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85화 (585/651)

제585화: 대멸종(3)

이번에는 사람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섰다.

완벽한 비밀 유지를 위해 대포폰을 이용해 상대와 통화했고 이쪽의 정체도 밝히지 않았다.

상대방이 물을 땐 당신은 돈만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을 잘라버렸다.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비밀은 지켜지지 않는다.

살인청부업자를 찾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산업 폐기물 백 톤을 비밀리에 처리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을 내기는 쉬웠다.

덤프 기사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나 차고지를 찾아가 이사람 저사람에게 은밀하게 말을 걸었다.

건설경기가 불황이다 보니 일감을 찾기 위해 덤프들은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따금 차를 세워 놓고 일용직 잡부로 뛰기도 했다.

그중 한 사내를 만났다.

변장을 하고 여러 사람과 만나 테스트를 거친 결과 선택된 사내였다.

말수가 거의 없는 사내였다.

경험에 비춰 이런 일은 내성적인 성격에 과묵한 사람이 좋다.

외향적인 부류들은 술좌석이나 또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무용담을 털어 놓기를 좋아한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발설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직접 칼로 찔러 죽이는 것도 아닌 교통사고를 위장한 사건이라는 최종적인 설명에 사내는 약간 흔들리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며칠 고민좀 해도 되겠냐고 해서 오케이 했다.

하지만 며칠 고민해 보겠다던 사내한테서 두 시간 만에 연락이 왔다.

돈이 급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굴 모르는 사람끼리 만났고 5억을 내놓으며 서옥선의 차량을 처리 부탁했다.

사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급류 속에 뛰어들어 차안에 있는 서옥선과 운전기사를 구하기 위한 행동은 의도된 것이었다.

어차피 구할 마음은 없었다.

피해자 구호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사내 나름대로의 계산된 것이다.

나중 재판에서도 크게 참작될 것이다.

때마침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도착하여 직접 목격함으로 완전한 성공작이 되었다.

“그 사내 이름이 박도금이죠?”

권악수는 소스라쳤다.

권총수가 어떻게 이름까지 알고 있을까.

브라질에서 돌아오자마자 권총수는 24시간 권악수를 감시할 것을 지시했다.

권악수 뿐만 아니라 서옥선까지 감시를 강화했다.

오늘 자하문 호텔에서 주주 모임이 있다는 것도 블랙잭 직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알았다.

그건 오늘 거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더욱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누군가를 차로 밀어버리기에는 기상조건이 매우 좋다.

스윽!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 한 개를 꺼냈다.

“회장님도 이런 대포폰 있죠? 이건 박도금이 사용하던 것입니다.”

이해가 안된다.

박금돈은 왜 대포폰을 버리지 않았을까.

흔적은 없애기 위해 일이 끝나면 가장 먼저 대포폰부터 없애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벤츠를 들이 받고 난 박도금은 작전 성공을 알리는 전화를 회장님에게 했을 겁니다.”

맞다.

분명히 했다.

전화상으로 박도금은 급류에 차가 쳐박혔기 때문에 살아날 확률은 없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자 박도금은 핸드폰을 개천 급류에 던졌습니다. 물론 그걸 내가 받아 냈지만.”

박도금이 던진 핸드폰을 허공섭물의 방법으로 끌어 오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톡!

핸드폰 녹음기능을 눌렀다.

‘세 바퀴 구르더니 개천으로 처박혔습니다’

박도금도 평범한 사내는 아니었다.

혹시 모를 만약을 대비해 모든 통화를 녹음한 것이었다.

권악수는 멍해졌다.

쏟아지는 빗줄기속에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싶다.

“주주위임장도 날아갔고 서옥선도 죽었으니 후련하시겠습니다.”

권총수가 웃는다.

“찾았어.”

그때 언덕 위쪽으로부터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고개를 들었지만 흘러내리는 빗물로 인해 누군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가까이 다가오는 사내를 보며 권악수는 또 한 번 놀란다.

권총수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오민철이었다.

그 역시 외인부대를 제대하고 전쟁용병으로 중동의 사막을 누볐던 야수같은 친구다.

오민철의 손에는 핸드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자신이 박도금과 통화할 때만 사용하던 대포폰이다.

병원에서 서옥선의 신원을 확인 해주고 돌아와 부셔 없애버릴 계획이었는데 오민철의 손에 들려 있는 걸 보면 자신의 집을 침입한 모양이었다.

“우리 회사 세무조사 회장님 작품이죠?”

오민철이 물었으나 권악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대표님 죽이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많이 뿌렸던데.”

오민철은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아마 내일 아침 조간신문에 자동차 사고로 천왕그룹 권악수 회장 사망이라는 기사가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민철은 슬쩍 권총수의 표정을 살핀다.

권총수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건 오민철의 말이 틀림없다는 뜻이다.

“사장님 재주가 뛰어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죽기 좋은 날씨를 골랐습니까. 비가 내려 우리가 남긴 웬만한 증거는 모조리 씻어가 버릴테니 모두가 좋은 날을 잡았군요.”

오민철이 비아냥거리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흘긋!

그때 권악수는 재빨리 운전석 쪽을 보았다.

양형모가 반응이 없다.

분명 죽지 않았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우리 양기사님 지금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잠에 빠졌다는 말에 권악수 눈이 커졌다.

분명히 의식이 있었고 어떻게 운전을 한거냐고 욕설을 퍼붓자 죄송하다는 대답까지 했다.

느낌이지만 목소리와 신음을 들었을 때 자신보다 상태가 훨씬 나아보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잠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불러보세요. 믿어지지 않으시면.”

오민철이 빙긋 웃는다.

이 상황에서 부른다면 정말 체면 구길 일이다.

권악수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권총수를 보았다.

그냥 자신처럼 비를 맞고 있다.

그런데 담배 위로는 빗물이 단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자신은 비를 피하기 위해 담배를 빨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빗물을 가렸다.

잠시 권총수를 바라보던 권악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거래합시다.”

권악수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원하는대로 하겠소. 돈이면 돈, 회사면 회사.”

오민철이 끼어 들었다.

“회장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십니까? 우리 대표님도 돈 많아요. 지금 경영하고 있는 블랙잭만 해도 혼자 움직이기에는 버거울 만큼 덩치가 커졌구요. 아시잖습니까? 돈이나 회사가

탐이 났으면 회장님 차를 이렇게 쳐박아버리진 않죠.”

화악!

쳐박아 버렸다니.

양형모의 운전부주의가 아니라 권총수가 의도적으로 차를 구르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아까 번개 쳤잖아요. 소림의 대금광섬수(大金光閃手)라는 장력입니다.”

권악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한 건 번개가 쳤는데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권총수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 말에 대해 믿니마니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겠지만 지금은 관심없다.

이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느냐 말고는 일체 관심 없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했다는 건 굉장히 불안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내가 당신 아버지와 설지라는 여자 연예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 알죠?”

“알지!”

“무슨 생각 했습니까? 날 만날 때마다?”

“어떤 말을 듣고 싶은건가?”

“나중에 불쑥 나타나 아버지 자식 운운하며 언론에 알리겠다 어쩌겠다 하면서 재산 내놓으라고 할지도 모르니 반드시 찾아 없애야 한다고 했다던데?”

“누가?”

“여기까지 왔으니 뭘 숨기겠소? 장 팀장이 그러더군요. 그때 난 이미 어린아이도 아닌 장성했을 나이였는데도 사람을 시켜 내 뒤를 추적했다고 했습니다.”

“쳐죽일 늙은이가 어디서 개소리를 지껄이고 다닌거야.”

딸칵!

권총수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불을 붙인 뒤 손을 뻗어 권악수에게 건넨다.

빗방울이 담배에 떨어지지 못하고 옆으로 튕겨나간다.

권악수는 담배를 선뜻 받지 않았다.

담배는 받지 않고 권총수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는데 등에 얼음덩이 하나가 붙은 듯 서늘했다.

눈 앞의 담배 한 개비가 조금 전 받을 때는 별 생각 없었으나 지금은 전혀 다른 감정이다.

마치 이 담배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것 중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손과 발이 묶인 사형수가 마지막 할말이 있냐고 묻는 집행관에게 담배 하나만 달라고 한다.

집행관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며 허락을 요청한다.

참관중인 교도소장과 담당검사의 고개가 끄덕여지면 혹시 몰라 미리 준비해둔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건네주는 것이다.

사형수는 가급적 최대한 느리게 담배를 피운다.

또한 온 힘을 다해 연기를 뱉지 않고 삼킨다.

마지막 삶을 느끼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권악수는 담배를 길게 빨아 들였다.

권총수가 펼쳐주는 강력한 무형의 강기에 의해 권악수는 한 방울의 비도 맞지 않고 있었다.

담배라도 온전히 피울 수 있도록 해주려는 배려였다.

시간을 끌었다.

당연히 끌어야 할 것이지만 문제는 누구도 권악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민철은 그만 정리하고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아무리 느리게 아껴 피운다고 하여 고작 10센티 남짓한 담배가 얼마나 오래 타겠는가.

툭!

길게 늘어진 재가 떨어지고 담배는 이제 필터만 남았다.

쭈욱!

뜨거울 것이다.

필터가 탈 때는 굉장히 뜨거운데도 권악수는 빨았다.

권총수는 기다려 준다.

누구보다도 죽기 싫을 것이다.

돈과 권력을 쥐고 있으니 억울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살려둘 수 없다.

그토록 참고 이해하고 용서했지만 권악수는 꿋꿋하게 변하지 않았다.

서옥선을 죽인 건 그 집안 일이므로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권총수를 죽이기 위해 수많은 함정과 매복, 그리고 권력을 이용해 탈탈 털었다.

그냥 놔둘까 고민도 했다.

서옥선을 죽이도록 사주한 범죄와 과거에 지은 죄까지 포함하면 못해도 20년 이상은 받을 것이다.

워낙 돈이 많은 권악수이니 절대 무기형을 받을 일은 없다.

무기형을 받는다고 해도 누구보다도 빨리 감형이 될것이고 어쩌면 60이전에 나올지도 모른다.

툭!

필터도 한계가 있다.

필터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권총수가 말했다.

“할 말 있습니까?”

권악수는 날카롭게 말했다.

“있다. 감히 너 따위가 뭔데 내 목숨을 정리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냐? 지랄도 가지가지라더니.”

권악수의 눈이 커졌다.

분노하기 시작한 듯 두 눈이 점점 붉게 타올랐다.

“그야말로 개 잡놈(雜者) 주제에.”

알고 보면 잡놈만큼 잔인한 욕도 없다.

이것저것 피가 마구 섞였다는 의미다.

그리고 권악수가 말하는 개잡놈 속에는 한가지 비아냥이 더 들어 있었다.

권총수를 낳은 여자 설지였다.

한 마디로 연예계에서 출세하기 위해 이놈 저놈에게 치마를 들췄을텐데 우리아버지 피로 만들어진 놈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놈의 피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씨익!

권총수는 웃었다.

“그건 나도 모르죠. 맞습니다. 그 여자가 권철태와만 관계를 가졌는지 아니면 당신 말처럼 이놈 저놈 마구 퍼 주었는지는 본인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죠.”

“당장 성씨부터 바꿔라. 어디서 감히 우리 권씨 성을 도용하고 사는거야. 그러고 보니 성도 없는 놈 아닌가? 흐흐흐흐.”

권악수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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