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6화: 미끼를 무는 고기(1)
물론 미리 폭발물을 준비하여 갔다고 하더라도 어두운 밤에 설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최대한 당겨 주시죠.”
권총수의 주문에 담당자는 가장 선명한 화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내는 캐피야를 쓰고 이갈로 머리를 둘렀지만 복장은 바지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잠깐!”
권총수는 재빨리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리야드에 도착했을 때 맥보란이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는데 프랑스 파리 ‘샤를리 에브도’잡지사 테러 사건의 주범 사이드 쿠아치의 오른팔 아까올라라고 했다.
“이놈이군.”
권총수가 핸드폰 사진을 화면에 바짝 대면서 비교했다.
“같지?”
“약간 차이가 있긴 해도 전체적인 윤곽은 동일인인 것 같은데.”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중동생활을 했기 때문에 생김새나 옷차림을 구별하는 안목은 현지인 이상이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권총수는 잔뜩 긴장한 채 영상을 틀어준 담당자에게 봉투 한 개를 내밀었다.
“퇴근후 식사라도 하십시오.”
“이건.”
“받아 주셔야 내가 편합니다.”
권총수는 부드러운 웃음을 짓고 돌아섰다.
“앗 쌀라 말라이 쿰(평화가 그대와 함께)”
권총수는 돌아섰다.
“앗 쌀라 말라이 쿰.”
역시 미소를 짓고 인사를 건넨다.
쿠데타 제압에 집중하느라 다른 분야에 소홀한 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까올라의 사우디 입국소식에 비밀정보국장 호세이니의 눈이 커졌다.
“당장 공항과 항만의 출입국 사무소에 발견 즉시 체포하거나 사살하도록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권총수는 몇 마디 더 주고 받은 뒤 통화를 마쳤다.
‘어딘가 길은 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사무실에 있었다.
이미 1층 출입문은 새로 교체되어 사고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범인은 밝혀졌는데.”
권총수는 혼잣말을 흘렸다.
“이 넓은 중동땅 어디에서 그 자식을 잡지.”
오민철은 점차 자신이 당한 사건을 떠올리며 두 눈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권총수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번호를 눌렀다.
“캡틴!”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맥보란이다.
“맥 서기관님 오늘 시간 좀 내시죠. 저녁에 식사 한 끼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사관 호칭은 서기관이지만 이미 중앙정보국에서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담당부서 국장이다.
올해 초 국장으로 올라섰는데 내근을 종용했지만 컴퓨터는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면서 현장을 고집했다.
또한 가장 먼저 국장 승진에 대한 소식을 권총수에게 전달했다.
얘기인즉 맥보란이란 사내가 국장이라는 고위직까지 올라설 수 있기까지 한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아마 사막의 흑새가 없었다면 오늘날 자신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고백이었다.
“499번 도로를 돌아가면 캅사(kabsa)잘하는 곳이 있더군요.”
“아 알고 있습니다. 에어백 하우스(Arabic house:축복하는 집) 사장님과는 잘 알고 있죠. 7시 어떻습니까? 알겠습니다.”
권총수는 전화를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오민철을 데리고 1층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형 갈 곳이 있어.”
“어디?”
“일단 가자고.”
두 사람은 흰색 랜드로버를 끌고 사무실을 나갔다.
고철이 산더미처럼 쌓인 고물상으로 랜드로버가 들어섰다.
차가 멈추고 권총수와 오민철이 내렸는데 이미 세 명의 작업복차림의 현지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앗쌀라 말라이 쿰(평화가 그대에게).”
권총수는 세 사내와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압둘라!”
오민철이 사장 압둘라와 악수를 하면서 아는척 했다.
오래전 일이다.
파흐드 왕세자 편에서서 알 살만을 제거하기 위해 사막에 있는 달의 궁전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워낙 은밀한 기습작전이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장비는 동원할 수가 없었고 대신 폭발물이나 자동소총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차량 십여 대를 개조했다.
바닥에서부터 유리를 제외한 문짝은 전부 강철판으로 붙였다.
오늘도 차량 개조를 목적으로 찾아 온 것이다.
세 사람은 곧장 차 문을 열고 이것 저것 떼어내기 시작했다.
“먹힐까?”
지켜보던 오민철이 눈을 좁혀 말했다.
“현재로서는 미끼를 던지는 방법 뿐이야?”
“그건 알겠는데 만약에 고기가 없으면? 있더라도 아주 멀리 있다면 미끼를 물 수가 없잖아.”
“그렇긴 한데 어쨌든 오늘 저녁 식사하러 가는 길에 고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봐.”
“제발 그랬으면!”
오민철은 이를 악물었다.
“우리쪽은 아니겠지?”
오늘 저녁식사의 약속을 아는 제3의 인물이 한국인은 아닐 것이라는 뜻인데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블랙잭 직원들일 수도 있었기에 걱정하는 것이다.
맥보란과 저녁 약속은 고기(범인)를 유인하기 위한 작전이다.
정보가 새어나갔다면 블랙잭 아니면 미국 대사관을 포함한 CIA내부인이다.
권총수 예상대로 어떤 공격이 벌어진다면 두 곳 중 어느 한 곳은 피의 청소가 불가피해 질 것이다.
“어쨌든 그냥 오라고 하면 안 되잖아. 혹시 모르니까 방탄조끼 정도는 챙겨야 하는 것 아냐?”
“그냥 와도 되는데 설혹 챙기더라도 대사관 안에서는 안 되지.”
그렇다.
그쪽에 배신자가 있다면 정보가 새어 나갈 수 있다.
결국 이쪽에서 준비를 했다가 차에 탈 때 건네줘야 한다.
랜드로버 한 대가 미국 대사관 앞에 멈춰 있었다.
비상 라이트를 켜고 있었는데 차 안에는 권총수와 오민철이 나지막하게 음악을 틀어 놓고 있었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앞문 유리를 내려 놓고서 음악을 듣는 건지 아니면 뭔가를 생각 하는지 등을 의자에 붙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기다렸을 때 미국 대사관 문이 열리고 맥보란이 나타났다.
맥보란은 근무자인 미 해병대원으로부터 거수 경례를 받으며 차를 향해 다가왔다.
“조금 늦었죠?”
핸들을 잡고 있는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어어!”
차가 출발하자 맥보란이 놀란다. 바깥은 랜드로버인데 안쪽은 시커먼 철판이 단단히 조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기관님 잘 들으십시오. 내가 중간에 오 이사와 내려 줄겁니다. 물론 그곳에 우리가 준비 해 놓은 차량이 있죠. 그 차로 오십시오.”
맥보란의 눈이 빛난다.
단순한 저녁 약속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권총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설마 우리쪽에서?”
“지금은 어느 쪽이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높죠. 다만 오지않는 고기를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서 미끼를 한 번 던져 보는
겁니다.”
맥보란의 표정이 풀리지 않는다.
만약...
절대 그럴리는 없지만 부하중 누군가가 적과 내통을 하고 있다면 발칵 뒤집힐 일이다.
자신이 옷 벗는 건 둘째치고 상관으로서 관리체계부실로 교도소에 수감될 수도 있다.
권총수가 아무 일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만 맥보란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권총수는 중간에 두 사람을 내려주고 혼자 차를 몰고 499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리야드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가면 회색빛 도시에서는 보기 드물게 푸른 나무가 우거진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에어백 하우스라는 곳으로 요리도 좋지만 우거진 숲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물론 숲은 주인이 직접 물을 뿌려 키운 나무들로 작은 공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이곳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부우웅!
시내를 벗어나자 차량 통행이 드물어 졌다.
승용차 밑바닥에도 철판을 댔고 만약을 대비해 옷 안에 방탄조끼를 입었다.
또한 검게 선팅이 된 유리를 올려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했다.
그리고 옆에 놓아둔 방탄모까지 턱끈을 조여가며 썼고 어깨에는 MP5기관단총을 대각선으로 멨다.
내가강기로 몸을 보호할 수 있지만 결과는 폭발력의 강도에 비례한다.
급조폭발물이라는 것이 따로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만약 자신을 노린다면 무엇을 이용할 지 전혀 알 수 없다.
식당에서 노릴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
고급 식당이기 때문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돈 많은 왕족들이거나 고위 관료들이다.
사막의 흑새 한 명 죽이면 박수를 받겠지만 그들이 죽거나 다치게 되면 상황은 복잡해 진다.
사우디 정부는 물론 친 사우디국가인 주변 국에서도 테러범들을 추적하는데 협조할테고 분명한 건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부우웅!
높은 사막 언덕을 돌아갔다.
레스토랑까지는 10여킬로 쯤 남았다.
도로는 왕복 2차선이고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아 바깥 온도는 40도를 상회하고 있다.
권총수는 모든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린 채 더욱 숨을 죽였다.
온 몸이 백 퍼센트 위험이 몰려오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스으윽!
속도를 늦춘다.
전방에 과속방지턱이다.
‘아차!’
과속방지턱을 앞바퀴가 올라가는 순간 권총수는 차의 속도가 느려진 지금이야 말로 자신을 노리기에 가장 좋은 타임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찰라와 같이 깨달았는데 적중했다.
쿵!
쿠쿠쿵!
랜드로버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M15 대전차 지뢰를’
2톤이 넘는 차가 이토록 높이 날려 버릴 만한 폭발물은 대전차 지뢰말고는 드물다.
물론 2톤짜리 랜드로버 하나 갈기갈기 찢은 폭탄은 수두룩하지만 쉽게 구하기는 M15만한 물건이 없다.
차가 떠오른 순간 권총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철갑을 두르듯 철판으로 차를 둘렀고 방탄조끼에 방탄모까지 썼다.
거기에 호신강기까지 끌어 올렸는데도 순간적으로 내기가 흔들린다.
슈욱!
깨진 창문을 통해 차에서 나온 권총수는 금강부동신법을 펼쳐 왼쪽 모래 언덕으로 날아갔다.
쉭!
번쩍인가 싶었는데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모래언덕 정상은 커다란 바위들이 병풍처럼 세워져 있었다.
움푹한 바위 곁으로 내려선 권총수는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재빨리 천리지청술을 전개했다.
499번도로 오른쪽, 지금 서 있는 곳의 맞은편은 평지로 된 모래 사막이다.
지평선이 만들어질 만큼 야트막한 언덕도 없고 시계가 좋아 권총수의 시력이면 3,4킬로 이상을 꿰뚫어 볼 수 있다.
하지만 왼쪽,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지역은 바위 사막이며 크고 작은 언덕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야전이 아닌 도심에 가까운, 특히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는 차량을 노리기 위해서는 원거리 리모컨을 작동한 폭발일 가능성이 높다.
즉 만에 하나 리모컨을 누른 자가 숨어 있다면 이쪽 바위 언덕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발자국 소리’
스으으!
권총수는 그대로 떠올라 뾰족하게 솟은 바위에 올라섰다.
멀리 한 사내가 경사진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사막 위에 검정색 지프 한 대가 서 있다.
권총수는 재빨리 메고 있는 MP5 기관단총을 잡았다.
안전장치를 풀고 사내를 겨눈다.
뜨거운 열기가 작열하는 바위에 우뚝 선 권총수는 조정간을 단발에 놓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사막을 울리는 총성이 들리고 걸어가던 사내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총소리가 들리자 움직이지 않고 있던 지프가 도주하기 시작했다.
권총수의 총구가 지프를 향해 올려졌다.
스으으!
미세하게 앞으로 이동하던 총구에서 불이 뿜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