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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04화 (604/651)

제604화: 빨간 사막(3)

권총수는 지금 인천공항 주차장에서 폭탄으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을 추적하기 위해 왔다.

그러나 사우디는 블랙잭의 기반이다.

블랙잭 매출의 80퍼센트가 사우디에서 나온다.

중동의 정치 지형은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다.

워낙 예측이 어려운 나라들이기 때문에 매출의 다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사우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각하께서 청하시니 내 일이 바쁘다고 고집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캡틴! 이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이윽고 차를 마시며 십여 분 환담을 나눈 뒤 권총수는 대통령궁을 나왔다.

사내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면 벽에는 이번 쿠데타 주역들의 이름과 사진이 있는 스크린이 걸려 있었고 권총수는 묵묵히 듣고 있다.

무카바라트, 사우디 비밀정보기관이다.

유엔이 발표한 사우디의 인권지수는 120위였다.

파흐드가 집권하기 전에는 170위로 꼴찌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나마 많이 호전된 것이다.

물론 체제는 대통령제로 바뀌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여러 가지 악습이 철폐되고 인권을 우선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옛 왕족들이 뿌려 놓은 독버섯의 뿌리가 깊다.

이번 쿠데타도 옛 왕정복고 세력이 일으킨 것이다.

30여 분 가까운 브리핑을 듣고 나자 나란히 앉아 있던 무카바라트 수장 호세이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크린은 꺼졌고 실내는 훤히 불이 켜진 가운데 호세이니가 권총수를 향해 말했다.

“난 결코 그들이 사막으로 도망쳤다고 보지 않습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목표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는 것이다.

잡히지 않았다는 건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사막으로 가버리면 자신들을 따르는 세력들과 소통이 단절되기 때문에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도 그렇게 봅니다. 어차피 목숨 걸고 일어났을 텐데 살기 위해 도망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시내의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잠시 말을 끊은 권총수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사람들 시선이 권총수에게 집중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상금을 거는 것입니다. 신고자에게 거액의 포상을 하는 방법이죠.”

파팟!

호세이니 눈이 빛난다.

단순한 방법이면서 가장 확실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현상금이다.

이미 쿠데타 성공은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 흔들리는 군인들이 배신을 할 수도 있다.

즉 신고를 하지 말란 법은 없다.

시민들 역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권총수의 제안은 즉시 받아들여졌고 시내 곳곳에 현상금 현수막이 걸렸을 뿐 아니라 방송을 통해 보도가 되었다.

그야말로 드러내놓고 뒤를 쫓겠다는 수법이다.

더욱이 현상금이 무려 미화 천만 달러다.

왕족들을 제외하고는 넉넉하게 살지 못하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꿈 같은 거액이다.

파흐드 대통령은 크게 웃었다.

역시 권총수다.

비밀스런 작전보다 드러내놓고 사냥을 하는 것이야말로 알고 보면 사냥감에게는 더욱 설 자리를 없게 만든다.

그것뿐이 아니다.

드러내놓고 가담자에 대한 추적을 실시하면 이쪽이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보여주는 꼴이 된다.

또한 어느 정도 자유가 주어진 국민들이다.

기득권층을 제외하고는 다시 왕정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 뻔하므로 신고도 많이 들어 올 것이다.

‘그대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지장(智將)이오’

파흐드 대통령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동시 다발적으로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우디에서 쿠데타가 시도됐지만 실패로 끝났다는 외신이 터지고 국내 방송까지 가담자와 아직 잡히지 않는 주모자들에 대한 수배 소식이 나온다.

리야드 곳곳에 거미줄처럼 걸린 현상금 수배 현수막은 도망자들을 더욱 다급하게 만들었다.

의심스런 신고만 기다리면 된다.

물론 경찰과 정보요원들이 가담자들의 출신지와 거주지 인근에 천라지망을 펼쳐 놓고 쫓고 있다.

권총수는 리야드 서쪽 작은 회교사원 앞에 있었다.

회교사원을 끼고 골목이 있는데 쭈욱 따라 들어가면 평범한 2층 주택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예랄 수 있는 국가경비대 부대장 모하마디 장군의 세 번째 여자 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모하마디 부대장의 계급은 소장인데 부 부대장인 준장 체슈미 장군이 반대를 하자 그를 살해하고 거병한 것이다.

물론 쿠데타를 거부하는 일부 하급부대 지휘관들이 적지는 않았지만 군대라는 체계가 위에서 밀어붙이면 아래서는 따른다.

검사들만 동일체가 아니라 군대도 동일체다.

진정한 동일체는 군대다.

“진짜 사람 속 모를 일이야. 반역을 대비해 가리고 가려서 뽑았다는데 뒤통수를 칠 줄 누가 알았겠어.”

오민철이 흰색 벤츠에 앉아 중얼거렸다.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 부인까지 뒀다고 알려졌고 지금 주택에서 사는 세 번째 여자는 최측근들만 알고 있다.

그렇다고 권총수는 그가 세 번째 여자 집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걸 알고서도 여길 지키고 있는 건 한 가지 때문이다.

누군가 드나들 것이다.

즉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나가든지 들어가든지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심부름은 집에 있는 세 번째 여자가 보낸 사람일 수도 있고 모처에 숨어 있는 모하다미 장군이 보냈었을 수도 있다.

국방경비대장 정도 되는 사람이 멍청한 여자를 세 번째로 삼을 리는 없다.

모든 전화는 감청되고 있으므로 연락 수단은 인편 말고는 없다.

현재 쫓기고 있는 쿠데타 잔존 세력중 가장 거물이 모하다미였다.

그래서 권총수가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잠복 사흘째,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수많은 사람이 골목을 출입했고 바로 옆에 있는 사원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런데 사원의 이맘(기도를 이끄는 우두머리)으로 보이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오더니 골목으로 꺾어졌다.

“여기 사원 이맘 아냐. 다에이 라는 그 사람?”

이미 잠복이 들어가는 날 사원의 이맘이 누군지 파악해 놓고 있었다.

몇 번 밖으로 외출하는 건 봤지만 사원을 나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여기서 기다려.”

팟!

한마디 남기고 권총수는 차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딱딱!

땅바닥을 짚는 지팡이 소리가 골목을 울린다.

사원의 이맘 다에이는 지팡이에 의지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었다.

대부분이 흰색에 케피야를 쓰고 검정색 이갈을 둘렀는데 이맘 다에이가 쓴 건 주홍색이었다.

또한 흰 색보다 좀 더 길어 어깨와 앞 가슴을 덮었다.

낡고 헐렁한 칸두라는 거의 땅을 끌다시피 했는데 골목 안쪽에 있는 2층 주택 앞에 걸음을 세웠다.

톡톡!

지팡이로 굳게 잠긴 대문을 두들겼다.

“누구세요?”

“아멜리아.”

“오우! 알라후 아크바르.”

놀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길다란 검정색 차도르에 히잡을 얼굴에 두른 미모의 여인이 나타나 미소를 지었다.

“다에이.”

이맘 다에이는 주변을 한번 살피더니 품에서 작은 봉투 한 개를 꺼내 주었다.

“장군 비서라는 분에게 전달 받았다.”

그리고 곧장 돌아서서 왔던 길을 돌아갔다.

탁!

다에이가 돌아서자 아멜리아란 여인은 재빨리 대문을 닫아 버렸다.

아멜리아는 방 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봉투를 열었다.

손을 집어넣자 신용카드 한 장이 손에 잡힌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이다.

그러나 카드와 연결된 통장의 돈은 모두 모하다미 장군의 것이다.

계좌추적이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아멜리아 이름으로 입출금이 이뤄지고 있다.

모하다미 장군이 카드를 보냈다는 건 돈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는데 작은 쪽지 하나가 나온다.

‘$100,000’

미화 십만 달러를 찾아 사원의 이맘에게 전달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우디 화폐로 계산하면 30만 리얄이 훌쩍 넘는 거액이다.

아멜리아는 주저하지 않았다.

쪽지를 부엌 가스불에 태워 흔적을 없애고 신용카드를 주머니에 넣은 뒤 곧장 집을 나섰다.

그리고 골목을 나가 인근 은행으로 들어가더니 30여 분 정도 지나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멜리아는 왔던 길을 그대로 밟았는데 골목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번에는 회교사원으로 들어갔다.

대낮의 사원은 비교적 사람들이 없어 조용했다.

반월형태의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용한 복도가 나온다.

복도는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졌고 안쪽으로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똑똑!

아멜리아는 문을 노크했다.

“들어 오너라.”

아멜리아가 안으로 들어가면서 문이 닫혔다.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나왔는데 마치 기도를 끝내고 귀가하는 사람 같았다.

아멜리아는 골목 안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녀가 사원을 빠져나가고 20분 정도 지나 차 한 대가 입구에 멈춰 섰다.

한 사내가 내렸는데 헐렁한 바지에 우리의 개량한복 저고리 비슷한 평복을 입었는데 안으로 들어간다.

그 사내 역시 10분도 되지 않아 다시 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 사라졌다.

오민철이 시동을 걸고 차를 따라갔다.

한참 운전을 하고 가던 오민철이 빙긋 웃었다.

차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리야드 시내를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행자를 따돌리려는 행동인데 오민철의 차량을 눈치챘기 때문에 보이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냥 하는 것이다.

“십만 달러면 애매한 액수 아냐?”

딸칵!

오민철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유리를 조금 내리자 연기가 빨려 나간다.

“설마 무기가 없어 무기 구입 자금은 아닐 것이고?”

권총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권총수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므로 오민철은 담배만 빨았다.

“내 생각엔.”

권총수가 한참있다 입을 열었다.

“현상금 수배까지 걸리자 더 이상 길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아. 쿠데타 주모자들에 대한 신상과 얼굴이 알려진 이상 어디에 숨을 거야?”

“그래서?”

“10만 달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액수, 딱 가짜 여권 만들기에 적절한 금액이라고 보는데?”

그러면서 권총수는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민철 역시도 권총수의 예측에 힘을 실었다.

언젠가 이집트에서 가짜 여권이 필요해 일당과 접촉한 적이 있었는데 개당 2만 달러를 요구했었다.

나라마다 여권 기술자들의 수고비는 다르다.

멕시코를 포함한 남미는 오천 달러면 충분하고 프랑스는 3만 달러를 요구했다.

스위스 같은 경우는 의외로 7천 달러밖에 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두 자신을 도와준 협조자들을 해외로 도피 시켜주기 위해 만들었었다.

앞서가던 혼다 SUV가 멈췄다.

커다란 공장 문 앞이었는데 잠시 후 그그긍 소리를 내며 안으로부터 문이 열렸다.

혼다 차량이 들어가자 대문이 닫힌다.

“연락해야지. 기동대 보내라고?”

“안돼.”

권총수가 말렸다.

“기동대원 중에 쿠데타 지지병사가 있지 말란 법도 없잖아.”

함부로 움직일 일이 아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공장에는 쿠데타를 도모한 세력의 우두머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를 놓치면 불씨는 계속 살아있는 꼴이 되고 언젠가 바람이 불면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작전은 철저하고 차분해야 한다.

그리고 시작하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를 해 버려야 한다.

철컥!

파흐드 대통령 경호실에서 내준 기관단총 MP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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