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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03화 (603/651)

제603화: 빨간 사막(2)

빨리 찾아야 한다.

오로지 빨라야 살릴 수 있다.

물론 죽었을 가능성이 더 커보이지만 그런 마음은 먹지 않기로 했다.

“선배님 여기요.”

이철술은 고용천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골목 건너에 있는 공장 담벼락 아래 고용천이 심폐소생술을 펼치고 있었다.

이철술은 눈을 감아 버렸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딱 봐도 이미 숨을 거둔지 오래다.

이철술은 그래도 997로 전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와주시오. 빨리.”

이철술의 애절함이 통했을까 10분도 되지 않아 구급차가 달려왔고 박호명을 싣고 떠났다.

“우리의 판단은 사망입니다.”

구급요원이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두 사람은 멍하니 서 있다.

여전히 뭐가 뭔지,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털썩!

이철술은 주저앉아 버렸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지사장님께서 폭탄테러로 돌아가셨습니다.”

고용천이 리야드에 들어와 있는 권총수에게 재빨리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예! 예!”

고용천 또한 전화를 끊고서 주저 앉는다.

박호명은 해병수색대 선배이다.

두 사람은 원래 천하건설 이라크 전기 공사 직원으로 파견 나왔다가 박호명과 연결이 되어 사표를 내고 회사를 옮겼다.

“아아! 씨발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오오오어오!”

이철술이 어두운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선배니이이임! 선배님 으흑흑흑!”

이철술이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소리내어 울었다.

하늘의 별들이 빛난다.

오늘따라 살아 꿈틀거릴 듯 빛나는 별빛 아래 두 사람만 통곡하고 있었다.

눈물을 그친 두 사람은 책상속에 넣어둔 권총을 챙겨 나왔다.

만약에 있을지 모를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부우웅!

그때 라이트를 켜고 한 대의 차량이 도착했다.

벌컹!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권총수와 오민철이 차에서 내렸다.

“이과장, 고과장!”

오민철이 두 사람을 부르며 상황을 물었다.

“박 지사장은?”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만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뭐어? 박 지사장이.”

오민철이 믿을 수 없다는 자동차 라이트에 비친 바닥의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권총수의 눈이 섬광처럼 빛난다.

눈은 어둠속 주차장을 훤히 훑으면서 사고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했다.

스윽!

차유리가 박살 난 세 대의 차량을 살핀다.

그중 왼쪽 문 하나가 열려 있는 검정색 차량을 보며 고용천에게 물었다.

“고 과장, 이 차 문 누가 열었습니까?”

“제가 열지 않았습니다. 폭발 충격에 열린 듯 보입니다.”

닫힌 차 문이 열릴 정도면 폭발의 강도는 충분히 짐작된다.

권총수는 주차장 한곳을 향해 걸어갔다.

거기에는 사무실 입구에 있어야 할 회색의 철문이 나뒹굴고 있다.

두께 10밀리 강판이다.

그런 강판이 통조림 깡통처럼 찌그러져 있다.

권총수는 한참 동안 강판을 살피더니 이번에는 회사 출입문으로 향했다.

‘부비트랩’

왼쪽에 끊어진 낚시줄 하나가 보인다.

“어, 이게 무슨 줄이야. 설마 남의 사무실 입구에 부비트랩을.”

오민철이 끊어져 너풀거리는 낚시 줄을 만지며 어이없다는 얼굴이다.

“권 대표?”

오민철의 눈이 빛난다.

박호명을 노릴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시선이었다.

권총수는 무겁게 말했다.

“공항에서는 애먼 형을 아작냈고, 여기서는 박 지사장을 데려갔군.”

“무슨 소리야. 허면 오늘밤 놈들이 널 노리고?”

“인천 공항에서처럼 날 노렸는데 박지사장이 걸린 거지. 그것뿐만이 아냐. 날 굉장히 잘 알고 있어. 부비트랩은 강호 고수인 나도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내지 못해.”

그렇다.

시한폭탄이거나 어떤 기계의 움직임이 발생하는 폭발물은 권총수의 감각을 속이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부비트랩은 줄을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알 수가 없다.

물론 화약냄새를 맡을 수도 있지만 그건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하며 집중해야 가능하다.

적은 오랫동안 감시하고 주시하며 치밀한 조사를 거쳤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고, 안에 일하는 사람이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텐데도 부비트랩을 설치했다는 건 전투기나 탱크로 때려 버리기 전에는 사막의 흑새에게는

가까이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강호의 절정고수임을 인정하고 설계한 부비트랩이다.

소리없고 냄새 없는 부비트랩은 오직 육안으로만 찾아낼 수 있는데 아차 긴장을 풀었다간 그대로 날아간다.

식사를 끝내고 자신이 사무실에 들어올 것으로 판단하여 설치했을 것이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사무실 앞 마당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담배만 피웠다.

후우!

분노하여 쉬지 않고 욕설을 내뱉던 오민철도 지친 듯 조용해졌고, 눈물을 흘리던 이철술과 고용천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 이철술이 핸드폰을 받더니 알겠다면서 끊는다.

그리고 권총수를 향해 말했다.

“의사로부터 사망진단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다음 날 박호명의 시신운구 준비에 들어갔다.

국적항공사와 의논을 하여 싣고 갈 비행 편과 시간까지 합의를 마쳤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블랙잭 책임자로 나오는 채명천과 유족대표가 시신을 인수받아 장례를 치를 병원으로 운송한다.

서류까지 꼼꼼하게 정리를 마치자 시간은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다.

네 사람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고 소식을 들은 맥보란이 놀라며 전화를 걸어왔는데 권총수는 그다지 입을 열어 말하고 싶지 않는 듯 거의 듣기만 하더니 끊었다.

“커피들 한 잔씩 하자고.”

오민철이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 각자 앞에 한 잔씩 내놨다.

좋아할 상황은 아니지만 가급적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어 보기 위해 오민철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이다.

이철술과 고용천 과장은 말이 없다.

비극적 사건 앞에서 입이 무거워진 이유가 크지만 권총수와 자신 모두 회사 최고위층이다.

어려워서 말하고 행동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자신 말고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살려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오민철이 입을 연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고.”

오민철이 정색했다.

“누군가 왔어. 그리고 몰래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사라졌어. 중요한 건 어제 설치해도 되고 내일도 날인데 왜 하필 오늘이었냐는 거지.”

“대표님께서 사우디에 온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이철술이 눈을 좁혔다.

뭔가 발견한 눈이다.

“그렇지. 적은 우리 권대표의 리야드행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저녁에 박지사장과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도 알았을 가능성이 커. 그리고 식사를 끝낸 권대표가 박 지사장과 함께 회사로

돌아올 것으로 판단한 거지.”

“거의 거울로 들여다보고 있는 수준 아닙니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추정할 수밖에 없지.”

오민철은 이철술을 보며 말했다.

“그럼 지사장님과 대표님의 통화를 감청했다는 것인데.”

둘 모두 무선전화다.

무선이라고 도청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유선보다는 훨씬 어렵고 절차도 까다롭다.

“안되는 것이 어딨어. 통신사별로 보안 수준과 기능에 차이만 있을 뿐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오민철은 자신있게 말했다.

“허면 감청을 언제부터 했을까요? 무선전화가 유선처럼 단자함 열어 선 몇 개 붙이면 감청설치가 끝나는 기기가 아닌데.”

오민철이 커피를 마신다.

“무선전화 감청은 두 가지로 가능하다고 알고 있지. 하나는 가입한 통신사 교환기를 통하면 가능한데 이건 안에 있는 직원과 서로 짜는 경우야. 또 하나는 해당 통신사 서버를 해킹

해버리면 충분히 엿들을 수 있어.”

이철술과 고용천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너무 어려운 방법이고 그 정도로 치밀하게 움직이려면 어떤 국가기관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여러가지 가정을 놓고 좁혀가 보자고.”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곧바로 누군가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오오! 알라후 아크바르, 캡틴, 정말 캡틴이오?”

떨리는 목소리가 사무실까지 충분히 들을 수 있을 만큼 흘러나왔다.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설마 파흐드 대통령!’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예예!”

권총수는 공손히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통령 각하야. 경호원들을 보낼 테니까 당장 좀 볼 수 없느냐는 군. 형, 가죠.”

“이 상황에 대통령은 왜 또?”

사우디 최고 권력자다.

권총수는 이철술과 고용천을 향해 말했다.

“군에서 누가 선임이었죠?”

“여기 이 과장님이 저보다 두 달 빠릅니다.”

고용천이 말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철술 과장을 지금부로 블랙잭 중동지사장에 임명하죠. 각 지부에 통지하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표님!”

“내일 뉴저지에서 병력 오죠?”

“예! 25명입니다.”

“곧바로 현지로 파견할 수 있도록 준비 좀 잘해 주세요. 나중에 또 봅시다.”

“대표님 언제쯤 출국 하시는지?”

“당분간은 여기 있을 겁니다. 왜 할 얘기 있어요?”

“아닙니다. 경호병력이 없어서.”

“난 또, 걱정 마세요. 형 가죠.”

두 사람은 사무실을 나갔다.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5분쯤 기다리고 있을 때 검정색 벤츠 한 대가 다가와 멈췄다.

조수석에서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내리더니 재빨리 뒷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벤츠는 곧 출발했다.

부우웅!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인사드리겠습니다. 경호1팀장 레게라입니다.”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했고 이어 오민철도 미소로 손을 잡았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직 안심할 정도는 아닙니다. 중요 인물 몇이 도주중에 있는데 그들을 체포하거나 사살해야 안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우디는 미국의 4분의1 정도의 큰 규모의 땅덩어리를 갖고 있다.

특히 사막이 워낙 넓어 어디론가 숨어 버리면 위성을 이용한 수색에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사막을 떠도는 여러 유목민들이 많아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사실상 체포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궁에 도착했다.

새로 바뀐 비서실장 칸나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캡틴!”

권총수를 끌어안고 볼을 비벼 이슬람식 인사를 나눴다.

칸나리는 오민철과도 같은 식의 인사를 했는데 이름을 부르며 환하게 웃었다.

“대통령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 사람은 칸나리를 따라 복도로 들어섰고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사무실로 안내했다.

“각하!”

“캡틴!”

파흐드 대통령은 창가에 서 있었는데 문 열리는 소리에 돌아섰다.

또 한 번 요란한 이슬람식 인사를 나눈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걱정이 많으십니까?”

“헛헛! 신께서 날 돕는 모양입니다. 하필 이때 캡틴이 사우디를 방문하다니.”

권총수가 아니라면 파흐드는 죽은 알 살만 왕자에게 제거되었을 것이다.

거의 살아있는 시체라고 할 만큼 코너에 몰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파흐드 왕세자를 권총수가 일거에 복권시키고 알 살만을 몰아 내버렸다.

“캡틴, 이 상황에서 우리가 무슨 얘길 나눌 수 있겠습니까?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제거하지 않고 시간을 주면 보나마나 혼란을 부채질 할 것이고 눈치를 보고 있는 일부

세력들이 합세할 수도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도와 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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