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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10화 (610/651)

제610화: 검은 대륙(3)

그러더니 조금씩 얼굴에서 미소가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걸리는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인 감정을 짓누를 줄 아는 법을 배웠다는 말씀을 회장님께 전해주시오?”

자신에게 보낸 축전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무슨 감정을 국가를 위해 짓눌렀단 말인가.

또한 감정을 누른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보낸 사람이 누구죠?”

“사우디 현장 소장 유병구입니다.”

“전화 걸어봐요. 지금 바로.”

구장철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단축 번호 하나를 눌렀다.

현장소장 유병구의 핸드폰 번호였다.

한참 있다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조금전 통화를 했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할 만큼 깊은 잠에 빠질 시간은 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걸어본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신호만 갈 뿐이다.

“놔두세요. 그동안 긴장으로 피가 말랐을 텐데 골아 떨어졌을 거에요.”

아무리 골아 떨어졌어도 사장이 전화를 하면 받는다.

구장철은 갑작스러운 불통에 이마를 찡그렸다.

가슴 한 곳이 갑자기 차가워진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 속에 차가운 얼음덩어리를 던져 넣었을 때와 같은 그런 느낌이다.

‘이건 무슨 징조지’

불안해진다.

어둡다.

밤하늘은 별빛으로 찬란하지만 땅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깊이 묻혀 있었다.

그 어둠을 뚫고 일단의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깊은 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군인들은 스무 명이 채 안됐는데 지면에 발이 닿자 재빨리 일어나 흔적을 지운다.

낙하산을 근처 모래 땅에 파묻고 신속하게 커다란 바위 뒤로 모여들었다.

얼굴에는 사안식 야시경을 썼는데 군인들 숫자는 정확히 열여섯 명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측면을 눌렀다.

용두처럼 붙은 세 개의 돌출부위중 12시 방향에서 가까운 것이다.

‘2시 33분’

이라는 시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번에는 두 번째 것을 누르자 21km/NE라는 글씨가 역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동북방향으로 21킬로라는 뜻이다.

“이동!”

사내들은 빨랐다.

바위를 나와 걷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르완다와의 국경에 접한 부카부까지 10킬로 남았다는 녹슨 이정표가 나타났다.

원래 계획은 1박2일이었지만 중간에 폭우를 만나는 바람에 하루 더 지체 되었다.

덜컹덜컹!

도로 상황은 최악이었다.

가끔씩 포장된 구간이 있긴 했으나 거의가 비포장이었고 오랜 내전으로 파괴된 부분이 완전히 복구가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저것 주유소 아냐?”

오민철이 오른쪽 창밖을 가리켰다.

주유소였다.

앞으로 차량 한 대가 주차되어 있으며 주유소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 세 명의 사내들이 앉아 있었다.

스캇은 주유소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주유기 앞에 차를 세우자 곱슬머리의 흑의 사내가 다가와 얼마어치 넣을 거냐고 묻자 스캇은 가득 채우라고 대답했다.

그 사이 오민철은 차에서 내려 화장실를 향해 걸어갔고 권총수는 사내들이 앉아 있는 그늘로 향했다.

주유소에서 제법 거리가 있어서인지 두 명의 사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권총수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내들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권총수는 벤치에 앉지 않고 나무가 만드는 그늘 끝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화장실을 다니러 간 오민철이 걸어오면서 담배를 물었는데 뭐라고 투덜거렸다.

가까이 다가온 오민철은 화장실이 더러워 구역질을 할 뻔 했다면서 자식들 청소라도 좀 하지 하면서 벤치에 앉아 있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쳐다 봐.”

오민철은 우리말로 투덜거렸다.

“뭐하는 사람들일까?”

권총수가 넌지시 묻는다.

오민철은 멀리 서 있는 한 대의 차량을 보며 말했다.

“기름 넣고 잠시 쉬는 사람들이겠지.”

대답을 해 놓고 난 오민철이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권총수의 질문에서 묘한 뉘앙스가 풍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세 사내가 허리를 구부리더니 벤치 밑으로 손을 넣었다.

하지만 셋 중 누구도 허리를 펴지 못했다.

“어엇!”

사내들 입에서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움직이기 위해 온 힘을 다 쏟는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형, 의자 밑에 총 있을거야.”

오민철이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보자 있다.

세 명의 사내가 앉아 있는 의자 아래에 AK가 있었다.

“이런.”

오민철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후 차를 세워놓고 걸어온 스캇도 AK를 발견하고 놀라는 표정을 했다.

권총수는 불어로 무엇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은 탓에 불어를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대답은 스캇이 했다.

“M23반군 연락병들일 것입니다.”

무슨 연락병이냐는 듯 권총수가 바라보자 스캇이 말했다.

“부카부로 들어오는 차량이나 사람들을 감시하고 수상쩍다 싶으면 반군 지휘부로 연락을 하는 그런 임무죠.”

권총수가 한 사내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내 동료의 말이 맞는가?”

사내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허리를 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팟!

권총수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그러자 사내는 허리를 반드시 펼 수 있었는데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신의 허리 마비가 우연이 아니라 권총수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느낀 것이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평생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 주겠소. 당신들은 누구며 여기서 무엇 하는 거요?”

사내는 여전히 허리를 펴지 못하고 끙끙대는 두 명의 동료를 돌아보더니 침을 삼켰다.

“저 사람의 말이 맞소. 우린 M23소속 군인들입니다.”

민간인인 것처럼 하고 앉아 수상한 사람이나 차량들이 부카부로 들어오는 것을 살피는 정찰대라고 했다.

“우리가 수상쩍어 보였단 말이오?”

흑인 사내는 잠시 주저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 차.”

스캇이 세워놓은 검정색 랭글러를 가리켰다.

“차를 빼앗으려고?”

지켜보던 오민철이 물었다.

“랭글러 정도면 이들에게는 성능 좋은 전투차량이죠.”

스캇이 권총을 꺼냈다.

권총수가 왜 권총을 꺼내느냐는 듯 바라보자 스캇은 안전장치를 풀며 대답했다.

“어차피 우리와 이런 식으로 부딪쳤으니 보고가 들어갈 것입니다. 골치 아파지죠.”

죽여 없애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저기 주유소 직원은?”

권총수는 주유소 사무실 쪽을 주시했다.

“저들도 한 패거리일테니 없애야죠.”

주유원 말고도 사무실에 사람 한 명이 더 있다.

그리고 여기 셋, 살기 위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왔지만 다섯 명을 그냥 죽인다는 것에 묘한 거부감이 생긴다.

비록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쪽에서는 반군일지 모르지만 권총수의 눈에 보이는 사내들 눈은 맑고 깨끗할 뿐이다.

어딜가나 죽고 죽어나는 사람은 말단이다.

IS대원들이라고 모두가 살인자들이지는 않다.

그들이 무서워 굴복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결코 전쟁도 테러도 원치 않는다는 사내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도 그런 사람들중 한 부류인지 모른다.

“스캇! 꼭 죽여야겠소?”

“당연하죠. 화근인데.”

스캇은 CIA요원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먼저 도발을 했으므로 비무장 민간인을 죽이는 살상 행위도 아니다.

“내가 알아서 하겠소.”

그러면서 스캇에게 수혈을 짚어 재운 뒤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리겠다고 했다.

스캇이 놀란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는 시선인데 권총수는 이미 사무실로 날아가고 있었다.

“나에겐 쉬운 일이죠.”

전음이 들린다.

슈우우!

사무실에는 예상대로 조금전 주유를 했던 사내와 쉰 가량의 살집 좋은 남자가 있었다.

권총수는 다짜고짜 두 사람을 수혈을 제압한 뒤 자신들을 만난 것에 대한 뇌의 기억을 지워 버렸다.

파파팟!

머리 세 곳의 혈도를 지풍으로 스치듯 때린다.

잠시 후 깨어나도 이들은 권총수 일행을 본 부분만 완전하게 잊을 것이다.

바깥으로 나온 권총수는 의자에 앉은 세 사내도 같은 방법으로 기억을 지우고 재웠다.

가장 놀란 사람은 스캇이다.

셋 모두 눈을 뜬 채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숨도 쉰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충격을 받은 스캇은 입만 벌리고 있었다.

부카부로 들어섰다.

우리나라 시골 읍내 정도의 규모였고 도로를 다니는 차량들도 한산했다.

“평화로워 보이는데?”

오민철이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긴, 무서운 폭력일수록 평화라는 가면 뒤에 웅크리고 있다고 했지.”

외인부대 시절 정훈장교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전쟁속 평화보다 더 무서운 건 없다.

이미 오민철은 그걸 겪었다.

차라리 총소리가 나고 비행기가 폭격을 할 때가 더 편할 때도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총소리를 기다리는 건 차라리 고문이었다.

어쩌면 저기 길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도 그런 심정일 것이다.

멈칫!

일행의 눈이 빛난다.

군인들이다.

반군을 이끄는 은타간다 장군의 부하들로 보인다.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AK를 들고서 어디론가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전봇대가 세워진 길가에 스캇은 차를 세웠다.

스캇은 뭔가를 찾으려는 듯 자세를 낮추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저것 아닙니까?”

조수석에 앉은 권총수가 한쪽을 가리켰다.

오른쪽으로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이 있는데 중간쯤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다.

그리고 무장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주택가에 군부대라니.”

오민철이 놀란다.

“잔인한 놈들이군.”

오민철은 주택가 한가운데 군부대를 세운 이유를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이 지역 사람들을 인질로 삼겠다는 것이다.

주택가에 부대를 세움으로 공중폭격이나 곡사화기를 이용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것이다.

아무리 첨단무기라고 해도 일 밀리 오차 없이 목표지점을 타격하지는 못한다.

특히 곡사화기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곡사화기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포격 각도를 잘 잡아도 포탄은 중구난방으로 떨어진다.

그러기에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무섭고, 공격을 하는 곳에서는 목표점이 벗어나므로 아쉬운 것이다.

“자기나라 국민을 볼모로 전쟁을 하는 놈들이 무슨 민주주의를 외치는 거야.”

스캇은 한쪽에 차를 세워놓고 내렸다.

권총수와 오민철의 품속에는 MP5기관 단총이 숨겨져 있다.

권총까지 숨겨져 언제든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응사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기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데.”

오민철이 작은 개천이 흐르는 뚝방을 가리켰다.

그늘아래 칠팔 명의 남녀가 커피를 마시는 노천 카페였다.

중동과 달리 이 지역은 카톨릭과 개신교 신자가 많아 여자들이 부르카를 뒤집어 쓴다거나 하는 중동적인 모습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정보를 수집하는데 가장 좋은 곳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모르면 기본에서 출발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더욱이 낯선 곳이라면 하나부터 배운대로 충실한 작전을 펼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세 사람은 노천 카페로 걸어갔다.

잠시 이쪽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각자의 얘기에 빠진다.

스캇이 가게로 들어가 커피 값을 계산하고 잠시 후 김이 나는 커피를 가지고 탁자로 다가왔다.

나무 그늘이 있어 그다지 덥지는 않았고 개천에는 제법 많은 양의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콩고강 지천이죠.”

스캇이 강물을 바라보는 권총수를 향해 말했다.

물은 깨끗했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얼굴은 환했다.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모두가 깨끗한 눈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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