”

“자식 상당히 공부 했구나. 도자기도 유명하지만 쌀도 뛰어나지. 필요하면 말해라. 이 엉어가 여주 쌀로 보내줄테니.”

“형이나 많이 먹어.”

홱!

오민철이 고개를 돌려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기분 나쁘냐?”

“우리 형님 여주 사위 다 됐네.”

“짜아식!”

오민철이 호탕하게 웃었다.

“결혼 안 할거야?”

권총수는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룸살롱을 여러차례 갔지만 단 한 번도 여자와 2차를 즐긴다거나 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즐길 뿐 그 이상은 없다.

물론 불가의 대력금강심법은 양의 심법이다.

양의심법의 단점 중 하나가 음기와의 접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불가의 승려들이 색을 탐할 리는 없지만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만들어진 심법인건 분명했다.

여자를 가까이 한다고 내공이 당장 소모되거나 쌓아 올린 무공이 약해지는 건 아니지만 플러스가 되지는 않는다.

“쏙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다면 어느 남자가 결혼을 않겠어.”

“세상에 그런 여자는 없어.”

오민철이 단호히 말했다.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여자는 있지만 너의 독신관이 부서질 만큼 좋은 여자는 있을 수가 없지.”

“날 더러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는 건가?”

“이 엉아 말이 엉터리로 들리냐?”

“아니 형 말이 맞아. 너무 내 조건만 내세워서는 안 되지. 그럼 안 되고 말고.”

꿈틀!

오민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이상하게 들린다.”

“형, 뭐가 또? 앞 만 보고 운전하세요.”

“이 자식이. 야 근데 너 뭐하냐?”

권총수의 온 몸이 아지랑이처럼 흐려지고 있었다.

“신경쓸 거 없고.”

“건방진!”

오민철은 피식 웃으며 가속페달을 거칠게 밟았다.

벤츠 차량 한 대가 적남사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멈췄다.

운전석과 뒷좌석 문이 동시에 열리고 두 사내가 내렸다.

뒷문에서 내린 사내는 가독성이었고 운전석 사내는 기사이자 경호원인 백두진이다.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있고 최대한 주위 시선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하기로 약속했다.

“모두 도착한 모양입니다.”

백두진의 시선이 왼쪽으로 돌아갔는데 고가의 외제승용차 넉 대가 세워져 있었다.

“벤틀리 저것 인천의 우사장 차 맞지?”

“예! 우사장님 벤틀리 굉장히 좋아하죠.”

두 사람은 사찰로 오르는 길로 들어섰다.

이백여 미터 걸어 올라가자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올랐을 때 젊은 스님 한 분이 기다리고 있다 합장을 했다.

법명을 청명이라고 했다.

“어서 오십시오.”

가독성은 재빨리 합장했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3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단층의 요사채 건물이 보인다.

적남사는 오천통이 다니는 절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오천통이 적남사에 시주하는 돈이 일 년에 억대가 넘는다고 했다.

오늘 장소 마련도 오천통이 정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요사채를 향해 걸어갔다.

왼쪽으로 작은 연못이 있는데 연꽃 한송이가 겨울 초입인데도 아직까지 지지 않고 있었다.

요사채 토방에 광이 번쩍거리는 네 켤레의 구두가 놓여 있다.

오른쪽 끝 방 앞에도 네 켤레의 구두가 있었는데 역시 광이 번쩍 거린다.

그러나 왼쪽 구두와는 차이가 느껴진다.

왼쪽 구두들은 뒷굽이 그다지 닳지 않았다.

이른바 파리가 미끄러질 만큼 빛나는 건 똑같은데 오른쪽 토방에 놓인 구두에서는 기세가 없다.

비록 신발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고 있었다.

백두진도 그걸 느낀 듯 이마를 찡그렸다.

사람이 신는 신발에서도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묻어 나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감해보긴 오늘이 처음이다.

오른쪽 구두는 우두머리들을 태우고 온 경호원이자 기사들 것이다.

가독성은 곧장 토방으로 올라가 신발을 벗고 왼쪽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구 오셨습니까? 형님.”

방안으로부터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고 백두진은 오른쪽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절에서 제공한 녹차 한 봉지가 바닥이 났다.

물배를 채웠다고 해도 괜찮을 만큼 오랫동안 녹차를 우려내고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었지만 누구도 마땅한 방법을 내놓지는 못했다.

보통 사람 다루듯 작업조를 보내 연장질 몇 번으로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물론 다섯 중 누구도 권총수를 만나 보거나 마주쳐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오늘 모임을 위해 그동안 국내 언론에 보도된 권총수에 대한 여러 기사들을 스크랩 한 결과 결코 평범한 사내가 아니었다.

공중을 날아가니 마니 하는 소리는 개소리로 규정했다.

다만 싸움을 잘하는 것 하나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 다섯 명의 대한무궁화청년연합회 상임 위원들의 생각이다.

“음!”

가독성은 다른 네 명의 위원들을 훑었다.

비록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어 말하지 않지만 모두의 가슴속에는 하나의 버거운 바위덩이가 있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블랙잭, 그곳은 보안 기업이고 날고 뛴다는 전쟁 전문가들의 집합소인 것이다.

특수부대 출신이니 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죽이는데 특화된 사내들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다만 건달조직의 우두머리 체면에 그들이 신경쓰인다는 말을 자존심상 하지 못할 뿐이었다.

“이게 무슨 꼴이지.”

인천 연안부두파 우두머리 우세종이 투덜거리 듯 말했다.

연안부두를 터전 삼아 일어났고 지금은 제법 큰 해운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권총수, 권총수라 이 바닥에 족보도 없는 놈이라던데.”

그런 놈인데 우리가 고민하고 머리 싸맬 일 있느냐는 투의 눈빛을 보낸다.

“방법이 전혀 없는건 아니지.”

가독성이 입을 열었다.

“뭡니까 형님!”

우세종이 찻물을 입에 넣고 입안을 행군다.

“총이 아니면 어렵다고 보네.”

“총이면?”

“총이라면 성공 가능성이 높지.”

“진즉 말씀 하시지, 집에 사냥겸 호신용으로 엽총 몇 자루 있습니다.”

“짐승 잡는 총은 약해. 과거 천왕그룹에서 엽총을 동원했지만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어.”

“엽총으로 쏴도 안 죽어요?”

다른 사내들도 놀란 얼굴을 했다.

적남사 구석에 랜드로버가 주차되어 있었다.

권총수는 차 안에서 마치 남의 전화를 도청하듯 다섯 사람의 대화를 천리지청술을 이용해 듣는다.

오민철은 무척 궁금한 듯 혀로 입술을 닦으며 바라본다.

10여 분을 더 듣던 권총수가 유리문을 내렸다.

“뭐라는데? 그 새끼들이 뭘 꾸미는 거야?”

딸칵!

담배에 불을 붙인 권총수가 미소를 지었다.

“나 죽이자는 얘기들이야. 러시아 쪽에서 총기를 구해 날 공격할 계획인 모양인데.”

“잠깐만!”

오민철이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권혜림은 베이징에 있어. 곧 평양으로 갈거야. 국내의 모든 시선이 권혜림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얘기야. 이럴 때 일을 벌이면 웬만해서는 크게 주목 받지 않을 거야.”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러다 갑자기 오민철이 신음을 터뜨렸다.

뭔가 좋은 생각을 해냈는데 곰곰이 되새겨 보니 안 되겠다는 얼굴이다.

“어려울 것 같은데, 우리 흔적이 남을거야.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CCTV가 몇십 개인데.”

“안 찍혔어.”

“뭐라고?”

“톨게이트에 우리가 지나간 흔적도 남지 않아.”

“초...총수야.”

톨게이트는 하이패스로 통과했기 때문에 그건 그렇다 친다.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몰라 내가 우리 차를 항마연환장의 강한 내기로 전환하여 덮었지.”

항마연환장은 소림의 무공중 유일하게 열여덟 식의 장법이다.

항마연환십팔파(抗魔連環十八波)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열여덟 식의 장법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차를 감쌌다는 뜻이다.

그렇게 될 경우 CCTV에는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는 희미한 물체로만 찍힌다.

화면이 좋은 CCTV는 아지랑이가 찍혔을 것이고 나쁜 화면은 그냥 선명도가 떨어진 상태로 보인다.

딸칵!

권총수는 문을 열고 내렸다.

오민철이 혹시 주위에 CCTV가 있는지 재빨리 살피는데 권총수가 말했다.

“없어!”

하긴 유명한 사찰도 아니니 주차장을 제대로 갖추어 놓지는 않았다.

자갈돌이 깔린 제법 넓은 공터일 뿐이다.

“깡패 새끼들이라 연장을 갖고 있을텐데.”

오민철이 차 뒤에 실려 있는 골프채 하나를 꺼내 들고 나왔다.

담배를 물고 걸어가던 권총수가 손가락으로 불을 끄고 꽁초를 버리기 위해 한쪽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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