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1화: 돌아오다(2)
자신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다 보면 판은 점점 커진다.
그러다 보면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니면 미국인 희생자가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건 또 하나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분명한 명분이 된다.
어쨌든 웬만한 사건 사고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면서 보안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유난히 타 회사와 달리 블랙잭이 인력부족을 겪는 이유는 짧게 치고 빠지는 단타 직원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용병을 직업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한탕 하고 이른바 장사밑천 챙겨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일 년에 억대의 돈을 저축할 수 있는 곳은 용병시장 말고는 없다.
처음 얼마간은 빠지는 인원보다 들어오는 숫자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르다.
빠지는 직원이 들어오는 직원의 2배가 넘는다.
“재수생들을 받는게 어떨까?”
채명천이 바라본다.
재수생이라 함은 블랙잭에 들어와 짧게 근무하고 장사 밑천 챙겨나간 뒤 쫄딱 망하고 다시 응시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건 안 됩니다.”
권총수는 재수생은 절대 받아 들일 생각이 없었다.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자 의무나 다를 바 없다.
중요한 건 그 의무에 누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드느냐가 능력이 있고 없고를 결론짓는다.
대부분 용병시장은 짧은 시간에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들이 가진 인식이나 가치관까지 간섭할 수는 없으나 일단 내 회사에 들어온다면 당연히 관여해야 한다.
재수생이 들어오면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다른 직원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들은 어떻게 계약 기간만 버티고 나갈 생각으로 전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을 것이 자명했다.
그렇게 되면 피해는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많은 용병들에게로 돌아간다.
이른바 팀 분위기만 망칠 뿐이다.
“현재로서 국내 전역자들로는 층분하지가 않는데.”
북한쪽은 이제 막 시작 단계이다.
또한 변수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인원들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채명천이 똑바로 바라보았다.
“북한 출신들은 배가 고프지.”
“그렇죠.”
“배가 고프다는 건 그 사람이 생존 경쟁에서 아주 집요하고 끈질긴 면을 갖고 있다고 봐야겠지.”
“어느 정도는.”
“내 말은 그런 북한 사정을 고려하여 전역을 한지 오래된 사람도 모집하면 어떻까?”
권총수가 상체를 반드시 세웠다.
“지금은 3년차까지 선발하는데 한 5년까지로 넓힌다면 인력 수급에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네.”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뭔가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쪽은 근무 체계가 우리와 달라 보통 7년이잖아. 특수부대는 10년이고.”
오랜 군생활을 한 만큼 군사적 지식이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기술은 오래 배우면 배운 시간 만큼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권총수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더니 번호 하나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지 20여초 기다리더니 말을 했다.
“조사장님!”
상대는 연길의 조식만이다.
“별일 없으십니까?”
“걱정 마십시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납니다. 라인도 교체했고 오늘도 두 사람을 접촉하기로 했습니다.”
“한 가지 제안을 드릴까 합니다.”
“말씀 하시죠.”
“전역 5년차까지 선발 규정을 늘릴까 합니다.”
“5년이면?”
조식만도 좀 길지 않느냐 하는 듯 더듬거렸다.
“특수부대는 보통 10년을 근무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죠.”
“10년 동안 군대에서 굴렀다면, 그것도 지독한 훈련만 집중적으로 받은 특수부대 출신자라면 5년의 세월 정도는 킬러의 본능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 죽이는 기능이 그때까지는 살아 있다고 봐야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뜻을 따라 그렇게 모집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역 연도를 넓히면 일주일이면 10여명 정도 더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권총수는 몇 마디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사님 생각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인력 확충의 해법인 듯 싶습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
벨이 울리는 소리에 권총수는 인터폰 화면을 보았다.
담배를 물고 있는 오민철이다.
“빨리 문 안 열고 뭐해 임마. 엉아 안 보여.”
인상을 쓰는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는 웃음을 지었다.
이제 예전의 오민철이다.
문을 열어주자 어찌나 대문을 세게 닫는지 현관 앞까지 꽝 소리가 들린다.
“저녁은요.”
“엉아 밥 먹었다. 커피나 한 잔 가져와봐.”
권총수는 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주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내린 커피이기 때문에 컵에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좋은 일 있어요?”
커피잔을 내려 놓으며 소파에 마주 앉았다.
“알면서?”
주식이 올랐다.
블랙잭 주식이 지난 사흘 사이에 19퍼센트 가까이 오르면서 시가총액이 육백억달러 턱 밑까지 쫓아간 것이다.
적지 않은 지분을 갖고 있는 오민철로서는 웃다가 입이 찢어져도 좋을 일이었다.
“주주로서 주식에 묶인 돈을 돈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내 자신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이 실감 안 난다.”
“형 이제 모든 것이 뜻대로 컨트롤 되지?”
“내가 언제는 안됐냐? 상황과 시기에 따라 선과 악의 이중성을 적절히 펼치는 이 엉아의 놀라운 연출력은 영원해 임마.”
“내일 당장 출국하자고.”
“내일!”
“지금 커피 마시고 돌아가서 짐 챙겨.”
“그러지!”
커피를 원샷으로 마시더니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권총수는 오민철의 마음 상태가 정상임을 확인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사우디 리야드행 티켓을 끊어 놓고 커피숍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시간 한 통의 국제전화가 울렸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사우디 자프라 가스전 현장 소장 유병구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입니까?”
전화를 받는 유병구는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예! 예!”
몇 번 대답을 하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유병구는 전원 스위치를 켰다.
현장 기숙사다.
2인 일 실로 사용하지만 소장방은 따로 있었다.
드르륵!
조립식 판넬로 지은 이 층 기숙사 맨 끝방에서 생활을 하는데 창문을 열었다.
낮과는 반대로 서늘한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온다.
딸깍!
담배 한 개비를 피워문 유병구 표정이 굳어있다.
어떤 근심거리가 있는지 한동안 담배만 피우더니 나직한 소리로 중얼 거렸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어.”
시위를 떠나 버린 화살은 무슨 수로도 잡을 수 없다.
설혹 화살이 목표를 빗나갔다고 해도 자신이 시위를 당겼다는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남은 방법이 있다면 한 가지 뿐이다.
뒤를 절대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뒤를 돌아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끈 유병구는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사우디 리야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이 마중을 나왔다.
상대는 다름 아닌 맥보란이었다.
“진짜 오마이 갓이군. 이게 얼마만입니까?”
오민철이 악수를 하며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오이사님.”
“축하?”
“아들을 낳았다면서요.”
자신은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뭘봐.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권총수가 퉁기듯 내뱉자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누가 비밀이래. 왜 내가 아들 낳을 걸 네가 떠들고 다니냐고.”
맥보란이 소리내어 웃으면서 이번에는 권총수와 악수를 했다.
“나 은퇴하면 블랙잭에 자리 하나 주시는 겁니까? 요즘 월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더군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블랙잭의 주가를 말하는 것이다.
“은행나무로 만든 최고급 책상을 놓고 기다리죠.”
오민철이 큰소리를 쳤고 일행은 크게 웃었다.
때마침 마중을 나왔던 블랙잭 사우디 지사장이자 중동파견 책임자인 해병수색대 출신 박호명이 머뭇거렸다.
“박 지사장님은 먼저 들어가시죠. 서기관님과 얘기 좀 하고 우린 저녁에 식사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박호명은 정중하게 허리를 구부려 예를 취한 뒤 청사를 또박또박 걸어갔다.
“캔틴은 복이 많은 분입니다. 하긴 그만큼 직원들에 대한 대우가 좋고 자긍심을 심어주니 그러겠지만.”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권총수가 물었는데 맥보란은 걸어가는 박호명을 보며 얘기했다.
“모르시나 본데.”
“뭘요?”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사흘전인가 사우디의 왕족 중 한 명인 알 카와위를 경호하던 아카데미 용병들과 블랙잭 직원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습니다.”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알 카와위가 대만의 카슝건설이 공사중인 고속도로 현장을 찾았죠. 그곳을 지키는 블랙잭 용병들이 저격의 위험이 있다면서 아카데미쪽에서 잠시 무장을 해제해 달라는 요구를
했나봅니다.”
“지들이 뭔데 개자식들.”
오민철이 대번에 흥분했다.
“그래서 어찌 됐습니까?”
“블랙잭 현장 책임자가 조금전 왔다간 박호명 지사장에게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죠. 박호명은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아카데미의 지시를 따르지 말라고 한 거죠. 만약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 발포도 좋다고 했다고 합니다.”
“흐흐흐! 그럼 그렇지. 우리 박 지사장이 한 성질 하지. 겉으로는 온순해 보여도 한 번 뚜껑 열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분이야.”
오민철은 무척 흐뭇한 모양이었다.
“블랙잭의 기세에 밀려 아카데미에서 물러섰죠. 물론 저격위험은 핑계일 뿐 블랙잭의 체면을 깎으려는 의도된 행동이었지만.”
“웃기는 자식들.”
오민철은 어깨를 활짝 폈다.
세 사람은 리야드 번화가에 있는 커피 숍에 앉았다.
권총수와 오민철의 표정이 굳어 있다.
맥보란은 커피잔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그가 접촉한 사람까지는 확인 못했지만 콩고에 입국했다가 출국한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름이 뭐라고 했죠.”
“유병구씨라더군요.”
오민철은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천왕이나 백서그룹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권총수의 얼굴에 어떤 감정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럼 일단 콩고를 간 목적이 사이드 쿠이치를 만나러 간 것이다. 그리고 사이드 쿠이치는 행동대장 격인 오른팔 아까올라에게 지시를 내렸다?”
“누구나 짜 볼 수 있는 시나리오죠.”
“아까올라가 콩고에서 출국한 기록은 있습니까?”
이번에는 권총수가 물었다.
“아뇨. 아까올라는 당시 콩고에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CIA에서 쫓고 있었지만 분명한 위치 파악은 못했죠. 단지 일본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알라다이스란 이름의 기록이 남아있는 걸
보면 동남아 어딘가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역추적을 하면?”
“그렇죠. 역추적을 해봤더니 마닐라였습니다.”
“마닐라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알라다이스가 김해공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했다. 백퍼센트네.”
오민철은 단정했다.
아무도 맞장구를 친다거나 맞다는 말은 않는다.
그렇다고 오민철의 의견에 거부나 틀리다는 표시도 하지 않았다.
“랭글리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권총수는 마지막 남은 커피를 마시고 나서 물었다.
“랭글리가 관심을 둘 사건임은 분명한데?”
그건 맞다.
피해자는 오민철이고 권총수는 운이 좋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