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83화 (583/651)

제583화: 대멸종(1)

권총수가 이마를 찡그렸다.

“무슨 수로 비밀을 지킬거야? 여기저기 인원을 모집하다 보면 당연히 소문은 퍼질 수밖에 없는데.”

오민철이 움찔했다.

미처 그 생각을 못한 듯 룸미러를 통해 어색한 표정을 했다.

“그렇네.”

그러면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부적으로 파고드니 의외의 걸림돌이 적지 않다.

또 한바탕 골치를 썩어야 할 듯 싶다.

조용한 카페의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섰다.

들어선 사내는 권악수였는데 보디가드로 보이는 정장의 사내가 뒤를 따른다.

대낮의 교외 카페는 다섯 명의 손님이 전부였다.

권악수는 다섯 명의 손님 중 창가에 혼자 앉은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사내는 다가오는 권악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고 마주 앉았다.

“음료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커피하죠.”

권악수의 짧은 답에 사내는 계산대 여직원에게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 카드를 내민다.

영수증과 번호가 쓰인 종이를 받아 돌아온 사내는 창밖을 내다보는 권악수를 따라 역시 고개를 돌렸다.

“상류여서인지 한강이 무척 깨끗합니다.”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권악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말 없이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냈다가 멈칫하며 카페 안을 한 번 둘러본다.

금연이란 글씨는 없으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없다.

“밖으로 나갈까요. 야외 의자 몇 개 있던데.”

“그럽시다!”

권악수가 먼저 나갔고 사내는 계산대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주문한 커피를 받아 문밖으로 나갔다.

권악수는 그늘 아래 놓인 탁자에 있었다.

“드시죠!”

사내는 커피를 놓고 앉는다.

“추 대표님!”

권악수는 커피잔을 그대로 둔 채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쪽을 돕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사내는 바로 천왕전자의 대주주중 한 명인 건영캐피탈 추상철 대표였다.

“죄송합니다. 이사회 결정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사회의 결정.”

어이가 없다는 듯 추상철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는다.

“건영의 최대 주주가 누굽니까?”

“접니다.”

“최대 주주가 이사회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최대주주라고 하여 뭐든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추대표, 지금 날 가르치는 거요. 누가 그런 걸 모르냐는 말입니다.”

권악수가 버럭 소릴 질렀다.

“주식회사가 뭡니까? 지분 많은 놈이 대장 아닙니까? 그래서 너 나 할 것 없이 주식을 많이 쥐려고 바둥거리는 것이고, 뭐요? 이사회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금

장난하나.”

추상철의 표정이 굳어진다.

“말씀이 심하십니다.”

“그렇잖아요.”

“그건 권회장님 생각이고 우리 회사는 다릅니다. 아무리 지분이 많은 대표일지라도 이사회의 결정을 존중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딸칵!

권악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권악수는 화를 가라 앉히려는 듯 연거푸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

“한 번만 도와주시죠. 고마움 잊지 않겠습니다.”

주총을 앞두고 두 사람이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바로 눈앞의 추상철과 제국은행장 왕대산이다.

제국은행 이사회는 이번 천왕그룹 주주총회에서 주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왕대산에게 위임했다.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에 돌아선 것이다.

“건영의 이사회 전원 찬성으로 회장님의 경영능력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죠. 저 또한 그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벌떡!

권악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한 번 해봅시다.”

권악수는 담배 꽁초를 던지며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 버렸다.

차량 앞에 서 있던 운전기사 양형모가 재빨리 뒷문을 열었고 올라탄다.

뒤이어 보디가드 사내가 조수석에 오르면서 차는 떠난다.

부우우웅!

떠나는 차를 보며 추상철은 길게 한숨을 내 쉬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정말 막무가내로군’

중얼거리며 커피를 마셨다.

왕대산은 전화통화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제국은행 다른 간부들에게 행방을 물었지만 하나같이 모른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피한다는 건 이미 돌아섰다는 뜻이다.

‘쳐죽일 할망구가 무슨 약을 어떻게 쳐먹였기에’

권악수는 서옥선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권총수를 비롯해 국정원 대북담당 제5국장 정현웅과 미국대사관 2등서기관 가레스였다.

가레스는 각국 대사관이 그러하듯 정보부 소속으로 화이트 요원이다.

회의는 두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는데 가장 큰 골칫거리는 어떤 경우에서라도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 노동당 정치자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권총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고 가레스와 정현웅이 말을 했다.

두 사람의 의견은 같은 바닥 사람이어서인지 잘 통했다.

부분적인 면에서는 약간의 충돌이 있었으나 큰 틀에서는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두 사람이 바라본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 한해 고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 은행을 통한 임금이 지급되죠. 물론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브로커를 통한다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여러

수단을 이용해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죠.”

정현웅이 가레스를 바라보았다.

가레스 또한 정현웅을 마주 보았는데 국적 얻는 일이 가능하겠냐는 질문의 시선이다.

사실 탈북민중 북한의 특수부대 출신들이 있지만 거의 부풀린 얘기다.

자신의 입장을 좀 더 강조하려고 의도적으로 꾸미거나 확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수부대 출신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속사정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을 만큼의 정예중의 정예 출신들은 거의 없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어차피 미국을 등에 업은 권총수의 사업을 막을 수가 없다면 한 발 앞서 적극적인 협력이 낫다고 판단했다.

즉 진짜 특수부대 출신들이 들어올 경우 그들을 통해 군사적으로 많은 정보를 얻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판 707로 여겨지는 총참모부 특수작전대대는 완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 알뿐 훈련하는 모습은 물론 유사시 그들의 타격목표가 남한의 어디인지, 인원은 어느 정도이며 무장상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좋습니다. 그들의 대한민국 국적 취득은 한국 정부에서 뭐 어떻게 처리가 된다고 하죠. 중요한 건 아까도 말했지만 특수부대일수록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강도가 셀 수밖에 없는데 과연

알짜배기들이 올까요?”

가레스가 염려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얼마 전 탈북자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떠드는 소리를 잠시 들었는데 북한에 비하면 우리 남한 사람들의 부패지수는 아주 낮더군요.”

뭐든지 달러였다.

달러면 통하지 않는 일이 없다고 탈북자는 말했다.

다른 탈북자들 입에서도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도 달러만 쑤셔 주면 만사 오케이라고 증언했다.

그건 그만큼 가난하다는 걸 의미했다.

파팟!

약속이나 한 듯 정현웅과 가레스의 눈이 동시에 빛난다.

두 사람 모두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돈은 인민의 적이다’

스탈린이 한 말이다.

돈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절대 인민의 세상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했다.

작은 돈은 밑바닥을 흔들지만 큰 돈은 윗물을 놀래킨다.

현재 국제 용병시장의 몸값을 생각한다면 북한 사람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이다.

작은 구멍이라도 계속 물이 흐르다 보면 커다란 구멍이 되고 나중에는 둑이 무너진다.

권총수의 계획은 위험지수가 높지만, 높은 만큼 성공하면 회사는 물론 국가에 돌아올 이익 또한 크다는 뜻이다.

해볼 만한 일 아니냐는 의미인 것이다.

“일단 우리국적 취득에 대한 건 회사에 들어가 의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현웅이 일어났다.

“나중에 또 봅시다.”

앉아있는 권총수와 악수를 한 뒤 돌아나간다.

정현웅이 나가고 단둘이다.

“캡틴!”

가레스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묘하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보요원들은 한 가지 이상한 버릇을 갖고 있었다. 중요한 말을 꺼낼 때는 꼭 목소리를 깔거나 낮춘다는 것이다.

“조금전 랭글리에서 사인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면서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핸드폰에 이모티콘 하나가 꿈틀거렸는데 엄지 손가락을 곧추 세우고 있다.

꿈틀 거리는 엄지 손가락이 웃고 있는 재밌는 이모티콘이다.

“아시죠?”

본 적있다.

언젠가 맥보란과 작전을 놓고 얘기중일 때 당시도 랭글리에서 왔다면서 보여준 이모티콘이다.

그건 작전 승인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즉 조금전 랭글리 관계자들과 국무부를 포함한 고위 인물들 회의가 끝났고 북한 특부수대 출신들 블랙잭 고용이 최종적으로 허락이 났다는 뜻이었다.

“대단하십니다.”

가레스가 권총수를 직시했다.

“솔직히 난 처음 캡틴의 제의를 듣고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이라크가 사라진 지금 미국의 최대적은 북한입니다. 잘못하면 굶주린 북한 노동당 간부들 주머니에 거액의

정치자금이 들어갈 수도 있는데 안 될 일이죠. 그런데 사인이 난 것을 보면 손해보다는 이익이 많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가레스 서기관의 도움이 컸죠.”

가레스가 멈칫했다.

워낙 거물이기 때문에 마지못해 협조하는 척 했지만 자신이 보낸 보고서 전부가 블랙잭의 북한군 수용에 반대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권총수의 입에서 자신의 도움이 컸다는 말에 가슴 한쪽이 얼어붙는다.

권총수를 백프로 속였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의 마음이 들켰다고도 생각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권총수의 고맙다는 말을 듣자 등골이 서늘해진다.

계속 그런 식으로 이중 플레이 하다간 죽는 수가 있다는 뜻이 분명했다.

“별말씀을.”

가레스는 어색하게 웃었다.

클로버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한 대가 나오고 있었다.

운전석에는 오민철이 앉아 있었는데 세 사람이 회의를 하는 동안 그는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뭐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던거야. 간단하게 오케이 하면 끝날걸.”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더니 차창을 내렸다.

오민철이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도대체 정치하는 사람들은 말이 많아. 그리고 별것도 아닌 걸 갖고 지랄한다고.”

그때 권총수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낸다.

부하직원이다.

“아? 예.”

편하게 받던 권총수가 멈칫하며 허리를 세웠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권총수가 말했다.

“자하문 호텔로 가.”

“갑자기 거긴 왜?”

“조금전 서옥선이 그곳 호텔로 들어갔다는 거야.”

“서옥선이면 권악수 어머니 아냐? 그리고 모레가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

오민철도 뭔가 느껴지는 듯 마른 침을 삼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실내에 모인 사람은 모두 일곱이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유일한 여자인 서옥선이었는데 그녀는 맨 위쪽 자리에 앉아 말을 하고 있었다.

“김비서!”

말이 끝나자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들어섰는데 손에 파일 하나를 들고 있었다.

사내는 파일을 서옥선 앞에 놓고 돌아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