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17화 (617/651)

제617화: 상임위원(2)

또한 그가 데리고 온 사내들 모두 아끼는 직계부하들이다.

서툴지만 배신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일자리를 부탁했다.

권총수는 거절하지 않았다.

자신만 살길을 찾으려 했다면 거절했겠지만 동생들과 같이 가려는 의리에 감탄했다.

이제는 뒷골목 의리도 돈에서 나온다고 했다.

식구라는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이다.

권총수는 여권까지 만들어 네 명의 사내를 모두 사우디로 출국 시켰다.

그런데 의외의 일들이 발생했다.

그들은 조직 내에서 자신들과 절친하게 지내는 선후배들과 은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대한무궁화청년연합회 상임위원들의 동선을 귀띔받았고 곧바로 권총수에게 전달되었다.

칠성회 두목 가독성은 입술을 잘근 물었다.

소식이 없다.

유병구 가족이 멀쩡한 걸 보면 죽이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건 배신으로 봐야 했다.

전국을 들쑤시고 심지어 그들을 붙잡기 위해 과거 지었던 죄를 경찰에 투서하여 수배자로 둔갑시켰다.

경찰과 자신들 눈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중국이나 동남아로 도망쳤다는 증거나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도출은 자신의 직계이자 가장 신뢰했던 부하이다.

오늘날 자신이 칠성회의 우두머리가 되는데 가장 많은 역할을 했던 분신 같은 존재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수 많은 선후배들을 젖히는데 항상 앞장섰다.

근래에 너무 세력을 키워 은근히 견제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배신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주위 상임위원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과 다르다.

아무리 같은 상임위원이라고 해도 조직의 규모와 역사, 그리고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넷 중 누구도 칠성회를 따라올 수 없다.

자연스럽게 그러한 것들이 뒷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상임위원간에도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몇 명의 상임위원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깔아 뭉개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중 인천에서 가장 큰 세력인 연안부두파의 우세종이 은근 슬쩍 말을 놓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며 시소를 탄다.

말을 높이다 은근슬쩍 반말과 평대가 나오면 도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이쪽을 재보는, 이른바 테스트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과연 맞먹어도 될지, 아니면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할지 가늠하는 것이다.

이쪽에서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여지없이 파고들어 자리를 잡는다.

그때부터 사석에서 형님소리가 사라진다.

대신 가독성 위원님으로 호칭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조용히 가위원으로 낮아진다.

한 번 그렇게 불리면 끝이다.

“국내에는 없는 듯 합니다.”

아래 동생중 한 명이자 칠성건설 영업과장이란 명함을 갖고 있는 이배택이다.

그가 하는 일은 부산시와 각 구청에서 발주하는 공사 수주다.

연말이면 보도블록 까는 일부터 부산 지하에 거미줄처럼 얽힌 거대한 하수관 보수공사와 아스팔트 차선도색, 거리 표지판, 심지어 신호등 사업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하나의 회사에서 이 모든 사업을 하면 시민들은 물론이고 당장 시의회에서도 문제를 삼을 수 있기 때문에 무려 7개의 이름뿐인 건설회사를 차려 놓고 돌아가며 사업권을 따낸다.

“외국으로 나갔다. 공항을 통해?”

외국으로 나갔다면 백퍼센트 배신이다.

이런 중요한 일에 오른팔이 배신을 했다면 대한무궁화청년연합회에서 자신의 입지는 추락말고는 없다.

“출국자 명단 뽑아볼 수 있냐?”

“불가능하지는 않죠. 여기저기 쑤셔 보면 출입국에 관계된 일하는 놈 하나 못 만나겠습니까?”

“알아봐. 당장.”

대한무궁화청년연합회에서 자신의 입지가 걸린 일이다.

이배택이 재빠르게 사무실을 나갔다.

확인이 되는 데까지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배택의 먼 친척중 한 명이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근무하는데 그 끈으로 조회한 것이다.

“영장 없이 조회하는 건 불법이라면서 어찌나 버티는지 콱 죽여 버리려다 참았습니다.”

이름이 있었다.

나도출만 빠지고 나머지 네 명의 이름이 있다.

“이 새끼들이 사우디는 뭐하러 간거야?”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도 아니고 걸핏하면 연장들고 설치는 놈들이 사우디 행이라니.

가독성이 아는 사우디는 돈을 벌기 위해 떠나는 건설 노동자들의 나라다.

“이 새끼들이 건설 노동자로 갔단 말이냐?”

“건달은 막노동판에서 못 굴러먹습니다.”

“웃기는 새끼들이잖아. 더 알아봐. 그리고 나도출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네 명 모두 나도출 직계 아냐?”

“네!”

“그렇다면 나도출도 나가야 되는데.”

아무리 명단을 찾아봐도 나도출의 이름은 없다.

가독성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골이 지근거리는 듯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깊게 누르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일주일 전이다.

지이이잉!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불이 들어온 액정에 뜬 글씨는 회장님이란 세글자였다.

가독성의 핸드폰에 깍듯하게 회장님으로 저장되어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뿐이었다.

“예 회장님!”

가독성은 전화를 받았는데 상대는 대한무궁화청년연합회장 오천통이었다.

“가 사장 나 좀 봅시다.”

“그럴까요.”

“여기 해운대입니다.”

“부산 오셨습니까?”

“오늘 가득도 신공항 국정감사가 있거든요.”

시간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자신이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노는 터는 뒷골목이며 밤의 세계일 뿐이다.

그에 반해 상대는 낮의 세계를 호령하는 정치인이다.

밤의 권좌가 아무리 높다 해도 결코 낮의 권력을 당해낼 수 없다.

아무리 캄캄한 어둠도 작은 성냥불 하나면 환해져 버린다.

밤새 내린 폭설도 해가 떠오르면 순식간에 녹아 버리듯 결코 낮의 권력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건 숙명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난 뒤 의원들은 피감기관인 신공항개발사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술잔이 어느덧 서너 순번 돌고 좌석이 훈훈해질 때 유일한 무소속 의원인 오천통은 잠깐 만나볼 사람이 있다며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빠져 나왔다.

오천통은 의원들이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는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지하로 향했다.

그곳에는 룸살롱이 있었다.

룸살롱은 칠성회 가독성이 동생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천통이 들어가자 대기하고 있던 가독성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무슨 회장이야. 사석에서는 형님이지.”

“예 형님, 방은 준비됐습니다.”

가독성은 오천통을 데리고 복도를 걸어가 안쪽 VIP실로 들어갔다.

테이블에는 음료와 술잔 얼음 등이 세팅되어 있었다.

“아냐, 잠깐만 기다리지.”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를 들고 여자들을 부르려하자 오천통이 말렸다.

가독성은 수화기를 다시 내려 놓았고 오천통은 500밀리 짜리 생수병 마개를 열고 물을 마셨다.

“가 사장.”

바라보는 오천통의 눈이 빛난다.

“요즘 바쁜가?”

“제가 바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시킬 일 있으면 말씀 하십시오.”

“시킬일이라...그것이 시킬일인가.”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더니 빤히 바라본다.

“실은 말이야 어제 굵직한 일거리 하나가 들어왔어.”

벌컥벌컥!

오천통은 남은 생수를 완전히 비웠다.

“가 사장도 알걸? 권총수란 친구 말이야?”

“권총수?”

“블랙잭이라는 보안기업 총수 권총수 말이야.”

“예, 들어봤습니다.”

“정리 할 것이 생겼어.”

정리라는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정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병신을 만들어 놓는 일인지, 매장, 즉 죽이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겁을 주어 두 번 다시 귀찮게 하지 못하도록 조치해 놓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팔천만 달러.”

가독성은 해석이 덜 된 듯 가만 있었다.

“천억이라던데.”

“천억을?”

자신에게 천억짜리 공사건을 준다는 뜻인줄 알았다.

“권총수 제거에 천억을 건 사람이 나타났지.”

가독성이 숨을 길게 들이 마셨다.

천억 원짜리 청부.

가독성은 이미 누군지 짐작했다.

천억이라는 돈을 배팅할 개인은 없다.

‘백서’

마침내 권씨 집안 마지막 인물인 백서그룹 회장 권혜림도 권총수 암살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 분명했다.

하긴 가문을 궤멸시킨 권총수가 살아 있다는 것이 걸릴 것이다.

그것도 조용히 숨어 살 듯 하면 잠시 잊기라도 하겠지만 간간이 블랙잭의 주가 상승으로 인한 기사 속에 등장한다.

한 번씩 그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온몸이 찌르르 아파올 것이다.

결국 그를 없애지 않고서는 두 다리 뻗고 잠자기 틀렸다고 본 모양이었다.

‘천억’

미화로 치면 8천만 달러 정도 되는 거액이다.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무척 불편하게 여기는 친구지. 살인범이 분명한데 증거가 없어 잡아 넣지 못하고 있거든, 지금도 놈에 대한 수사는 일부 계속되고 있지. 그뿐인가 과거 고 권철태

전 대통령이나 권철악 천왕그룹 회장에게 도움을 받은 여의도 사람들 한둘이 아니란 말이야. 그들의 불만도 대단해. 우리가 보기에도 살인범인데 왜 잡아넣지 않느냐는 거지.”

오천통의 그런 말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었다.

권총수를 죽여도 처벌이 그다지 무겁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압력을 넣고, 누군가가 증거는 없지만 사람을 죽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는 투의 칼럼을 신문에 쓰기라도 한다면 법은 이쪽에 더욱 관대해질 것이다.

“만에 하나 권총수를 죽이고 체포가 된다면 당당하게 난 복수를 한 것 뿐이다라고 말하는 거지.”

“복수?”

“권철태 지지자들이 한둘인가? 권철악을 존경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네.”

가독성은 오천통을 바라보았다.

정치꾼의 진면목이다.

돌아가는 머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네가 수석 상임위원이니 회의를 소집해 계획을 선도해보게.”

오천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료 의원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야.”

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돌아섰다.

“천억은 오등분 하게.”

탁!

문이 닫히고 사라졌다.

성공하면 자신이 끼지 않을테니 다섯 명이서 나눠 가지라는 것이다.

그건 분발을 촉구하고 독려하는 것이었다.

가독성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권총수는 사무실에 앉아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권혜림의 인터뷰 장면을 보고 있었다.

권혜림은 오늘 인천공항을 출발해 북경에 도착한 뒤 북한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에 들어간다.

오랫동안 끊긴 남북 경협이 다시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때문에 내외신기자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그녀는 북한에서 누굴 만날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또한 정치는 철저히 거리를 두고 오로지 금강산개발을 위해서만 얘기하고 행동하겠다고 했다.

북한에서의 일정은 아직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면서 잘 다녀오겠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마무리 했다.

탁!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오민철이 리모컨을 눌러 껐다.

흘긋!

권총수의 눈치를 본다.

“남북경협에 숨통이 트일까?”

“분명한 건 우리 사업은 남북경협과 전혀 상관없다는 거야. 어려운 경제사정을 타개하기 위해 남한과 여러 분야에서 털어놓고 얘기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단 한 가지 권혜림을 통해

반드시 우리 정부에 어떤 메시지를 보낼거야.”

“메시지라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