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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600화 (600/651)

제600화: 돌아오다(1)

유병모는 팔짱을 낀 채 사내들의 사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권총수가 나직이 묻는다.

유상모는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솜씨들입니다. 정말 정확하고 자세 또한 안정적입니다.”

유상모는 진정으로 감탄한 듯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사람은 전역한 지 1년이고 대부분 2,3년 이상인데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해군 유디티 씰에서 평생을 몸 담아 왔지만 북한 525부대 출신의 사격은 처음 본다.

현역시절 북한군 특수부대의 훈련영상을 가끔 보기도 하지만 솔직히 정체가 분명치 않다.

우리처럼 북한도 특수부대란 이름이 붙은 부대가 지천이기 때문에 영상만 보고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 눈 앞에서 보여주는 사격은 525부대의 능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권총수는 유상모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들을 데리고 온다면 우리 군과 국정원 모두 엄청난 이득을 얻을지도 모른다.

총에 맞았던 정찰총국 출신 위득수까지 포함한 다섯 명이 인천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번에도 앞서와 같이 국정원 소속의 버스가 이들을 태우고 사라졌다.

폭발사고로 폐차가 된 벤츠 대신 흰색의 렌드로버가 공항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당분간 연길에서 오는 인원은 없다.

조식만이 북한에서 오는 기존 라인을 대거 교체하거나 끊어 버린 것이다.

즉 일정기간 잠수를 타야 한다.

모든 사업을 접고 흐름을 면밀하게 관찰한 뒤 조용히 재개할 참이라고 했다.

“사업이긴 하지만 상당이 위험하군요.”

조수석에 앉은 유상모가 말했다.

“맞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블랙잭과 날 어떻게 해서라도 제거하려 들겁니다. 정 안 되면 외교 창구를 통해 블랙잭의 북한군 송출 사업을 중단시켜달라고 할 수도 있죠. 그래도 효과가

없을 땐 직접 어느 지역을 때릴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다는 말에 유상모 눈이 커졌다.

“북한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친구들입니다.”

권총수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북한은 정상국가가 아닙니다. 조선 오백 년은 물론 고려시대를 지나 삼국시대를 훑어봐도 지금 북한과 같은 희귀한 독재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런 나라를 상식으로 상대하려고 들면 안 되죠.”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위협하고 행패를 부리는데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살살 달래는 것입니다. 잘사는 형과 못사는 동생이 싸우면 누가 손햅니까? 쪽팔리는 건 형님이고 손해 보는 것도 형님이에요. 북한은 버릴 것도

잃을 것도 없지만 우린 너무 많잖아요. 동생이 시팔 저팔 하면서 칼들고 설친다고 같이 칼 뽑아 휘두르다 다치거나 죽으면 어떡합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남북한 모두 끝장이죠.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쟁이 무슨 오락 게임인줄 아는데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에 한 번 데려다 놓으면 왜 전쟁을 인류가 만든 최악의 게임이라고 하는지를 느낄 겁니다.”

파팟!

유상모의 눈이 갑자기 빛난다.

“이것이군요. 이런 것.”

갑자기 뭔가 느낀 것 같았다.

“이건 무역이지 전쟁이 아니잖습니까? 설혹 국제사회에 알려져도 누구도 전쟁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러나 남한은 계속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을 자국 국민으로 만들면서 그들의 군사적

속내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느니 오 맙소사.”

유상모는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대표님이야 말로 진짜 애국자입니다.”

“애국자 되기 위해 이 사업하는 것 아닙니다. 난 그저 돈 버는 것 말고는 어떤 꿈도 없어요. 어떻게 시작하다 보니 일이 이렇게 흘러갈 뿐.”

부우웅!

차는 떨어지는 석양을 뒤에 두고 저 멀리 사라졌다.

이번에도 네 명에 대한 국정원 조사에서 이상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정찰총국 출신 위득수는 좀 더 병원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입원을 시켰다.

그러는 가운데 마침내 오민철이 퇴원을 했다.

완전한 몸은 아니지만 목발을 이용해 충분히 걸었는데 표정은 서늘할 만큼 굳어 있었다.

아직까지 몇 번의 위기에서 살아났지만 그때마다 미안함을 덮고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해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이번에는 꽉 다물고 있다.

유일한 말은 찾아온 아내 지소현에게 아들 잘 있느냐는 것이 전부였다.

다음 날부터 한방치료와 함께 권총수의 내공을 이용한 치료가 시작되었다.

오민철은 오전 오후로 나눠가며 한의원과 권총수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받았다.

권총수는 오민철의 대표실에 눕혀 놓고 치료를 했다.

현대 의학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 경락이 막혀 있었다.

즉 강한 폭발로 충격을 받은 경락이 막혀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고 그로인해 혈액 순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의원은 침으로 경락을 뚫었고, 권총수는 내공을 이용해 상처 입은 경락을 타통 시켰다.

***

거친 숨소리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공기를 깨웠다.

한 사내가 가파른 산길을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울 만큼 급경사의 산길을 맹렬한 속도로 올라오는 사내의 온 몸은 땀으로 젖었다.

파파팍!

순식간에 바위를 넘어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더니 잠시 후 산꼭대기 정상에 나타났다.

“35분 22초.”

사내는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스톱워치를 눌러 이곳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을 살폈다.

시간으로만 판단한다면 거의 정상이다.

군시절 휴가를 나왔다가 이곳 해발 580미터 금전산 꼭대기까지 뛰어오르면 보통 35분에서 37분이 소요되었다.

707은 휴가라고 마냥 뒹굴며 자고 친구들 만나 술만 마시다 귀대하지 않는다.

마시고 또 마시는 취중 10일을 보내고 부대에 들어가면 체력 저하로 엄청난 고생이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휴가기간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체력단련을 생활화하는데 당시 아침마다 고향에서 가장 높은 금전산을 올랐다.

그런데 그때 가장 몸 상태가 좋았을 때보다 조금 빠르다.

그건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던 오민철은 앞에 있는 소나무를 향해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한때 태권도 선수가 되는 인생을 설계했던 적이 있었다.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퍽퍽!

운동화를 신은 좌우발이 한 번씩 소나무를 찍을 때마다 나무가 흔들리고 산이 울었다.

5분간 소나무에 발길질을 하던 오민철은 이번에는 허공을 향해 발을 들어 올렸는데 그건 차는 것이 아니라 젖고 있었다.

순백의 화선지 위에 검은 먹을 듬뿍 묻힌 붓 한 자루가 막힘없고 거침없이 달리는 것 같았다.

사사삭!

체조인 듯 무용인 듯 한바탕 춤판을 벌이더니 산을 내려갔다.

시골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오민철은 멈칫했다.

낯익은 랜드로버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재빨리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권총수가 마지막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는 백일홍 아래 서 있었다.

“언제 왔어?”

“지금!”

권총수는 돌아서며 덧붙였다.

“아버지 읍내 나가셨어. 경운기 끌고.”

“아 그 노인네, 위험하다고 경운기 끌지 말라니까.”

인상을 쓰는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가 말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분이야. 그렇게 사시다 돌아가시는 것이 농민의 운명인데 이제와 뭘 어쩌자는 거야.”

“안쓰럽잖아.”

“안쓰럽다고 주둥이 뻐끔거리는 붕어 수면 밖으로 꺼내나봐. 바로 죽지. 어지간할 때까지는 일을 하게 두는 것이 노인 건강에 좋다던데 뭘.”

오민철이 샤워를 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다 깜짝 놀란다.

“뭘 이렇게 많이 사온거야.”

“조용히 해.”

더 이상 잔소리 말라는 뜻이다.

오민철이 깨끗하게 씻고 나왔다.

“어딜 가는데?”

윗도리를 들고 나서는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가 물었다.

“아무리 바빠도 모처럼 고향에 왔는데 소주는 한 잔 해야지. 읍내 전어 나왔더라.”

권총수는 히죽 웃더니 차에 시동을 걸었다.

두 사람은 랜드로버를 타고 읍내로 나갔다.

전어 회무침과 구이를 놓고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소주잔을 비웠다.

이미 소주 두 병이 비워졌고 세 병째 마개를 땄다.

“언제 출국 할건데.”

“올라가자마자 가야지.”

오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권총수는 슬쩍슬쩍 오민철을 살핀다.

평소에도 말이 많지만 술이 들어가면 결코 자신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오민철이 조용하다.

옛날보다 말이 확 줄어들었다.

뭘 묻거나 얘기를 하면 단문단답이다.

이번 사고의 충격이 크긴 큰 모양이었다.

하긴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다.

기적도 종류가 있다고 했다.

드물게 한 번씩 살아나는 것이 기적이라고 정의한다면 오민철은 결코 거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외과의사 생활 20년이지만 오민철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오민철이 최초 인천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심장과 맥이 거의 정지 상태였다.

너무 위중하여 부랴부랴 서울로 옮겼지만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 살려 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도 오민철 본인도 모르고 있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마지막 삶의 불꽃을 권총수가 피워 놓았다는 것을 말이다.

내공을 담은 추궁과혈이 오민철이 회복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형성해 놓은 것이다.

피식!

갑자기 오민철이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왜 그러느냐고 권총수가 바라보자 오민철이 전어 한 마리를 손에 들고 우걱 씹으며 말한다.

“그냥 여기서 농사짓고 살다 늙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럼 여기서 살아. 나 혼자도 충분히 회사 운영할 수 있어.”

“임마.”

오민철이 노려보자 권총수는 말을 이었다.

“형이 인생의 허무를 깨닫고 농담 한마디 한 걸 그렇게 받아쳐야겠냐? 싸가지 없는 건 여전하다?”

일부러 말 꼬리를 잡고 늘어져 보았다.

술좌석 분위기가 답답했기 때문이다.

“형, 대력금강심법에 보면 마음을 가라 앉히면 내가 보인다는 말이 있어. 형 지금 감정으로는 어디도 데려갈 수 없고 위험해.”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용병이야. 용병은 항상 총구 끝을 밟고 살아가지. 죽다 살아나는 일이 일반인에게는 드물겠지만 우린 흔해. 흔한 일에 분노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거야.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이 있지 말란 법도 없는데, 마음 다스리면 올라와.”

권총수는 그대로 식당을 나가버렸다.

***

벌교에서 올라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권총수는 채명천이 가져온 보안요원 선발에 관한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계속 자료를 넘기다 어느 한 장의 서류에 오랫동안 시선을 고정했다.

“으음!”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상체를 소파 뒤로 붙였다.

중동이 다시 시끄러워 지고 있었다.

해묵은 싸움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고 정치적 불만을 갖고 있는 세력들의 자살이나 차량을 이용한 폭탄테러가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미국은 그 지역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거의 뉴스 화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에 권총수는 무게를 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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