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2화: 테러범(2)
눈이 커지다 못해 곧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사내는 손을 뻗어 일단 가까이 온 지폐를 받아 살폈다.
이리저리 한참을 살피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런데.”
“왜? 위폐라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 알겠습니다. 당장 수술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내는 어떻게 지폐가 그토록 느리게 날아올 수 있는지에 대해 물으려다 권총수가 다그치자 재빨리 헬레나를 부축해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정확히 치료하시오. 대충 뭉갰다간 가만 두지 않겠소?”
“헉!”
사내는 귀속을 파고드는 전음에 놀라 자빠지려고 했다.
사내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돌렸는데 권총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지금’
꿈을 꾸는 듯했다.
다시 체리에 집으로 돌아간 권총수는 엄마 헬레나가 병원에서 수술받게 됐다고 말해 주었다.
체리에는 무척 좋아했다.
권총수는 동생들에게 먹고 싶은 걸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배가 고프다고 했는데 권총수는 밖에 있는 스캇에게 과자를 사오도록 말하고 체리에를 정색하여 바라보았다.
“아저씨 누군데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세요?”
“세례명이 뭐니?”
“라우렌시오.”
들어봤다.
보육원 시절 성당 주임신부님 세례명이 라우렌시오였다.
물론 그 성인이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는 모른다.
“아저씨가 체리에에게 한 가지 물어볼게 있는데 대답해 줄래?”
“아는건요?”
“혹시.”
권총수는 핸드폰에 저장된 쿠아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아저씨 본 적있니?
한참을 바라보던 체리에게 자기 손으로 핸드폰을 쥐며 보았다.
“네!”
체리에 입에서 너무 간단하게 대답이 나왔다.
어떤 테러범도 어른들의 눈을 속이려 들지 아이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권총수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체리에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이 아저씨 호랄루 사원에 가면 있어요. 거기 운동장이 넓어 공을 차러 가는데 몇 번 봤어요.”
문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민철과 스캇의 눈이 빛난다.
“호랄루 사원은 여기서 1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데.”
오민철이 재빨리 약도를 펼쳤다.
“기독교 세가 강한 곳이지만 아주 오래된 사원이야.”
권총수는 체리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저씨도 바오로란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거든, 체리에도 그렇고 아저씨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가장 지켜야 할 것이 뭐지?”
“거짓말 하면 안되는 거죠. 걱정 마세요. 아저씨는 한 눈에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절대 오늘 얘기 입 밖으로 내지 않겠어요.”
“그야말로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깨우치는 천재로군.”
오민철이 듬직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갑을 꺼내 백 달러 지폐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이 아저씨는 아직까지 너처럼 씩씩하고 멋진 아홉 살은 처음 봤다. 받아라.”
“감사합니다.”
체리에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인생은 한 방이야.”
“형 아이 놓고 무슨 말을 하는거야.”
권총수가 인상을 쓰며 체리에와 몇 마디 더 나눌 때 스캇이 그야말로 포대자루라 할 만큼 많은 과자를 담아 내려 놓았다.
“우와아아!”
세 동생과 체리에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스윽!
권총수는 최소한의 경비만 제외하고 지갑의 모든 돈을 꺼내 체리에에게 내밀었다.
“체리에,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돈을 펑펑 쓰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당연히 이상한 거죠. 염려 마세요. 난 절대 함부로 쓰지 않아요. 동생들 학교도 가야하고 나도 공부해야 하거든요.”
권총수는 미소를 지었다.
아홉 살 체리에가 너무 듬직했다.
사원은 있었다.
사원 앞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는데 권총수가 상상한 만큼 넓은 운동장은 아니었다.
조금 넓은 공터 정도였는데 새카만 공을 놓고 십여 세 가까운 소년들이 우르르 몰려 다녔다.
타고 있던 랭글러는 보이지 않고 권총수 혼자 나타났다.
마흔 중반의 평범한 사내로 변장을 했고 수염까지 덥수룩 하다.
권총수는 한참 동안 공을 차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는데 가끔씩 사원 입구를 살핀다.
출입자 면면을 보려는 것이다.
공격을 하려면 사원 안에 쿠아치가 있다는 것부터 확인을 해야한다.
더욱이 지금 사원 안에서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족히 2백여 명은 넘어 보이는 호흡이고 목소리다.
코란의 일부를 암송하는 듯 모두가 일정한 목소리로 합창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느긋하게 운동장을 걸어 나갔다.
사람이 많다.
차분해야 한다.
서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단 위치를 알았으니 밤에 다시 와보죠.”
혹시 감시자들의 눈에 띌까봐 사원에서 한 참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놓았다.
부웅!
권총수를 태운 랭글러가 사라진다.
밤이 왔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는데 금세 조용해지는 걸 보면 교전이 벌어지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부우웅!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리더니 라이트를 끈 SUV 세 대가 다가왔다.
SUV는 사원 입구에서 멈췄는데 시동을 끄고 문이 열렸다.
세 대의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은 얼굴에 사안식 야시경을 쓴 군인들이었으며 HK-416으로 무장했다.
군인들은 신속하게 사원의 운동장을 가로질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불 꺼진 차량이 다가오는 걸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권총수였다.
밤이었기 때문에 혹시 라이트가 반군이나 IS대원들 주의를 끌 수 있다는 생각에 권총수가 직접 핸들을 잡았다.
즉 이쪽도 라이트를 끈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서부터 권총수는 자동차 엔진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있어야 할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야간에 자동차가 오는데 불빛이 없다는 건 무조건 야시경을 쓴 작전 차량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작전차량이다.
“어디 군인들일까?”
조수석 오민철이 물었다.
어두워 제대로 복장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프랑스 제1해병 공수연대(1er Regiment de Parachutistes d'Infan
terie de Marine)같은데.”
“프랑스 제1해병공수연대라고?”
과거 외인부대시절 같이 작전을 벌인 경험도 있다.
육군이자 해병 특수부대다.
주 임무는 영국의 SAS처럼 정찰과 타격, 4개의 중대가 주축이 되며 휘하에는 26개의 작전팀이 있고 전체 인원은 800여 명 수준이다.
프랑스판 네이비 씰이라고 해도 될 만한 작전과 정찰에 빼어난 부대다.
타앙!
콰아앙!
그때였다. 사원으로부터 총성과 폭음이 들려나왔고 한쪽에서 시뻘건 불기둥이 치솟았다.
조금전 군인들이 들어갔다.
습격한 쪽이 유리하다면 총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불기둥은 뭔가 폭발했다는 뜻이다.
“이런! 덫에 걸렸어.”
파아아!
권총수가 MP5기관 단총을 든 채로 차량의 열린 창문을 통해 사원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뒤늦게 스캇과 오민철도 차에서 내려 달려갔다.
부하들이 집단처럼 쓰러진다.
지휘관 스테판 대위의 얼굴이 우그러졌다.
자만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항상 해오던 것처럼 미리 사원의 통로와 출입문까지 파악했고 적의 무장 상태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두두두두!
AK와 HK-416총소리가 섞이며 사원은 발칵 뒤집혔다.
“후퇴하라, 팀 전원 후퇴.”
헤드셋을 통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욱!
총알이 어깨를 스쳤고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섰다.
두 명의 사내가 AK를 난사하고 있었다.
스테판 대위는 벽 쪽으로 붙으며 정면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드르륵!
두 사내가 쓰러지고 재빨리 복도를 빠져나왔다.
드르륵!
야시경으로 보이는 광경은 부하들이 쫓긴다는 것이다.
개미굴에서 개미떼가 나오듯 엄청난 숫자의 사내들이 AK를 들고 사원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후퇴하는 제1해병공수연대 88대대소속 이글팀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하기 시작했다.
스테판 대위는 이마를 찡그렸는데 이글팀의 인원이 들어설 때와 다르다.
다섯이 보이지 않는다.
절대 위기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AK와 HK-416과는 구별되는 다른 총성이 울렸다.
두두두두!
소리가 빠르다.
그건 다량의 사격을 쏟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관단총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퍽!
퍼퍼퍽!
이글팀을 추적하는 IS사내들이 힘없이 나뒹굴었다.
두두두두!
스테판 대위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서 두 개의 총구가 불을 뿜고 있었고 후퇴하는 이글팀의 측면을 공격하던 IS사내들이 무차별 쓰러진다.
‘도대체 누가?’
자동사격이다.
야시경을 썼다고 해도 야간에 자동사격으로 저토록 정확히 적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오른쪽 세시 방향에서 사격하는 사람의 적중률은 당연 놀라웠다.
퍽!
퍼억!
여지없다.
사격은 군인이 지녀야 할 능력의 전부이다.
고정물체는 누구라도 연습 좀 하면 쓰러뜨릴 수 있으나 움직이는 물체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격훈련이 전술훈련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다.
탕!
타타탕!
총소리가 뜸해졌다.
IS쪽에서도 더 이상 추격을 하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한 듯 사원 마당 앞에 설치된 여러 엄폐물로 몸을 숨긴다.
어둠 속으로 한 가닥 전음이 울린다.
‘형 내가 이쪽에서 유인할 테니까 스캇요원과 같이 치고 들어와. 대여섯 명 남았어.’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권총수는 빠르게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반응이 나타난다.
그 순간 왼쪽에서 스캇과 오민철이 빠르게 접근하면서 엄폐물 뒤에 숨어 있는 IS를 조준사격으로 쓰러뜨렸다.
뚜욱!
속았다는 걸 눈치 챈 듯 적들은 사격을 멈췄다.
사원 오른쪽 출입구 대리석 기둥 뒤에 숨은 사내는 거친 숨을 가라앉혔다.
이글팀을 완벽한 함정에 빠뜨렸다.
그물 속에 들어온 고기였고 일거에 몰살시키려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30여 명이 넘는 자신의 수하들을 거의 전멸 시킨다.
총소리가 다른 것을 보면 절대 프랑스 제1해병공수연대 88대대소속 이글팀이 아니다.
그들은 HK-416을 쓰는데 이들은 굉장히 빠르다.
즉 다량의 사격을 집중적으로 쏟아내는, 주로 요인 경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기관단총이다.
타앙!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누가 죽었고 누가 쐈는지는 모른다.
단지 양쪽이 갖고 있는 AK도 아니고 HK-416도 아니다.
그건 대리석 기둥 뒤에 숨어 있는 사내를 더욱 절망적으로 몰아 넣고 있었다.
“쿠아치.”
그때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사내는 번개처럼 늘어뜨린 총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전혀 다른 총구 하나가 이미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오는 것도 못 봤고 발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지척에까지 다가왔을까.
권총수는 쿠아치라는 사내를 겨눈 채 왼손을 뻗어 손에 들린 AK를 빼앗았다.
탁!
쿠아치 총에서 탄창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총을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총도 내리면서 쿠아치를 향해 씨익 웃는다.
권총수는 총구가 지면을 향하도록 거꾸로 메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딸칵!
라이터 불을 붙이는 순간 쿠아치는 흠칫했다.
잠깐 드러난 얼굴이지만 낯이 익었다.
하지만 언뜻 누군지 떠오르지는 않는다.
“사람을 죽이려고 해 놓고 그 사람을 몰라보면 서운할 일이죠.”
쿠아치의 미간이 좁혀진다.
자신이 어디 한둘을 표적으로 정해 놓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