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6화: 모두가 사람 아니다(1)
권총수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창녀의 자식 따위가 날 죽이겠다고, 냄새나는 더러운 새끼.”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고맙습니다!”
얼굴에 화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냥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면 내 손이 상당히 망설였을 것이고 가슴 또한 많이 불편했을 텐데 스스로 이렇게 날 화나게 해줘서 말입니다.”
권총수는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쭈그리고 앉았다.
담배를 편하게 피울 수 있도록 씌워주던 호신강기를 거둔 권악수 몸으로 비가 폭발할 듯 쏟아졌다.
온 몸으로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누군가를 죽이는데 이토록 부담없어 보기는 처음입니다. 잘 가십시오.”
파파팟!
손가락이 펼쳐지며 권악수의 혈도 세 곳을 눌렀다.
두 곳은 분근착골을 일으키는 혈도이고 한 곳은 사혈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혈은 누르는 순간 즉사한다.
그러나 권총수처럼 이미 반로환동에 이르면 사망 시간까지 조절이 가능하다.
사혈을 스치듯 짚었다.
그리고 분근착골로 고통을 당할만큼 당하면서 천천히 죽어 갈 것이다.
“크흑!”
권악수가 옆으로 쓰러졌다.
분명 오른쪽 어깨뼈가 부러졌다.
그런데도 오른손이 땅을 파고드는데 그만큼 아프다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온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하는 권악수를 내려다 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당신이란 사람,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건지 궁금해지는군.”
권총수는 등을 돌려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병신, 고통없이 단숨에 죽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데.”
오민철이 몸부림 치는 권악수를 향해 중얼거렸다.
***
서옥선에 이어 아들 권악수까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보도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처음 서옥선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에 채불수 팀장은 곧바로 권악수를 의심했다.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인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그런데 권악수가 죽자 갑자기 혼란 스러웠다.
그것도 경찰의 전화를 받고 어머니 시신확인을 위해 나가다 집앞 언덕으로 차가 굴러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운전사 양형모는 목숨을 건졌지만 권악수는 어깨뼈가 부서진 채 죽어 있었다.
양형모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살아 있었고 짧은 대화지만 나눴다고 했다.
그러다 한순간 기절을 했고 깨어나보니 권악수가 차 밖에서 죽어있더라는 것이다.
후우!
채불수는 담배연기를 한숨 토하듯 내 뿜었다.
앞에 있는 모래 재떨이에는 수많은 담배 꽁초가 꽂혀 있다.
“팀장님 정말 교통사고로 죽었을까요? 마이바흐 정도되면 탑승자가 부상은 몰라도 생명까지 잃지는 않을텐데요?”
조문철 형사가 담배를 물며 다가왔다.
“그렇다고 무조건 안 죽는다고 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죠. 접시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도 있는데 종잇장 같은 소형차를 타고 굴렀어도 살 사람은 삽니다. 단지 난 객관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객관적 상황’
채불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고가의 차는 기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뒷좌석에 앉은 오너를 배려하며 많은 안전장치를 설치한다.
즉 서로 앉아있는 위치가 다르고, 어느 방향 어떤 형태로 사고를 당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조문철 형사가 말하듯 객관적인 면에서는 오너 위주로 편의 장치들이 집중되어
있다.
“살았을 수도 있단 뜻인가?”
“그러니까 밖으로 나왔겠죠?”
“바깥으로 나왔으면 전화로 구조요청을 했을텐데 일체 그런 기록은 없잖아?”
밖으로 기어 나올 정도면 충분히 구조전화 정도는 걸 수 있다.
그건 이미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에서도 나왔고 실제로 그렇게 전화하여 살아난 사람이 적지 않았다.
화재속에서 전화로 구조요청을 하여 살기도 하고, 절벽에서 떨어진 승용차 속에서 전화를 걸어 생존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권악수의 전화는 옆에 있었으나 번호를 누른 흔적은 없었다.
정밀 부검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일단 외관으로는 부상한 몸으로 비까지 맞으면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생긴 외상 말고는 전혀 다른 건 없었다.
단지 이상한 건 손톱이었다.
손톱 몇 개가 뜯겨나간 것이다.
뭔가를 강력하게 끌어 당기거나 매달린 흔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한 손톱이 터져 나갈 수는 없다.
밖으로 나온 사람이 손톱이 벗겨질 만큼 절박하게 무엇을 잡아 당겼을까.
흙을 긁어서는 웬만해서는 손톱이 떨어져 나가지는 않는다.
“비가 문제야.”
채불수는 담배 꽁초를 모래속에 꽂아 넣으며 중얼거렸다.
비가 모든 것을 씻어 버렸다.
현장에 난 여러 가지 증거는 범인을 잡거나 아니면 피해자가 죽기전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그런데 이번 사고는 비로 모든 것이 깨끗하게 쓸려 사라졌다.
심지어 구르며 부서진 백미러와 유리조각 일부가 언덕 아래 개천으로 휩쓸린 흔적이 있었다.
“팀장님!”
김황식 형사가 다가온다.
“최승재 지검장 구속영장 떨어졌답니다.”
“개자식!”
조문철이 입술을 비틀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버럭 소리지르듯 말했다.
“그 새끼가 뒤에 앉아 현미정의 영장을 계속 밀어 낸거라고, 어휴 속 시원해.”
욕을 퍼붓는 조문철을 보며 김황식 형사가 싱긋 웃는다.
“김형사 넌 속 안 시원해?”
“응!”
“진짜?”
조문철이 눈을 빛냈다.
“우발적인 살인자 있잖아. 죽일 목적은 아니었는데 욱하면서 목을 조르거나 칼로 찌르는 싸움, 대개 부부싸움에서 많이 발생하고.”
“알아!”
“비록 인간의 목숨보다 더 귀한 건 없다고 하지만 진짜 나쁜놈들은 지능 범죄자들이야. 사기꾼, 권력을 이용해 횡포를 부린 최승재 같은 새끼들, 그런 놈들은 가중 처벌을 받아야 돼.
살인죄와 거의 동급으로 다뤄야 한다고.”
“흐흐흐! 김형사는 나보다 몇 배 더 뚜껑 열렸구나. 나도 공감하지.”
두 사람이 마주보며 웃을 때 채불수는 저만치 떨어져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신호가 간다.
채불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다섯 번째 통화 연결음이 울리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채 팀장 아닙니까?”
“바쁘십니까?”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몇 가지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세요.”
“음 그러니까.”
뭔 말인가 꺼낼 듯 하더니 갑자기 더듬거렸다.
“아...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채불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지켜보고 있던 조문철과 김황식이 다가왔다.
당황한 표정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던 채불수는 어색하게 웃는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던 채불수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잠깐 가자고.”
“어딜요?”
“일단 가보면 알아.”
채불수는 빠르게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회의가 끝나고 간부들이 회의실을 걸어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오민철이 다가오며 물었다.
“누구였는데?”
회의시간에는 웬만해서는 전화를 받지 않은 권총수가 눈을 빛내며 통화를 했었다.
“채불수!”
“형사?”
권총수 입가로 희미한 웃음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는 것이겠지?”
“무슨 뜻이야?”
“그런 것 보면 형사 짬밥 배부르라고 먹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채불수 팀장만 뭔가 걸쩍지근한 모양인데.”
그제서야 오민철도 상황을 파악한 듯 눈을 빛냈다.
유난히 집요한 경찰들이 있다.
채불수는 그런 부류중 한 명이다.
차가 멈추고 채불수와 조문철 김황식 형사가 내렸다.
권악수 차가 굴러 떨어졌던 현장이었다.
왕복 2차선 도로는 통행차량이 제법 많았다.
세 사람은 차량 통행이 뜸하자 재빨리 길을 건너 언덕을 내려다 보았다.
워낙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2톤이 넘는 승용차가 굴렀지만 거의 사고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견인차가 견인하면서 난 자국 말고는 언덕은 자연스러웠다.
“잡아!”
채불수는 어느새 줄자를 꺼내 끝을 내밀었다.
조문철이 줄자 끝을 길가 아스팔트 지점에 댄다.
좌르륵!
채불수가 줄자를 늘어뜨리며 사고지점까지 걸어 내려갔다.
“이 나무와 바위에 걸려 있었지?”
그러더니 줄자를 바위에 붙였다.
“15미터 50센티.”
조문철 형사에세 줄자를 놓으라는 듯 왼손을 들었다.
촬촬촬!
줄자가 순식간에 당겨 감긴다.
“15미터면 두 바퀴는 더 굴렀을텐데, 사고로 튕겨나가 구른 것도 아닌 운전부주의로 굴렀다면.”
채불수는 이마를 찡그리며 계속 언덕을 살피듯 보았다.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다가온 조문철과 김황식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고급차가 두 바퀴 넘게 굴렀다고 죽으면 박스 조각이잖아.”
이번에는 채불수가 고급차 안정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즉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시키려는 행동이다.
고급차는 그만큼 안전성이 보장된다.
객관적인 통계를 적용할 수는 없으나 어쩔 수 없이 그런 자료를 살펴 볼 필요는 있다.
뭔가 확실하게 이상하다.
“권총수가 죽였다?”
김황식이 눈을 빛낸다.
“좋습니다. 권총수가 죽였다고 치죠. 그럼 사고가 일어날 것을 어떻게 알고 여기서 기다린 걸까요?”
“미리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지.”
“미리? 어떻게요?”
“주위 봐. 숨어있을 곳 많잖아.”
“아니 내 말은 어떻게 여기서 사고가 날줄 알고 기다리느냐는 거죠?”
“신문 안 봤어? 권총수는 공중을 날아가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승용차 한 대정도 벼락치듯 두들겨 때려 전복시키지 못하겠어.”
“흐흐흐!”
“농담아냐!”
조문철이 웃자 채불수가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엿장수 마음이라고.”
“뭔소리야?”
“언제는 권총수가 공중을 날아간다는 소리에 펄쩍 뛰면서 내가 날아가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해놓고서 지금은 믿는단 말입니까?”
사건과 연관이 없을 때는 부정했다가 의심이 들자 인정하느냐는 타박이었다.
“그렇긴 한데, 뭐가 좀 속 시원하지 못한 건 사실이잖아.”
침묵하고 있던 김황식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강호(江湖), 강호(江湖)해서 내가 좀 알아봤는데 그 세계에서는 진짜 사람이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렇지?”
채불수가 눈을 빛냈다.
“신문 안 봤어요. 중국의 한 노인이 축골신공으로 좁은 철창 틈을 빠져나가는 모습 말입니다.”
“내 말이 그렇다니까.”
채불수는 더욱 권총수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문이 열리고 죄수복을 입은 현미정이 들어섰다.
유리 너머 앉아있는 권총수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어금니를 지그시 깨문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금방이라도 권총수를 잡아 먹을 것처럼 노려 보았다.
권총수는 그녀의 표독한 시선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얼굴이 좋습니다.”
마치 교도소가 체질이라는 뜻으로 들었는지 현미정이 버럭 소릴 질렀다.
“이런 호로새끼가.”
어찌나 목소리가 컸는지 접견 내용을 기록하는 교도관이 고개를 쳐들었다.
“두 번 다시 사모님 얼굴 보기 싫어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너무 궁금해서 말입니다.
“뭐가 말이냐?”
“왜 날 죽이려고 했습니까? 바람을 피운 사람은 당신 남편이잖습니까? 죽이려면 남편을 죽여야 하는 것이 정석 아닙니까?”
현미정이 멈칫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