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1화: 테러범(1)
특히 눈빛이 거울처럼 맑아 반군들 횡포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 같지 않을 정도였다.
“어디 있을까?”
권총수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사이드 쿠아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도 반군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그가 어디서 나타났다든가 아니면 측근이 목격됐다는 얘기들은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캇이 말했는데 그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적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였다.
자신들이 직접 테러를 당했고 쿠아치는 자국민의 목숨을 빼앗은 주범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쿠쿠쿵!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트럭 한 대가 뚝방 길을 지나가는데 무장한 군인과 민간인 20여 명을 태우고 있었다.
한눈에 반군들임을 알 수 있었는데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든다는 건 친밀감의 표시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어낸 권총수는 생존하기 위한 이들 나름대로의 처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얼굴은 누구든 웃을 수 있다.
그러나 눈빛은 그 사람의 감정 그대로가 드러나기 때문에 숨기지 못한다.
손을 흔드는 사람들 모두 얼굴은 웃어도 눈은 긴장해 있었다.
스윽!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남자와 여자 다섯이 자리를 뜨면서 의자에는 세 명의 사내만 앉아 있었다.
권총수는 세 사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엑스지 모아(Excusez-moi)실례합니다.”
유창한 불어다.
사내들이 바라본다.
권총수는 미소를 지으며 갖고 있던 담배를 꺼내 권했다.
사내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한 개비씩 빼어든다.
딸칵!
권총수는 일일이 라이터 불을 붙여 주고 자신도 한 개비 피웠다.
“조금 전 트럭에 탄 사람들은 누굽니까? 커피 한 잔씩 더하죠. 내가 계산하겠습니다.”
권총수는 그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가게로 들어가 커피 석 잔을 주문하고 돌아왔다.
권총수의 눈은 이미 세 사내의 검지 손가락에 끼인 반지를 보며 자신감을 갖는다.
검지 손가락에 낀 반지는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이름하여 묵주반지.
반지에는 모두 열 개의 매듭이 있다.
카톨릭에서는 그 열 개의 매듭을 돌리며 성모께 기도를 바친다.
즉 세 사람은 카톨릭 신자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멈칫!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권총수의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권총수의 오른손 검지에 흑인 사내들과 똑같은 묵주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권총수와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왔지만 처음 보는 반지였다.
권총수가 기도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보육원 출신일 뿐 단 한 번도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거나 아니면 하느님 운운하며 기도를 한다던가 하는 행동은 맹세컨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묵주반지를 오른손으로 한 매듭씩 돌리며 흑의 사내들과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모습이다.
‘저 인간’
자신은 콩고민주공화국이 가톨릭과 개신교의 세가 크다는 정보를 들었지만 아무것도 그에 대한 준비는 없었다.
그런데 권총수는 묵주 반지를 준비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미사를 참례하는 신자와 같은 평안한 표정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한다.
꾸울꺽!
침 삼키는 소리가 너무 커 고개를 돌렸는데 스캇도 권총수를 보며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캡틴께서는 무척 신앙심이 깊은 모양입니다.”
꿈틀!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렸다.
“그...글쎄요.”
어쨌든 회사 대표다.
그런 사람을 사석에서처럼 깔 수는 없다.
더욱이 상대는 권총수를 우러러보는 CIA요원이다.
권총수의 눈빛과 표정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섭혼술(攝魂術)이다.
경지가 낮으면 상대의 혼을 단순히 끌어 당겨 얼을 빼놓는 정도이다.
하지만 권총수는 자유자재로 시전을 할 수 있었다.
완전히 끌어내어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고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끄집어 내어 원하는 대답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일대일이 아닌 다수의 사람을 상대로도 펼치는 지고무상한 경지에 올라 있다.
자신들이 다니는 성당의 신부나 수녀보다 더 따뜻하고 촉촉한 목소리로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혹시 쿠아치라는 사람을 알고 있나요?”
“우린 그가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쿠아치를 봤단 말입니까?”
“반군과 IS는 서로 깊고 가까운 협력관계입니다.”
“그건 협력은 하지만 IS본부가 반군 지휘부와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권총수는 차분하게 세 사내와 이야기를 나눴고 오민철과 스캇은 지켜보기만 했다.
세 사람이 차로 돌아왔다.
권총수가 세 사내와 얘길 나누면서 그린 약도를 펼쳐 놓고 있었다.
하지만 부카부 지리를 전혀 모른 상태에서 약도만을 갖고 골목골목 누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약도대로 한번 따라 가보죠.”
스캇이 시동을 걸었다.
중앙도로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비포장이다.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고 여기저기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여자들이 강에서 세탁을 해오는 듯 빨래가 담긴 커다란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을 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부지런히 주위를 살폈다.
“스캇! 천천히!”
조수석에 앉은 권총수의 지시에 스캇이 움찔하며 거의 차를 멈추다 시피 할 만큼 속도를 떨어뜨렸다.
“왜?”
뒷좌석 오민철이 묻는다.
“저기!”
오른쪽 회색 벽돌 담장 아래를 걸어가는 건장한 사내를 가리킨다.
백인이다.
일반인 복장이며 외형적으로는 어떤 무장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 굉장히 긴장하고 있는데.”
홱!
스캇은 사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조수석의 권총수를 돌아본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뜻이었다.
피식!
권총수는 별것도 아닌데 뭘 보냐는 듯 웃더니 중얼 거렸다.
“빨라진 호흡, 정상을 벗어난 빠른 심장박동.”
권총수의 감각은 사내의 신체가 보여주는 모든 걸 정확히 체크하고 있었다.
물론 정보요원 스캇도 백인 사내가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판단은 내렸다.
사내는 오른쪽으로 꺾어지더니 눈 앞에서 사라졌다.
“우릴 의식한 걸까?”
“의식했어.”
차는 다시 이동을 했고 권총수가 말했다.
“왼쪽으로 꺾으세요.”
스캇이 왼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뭔가를 줍고 있었다.
재활용이 가능한 것이 있는지 뒤져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난한 지역의 쓰레기 더미에 쓸만한 물건이 있을리는 없었다.
아이들 모두 열심히 쓰레기를 헤집고는 있지만 허리를 굽혀 뭔가를 주워들지는 못했다.
“여기서 멈추죠!”
차가 섰고 권총수만 내렸다.
차 안의 오민철은 만약을 대비해 의자 밑에 숨겨 놓은 MP5 기관단총을 거머쥐고 유리를 내렸다.
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쓰레기 더미로 걸어갔다.
권총수는 아이들 속으로 묻혀 들어가 같이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허리를 숙여 쓰레기더미에서 뭔가를 주워 들었다.
“어 이게 뭐지?”
쓰레기를 뒤지던 아이들 모두가 권총수를 돌아본다.
권총수의 손에는 지저분한 종이 조각 하나가 쥐어져 있었는데 가장 가까운 아이가 눈을 빛냈다.
“일 달러.”
권총수가 일 달러를 주운 것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욕심을 냈고 권총수를 살핀다.
말은 하지 않지만 모두가 나 주세요 하는 것 같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평화유지군이 주둔했고 아주 드물게 1달러씩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다.
아이들은 비록 어리지만 달러가 자국 화폐보다 훨씬 힘이 있고 어딜 가도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었다.
모두 여섯 명.
권총수의 머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여섯 아이 모두에게 1달러씩 선물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말이 퍼져 나갈 위험이 크다.
누군가 미화 1달러를 주고 쿠아치라는 사람의 행방을 물어 보더라
만약 어느 아이의 부모가 IS와 협조 관계에 있다면 게임 아웃이다.
슥!
자신이 숨긴 돈이다.
권총수는 주머니에 넣고 다시 쓰레기를 뒤졌다.
아이들은 일 달러가 나타났다는 것에 고무된 듯 더욱 열심히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한 아이가 포기한 듯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대략 아홉 살에서 열 살 정도로 보였다.
권총수는 슬며시 아이를 따라갔다.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고 표정에서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특히 아이의 눈은 절박했다.
다른 아이들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먹을 것을 찾는다면 아이는 혼자만이 아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때 보여줄 수 있는 어른들의 근심이 있었다.
한참을 따라가고 소년은 거의 무너져 가는 집으로 쏙 들어갔다.
문 앞까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슬며시 들어선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고만고만한 세 명의 아이들이 더 있었고 한쪽으로 엄마로 보이는 비쩍 마른 여자가 누워 있었는데 어디가 아픈 모양이었다.
“체리에.”
여자가 지금 막 들어선 아이를 부른다.
“엄마, 조금만 참아 꼭 돈 마련해서 약 사올테니까.”
“형 배고파.”
동생들이다.
셋 모두 눈이 퀭 하니 들어갔고 상의를 탈의하고 있었는데 갈비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건 아이들이 무척 굶주린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체리에!”
쓰레기를 뒤지던 아이가 깜짝 놀라 돌아섰다.
권총수가 서 있자 눈을 크게 떴다.
“아저씨.”
“여기 병원이 어디 있는 거니?”
“왜요? 두 곳 있어요.”
그때 권총수는 오민철에게 전음을 보냈다.
‘형 차 이곳으로 끌고 와.’
그리고 곧장 체리에 어머니 혈도 몇 곳을 누르자 눈에 생기가 돌았다.
“병원에 나와 가시죠.”
체리에 어머니 헬레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숨쉬기조차 힘들던 자신의 몸에 힘이 생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앉은 것이다.
“누구세요?”
“일단 병원부터 가시죠. 체리에 동생들과 집에 있거라. 엄마 병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올테니.”
“네!”
권총수는 헬레나를 데리고 골목으로 걸어나갔다.
다 죽어가는 흑인 여자를 데리고 나오는 걸 보며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스캇 당장 병원으로 가세요.”
스캇은 고개를 끄덕이며 뒷좌석에 탄 두 사람을 흘긋 본 뒤 차를 운전했다.
권총수의 의도를 대략 읽었다는 뜻이다.
20여분 달려 차는 병원에 도착했고 권총수는 헬레나를 데리고 들어섰다.
크지는 않는 2층 병원인데 썰렁하다.
그건 돈이 없기 때문에 환자들이 아파도 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어떻게 왔냐면서 헬레나를 훑어보더니 대번에 인상을 썼다.
“헬레나 아냐. 돈 가져왔어?”
몇 번 온 모양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 쫓겨 난 듯 했다.
“헬레나 아픈 곳이 어디입니까?”
“갈비뼈 두 개가 부러졌죠.”
사내가 대답했다.
갈비뼈가 부러진 걸 알고서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내쫓은 모양이었다.
속에서 욱하고 치밀었지만 눌러야 했다.
병원 입장에서 보면 불쌍하다고 받아주고 가엾다고 치료해 주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당신 뭐요?”
“업무 보는 직원이죠.”
권총수는 지갑에서 200달러를 꺼냈다.
“당장 헬레나를 입원시키고 치료하시오. 지금 당장.”
200달러를 보는 사내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곧장 가늘어 지는 것이 위폐일지 모른다는 의심이다.
스윽!
권총수는 살펴보라는 듯 백 달러 두 장을 던졌다.
지폐는 천천히 공중을 날아갔는데 사내는 비명을 질렀다.
“흐거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