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2화: 빨간 사막(1)
두 사람을 노렸지만 그 이전에 어차피 그들은 CIA 추적팀이 노리고 있는 테러범들이다.
“맞습니다. 그래서 랭글리에서도 이번 캡틴의 중동 방문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바짝 신경을 쓴다는 건 뭡니까?”
“쉬쉬하고 있지만.”
“말씀해보세요?”
권총수가 괜찮으니 말해보라는 듯 웃었다.
“파흐드 대통령님 잘 아시죠?”
모를 리가 없다.
오늘 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이슬람국가로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현직 대통령이다.
또한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최고의 수훈을 세운 사람이 권총수였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전화 연락은 주고 받지만 무척 오랜만에 들어본 이름이다.
“사흘 전 쿠데타 모의가 있었습니다.”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처음 듣는 얘기다.
“다행히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났고 주동자중 상당수는 체포되어 구속됐지만 일부는 도주했죠.”
“도주했다면 해외로 나갔다는 뜻입니까?”
“사우디 국내에 있습니다. 조사를 진행중인데 이번 쿠데타 세력과 알 살만 전 왕세자를 추종하는 해외 세력들이 연계해 있더군요.”
“쿠데타 규모는 어느 정도 입니까?”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국방경비대장을 포함해 측근 십여 명입니다.”
앞서 던진 권총수의 질문에 대해 대답했다.
“국방경비대?”
국방경비대는 지금은 대통령만을 지키고 과거에는 왕족과 국왕을 위해서만 움직였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최측근부대가 배신을 했다는 건 파흐드 대통령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일 것이다.
“한 가지 더 불행한 건 무카바라트입니다.”
무카바라트는 사우디판 CIA다.
어느 나라든 정보국은 권력의 주축이고 기둥인데 현 국장인 알나이미가 이틀전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국가경비대장에 이번에는 정보국장까지 가담했다면.”
오민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
“수다라이파 세력의 뿌리가 워낙 깊잖습니까.”
수다라이파는 사우디 왕가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알 살만 전 왕세자가 속해 있는 계열이다.
현 파흐드 대통령은 파이살계이다.
즉 사우디판 기득권 세력이 신흥 진보라고 할 수 있는 파흐드 대통령을 밀어내려다 실패한 것이다.
“아마 곧 전세계로 쿠데타 실패에 대한 소식이 나갈 것입니다. 그동안 주모자와 협력자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지만.”
기존의 질서가 이토록 무섭다.
어느 나라든 하나의 세력이 몇십 년 권력을 잡게 되면 그 나라의 경제 사회 국방 모든 분야가 그들 발아래 단단히 굳는다.
그렇게 세월이 흐를수록 뿌리는 더욱 깊어지고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권력이 바뀌지 않는 나라는 백퍼센트 썩는다.
이슬람국가들이 가진 치유 불가능한 체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해외에서 활동하는 전 왕자 알살만의 지지자들과 이번 쿠데타 주동세력 모두 권총수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적이라고 공언한다.
그런 권총수가 사우디에 들어온 이상 필사적으로 제거하려고 들 가능성이 높았다.
“호랑이 굴에 뛰어 든 격이군.”
그러면서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도망치는 것도 작전의 한 부분 아냐?”
당장 출국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리되면 그때 다시 들어와도 늦지 않다는 뜻이다.
오민철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물러서는 것도 이기기 위한 전술이라는 걸 깨달은 듯 했다.
일단 쿠데타 모의가 발각되어 일부 처리가 되었다고 했지만 사우디정국은 지금 살얼음판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경찰과 정보기관, 군까지 온통 쿠데타 세력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한창이었다.
“불편하십니까?”
지금 현재 사우디 상황을 설명해준 맥보란이 빙긋 웃었다.
권총수는 담배가 피우고 싶은 듯 자꾸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건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권총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있었다.
이런 정치적 사건이 심각할 때는 치안의 공백이 생긴다.
다시 말해 일반 사건은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쿠데타 세력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웬만한 사건이 아니면 주의를 끌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가정집에 금품을 노리는 강도가 들어 사람을 죽이고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치자.
평소 같으면 범인 추적에 경찰이 전력을 다하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 사건에 최소한의 인력만 동원된다.
권력이 바뀌면 체제가 무너진다.
체제가 달라지면 기존의 질서와 규칙이 사라지고 새로운 법의 틀이 만들어진다.
그중 첫 번째가 인력 교체다.
전 정부에 충성했던 사람들부터 쳐내기 시작한다.
그런 칼날을 가장 두려워 하는 조직중 한 곳이 경찰이다.
윗사람의 신경이 딴 곳에 있는데 아랫사람들이 제대로 열의를 갖고 움직일 리 만무했다.
경찰력이 허술한 이때야말로 자신을 노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맥보란이 급한 일로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둘은 택시를 잡아타고 블랙잭 지사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권총수는 나직하게 말했다.
한 마디로 조심하자는 것이었다.
조용히 일만 처리하고 떠나자는 얘기였으나 세상일은 본인의 계획이나 의지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
저녁이 되었다.
맥보란에게 미리 귀띔을 받은 탓일까 리야드 시내가 어느 때보다 조용해 보인다.
조용하다는 건 답답함일 수 있고 금방이라도 어떤 시끄러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전쟁이 그렇다.
대규모 작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고요함이 부대를 짓누른다.
자신의 목숨이 사라지느냐 아니면 온전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느냐에 모든 병사들이 집중하다보니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리야드시의 고요 역시 그와 비슷하다고 보았다.
언론이 통제 되었다고는 해도 고위 관리들 입을 통해 어느 정도 퍼져나갔을 수도 있다.
한때 단골이기도 했던 양고기 전문 식당을 찾아갔다.
저녁이어선지 사람들은 많았다.
최소한 이곳 식당에서 만큼은 사우디의 권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징후는 느끼지 못했다.
지사장 박호명까지 세 사람은 양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딱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오민철이 입맛을 다셨다.
공식적으로 음주가 금지되어 있는 나라다.
물론 왕족이나 고위 관료들은 자신들만의 파티에서는 실컷 술을 마신다.
일반 국민들만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소주 생각이 나는 듯 오민철은 자꾸 입을 쩝쩝 거렸다.
지사장 박호명이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다지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긴 한데 이상하게 오늘은 땡깁니다. 크어어어!”
소주 한 잔 비우는 시늉을 할 때 스테이크가 나왔고 세 사람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오민철은 아쉬운 대로 막걸리 한 잔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입맛을 다셨다.
오민철로 인해 좌석은 부드러워 졌는데 박호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로 사우디에 왔냐는 것인데 권총수는 아직까지 그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현지 지사장으로서 회사 대표가 왔다면 이유와 목적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미 본사에 전화를 걸어 권총수의 사우디 방문이 뭣 때문이냐고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개인적인 볼일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대답을 했지만 권총수는 생각을 바꿨다.
블랙잭 직원의 80퍼센트가 활동하고 있는 중동지역의 관리자다.
한국에서라면 모를까 해외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일이라도 하여 입을 닫으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오 이사님 사건 때문에 온 것입니다. 물론 내 일이기도 하지만.”
박호명이 눈이 커졌다.
“설마 용의자가 사우디에 있단 말입니까?”
“아뇨 아뇨. 그건 아닙니다. 여기서부터 조금씩 접근해 가볼 생각입니다.”
박호명은 눈을 좁혔다.
뭔가를 떠올리려는 동작인데 갑자기 눈을 크게 뜬다.
“혹시 백서건설?”
오민철이 웃었다.
“허어! 우리 지사장님 눈치 하나는 빨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냄새가 좀 나는 건 사실입니다.”
오민철이 고기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씹었다.
“일단 훑어봐야죠.”
박호명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식사를 하는 오민철과 권총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럼 그 여자가?”
권혜림을 떠올린 모양이다.
“식사 합시다!”
오민철이 부드럽게 웃었다.
박호명의 차가 블랙잭 지사 주차장에 멈췄다.
사무실은 5층 건물로 블랙잭 소유이다.
리야드 시내에서 조금 외곽에 위치한 203도로 길가에 있는데 1층과 2층은 사무실이며 3,4,5층은 현지에 투입되기 전 잠시 대기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숙소로 사용된다.
지하실에는 여러 가지 잡다한 군용 물품들이 있지만 폭발물은 별도의 장소에 취급한다.
한국이 낮 시간이기 때문에 야간 근무는 필수이다.
또한 낮에는 이곳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므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셈이다.
박호명이 퇴근을 하지 않고 사무실로 돌아온 건 야간근무자들에게 먹일 간식을 사온 것이다.
차에서 내려 불 켜진 2층 사무실을 들어가기 위해 현관에 붙은 전자키 번호를 눌렀다.
삐삐삑!
소리가 나면서 철컥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콰아앙!
단단한 무쇠로 된 철문이 통째 날아가며 박호명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폭풍에 날려간 박호명은 맞은편 자동차 부품공장 담벼락에 부딪치고 떨어졌는데 꼼짝하지 않았다.
폭발 소리에 2층에서 근무하던 두 명의 직원 이철술과 고용천이 재빨리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보다 소스라친다.
주차되어 있는 자신들의 차 유리가 박살 나 있다.
“뭐야.”
다다닥!
두 사람이 계단을 내려 일 층 현관을 보며 입을 떠억 벌렸다.
철문이 날아갔다.
“이런, 어떻게 된거야?”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흔들림이 있었지만 자신들은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출입문이 통째 날아갔다는 건 최소한 100밀리가 넘는 직사화기나 곡사포 정도는 날아왔다는 뜻이다.
가장 흔하게 이용되는 RPG정도 가지고는 절대 부서질 문이 아니다.
파팟!
그때 이철술의 눈이 빛났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철문에서 10여미터 정도 떨어져 자신들 차량과 나란히 서 있는 또 하나의 차량을 발견한 것이다.
넘버가 덜렁거리고 있지만 자세히 보니 지사장 박호명의 것이다.
차량들 유리가 모조리 박살났고 넘버가 덜렁거리며 일부 범퍼가 찌그러진 걸 보면 외부에서 날아온 무기가 관통한 것이 아니다.
즉 폭발물에 의한 사고인 것이다.
멈칫!
차량 뒤를 살피던 이철술이 뭔가를 집어 들었다.
은박지로 된 도시락이었고 그 안에는 고기 튀김과 감자볶음이 있다.
알백(Albaik)이다.
이른바 사우디판 맥도널드인 것이다.
‘두 개!’
멀리 또 한 개가 떨어져 있다.
“이런 씨발!”
그제서야 앞뒤 상황을 판단한 이철술이 비명처럼 외쳤다.
“지사장님이야. 지사장님 찾아!”
두 사람은 어둠속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철술은 경찰에 폭발물 사고 신고를 했다.
폭발물이 터진 것 같다고 얘기를 했지만 전화를 받는 경찰의 대답은 시큰둥 했다.
“알았소. 곧 출동하겠소.”
박호명이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이런 폭발에서 그가 온전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997(한국119)을 부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경찰부터 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