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82화 (582/651)

제582화: 돌고 돌아가는 길(3)

권총수는 굳은 얼굴의 김공수를 보며 말했다.

“차관님과 한 가지 거래를 하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해볼 의향이 있습니까?”

“무슨 거래요?”

쫓기는 입장이다.

길가에서 대범하게 자신을 잡을 정도면 호락호락한 사내들이 아닐 것이다.

“마음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말하죠. 추상철씨와 왕대산씨 아시죠.”

김공수의 눈이 커졌다.

추상철은 건영 캐피탈이라는 여신 전문금융사 대표다.

또한 왕대산은 제국은행장으로 있다.

둘 모두 고등학교 동창이며 동향이어서 자주 만나고 주위에서는 자신들 셋을 삼총사라고 부를 정도이다.

“천왕그룹 임시 주주총회가 소집되었다는 건 아실테고?”

김공수의 눈빛이 약간 흔들린다.

담배를 사온 사내, 권총수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추상철이 대표로 있는 건영캐피탈은 천왕전자 주식을 6퍼센트 조금 넘게 보유하고 있고, 제국은행은 14퍼센트를 가진 대주주들이다.

천왕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계열사, 그중에서도 전자는 핵심이자 영업이익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

천왕전자 주식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서는 절대 그룹의 대표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친 권악수쪽이다.

그런데 지금 반 권악수쪽으로 표를 던질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벌교 촌놈이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끝장을 한 번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공수 고향이 벌교다.

권총수 말은 법무부 장관자리까지 한 번 올라가봐야 할 것 아이냐는 의미인데 오늘 태도에 달렸다는 경고였다.

“속은 몰라도 우리 차관님 겉모습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아주 좋더군요.”

권총수는 환한 미소를 짓더니 거수 경례를 했다.

척!

“그럼 이만!”

두 사람은 뒤에 있는 검정색 벤츠로 돌아갔다.

부우웅!

벤츠가 김공수 차를 추월하여 지나갔다.

김공수는 사라지는 벤츠를 보고 있었는데 한동안 꼼짝을 하지 않았다.

“흐으음!”

김공수는 비상라이트를 켜놓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정리가 필요하다.

누군지 정체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건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자신이 누군지 알 것이라는 자신감이자 여유다.

권악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면 누굴까.

권악수에게는 적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런 내밀한 부분까지 알고 있을 정도면 단순한 적이 아닌 거물이다.

파팟!

갑자기 눈이 커졌고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사막의 흑새’

권총수다.

권총수가 아니면 이렇게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지 못한다.

더욱이 주주총회까지 관여하려 들 정도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 밖에 없다.

‘권총수는 절대 만만찮은 상대가 아니야’

언젠가 장웅철이 했던 말이다.

“그렇게 무섭소?”

“무서운 것이 아니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죠.”

“천하에 천왕그룹 법무팀장님 입에서 무슨 그런 자신없는 얘깁니까?”

“차관님!”

장웅철이 정색했다.

“승승장구 해오셨죠? 물론 실력이 있으니 어려운 고비라는 걸 겪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직 적수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동물원

호랑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야생의 호랑이를 당하지 못합니다. 제 말이 너무 심했다면 죄송합니다. 오해 없길 바랍니다.”

장웅철은 조금은 측은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기세등등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때로는 나보다 더 강한 자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여 항상 겸손하라는 의미였다.

당시는 늙은 꼰대가 술에 취했나 하며 웃고 말았다.

그런데 조금전 그 사내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자의 페이스에 철저히 끌려다닐 뿐이었다.

‘진짜 권총수일까?’

부우웅!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좁은 국도를 레이스 하듯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조사는 무려 열일곱 시간 동안 이뤄졌다.

몸에 입은 상처가 심해 중단하고 회복 후에 다시 하는게 어떠냐고 했지만 장웅철은 거절했다.

이왕 왔으니 다음에 올 것 없이 오늘 모든 걸 털고 가자는 것이었다.

장웅철이 그렇게 나오자 검찰에서도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장웅철은 어떤 것도 숨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권악수 밑에서 저지른 탈법과 불법에 질린 것이다.

숨기고, 감추고, 피하는데 이제 지쳤다.

권철악으로부터 시작해 권악수까지 그들이 돈으로 법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심부름을 하며 살아왔다.

그뿐인가.

권씨일가 전체가 자신을 집사처럼 부렸다.

사내 대장부가 한 번 주인을 모셨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해 배신은 꿈도 꾸지 않았다.

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법에 의리는 공범일 뿐 어떤 가치나 의미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남은 인생은 좀 더 정직하고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검찰청 로비에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 있다가 나타난 장웅철을 향해 몰려들었다.

기자들은 소나기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권악수 회장 비자금 관리를 직접 하셨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권악수씨가 나중 사면 됐을 때 관계공무원들과 은밀한 거래가 있었다는데 맞습니까?”

“좀 비켜요!”

뾰족한 여자 목소리가 들리며 아내 진혜미가 나타났다.

재빨리 남편 장웅철의 손을 잡고 계단 아래 자기 차량으로 데려가 태운다.

탁!

이어 운전석으로 앉은 진혜미가 앞을 막고 있는 두 기자를 향해 유리를 내리고 소리쳤다.

“밀어버리기 전에 비켜 새끼들아.”

부아아앙!

정말로 밀어버릴 듯 타이어가 지면을 후려치며 돌진하자 기자들이 재빨리 피한다.

“지겨운 자식들!”

진혜미는 검찰청을 빠르게 벗어났다.

“여보 피곤하지?”

진혜미가 룸미러로 보며 말했다

“어떻게 알고 왔어? 어, 어디로가, 병원으로 가지 않고.”

차가 다른 방향으로 가자 장웅철이 물었다.

“그 분이 잠깐만 보자고 하더라구.”

“그분?”

“그분? 거 뭐야 사막의 흑새.”

“전화가 왔다고?”

장웅철이 눈을 빛낸다.

자신이 조사가 끝난 걸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밖의 기자들은 그냥 생각없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고 말 그대로 끝나야 끝난 것이다.

검사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런데 권총수는 어떻게 자신이 지금 끝나고 나오리라는 걸 알고 아내를 보냈을까.

차는 대로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저기 있네.”

“뭐가?”

진혜미는 차를 원조 해장국이라고 쓰인 식당 앞에 세웠다.

흘긋 창 너머로 보이는 식당 안은 이른 새벽인데도 해장국을 먹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했어.”

차에서 내린 장웅철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오랫동안 조사를 받은 탓인지 안색이 하얗다.

“여보 괜찮아?”

진혜미가 재빨리 다가와 부축을 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식당 안으로 들어섰고 창가에 앉아 있던 권총수와 오민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권총수가 내가 경기를 일으켜 장웅철의 걸음걸이를 감싼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다리에 힘이 생기자 장웅철은 이내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권총수의 능력이라면 자신의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이제는 권총수가 갖고 있는 이해되지 않는 능력들을 믿기로 했다.

지나치게 과학을 맹신하면 결코 권총수를 알지 못한다.

권총수에게 패하고 쫓기고 무너진 사람들 대다수가 그의 신비한 능력을 과학에 비교하여 믿지 않아 당한 것이다.

세상은 절대 과학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는데 너무 거기에 매몰되었고 빠져 버렸다.

나중에 권총수는 천리지청술로 대략 들었고, 잠영술을 펼쳐 들어가 지켜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생하셨는데 그냥 보내기가 미안했습니다. 해장국 한 그릇 드시면서 잠시지만 피곤함을 푸시죠.”

주인이 해장국 네 그릇을 내놓고 돌아갔다.

이어 네 사람은 각자 숟가락을 들고 해장국을 먹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우리회사 직원 두 명이 장 팀장님을 경호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창밖을 가리켰다.

건장한 두 사내가 진혜미가 타고 온 승용차 곁에 서 있었다.

권총수가 원했던 건 한가지였다.

사실에 입각해 있는 그대로만 진술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중 법정 공방이 벌어질 때를 대비해 변호사들도 최고들로 선임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마!”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장웅철이 입을 열었다.

“내가 진술한 사건에서 절반만 인정이 되어도 십 년 이상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권악수의 형량을 말하는 것이었다.

권총수는 미소를 지었다.

“식사마저 하죠.”

일행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해장국을 비웠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해장국 집 앞을 떠나는 진혜미의 승용차를 바라보았다.

그 뒤에 조금 떨어져 블랙잭 직원들 차량이 따르고 있다.

이윽고 두 대의 차량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오민철이 담배를 피워 문다.

“법정공방이 치열할 텐데, 권악수도 이미 로펌 대서양쪽과 손을 잡은 모양이더라고.”

대서양은 감앤장에 이은 국내 로펌 서열 2위다.

“갑시다!”

권총수는 손목 시계를 보더니 차에 올랐다.

오민철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두 사람이 다시 나타난 곳은 인천공항이었다.

입국 전광판에 연길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점멸등이 켜졌다.

두 사람은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기 오는데.”

채명천이 말쑥한 차림으로 캐리어를 끌고 들어서고 있었다.

“채 이사님!”

오민철이 아는 체를 하며 손을 들고 다가갔다.

채명천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오민철과 악수를 했다.

“수고 하셨습니다.”

권총수는 채명천의 손을 힘껏 쥐었다.

“식사 하셔야죠.”

오민철이 말을 꺼내자 채명천은 괜찮다는 듯 왼손을 들었다.

“비행기에서 간단히 배 좀 채웠습니다.”

“우리 대표님 얼굴이 나쁘지 않은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일단 회사로 들어가시죠.”

권총수가 앞장섰다.

오민철이 괜찮다는데도 굳이 채명천의 손에 있는 캐리어를 받아 끌고 세 사람은 공항을 빠져나갔다.

벤츠 한 대가 공항고속도를 달리고 있었다.

오민철이 핸들을 잡았고 뒷좌석에는 권총수와 채명천이 나란히 앉았는데 중국 다녀온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국 제일 중요한 일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군.”

“그런 셈입니다. 내가 만난 리성춘이란 친구도 자신은 얼마든지 북한을 탈출해 블랙잭에 들어올 자신이 있다는 거죠. 문제는 가족입니다. 전쟁 용병들이라는 것이 거의 미국 쪽에 서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거죠. 그래서 신분이 밝혀지면 북한의 가족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비밀로 하면 되잖습니까? 우리가 입을 다무는데 무슨 수로 북한 정부에서 알겠어요.”

운전하던 오민철이 말했다.

“탈북하여 남한으로 들어온 사람들중 상당수가 북한에 가족들을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당국에서 탈북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들었는데.”

“그 경우와 이 경우는 조금 다르지.”

채명천이 설명했다.

“전자는 단순히 탈북만 했을 뿐 북한에 해를 끼치는 것이 거의 없지. 그러나 후자는 미국편에 서서 중동의 여러 국가와 또는 테러범들과 전쟁을 하잖아. 북한 입장에서 자국 국민이

미국편에서서 전쟁을 한다는 걸 알게 되면 가만 있겠어?”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게 신분을 숨기면 어떻게 알아.”

채명천이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