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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91화 (591/651)

제591화: 남자(2)

커피가 그녀의 허벅지로 쏟아졌다.

“괜찮으십니까?”

이어 재빨리 밖을 향해 외쳤다.

“오혜정씨.”

문이 열리며 여비서 오혜정이 나타났다.

상황을 발견한 오혜정이 재빨리 마른 수건 한 개를 가져와 권혜림의 허벅지에 흐른 커피를 닦는다.

“됐어요. 나가봐요.”

권혜림은 자신의 손으로 허벅지에 묻은 커피를 닦았다.

그렇게 뜨거운 커피는 아니지만 살색 스타킹 속으로 보이는 뽀얗던 허벅지가 붉게 변했다.

화상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뜨거웠을 것이다.

오혜정이 재빨리 깨진 컵조각과 바닥을 걸레로 닦고 사라졌다.

“놀라시는군요.”

윤구노가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어떻게 그 자리가 마련된 줄 아십니까? 전화를 걸어왔더군요. 저녁에 술 한 잔하자고 말입니다.”

“권총수가 윤 팀장에게 전화를요?”

“낯선 번호여서 두 번을 무시했다가 세 번째 결려오기에 이건 받아야 할 전화다 싶어 연결했는데 권총수였습니다.”

권혜림의 얼굴은 싸늘해져 있었다.

“회장님, 그 사람이 왜 날 불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이 정말로 나와 술을 마시고 싶어서 불렀을까요?”

“윤팀장 지금 나한테 숙제내는 거에요?”

권혜림은 내가 그걸 어찌 아느냐고 짜증을 냈다.

“어제 술좌석에서 오고간 대화를 간결하게 줄인다면 이런 내용입니다. 이번은 넘어간다. 그러나 다음에 또 한 번 사람을 그 따위로 모욕하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겠다.”

“미친놈.”

권혜림의 입에서 욕설이 나왔다.

“가만 안 두면 어쩔건데.”

“나한테 경고했지만 회장님에게 잘 전달하라는 뜻입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백서그룹까지 공중분해 시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윤 팀장은 뭐라고 했죠?”

그런 소릴 듣고서도 가만있었냐는 뜻이다.

“가만 있었죠. 한마디 대꾸도 못했습니다.”

“청와대 정책까지 대놓고 비판하던 윤 팀장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정작 자신에게 직접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소인배였느냐는 비아냥이다.

“지피지기백전불태라고 하잖습니까?”

“상대를 알고 싸우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그래서 항복했나요?”

“예!”

움찔!

예상 밖의 대답에 권혜림이 놀란다.

스윽!

윤구노가 품속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 겉면에 사직서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윤팀장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권악수 회장 날아가는 것 보십시오. 어제 밤 술을 마시고 돌아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난 절대 권총수의 상대가 아니다. 내가 상대할 수

없는 적일 때는 무릎을 꿇는 것이 창피한 일은 절대 아니죠.”

윤구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죽기 싫다는 의지를 분명히 전달하며 돌아선다.

“윤팀장 지금 뭐하는 거냐구요. 아침부터 술 냄새 풍기며 찾아와 사직서라니 날 약 올리는 거에요?”

윤구노가 돌아섰다.

“한 가지 약속해 주십시오. 그럼 이 몸 회장님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권총수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 포기 하십시오. 그러면 회장님을 목숨 걸고 보필 하겠습니다.”

권혜림의 안색이 굳었다.

선뜻 대답하지 않는 걸 보면 그녀의 가슴속에는 이미 권총수를 상대로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어느 공직자가 국민들을 향해 개돼지들이라고 했죠. 그 개돼지들은 평생을 짓밟히며 살아갑니다. 대한민국 법은 재벌들에게는 관대하지만 힘없는 그들에게는 싸늘하죠. 재벌들은 인내력이

부족합니다. 회장님, 참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입니다. 감히 충고 한마디 한다면 권씨들은 참을 줄 모릅니다. 항상 명령하고 지시하고 군림해왔으니까. 그랬기 때문에 더 많은 피해가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최고다.

난 모든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적이 없다보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아왔다는 의미였다.

나도 패할 수 있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억지 겸손이라도 취했다면 이렇게 씨가 마를 때까지 오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개죽음입니다.”

탁!

윤구노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싸늘한 표정의 권혜림은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하며 마음을 흔드는 듯 가끔씩 얼굴 근육을 실룩거렸다.

목석처럼 그렇게 앉아있던 권혜림이 탁자 위에 올려진 윤구노의 사직서를 내려다보았다.

권혜림은 사직서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미동하지 않았다.

스윽!

사직서를 집어 들어 찢을 듯 하던 권혜림이 동작을 멈췄다.

두 손으로 사직서를 잡고서 잠시 갈등하던 권혜림이 서랍을 열고 사직서를 집어넣었다.

척!

팔짱을 낀 권혜림은 꼼짝하지 않았다.

***

한 사내가 들어섰다.

스포츠 머리에 다부진 체격으로 마흔 중반쯤으로 보였다.

넥타이 없는 정장 차림이었는데 권총수 앞에서 깍듯하게 허리를 구부렸다.

권총수는 사내에게 자리를 권했고 오민철이 어느새 준비한 듯 김이 나는 커피 두 잔을 가져왔다.

“회사가 남자들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까 우린 커피도 남자가 탑니다.”

사내는 웃자고 한 오민철의 속마음을 아는 듯 빙긋 웃었다.

사내 이름은 조식만, 올해 마흔여섯으로 연변에 사는 조선족이다.

중국으로 들어온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일자리를 소개하고, 북한을 빠져 나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길을 안내하는 브로커다.

그동안 채명천과 만나 인력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나눴고 어느 정도 양쪽의 의견이 맞으면서 오늘 서울을 찾은 것이다.

“오셨군요. 조선생!”

채명천이 들어서며 웃는다.

“내가 워낙 바빠 마중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악수나 한 번 합시다.”

“서울 한두 번 방문한 것도 아닌데요 뭘.”

말도 통하고 지리도 잘 아는데 전혀 괜찮다는 뜻이었다.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 받으며 두 사람은 활발한 얘기들을 나눴다.

사무실 공기가 뜨겁다.

조식만의 입을 통해 예상치를 웃도는 인력 수급이 가능할 것 같다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지금 블랙잭은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민간 보안업체가 작전에서 실패하거나 경호에서 틈을 보이면 그 파급은 크다.

그렇기 때문에 병역이 의무인 대한민국에 군 출신은 널려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채용할 수는 없었다.

그 어떤 시장보다 실패에 대한 손해가 막대한 곳이 보안시장인 것이다.

일주일 전 멕시코 보안 회사인 ‘멕시코 회의(Mexico congress)’소속 용병 세 명이 모로코 카사블랑카 뒷골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들은 모로코 재벌 라비오의 경호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키던 라비오 역시 이틀 후 고속도로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멕시코 회의는 멕시코 특수부대(GAFE) 출신들로 이뤄진 용병회사로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회사와 몸값차별로 급속히 사세를 확장하던 중 이번 일로 큰 타격을 받아 폐업 직전까지 몰렸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 능력의 차이는 곧 목숨의 차이기 때문에 한 번 실패 소식이 보도되면 그 회사의 모든 거래는 일시에 단절된다.

“한 달에 20명.”

권총수가 중얼거렸다.

지금 조식만이 북한 특수부대 전역자들로 한 달에 20명은 보증한다고 말한 것이다.

한 달에 20명이면 적은 숫자가 아니다.

남한에서 30명 정도 충원이 되고 있으므로 한 달에 50명씩 늘어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처음과 달리 그만두는 용병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큰 돈은 아니지만 1년만 바짝 뛰어도 현금 1,2억은 손에 쥔다.

하지만 인원이 늘어나고 사업이 커지면서 희생자 역시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 빠져나가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인원에서 더 줄어들지만 않아도 보안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잃지 않는다는 것이 권총수의 생각이었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죠?”

오민철이 물었다.

“걸러내는 방법 많습니다. 자기가 근무했던 지역과 훈련상태 몇 가지만 질문하면 금방 드러납니다.”

“가장 정예부대는 어디요? 미국으로 말하면 네이비 씰 같은 부대 말입니다?”

오민철은 흥미를 갖고 물었다.

“뭐니 뭐니 해도 제 525군부대 직속인 특수작전대대죠. 암살부대로 불리기도 하는데 북한군 정예중의 정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죽은 김정일이 이들 한 명을 일개 사단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하겠습니까?”

오민철의 눈이 더욱 빛난다.

707을 나왔다.

겨뤄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때 조식만이 말했다.

“남한의 707과 비슷한 임무의 부대로 보면 될 것입니다.”

“당신이 707을 어떻게 알아.”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빠졌는지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이사님 왜 이러십니까? 707과 비슷한 임무를 갖고 있다고 했지 훈련강도나 병사 개개인의 능력이 동일할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제서야 오민철은 자신이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 어색한 표정을 했다.

“아 미안합니다. 북한에서는 모르겠지만 남한에서는 자신이 나온 부대는 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존심이거든요. 조 사장님이 이해 해주십시오.”

블랙잭의 넘버2가 사과하는데 가만있을 수는 없다.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이사님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조식만이 일부러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항공륙전여단이 있죠. 남한의 특전사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전쟁 발발시 그들은 낙하산을 이용해 후방에 침투하여 중요시설 파괴와 교란작전이 주 임무죠.”

“자식들 그럼 우린 가만있나.”

오민철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권총수는 오민철을 바라보았는데 그는 뼛속까지 군인이다.

특히 707를 나온 것을 굉장한 자부심으로 생각한다.

거기에 프랑스 외인부대 근무경험은 그를 거의 인간병기 수준으로 만들어 놨다.

그는 결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지는 건 곧 죽는 것이다.

그야말로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군인정신이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사내다.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는데 한 명을 소개받을 때마다 수수료 지불에 대한 내용이 가장 관심사였다.

조식만은 1,000달러를 요구했고 채명천은 500달러 이상은 곤란하다고 맞섰다.

두 시간 넘은 합의와 번복의 진통 끝에 700달러에 도장을 찍었다.

모집 대상은 북한군 525특수작전대와 항공륙전대 두 곳으로 규정했다.

즉 남한의 707과 특전사 형태의 두 부대로 좁힌 것이다.

일단 그들의 투입하여 실력을 살핀 뒤 다른 부대로 스카웃 폭을 넓힐지 어떨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마지막 관문 하나가 남았다.

한국 국적이다.

정부의 허가가 있다면 북한 국적으로도 남한 기업에 근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지급 될 임금이다.

북한과 경제적 문제의 가장 걸림돌은 과연 주민들에게 돈이 온전히 돌아가느냐다.

대북 쌀 지원 때도 주민들이 아닌 군량미로 들어가니 마니 하는 문제로 첨예하게 부딪쳤다.

더욱이 보안시장에 나오는 북한군 특수부대 전역자라면 굉장한 일급이 지급될 것이고 이 돈이 노동당 정치자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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