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4화: 암살공작(1)
국정원이면 자신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찌푸려진 이마는 금세 펴졌다.
국정원이 조그만 회사도 아니고 수천 명이 각자의 파트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자기분야가 아니면 모를 수도 있다.
이들은 대북파트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경찰에서 사건을 다루지 않는 걸 보면 단순 사고가 아니라 기폭장치에 의한 폭발이라고 보는가 보군요.”
흠칫!
권총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은 세 사람 모두 깜짝 놀란다.
일반인의 입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전문가적 용어였기 때문이다.
“물어보시죠.”
“보호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권총수요.”
순간 셋 모두 얼어붙는다.
한 번도 만나보지는 못했으나 이름은 들었다.
자신들은 국내 파트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활동하는 권총수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충분하게 들었다.
“사막의 흑새로 불리던 그분이란 말입니까?”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다.
그때였다. 또 한 대의 승용차가 다가오더니 응급실 앞에 차를 세웠다.
그때 병원 보안요원이 일반 차량을 세우면 안 된다고 하자 사내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주었다.
보안요원이 더 이상 말을 않고 돌아서는 걸 보면 수사기관 사람으로 보였는데 급히 안으로 들어가더니 오 분이 채 안되어 밖으로 나왔다.
이윽고 권총수를 발견한 듯 급히 다가온다.
“대표님!”
대북파트 5국장 정현웅이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는 세 사람 중 권총수에게 질문을 했던 사내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 팀장아냐.”
서로 아는 모양이다.
“국장님 아닙니까?”
“사고조사를 위해 나온 모양이군. 인사하지. 권총수 블랙잭 대표님이시네.”
“정식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대공 부서에 있는 이희성입니다. 혹시 결례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표님, 저의 대학 후배이기도 합니다. 애국심이 보통이 아닙니다.”
이희성이 말했다.
“일단 경찰 조사를 지켜본 뒤 움직이려고 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서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따로 시간을 내어 찾아 뵙겠습니다. 말씀들 나누십시오.”
정현웅이 왔기 때문에 예의상 세 사람은 빠진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현웅이 옆으로 앉더니 심각한 표정을 했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날 노린 것 같은데 담배 사러가는 바람에 피한 것 같습니다.”
“차량은 지금 과학수사연구원으로 실려간 모양이던데?”
누구보다 폭발물에 전문가인 권총수가 보기에는 어떠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전자식 기폭장치로 보입니다. 시동이 걸리면 폭발하는 방식 말입니다.”
마약조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
테러범들은 시동이 걸리면 터지는 전자식보다는 정확한 표적을 노리기 위해 원격 기폭장치 즉 리모컨을 많이 쓴다.
전자식 기폭장치는 설치가 쉽다.
폭발물에 조금만 조예가 있어도 엔진으로 연결되는 전기선과 연결하여 터지도록 한다.
가끔 경음기 장치와 연결되는 기폭장치도 있다.
빠앙!
하고 울리는 순간 터지는 것이다.
“이번 일과 관계 있을까요?”
정현웅의 눈이 빛난다.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얘기였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의 남한 유입을 막기 위해 이쪽 고정간첩들에 의한 작전일 가능성이 높은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평양에서 내려온 지령을 받아 폭탄하나 설치하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어느 방향에 방점을 찍을 수는 없고, 좀 더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그렇겠군요.”
정현웅의 눈이 가볍게 떨린다.
권총수 목소리가 지나칠 만큼 깔려있다.
언뜻 힘이 없는 목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른바 저주파라는 것이 있다.
낮게 울린다고 하여 짧은 거리밖에 가지 못하는 소리가 아니다.
저주파의 대표적인 짐승으로는 호랑이가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소프라노가 아니라 바리톤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피식자를 얼어붙게 하는 엄청난 살기와 권위가 담겨 있는 것이다.
“혹시 짚이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피식!
갑자기 권총수가 웃었다.
노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자신을 노리는 총구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자신을 노리는 그 모든 죽음의 살인망이 어디에 얼마만큼 펼쳐져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이번 사고 역시도 그들중 한 명일 것이다.
“확실히 장담할 수 있는 건 국내에서는 이런 식의 암살 방법을 시행할 만큼 뛰어난 전문가가 없소. 이건 고도로 훈련받은 남미의 마약조직이나 국제 테러범들이 아니고서는 어렵죠.”
“저도 그 말씀에는 공감합니다.”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비슷한 범죄도 자주 일어나야 검거하거나 범인추적이 복잡하지 않다.
기껏해야 칼이나, 아니면 엽총 정도가 살상무기의 정점인 우리 현실에서 이런 첨단기법의 살인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여기서 밤을 샐 것입니까?”
“그래야죠.”
그러면서 웃는다.
“일 때문에 저는.”
정현웅은 깍듯하게 허리를 구부리며 돌아섰다.
부우웅!
정현웅의 차가 사라지고 십여 분쯤 지났을 때 헐레벌떡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채명천이었다.
“대표님!”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거칠게 헐떡거렸다.
“오이사는요?”
“오늘밤이 채 이사님과 내게 무척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오민철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뜻이었다.
“집에는 연락을...”
“그건 안될 일입니다. 거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
“이게 도대체!”
채명천은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면서 돌아본다.
사건 경위를 들려달라는 뜻이다.
권총수는 공항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채명천의 안색이 굳는다.
이런 걸 두고 천운이라고 한다.
어느 프로야구 해설자가 말했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타자도 운 있는 타자는 당하지 못한다.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면서 잡힐 수도 있지만 빗맞아 야수와 야수 사이에 떨어지는 바가지 안타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가 말하길 운도 실력이라고 했다.
바가지 안타를 친 타자가 멍청해서 그런 걸 때린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며 곧 실력은 운이라는 뜻이다.
탁탁탁!
한두 명이 아니다.
블랙잭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권총수 눈이 커졌고 채명천이 말했다.
“제가 파발을 돌렸습니다. 세계적인 보안 기업이라면 고위 임원이 테러를 당했을 때 여느 회사들과는 움직임이 달라야 한다고 판단했죠.”
채명천은 직원들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일단 수술실부터 지키게. 그리고 나머지는 지하 주차장과 응급실, 병원 방문객들을 잘 살펴보게. 살인자의 얼굴에는 살인자의 특징이 남아 있지.”
채명천이 말했는데 오랜 강력계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경험이었다.
살인자에게는 진짜 살인자의 그림자가 있다.
직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권총수는 순식간에 연기처럼 자취를 감춰 버린 직원들을 보며 흘긋 시계를 보았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고 시간은 밤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권총수 앞에 있는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했다.
물론 권총수 혼자 피운 꽁초들은 아니지만 그 만큼 애가 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권 대표.”
채명천이 정색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어제 내가 꿈을 꾸었소.”
갑작스런 꿈 얘기에 권총수는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한가한 꿈 얘기를 할 채명천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대표와 오이사가 타고 간 벤츠가 고속도로에서 뒤집히는 사고를 당한 거요. 그런데 운전사가 내리는 겁니다.”
두 사람이 타는 차에는 운전사가 없다.
오민철이 운전하거나 자신이 핸들을 잡는다.
“처음 보는 친군데 차 안에 부상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구출할 생각은 않고 히죽 웃고 서 있던데.”
“운전사가 누구였습니까?”
“처음 보는 친구였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은 아니었어요.”
단순한 꿈 얘기다.
그러나 꿈은 반드시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길흉화복에 대한 암시이기도 했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할 꿈임에는 분명했고 운전사가 이쪽이 아닌 저쪽, 즉 이번 사고와 관련된 쪽일 가능성이 높았다.
채명천은 단순히 이른바 개꿈을 얘기한 것이 아니었다.
권총수는 자신을 노린 자들 중 한 명의 얼굴이 문제의 운전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긴급 뉴스에 식당 안 손님들 모두 눈을 부릅떴다.
마치 아랍의 테러현장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인천공항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공항 주차장 CCTV를 통해 드러난 화면은 놀라웠다.
오민철이 차에 들어가 시동을 걸자마자 쾅 하는 소리가 들리며 검정색 벤츠가 10여미터 공중으로 퉁겨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불이 붙었다.
주위 차량들 유리가 굉음에 깨졌고 한 사내가 나타나 오른손을 쭈욱 뻗자 운전석쪽을 태우던 불길이 물벼락을 맞은 듯 졸지에 꺼져 버린다.
“엇!”
“뭐지? 불이 왜 꺼져?”
식당 안 손님들 눈이 커졌다.
문이 열리고 사내는 의식을 잃은 운전사를 끄집어 내더니 손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가만 앉아 있었다.
“저 사람 뭐 하는 거야?”
사람들 모두가 놀란다.
잠시 후 옷을 벗기더니 운전사의 온 몸을 두드리는 모습에 사람들은 119 같지는 않고 누구야, 의사는 아닌 듯 한데, 무슨 짓이지? 하며 여기저기서 놀란다.
그때 119와 경찰차가 나타나 환자를 태운다.
그런데 묘했다.
운전사를 끄집어내고 추궁과혈을 시전한 권총수의 얼굴은 단 한 번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얼굴이 왜 안 나와?”
얼굴이 나오지 않으니 모자이크 처리할 필요도 없었다.
리포트 기자도 끝내 차에 붙은 불을 끄고, 운전사를 끌어낸 사내의 정체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어쨌든 퇴근 후 삼삼오오 앉아 술을 마시던 시민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벌어진 오늘 낮 공항에서의 자동차 폭발에 흥미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새벽 1시가 막 넘었을 때 수술이 끝났다.
수술실을 나온 의료진들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단지 권총수를 향해 최선을 다했다는 한 마디 뿐이었다.
내가기공을 이용해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치료방법도 한계가 있다.
오민철이 죽지 않고 수술까지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권총수의 재빠른 응급처치 덕이다.
현재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너무 체력적으로 약해 있거나 상태가 나쁜 오민철의 몸에 함부로 내기를 주입하는 것이 위험을 부추 킬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기다리면서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수고 좀 하세요.”
권총수는 사내들에게 손을 들어 보인 뒤 복도를 걸어 나왔다.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북오도청을 향해 올라가려는데 왼쪽으로 조그만 간판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비봉>
“여기 세워 주세요.”
오도청까지 올라가지 않고 세워 달라는 말에 기사가 멈칫하더니 길가에 선다.
권총수는 카드로 택시비를 지불한 뒤 아래쪽 횡단보도를 향해 걸어갔다.
잠시 서 있다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자 길을 건넜다.
비봉이라는 카페 문을 밀고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