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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99화 (599/651)

제599화: 깨어나다(2)

국정원의 한정된 예산에서 유족이 만족스러워 할 만큼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건 어려운 일인데 권총수는 자신의 지갑을 열겠다고 한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도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야겠습니다.”

어색해하는 정현웅을 향해 말했다.

“돈 걱정 마세요. 나중 검찰이나 국정조사에서 문제가 될 소지 있는 그쪽 자금을 쓰느니 내 돈 쓰십시오.”

윗사람들이 가장 조심하는 것이 공금 유용이라는 죄다.

특히 국정조사와 검찰에 누군가 찌르면 이른바 여지없이 조사를 받고 일단 언론에 오르내리면 거의 옷을 벗게 된다.

정현웅은 깍듯하게 허리를 구부려 예를 취한 뒤 사라졌다.

정현웅이 사라지고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간다.

한 번...

두 번...

얼른 전화를 받지 않자 약간 불안해졌다.

여섯 번의 신호가 가도 받지 않아 끊고 다시 한 번 해보려고 할 때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반가운건가.

상대는 다름 아닌 조식만이었다.

“별일 없으십니까?”

“무슨 얘기 들은 모양이군요.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입니다.”

국정원 사건은 자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라인은 건재하다고 말했다.

“몸 조심 하십시오.”

“어느새 네 명을 확보했습니다. 사실 며칠전에 평양을 다녀왔거든요.”

평양에 조식만과 선이 닿고 있는 노동당 간부 몇이 있다고 했다.

다달이 그들에게 일정한 돈을 지불하면서 보호를 받는데 정찰국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귀띔은 받았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권총수는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 아닌가’

북한 당국이 가만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결가부좌하고 운기조식을 취했다.

진기의 흐름은 원활했고 몸은 가볍다.

일주천을 끝낸 권총수는 담배를 한 개비 피우고 곧장 안으로 들어가 여행용 작은 가방에 속옷 몇 가지를 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유상모 이사와 같이 연길행 비행기에 올랐다.

유상모는 전역을 한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얼굴에 군인 티를 숨기지 못했다.

강팍한 인상에 까만 피부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번득이는 눈빛은 누가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유상모와 앉아 군시절 얘기를 주고 받는 사이 비행기는 연길 공항에 도착했고 마중나온 조식만의 차에 올랐다.

공항에서 조식만에게 유상모를 소개했지만 그는 운전중 자꾸 룸미러로 뒤를 바라본다.

“유이사님!”

그러더니 조식만이 입을 열었다.

“예 사장님!”

“사람 죽여봤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유상모가 멈칫했고 권총수 역시 룸미러를 통해 조식만과 눈을 마주쳤다.

“전혀.”

잠깐 당황했지만 유상모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제가 왜 그런 질문을 던지자면 얼마전부터 평양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이틀 전 평양을 다녀왔다고 전화상으로 말했다.

“북한의 525부대 말입니다. 전쟁만 일어나면 가장 먼저 청와대를 접수하겠다고 호언하는 부대죠. 직접 사람을 상대로 방아쇠를 당기고 무성무기를 이용해 제거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상대로?”

“아직 소문에 불과하지만 최근에 떠도는 걸 보면 사실이라면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이는데 정치범들을 상대로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정치범이란 김정은에 대한 지지나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남한처럼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내듯 김정은을 비판하는 식은 있을 수 없고 당의 방침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다거나 김씨 삼부자에 대한 공경의 마음이 모자란 이를 정치범으로

분류한다.

용서와 관용보다는 처단을 내 세우는 것이 김정은의 통치 방식이다.

그런면에서 볼 때 우리 눈에는 별것 아닌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놔두면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적색분자들인 것이다.

“정치범을 상대로 사냥 연습을 한다는 건 크게 낯선 소식은 아닙니다. 과거 남미나 동구권 독재자들은 반대자들을 장난감처럼 때리고 죽이고 살육했다는 기록이 있죠.”

권총수가 대답했다.

“북한에서도 몇 번에 걸쳐 해외파병을 노린 모양입니다. 실전 경험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그때마다 미군의 위성에 걸려 도중 포기했다더군요.”

“사람을 죽인다고 하여 실전 경험이 쌓이는건 아니죠.”

유상모가 말했다.

“그건 살인일 뿐입니다. 나와 같은 실력을 지닌 상대와 똑같은 조건에서 싸워 이기는 것이 실전 경험인 것이지.”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외인부대 시절 자신이 속한 외인제7중대장 튀랑 대위가 했던 말이다.

나와 더 강한 상대와 싸울수록 훈련효과는 크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을 죽여보는 경험을 얻고자 비무장 상태인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거나 칼을 휘두르는 건 살인이며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조식만이 유상모에게 사람 죽여 봤느냐는 질문을 던진 건 525부대가 그 만큼 북한의 정예라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차에 총 있습니까?”

“물론 있죠.”

차는 사무실을 들리지 않고 곧바로 전번에 갔던 사격장으로 향했다.

미리 4명의 525부대 출신 탈북자를 그곳에 대기시켜 놓았다고 했다.

비포장 길을 한참 올라 인적이라고는 없는 깊은 숲속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주위를 한 번 스윽 둘러 보았고 멀리 보이는 산막은 여전했다.

권총수는 트렁크 쪽으로 돌아가더니 문을 열고 AK-74 한 정을 꺼냈다.

옆에 있는 탄창을 담은 포대에서 30발들이를 꺼내 총에 채워 넣는다.

권총수는 총을 갖고 멀리 떨어진 표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가 싶었는데 번개처럼 돌아서서 왼쪽 숲속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두르르륵!

“엎드려요.”

사격과 동시에 외쳤다.

유상모와 조식만은 재빨리 풀숲에 몸을 감췄다.

뚝!

총소리가 고요하던 숲속을 한 번 뒤흔들었고 권총수는 천천히 자신이 사격을 했던 쪽을 향해 걸어갔다.

200여미터 정도 걸어간 권총수가 바닥을 보았다.

두 사내가 쓰러져 있다.

숨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둘 모두 권총을 손에 쥐고 있었다.

다가온 조식만과 유상모의 눈이 커졌다.

권총을 갖고 있는 걸 보아 분명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서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권총수는 두 사내의 손에 쥐어진 권총을 빼앗았다.

사내들은 저항하지 못했다.

겨우 숨만 쉬고 있을 뿐 온 몸이 벌집처럼 구멍이 나 있었다.

스윽!

권총수는 사내들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거리낌이 없고 지갑을 꺼내 이것저것 살피고 읽어보는 권총수의 자연스런 행동에 유상모는 눈을 빛냈다.

‘이래서 경험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이군’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놓고 주머니를 뒤진다는 건 결코 쉬운 행동이 아니다.

청해부대 파견 시절 죽여 보지는 않았지만 시체들을 살핀 적은 있었다.

죽은 시체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는 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인간의 본성이다.

같은 인간이 죽은 인간의 몸을 뒤진다는 건, 특히 망자에 대한 예의가 깍듯하기로 소문난 우리 정서에서는 더욱 어렵다.

등골이 쭈뼛하고 묘한 냉기가 목을 덮는다.

“정찰총국!”

권총수가 영어로 된 신분증 하나를 보더니 해석하듯 말했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아아!”

조식만은 뭔가 알았다는 듯 신음을 터뜨렸다.

두 사내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 협조자로 있던 조선족 두 명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권총수로부터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권총수를 노리고 다가온 것이다.

권총수가 연길을 오는 걸 아는 사람은 자신 말고는 없다.

권총수의 말처럼 남한의 고정간첩들이 권총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봐야 했다.

그들이 아니면 이쪽에서 이렇게 빨리 동선을 간파할 수 없다.

“아마 나보단 사장님을 감시했을 것입니다.”

화악!

조식만이 소스라쳤다.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고 말하는 권총수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권총수는 별 재주도 아니라는 듯 슬쩍 웃었다.

“내 이름은 알겠지만 남한의 고정간첩들은 아직 동선을 쫓을 만큼 은밀하지 못해요.”

즉 이들이 여기 숨어있는 건 조식만을 미행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접근해온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

조식만의 안색이 굳어졌는데 사격장 위치까지 안다는 건 자신의 라인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의미했다.

동선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위험한 사업에 동선이 드러났다는 건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서둘러 모든 걸 바꿔야 한다.

“이 사람은 틀린 것 같고.”

권총수는 왼쪽 사내를 툭 밀치듯 하더니 오른쪽 사내의 가슴의 혈도 몇 곳을 눌렀다.

파파팍!

순간 그토록 흐르던 피가 멈추면서 사내는 잠시 호흡의 안정을 찾았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권총수는 사내를 엎드리게 하더니 명문혈에 장심을 대고 진기를 주입했다.

우욱!

사내는 핏덩이를 토해냈다.

털썩!

다시 바르게 눕힌 권총수가 조금 전과는 다르게 빛나는 눈으로 보는 사내를 내려다 본다.

“이름을 말해 보겠습니까?”

사내는 권총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눈동자에 어떤 분노나 적대감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바짝 마른 입술을 꿈틀거린다.

“어...어떻게?”

자신들이 숨어 있었는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다.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내게는 쉬운 일입니다.”

권총수는 담배 하나를 꺼내 사내의 입에 물려 주었다.

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는데 담배가 밑에 있고 불은 위로 타오르다 보니 얼른 붙여지지 않는다.

쭈욱!

사내도 급하게 몇 번 빨더니 마침내 불이 붙었고 길게 연기를 내 뿜는다.

“내가 누군지 아시죠?”

“사막의 흑새.”

“북한에서는 날 뭐라고 평가합니까?”

은근히 궁금했다.

“그냥...죽여야 할 인물이라고만 하죠.”

“좋습니다. 내 말 잘 들으세요.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하면 당신은 살아 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토록 하여 최소한 1년 연봉 50만달러는

약속드리죠. 우리돈으로 계산하면 대략 6억이 조금 못될 겁니다. 그 돈이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도 얼마든지 도울 수 있고 브로커를 통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이든 데리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사내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정보요원인 만큼 50만 달러가 얼마나 큰 돈인지 알고 있다.

1년에 50만 달러를 벌 수 있다는 건 꿈에서조차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5분의 여유를 드리죠. 5분에서 1초만 지나면 행동에 들어갑니다.”

권총수는 일어나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조사장님 서둘러 라인을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식만은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번 노출된 라인은 순식간에 파괴된다.

라인 하나를 세우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투자 된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이런 사업은 절대 성공 할 수가 없다.

라인 멤버중 한 명은 중국 공안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비밀을 지켰다.

물론 조식만은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새...생각할 것도 없군요. 당신 제의를 받아 들이겠습니다.”

누워 있던 사내가 말했다.

권총수는 조식만에게 말했다.

“우선 병원부터 데려다 주고 오시죠.”

알았다면서 조식만이 사내를 태우고 숲을 떠났고 유상모와 권총수는 사막에서 나온 네 사내를 불러 사격을 지휘했다.

드르륵!

탕탕탕!

총소리가 숲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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