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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98화 (598/651)

제598화: 깨어나다(1)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지금 가죠.”

권총수는 가레스에게 오민철이 깨어났다는 얘길 하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가레스는 사라지는 권총수의 흰색 랜드로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누굴까?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라는 CIA조차도 거래를 원할 뿐 결코 충돌하고 싶어 하지 않은 사내를 노린 인물이?”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누군가 거액을 주고 청부를 한 계획적 테러이다.

CIA분석실에서도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어서 지상 주차장에 자리가 많이 비었다.

권총수는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렸다.

로비를 들어서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 직원중 한 명인 유석철이 다가왔다.

“대표님!”

“유석철씨.”

유석철은 재빨리 권총수를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3층에서 내린 유석철은 담당의사의 방을 노크했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권총수가 나타나자 담당의사는 허리를 굽히며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

권총수로부터 이미 천만원을 받았다.

‘살려만 주시오’

그 한마디는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수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책상 서랍에 현금 천만원이 있었다.

치료비는 병원 몫이지만 서랍 돈은 교수님 것 아닙니까 하면서 넣어 놓은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오 이사님이 깨어났다고 들었습니다.”

“눈을 뜨거나 말을 할 정도는 아닙니다. 고개도 전혀 돌리지 못하고 그야말로 의식만 차렸습니다. 꼬집으면 반응을 보이는 정도죠.”

그것만도 어딘가.

그건 살아나는 첫 순서이다.

그리고 눈을 뜨고 사람을 쳐다보고 얘기를 나누는 순서를 거쳐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장 중요한 단계인 의식을 차렸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했다.

담당의사는 깜짝 놀라며 같이 일어나 예를 취했는데 권총수가 어떤 사람인지 조사해 보았고 어마어마한 거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인물과 인연을 맺는 것만도 자신에게는 황홀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닷새 전에는 갑자기 병원장에게 불려갔다.

이곳 태산 병원은 국내 굴지의 태산그룹 산하 태산복지재단이 운영한다.

즉 태산그룹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셈이다.

병원장이 자신을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얼마 전 태산건설에서 50억달러, 한화 약 6조원 가까운 초대형 가스전공사를 이라크 정부로부터 따냈다.

문제는 이라크 정국이 여전히 불안하고 테러가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에 보안요원들이 필수다.

아카데미를 포함한 세계적인 보안기업들이 즐비하지만 우리와 모든 것이 똑같은 블랙잭을 원한다.

우리나라 기업이어서라는 동질성 따위도 아니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우아한 의미도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동포애도 무조건 아니다.

누가 뭐래도 역사는 짧지만 블랙잭은 지금 현재 전 세계 보안기업 신뢰도 1위에 올라 있다.

그러다 보니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돈 보따리를 싸들고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만 인력 부족으로 공급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로서는 테러나 공격으로 현장이 한 번 멈춰 설 때마다 천문학적인 금전적 손실을 입는다.

중동사업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테러다.

한 번 공사를 수주 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피해를 입어도 소속 국가나 발주회사부터 도움이나 손해 배상은 없다.

온전히 입찰회사의 손실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민철이란 사람이 블랙잭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굉장하고 수술 결과가 좋으면 건설쪽 담당자들이 접촉을 해볼 생각이라는 것이 병원장의 말이었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결과로 쭉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평소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때는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잘 돌아가던 혀가 오늘따라 굳어 버린다.

멋지고 상대를 확 끌어 당길 수 있는 표현을 해보고 싶은데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병원장의 언질도 있었고 하여 담당의사는 최선을 다해 좋은 말과 부드러운 웃음으로 권총수를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면회는 아직 이르다.

그렇다고 들어가지 못할 일은 없지만 굳이 담당의사의 말을 거슬리기는 싫었다.

보이지 않는 중환자실 창가에 잠시 서 있던 권총수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직원에게 말했다.

“수고 좀 해요.”

권총수는 손을 들어 보이고 복도를 걸어갔다.

***

평양에 비가 내린다.

아직 장맛비는 아니지만 올 여름 장마가 어느 때보다 길 것이라는 북한 기상청 예보가 있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군정지도부장 오일정은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작년의 악몽을 떠올렸다.

시간당 100밀 리가 넘게 쏟아지는 폭우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이 사라졌다.

대동강이 범람하여 평양은 그야말로 수상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입은 피해를 아직 완전히 복구하지 못했는데 올해 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에 길게 한숨을 쉬었다.

군정지도부장.

군과 정치 모두를 관여하는 자리다.

현직 군인이며 그의 계급은 상장이다.

우리로 치면 중장 정도 되는 계급인 것이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리더니 인민복 차림의 사내가 들어섰다.

수행비서 마이동이었다.

“알아봤나?”

“그렇습니다. 부장님.”

“정말이던가?”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입니다.”

오일정은 소파에 앉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마를 찡그리며 뭔가 생각하는 듯 침묵이다.

오일정의 아버지는 김일성의 최측근으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을 지낸 오진우다.

‘아버지 같았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일이 생기면 그는 항상 죽은 부친을 떠올린다.

부친은 위기 때마다 기가막힌 전술로 상황을 뒤집으며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자신 또한 그런 아버지를 보고 배우며 자랐다.

그러나 지금은 뾰쪽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보름전 보고서 한 통이 올라왔다.

노동당 정찰총국(우리의 국정원)에서 보내진 건데 발신지는 연길 지부였다.

탈북자중 525 정찰대대 출신들이 블랙잭이라는 보안기업과 계약을 맺고 남한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525정찰 대대는 단순히 체력 좋고 사격 잘 한다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첫째도 출신성분, 둘째도 출신성분이다.

당과 인민, 그리고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을 향한 충성심이 갖춰져야 들어갈 수가 있다.

믿어지지가 않아 비서 마이동을 직접 현지에 파견했고 지금 돌아와 보고를 한 것이다.

“쳐죽일 간나새끼들.”

오일정은 버럭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명단 확보했나?”

“수집 중입니다.”

“조국을 배신하다니.”

모든 나라가 그러하듯 525정찰대대 요원 한 명을 길러내는데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인민이 굶어죽고 기름 부족으로 노동당 간부들 차량 운행이 멈추기도 하지만 그들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고깃국에 쌀밥은 물론이려니와 전투 식량도 그들 치는 따로 제공된다.

총기를 포함한 전투 장비 역시 미국의 네이비씰 못지 않는 지원을 할 만큼 김정은이 가장 애지중지 하는 부대다.

오죽하면 그들 한 명과 남조선 1개 사단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겠는가.

뿌드득!

오일정은 사무실이 울릴 만큼 이를 갈았다.

“명단 빨리 뽑아와. 부모건 자식이건 인민의 이름으로 모조리 쳐 죽여 버려야 돼. 이 사실을 위대한 위원장님께서 아신다면 얼마나 슬퍼 하실까. 인민의 피와 땀으로 먹고 자랐으면서

남조선에 몸을 팔아, 창녀만도 못한 호로 개자식들.”

오일정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

마침내 눈을 떴다.

마스크를 하고 들어선 권총수를 올려다 보는 오민철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총...수야!”

“말하지마!”

말할 힘도 아껴 빨리 회복해야한다.

“형!”

권총수가 내려다보며 말했다.

“살아줘서 고마워.”

푸륵!

오민철의 눈썹이 떨리더니 주륵 눈물을 흘려내린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온 몸이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켰다.

외인부대에서 첫 만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난 권총수는 그야말로 오민철에게는 진주고 보석이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로 말 한 번 속 시원하게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때 권총수를 만난 것이다.

직설적이고 다혈질적인 오민철에 비해 어려서부터 보육원에서 꾸중만 듣고 자란 권총수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둘은 몇 번 싸움직전까지 갔지만 주위 동료들이 말려 험한 상황은 만들지 않았다.

충돌이 잦을수록 그만큼 서로에 대한 애정의 깊이도 깊어졌고 위험하고 힘든 훈련 속에 두 사람은 완전한 형제가 되어 버렸다.

의무 복무기한을 마치고 용병이 되어서는 둘은 항상 동일체였다.

특히 오민철이 절대절명의 사지에 빠졌을 때 권총수는 자기 한 몸 사리거나 아끼지 않고 위험속으로 뛰어들었다.

비록 강호의 무공을 알고 있다고는 해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즉 강호무사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지만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은 것이다.

“형 쉬어.”

권총수는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웃어 준 뒤 돌아섰다.

“범인 가만 놔둬. 내가...나가서 잡을 거야.”

등 뒤에서 오민철이 혼신을 다해 내뱉었다.

척!

권총수는 걸음을 멈췄다.

그동안 오민철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적지 않게 들었지만 지금처럼 뼈를 때린 적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이 자신의 손으로 범인을 잡아 죽이겠다는 서릿발 같은 각오였다.

탁!

권총수는 문을 닫고 중환자실을 나갔다.

‘그래 형’

권총수는 중환자실 앞을 지키고 있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어갔다.

‘추적은 내가 해 놓을 테니까 모가지 자르는 건 형이 해.’

쨍!

권총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병원 로비를 걸어나가는데 갑작스럽게 정현웅이 나타났다.

“국장님!”

권총수도 깜짝 놀랐는데 병원까지 자신을 찾아온 걸 보면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어제밤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졍현웅이 말했다.

“연길에서 우리와 손잡고 일하는 협조자들인데.”

“북한쪽에서 벌써 알아차리고 사냥이 시작됐다는 뜻입니까?”

“대표님의 사업을 막으려는 거죠.”

권총수는 아무런 말이 없다.

“대표님께서 언급했다시피 단순한 인력 확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약 고액의 임금을 받고 서방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평양에 들어간다면 525 정찰대대 뿐만 아니라 다른 부대

현역들까지 움직이지 말란 법이 없죠.”

권총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현역이 움직이면 곧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죠. 소문은 전군에 퍼질테고.”

권총수는 벤치에 앉더니 담배를 물었다.

딸칵!

그러자 정현웅이 재빨리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준다.

“고맙습니다.”

후우!

연기를 뿜으며 권총수가 조용히 말했다.

“희생자들은?”

“조선족들이죠.”

“회사 자금이 어렵다면 내 주머니에서 꺼내 줄테니 유족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줍시다. 그래야만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우릴 돕겠다고 나설 사람들이 생길 것 아닙니까?”

정현웅의 눈이 빛났다.

돈은 첩보 세계에서도 최고의 힘을 갖고 있었다.

충분한 지원금은 완전한 충성심을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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