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6화: 새는 빗물(1)
쉬이이!
담배꽁초는 채불수를 향해 날아갔으나 빠르지는 않았다.
슥!
채불수는 본능적으로 피했고 날아간 담배꽁초는 뒤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서 있는 조문철 형사와 김황식 형사에게 날아갔다.
두 사람 또한 담배꽁초가 날아오자 슬쩍 피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놀라 커졌다.
휘이이!
두 사람을 지나친 담배꽁초는 유턴하듯 허공을 돌아 다시 날아왔다.
채불수와 조문철의 눈동자가 천천히 담배꽁초를 따라 권총수를 향한다.
탁!
권총수는 날아온 담배꽁초를 다시 손가락 사이에 쥐더니 길게 한 모금 빨아낸다.
채불수의 눈이 흔들린다.
자신과는 5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고 뒤에 있는 조문철과 김황식이 있는 곳까지는 20여미터 정도된다.
담배 꽁초를 20미터까지 퉁겨 낼 수 있는 사람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던져 버린 담배가 다시 날아오도록 기교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후우!
권총수는 덤덤한 얼굴로 담배를 피웠다.
“이기어검(以氣馭劍)이라고 하죠. 검이 아닌 담배 꽁초였으니 이기어연초가 되겠군.”
권총수는 웃으며 일어나 병원으로 걸어갔다.
권총수가 떠나자 조문철과 김황식이 다가왔다.
“뭐라는 겁니까?”
채불수는 아무 말 않고 권총수가 앉았던 벤치로 다가갔다.
다리를 꼬고 앉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봤어?”
김황식이 말했다.
“담배꽁초 말입니까? 예!”
“사기 아닐까요?”
조문철이 끼어든다.
정말로 사기라고 생각해서 내뱉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가진 상식이나 과학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세 사람은 조금 전 담배꽁초 현상을 놓고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누구도 거짓이다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근거는 대지 못했다.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정도면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 해외 출장을 나갔다고 어떻게 둘러댈 수 있지만 전화까지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불안해 할 것이다.
연락을 받은 아내 지소현이 황급히 달려왔다.
“대표님!”
권총수는 다가온 지소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수님.”
이상했다.
왜 이럴 때는 그렇게 할 말이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그 평범한 사과의 말도 좀체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마치 언어기관이 마비된 것처럼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권총수는 오민철의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 일체 면회가 되지 않으나 의식은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평소 그토록 능숙하게 잘 되는 거짓말인데 오늘은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마 지소현이란 여자의 성품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지만 과거에서 온 듯 남자 일에 꼬치꼬치 묻지 않고 이래라저래라 간섭이 없다.
늦으면 사정이 있어 늦은 것이고, 술을 마셨으면 비즈니스가 있어 마셨을 것이라고 이해해버리는 여인이다.
그렇기에 더욱 아내에게 상처나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정직해지고 노력하게 되더라고 오민철은 말했다.
“언제쯤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담당 의사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던 지소현이 입을 열었다.
“그만 가볼게요.”
“벌써 가십니까?”
“네!”
지소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병원 앞에 빈 차로 주차되어 있는 택시에 올랐다.
부우웅!
떠나는 택시를 바라보던 권총수는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무척 현명한 여자다.
자신이 여기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권총수에게 부담만 준다는 걸 꿰뚫어 보는 것이다.
또한 권총수의 말에 대해 설혹 의문스러운 점이 있어도 그냥 눈감아 버린다.
물론 권총수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권총수란 사내가 살았다고 해도 믿고 죽었다고 말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인물이라는 걸 알고있는 것이다.
“흐흠!”
지소현의 얼굴에 감정을 숨기고 최대한 평온한 얼굴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보였다.
권총수는 핸드폰으로 중환자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다시 한 번 당부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갔다.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권총수가 회사로 돌아오자 강순태 경리과장이 기다렸다는 듯 결재서류를 한 아름 들고 왔다.
평소 같으면 환한 얼굴로 대표님 빨리 처리해 주십시오 할텐데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런 얼굴은 강과장에게 어울리지 않아.”
권총수가 사인을 하며 말했다.
“이사님 상태는 여전합니까?”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어.”
즉 자신의 선에서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의미였다.
강순태는 어금니를 물었다.
“경찰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범인 잡을 생각은 않고 찾아와 귀찮게 하더군. 그들 말을 빌리면 난 아주 패죽일 놈이었어.”
“그런 씹새...”
그런 씹새끼들이라고 욕을 하려다 대표 앞이라는 걸 깨달은 듯 얼른 입을 다문다.
그렇다고 계속 화를 삼키지는 않았다.
“그 자식들은 무식합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목숨거는 떨거지들입니다.”
권총수는 마지막 서류를 사인하며 빙긋 웃었다.
“공감해요.”
“그만 가보겠습니다.”
사인이 난 서류 파일을 들고 대표실을 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채명천이 들어왔다.
용병 경험은 없지만 오랫동안 업무를 처리한 탓에 채명천의 전장을 보는 안목과 시장의 흐름을 보는 눈이 매섭다.
딸칵!
권총수가 담배를 물고 창문을 열었다.
“권 대표.”
채명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생각났어. 그리고 직접 찾아가 확인까지 했어.”
“뭘 말입니까?”
“내가 꿈 얘기 했었잖아. 권대표 벤츠가 뒹굴었는데 운전석에서 엉뚱한 친구가 나오더라는 꿈 말이야.”
권총수는 약간 웃는다.
환갑을 목전에 둔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꿈 얘기를 꺼내자 조금 우습기도 했다.
“이 꿈은 필시 이번 사고와 어떤 관련이 있다 싶어 지리산 신령님에게 찾아갔지.”
“지리산 신령님?”
“내가 자주 다니는 점 집인데 지리산 뱀사골에서 20년을 공부했고 중국을 통해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 몰래 목욕까지 하고 온 분이지. 그분 말씀이 평범한 꿈이 아니라는 거야.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지.”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접혀진 종이를 꺼내 펼쳤는데 자신이 꿈에 보았던 벤츠 운전사 얼굴을 몽타쥬처럼 그린 것이었다.
물론 전문가에세 부탁하여 작성했다.
“어제 밤 검찰쪽에 있는 후배를 만나 식사를 했지.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내가 이걸 내밀며 혹시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한참을 살피더니 낯이 익다는 거야.”
하지만 식사가 끝나도록 누군지는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어제 같이 식사를 한 검찰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배님 그 사람 기억 났습니다.”
“누구?”
“어제 선배님이 보여준 몽타주 인물 말입니다. 백서그룹 권혜림 회장 운전기사 같습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작년인가 백서그룹 비자금 사건이 있었거든요. 물론 불기소 처리로 끝났지만 당시 권혜림 회장을 태우고 왔던 기사로 기억합니다.”
아침을 먹고 난 채명천은 곧장 백서그룹 사옥이 있는 테헤란로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지인에게 빌린 고성능 카메라를 이용해 먼지털이로 차를 닦고 있던 운전기사의 사진을 찍었다.
“이것도 보지.”
이번에는 인화한 사진이었다.
“비교해 보면 거의 빼닮았죠.”
권총수는 몽타쥬와 사진을 놓고 살폈다.
닮긴 했다.
하지만 몽타쥬가 불확실한 지는 몰라도 백 퍼센트라고 확신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더욱 꿈에 나타났다고 의심을 한다는 건 사람들이 웃을 일이었다.
“생각 좀 해 봅시다.”
권총수는 사진들과 몽타주를 소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지이잉!
전화가 걸려왔다.
정현웅인데 11명 모두 탈북자법에 의해 전원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적을 회복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11명을 넘겨주겠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언제 시간 좀 내시죠. 제가 식사 한 번 대접하겠습니다.”
“핫! 대표님과 식사라면 영광이죠.”
권총수는 전화를 끊고 채명천을 향해 말했다.
“오늘 중으로 옵니다 곧장 출국할 수 있도록 서류 준비해 주십시오. 미국 입국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지.”
채명천이 나갔다.
권총수는 소파에 앉아 맥보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맥보란보다 미국에서의 권력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으나 이런 일은 실무진들이 빠르다.
“맥!”
“오우 캡틴!”
맥보란은 굉장히 반가운 목소리였다.
“요즘 중동이 다시 시끄러워지던데?”
“예전에는 미국과 이슬람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시아파와 수니파의 싸움이고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놓고 자신들끼리 부딪치는 것입니다.”
“위험한 싸움이군요.”
권총수의 말에 맥보란이 멈칫했다.
권총수의 말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중지란이랄 수 있는 싸움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총구는 외부로 돌려지게 된다.
소득 없는 전쟁이라는 걸 알고 미국이나 서방을 향해 총구가 돌아가도록 이슬람의 정치인들이 조작하는 것이다.
“저도 그걸 우려하고 있습니다.”
맥보란도 인정한다.
“어쩐 일입니까? 괜히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데 불편하게 해 드렸군요.”
“아닙니다.”
이어 권총수는 열한 명의 입국 사실을 전달하고 국적은 국정원에서 보증했다고 말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입국하여 훈련받는데 이상 없도록 출입국 관리소에 조치를 취해 놓겠습니다.”
권총수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끊으려는데 맥보란이 붙잡았다.
“잠깐 캡틴!”
“예!”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 아십니까?”
“언젠가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MI6, 그리고 우리와 모사드까지 그들을 쫓고 있는데 얼마전 이상한 흔적 하나가 체크 됐습니다.”
권총수는 가만 듣고 있었다.
“그 테러 사건의 주범중 하나인 사이드 쿠아치라고 있습니다. 그가 있는 곳이면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한 사내가 있습니다. 아까올라 모치라는 인물인데 부하이면서도 사이드
쿠아치의 책사 정도로 보시면 될 겁니다.”
“예!”
“아까올라 모치가 얼마 전 두 명의 부하들을 대동하고 한국을 들어갔다가 나온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네에?”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무슨 얘깁니까?”
“일본을 통해 김해공항으로 들어갔더군요. 그리고 사흘간 머물다 출국했습니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그런 국제적인 테러범의 최측근이 입국했다면 국정원의 정보에 걸리지 않을리 없다.
물론 아직까지 한국에서 정치적 종교적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IS는 언제 어디서라도 필요하면 사람을 죽이는 집단이다.
“방문 목적은 알고 있습니까?”
“우리 요원들이 흔적을 훑어보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큰 소득이 없습니다.”
권총수는 몇 마디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테러범 입국 소식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번 자동차 폭발 사건이었다.
사막의 흑새는 IS 블랙리스트 1호에 올라있다.
목에 걸린 상금도 이번에 또 올라 천만 달러라는 얘기를 CNN을 통해 들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들어왔을 가능성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