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9화: 검은대륙(2)
죽을 뻔했다.
지금까지 당해본 위험중 공항 사건이 제일 아슬아슬했다.
자신의 테러에 관련있는 사람은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더구나 한국도 아니다.
죽여 넓은 사막에 버리면 짐승들 먹이로 사라진다.
그냥 놔둬도 강한 햇볕에 금방 부패하여 일주일이면 흔적도 남지 않는 것이다.
지이잉!
권총수는 핸드폰을 들었다.
맥보란이다.
“예 서기관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돌아보는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가 말했다.
“콩고 입국비자가 나왔다는군.”
“정말?”
콩고에 직접 들어갈 것이다.
물론 사이드 쿠아치를 죽이려는 것이다.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여권을 발급 받았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한국인 입국 사실을 숨기려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맥보란이 어렵지 않게 해결해 주었다.
오민철 역시도 미국인 여권으로 들어간다.
둘을 태운 차가 서서히 복잡한 시장 입구를 떠났다.
유병구에겐 어느 때보다 긴 밤이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어느 한쪽은 버려야 한다.
양쪽 모두를 손에 쥘 수는 없는 것이다.
가족이냐 회사냐.
물론 가족이 소중하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 고민스런 부분이 있다.
가족!
혈연이나 혼인 등으로 맺어진 집단이다.
혈연은 인간관계의 최고 꼭짓점에 있지만 가족이라고 하여 항상 가까운 거리만 유지하며 살지는 않는다.
가족에서도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밀고 당기며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는 가족을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안개 속 집단이라고 했다.
자신의 가족이라면 절대 그럴 일은 없겠으나 회사를 잃고 제대로 생활비를 벌어오지 못하는 남편이나 아빠를 과연 얼마나 존중하고 챙기느냐였다.
어쩌면 이문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 많은 가장들이 어떤 고비에 섰을 때 가장 많이 생각하는 부분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 가정들의 행복지수는 돈에 매여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슬픈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은 절대 가치이자 악(惡)이기도 한 이중성을 가진 괴물이다.
그 괴물은 가만히 앉아 얻을 수 없다.
누군가 경쟁하고 싸워 이길 때만 얻을 수 있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야 내 주머니에 담을 수 있다.
대못은 박지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박을 수도 있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그래서인지 이사급 현장소장이라는 직책까지 올라왔다.
“흠!”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어떤 선택을 해도 한바탕 파도는 넘어야 한다.
유병구가 휴대폰을 손에 쥐었을 때는 밤이 지나고 멀리서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유병구요.”
유병구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지금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소?”
유병구는 상대의 말을 가만 듣고 있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유병구는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소. 그렇게 하지요.”
전화를 끊은 유병구는 침대에 누웠다.
고민이 길었기에 선택을 해버리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빠져 들었다.
콩고 민주 공화국 수도 킨샤사 국제공항에 사우디아 소속 여객기가 내려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오민철은 재빨리 공항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용하잖아.”
에볼라 바이러스니 2차 대전 이후 단일전쟁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는 콩고내전을 떠올렸는데 총소리 한 방 들려오지 않는 것에 눈을 빛낸다.
“동부지역이 시끄럽지 나머지는 정상적으로 잘 굴러간다고 했잖아.”
권총수가 타박하듯 말하면서 두 사람은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미국인 여권에 사진과 얼굴을 한 번 비교 관찰하듯 훑던 직원이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한바탕 살벌한 쇼를 펼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의외로 그냥 통과시키자 다소 어이가 없다.
어쨌든 염려했던 일들이 나타나거나 발생하지 않아 기분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캡틴?”
백인 사내 한 명이 다가왔다.
리야드를 출발하기전 맥보란으로부터 대사관 직원중 한 명이 길 안내를 할 것이라고 했다.
“스캇?”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스캇이라는 사내와 악수를 나누며 미소를 지었다.
“콩고는 처음이시죠?”
“뉴스를 통해서만 들었죠.”
오민철이 재빨리 대답을 하며 질문했다.
“눈 똑바로 뜨지 않으면 죽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 아직도 내전중이다.
물론 그 내전이 동부지역에서만 일어나고 있고, 예전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조용할 뿐이다.
“르완다가 있는 동부지역은 여전히 시끄럽지만 예전에 비해 확실히 정치가 안정되어 있습니다.”
스캇은 콩고의 정치 상황에 대해 설명했는데 크게 위험할 일은 없다면서 오히려 바깥에서 자꾸 2,30년 전 얘기를 꺼낸다고 했다.
주차장에 검정색 랭글러가 있다.
운전석에는 스캇이 앉고 두 사람은 뒤에 앉았다.
“트렁크를 보시죠.”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1미터 가까이 되는 길쭉한 가방이 있었는데 그걸 열어 보란다.
오민철이 묵직한 가장을 들어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지퍼를 열다 멈칫했다.
가방 안에 MP5 기관단총이 들어 있었다.
“동부 부카부까지 가는데 적지 않은 위험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 했습니다.”
적도에 묻혀서 지구본으로 보면 콩고의 땅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콩고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국토를 갖고 있다.
북쪽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수단을, 동쪽으로 동(東)아프리카 대지구대(大地溝帶)의 호수를 사이에 두고 우간다, 르완다, 브룬디, 탄자니아, 남쪽으로 고원지대를 사이에 두고
잠비아·앙골라, 서쪽으로 콩고(Republic of the Congo)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참고로 옆에 붙어 있는 콩고 공화국과 콩고 민주공화국은 엄연히 다르다.
핸들을 잡은 스캇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도로와 방향을 말해주었다.
오민철은 재빨리 차에 있는 콩고의 지도를 살피며 손가락으로 스캇의 설명을 따라 선을 긋는다.
“상당히 오래 걸리겠군요?”
“도로 사정도 그렇고, 빨라도 1박 2일은 걸릴 것입니다.”
권총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세 사람이 탄 차는 수도 킨샤사를 거치지 않고 외곽을 돌아 동부지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백서건설은 태산건설과 컨소시엄을 이뤄 80억달러 한화 약 10조 가까운 사우디 유전개발공사에 응찰했다.
사우디정부의 발표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탓에 현지는 물론이고 서울 본사 역시 긴장에 휩싸여 있었다.
백서건설과 태산건설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설회사이고 특히 중동지역에서 오랫동안 각종 공사를 수주하고 완공시켜 지명도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어 외신은 이번 입찰도 큰 이변이 없는 한
한국 회사가 가져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권혜림은 실내를 서성거렸고 소파에는 백서건설 사장 구장철이 양손을 꼭 쥐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장 권혜림을 좀 더 든든히 안심시키기 위해 가벼운 농담과 얘기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권혜림은 좀체 여유를 찾지 못했다.
이번 공사를 따내면 백서건설의 이름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이며 명품 건설사로 다시 한 번 우뚝 설 것이다.
한 가지 걱정이라면 사우디 정국이 어수선하다는 것이다.
쿠데타 주역들 모두가 사살되거나 체포 되었지만 참여한 말단 병력들까지 정리된 건 아니다.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군대라고 해도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건 현 대통령 파흐드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말단 병사까지 체포하여 죄를 물어야 할지 아니면 명령체계의 군대 특성을 감안 해 눈을 감아야 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 보도보다 사태는 의외로 심각했다고 한다.
백서건설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파흐드 국왕이 밀릴 가능성까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반란군들의 주역들이 속속 체포되고 사살되면서 불과 보름 만에 모든 것이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특별히 미국이나 서방쪽에서 지원한 움직임이 없는데 흔들리던 파흐드 체제가 안정된 것에 권혜림은 약간의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뭔가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한 제3의 세력이 파흐드 대통령을 측면 지원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큰 공사는 국가권력에 따라 춤을 추기 때문에 움직임에 대한 간파가 빨라야 한다.
구장철 사장의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몸을 떨었다.
재빨리 꺼내 액정을 살피는데 국제 전화다.
재빨리 시간을 봤는데 입찰 결과가 발표될 시간이다.
“뭔가요?”
진동인데도 소리를 들은 듯 권혜림이 돌아서서 묻는다.
“유소장!”
유병구였다.
“됐습니다.”
“뭐?”
“우리와 태산의 품으로 이번 공사가 넘어왔습니다.”
순간 재빨리 스피커 폰으로 돌려 버렸다.
모두 들으라는 뜻이다.
“다시 한 번 말해보게. 뭐라고 했나?”
“이번 유전개발공사를 우리 백서와 태산이 따냈습니다. 성공입니다.”
와아아!
만세!
앉아 있던 임원들이 손뼉을 치고 팔을 치켜들어 소리친다.
“그런데 이상한 메시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메시지?”
“이번 공사 입찰을 주관하는 사우디 경제기획부 장관 오타이프 명의로 온 것입니다.”
“내용이 뭐야?”
“조금 전 사무실 팩스로 보냈습니다.”
“수고했어요. 유소장.”
전화를 끊고 난 구장철은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사우디에서 도착한 팩스를 가지고 오도록 했다.
사무실은 크게 흥분해 있었다.
권혜림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연신 냉수를 들이켰다.
그동안 꽤 긴장한 듯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대단해. 정말 우리 직원들 최고입니다. 구사장님, 관계직원들 보너스 넘치도록 지급하세요.”
“그렇잖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조금 전 무겁던 분위기는 완전히 걷혔다.
여비서가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 들어왔고 권혜림은 밀려드는 축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회장실 문이 열리고 서른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정장 차림의 직원이 들어섰다.
구장철의 비서 윤기준이다.
윤기준은 창가에서 통화중인 권혜림을 향해 허리를 구부리고 이어 다가와 이사들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여깄습니다.”
편지 봉투에 팩스를 담아 내민다.
스윽!
구장철은 봉투를 받아 안에 접혀진 A4용지 하나를 꺼냈다.
유병구 말대로 사우디 경제기부 장관 오타이프 명의였다.
팩스 내용을 읽던 구장철이 이마를 찡그렸다.
“왜 그러세요?”
구장철은 맞은편에 앉은 김인철 이사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팩스를 읽은 김인철 이사의 이마도 찡그려졌고 나머지 다른 두 이사 역시 얼굴을 찌푸렸다.
축전인 듯한데 내용이 서늘하기도 했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우리 사우디의 미래를 위해 훌륭한 공사를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인 감정을 짓누를 줄 아는 법을 배웠다는 말씀을 회장님께
전해주시오’
간단했다.
누구도 내용이 갖고 있는 뜻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표정들이 굳었고 어느 정도 축하전화가 끝난 듯 권혜림이 다가왔다.
“왜들 표정이 그러시죠?”
그러더니 바닥에 놓여진 종이를 발견하고 주워든다.
“이게 뭔가요?”
권혜림의 시선이 내용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