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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81화 (581/651)

제581화: 돌고 돌아가는 길(2)

장웅철의 검찰출두 소식을 전하면 권총수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너무 반응이 미지근하다.

“알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 듣습니다. 일단 출근해서 얘기하죠.”

전화를 끊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자신에게 보고형태로 전화를 건 사람에게 알고 있었다고 하면 섭섭해할 것이다.

장웅철은 검찰청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털어놓을 사건을 일일이 설명했고 권총수는 초호화변호인단을 구성하여 형량을 낮추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딩동!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뭘봐 나 엉아야 임마.”

인터폰 화면을 바라보았는데 오민철이 버럭 소릴 지르며 인상을 썼다.

덜컹!

대문이 열리고 오민철이 들어섰다.

“군대 같았으면 지금 아침 구보할 땐데 말이야.”

오민철이 현관문을 들어섰다.

“그럼 다시 군대 들어가. 그렇게 아침 구보가 그리우면.”

“너 뭐라고 했어.”

“이 시간이면 아침 구보할 때라고 했잖아. 즐거운 추억으로 말한거 아냐?”

“이자식 너 죽을래, 대한민국 남자중에 군대에 좋은 추억이 있어서 군대 얘기 하는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너무 더럽다 보니까 술좌석에서 이빨 돌리는 거지.”

“그런데 왜 아침 구보 얘기를 하는 형 얼굴은 행복해 보이지?”

“얌마, 회사에서는 네가 대표지만 여기서는 내가 엉아야. 까불고 있어 진짜.”

그러면서 냉장고 문을 열더니 깜짝 놀란다.

“이사가냐.”

텅빈 냉장고를 보며 어이가 없는 표정이다.

“뭔 냉장고가 달랑 소주 한 병 있냐?”

“물 마시려면 저기 정수기.”

한쪽에 있는 정수기를 가리켰다.

“커피 할 거지?”

“오케이!”

권총수가 2층으로 올라갔고 오민철은 컵에 믹스커피를 붓고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이윽고 커피 봉지로 휘휘 젓더니 2층을 향해 소리쳤다.

“커피 마셔.”

오민철은 두 잔의 커피를 쇼파 탁자에 놓고 앉는다.

권총수는 한참 있다 내려왔는데 샤워를 한 듯 머리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식은 커피지만 소리내어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채 이사님에게는 연락 없어?”

“그렇잖아도 그쪽일이 궁금해서 의논 좀 하자고.”

“지금으로서는 어떤 의논도 일러, 어느 정도 가능성과 사업성이 맞아 떨어져야 계획을 세우고 할 텐데.”

“그렇긴 한데 개인적으로 알아봤는데 인력은 넘칠 거라더라고, 내 아는 고향 선배가 중국 연변에서 식당을 하거든, 그 형님이 그러는데 손님의 절반은 북한인이고 절반은 중국인이라는

거야. 그중 건장한 사내들이 찾아와 일감을 찾는데.”

“그 일감을 찾는 사내들이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로 보인다는 거야?”

“장사꾼의 눈매가 보통이냐. 그 형님이 백퍼센트 장담하더라고.”

“채이사님 내일 귀국하지?”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이잉!

강순태 경리과장 전화였다.

“강과장님!”

“천왕그룹 임시 주총 소식이 증권가에 떴습니다.”

“임시 주총?”

권총수 눈이 빛난다.

“소집한 쪽의 주주들 명단이 돌고 있긴 한데 좀 더 시간이 흘러 걸러지면 오늘 저녁 때 쯤 분명한 윤곽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끊었다.

“천왕그룹 임시 주주총회가 열린다고?”

“그런가봐.”

“답 나왔네.”

오민철이 허리를 쇼파 뒤로 붙이며 말했다.

“보나마나 서옥선쪽일 거야.”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냐? 이대로 가면 천왕그룹 완전히 재계지도에서 사라진다. 권악수가 아름답게 말아 먹는다는 것에 내 성을 건다.”

“그래서 망할 것 같으니까 보다 못한 권철악 전 회장의 부인이 나섰다는 거야?”

전혀 말이 안 되는 예상은 아니었다.

요즘 서옥선이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얘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직원 충원 문제는 내일 채 이사가 돌아오면 그때 제대로 얘기하자.”

“그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총수는 안방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정장차림으로 나왔다.

“그렇찮아도 운전하기가 싫었는데 잘됐네. 형님 차로 가시죠.”

“올 때는?”

“태워다 줘야지.”

“내가 너 개인 기사냐?”

“형 아들 낳았다고 너무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 아냐.”

“갑자기 우리 아들은 왜 끌고 들어가. 타.”

권총수가 조수석에 올라탔고 오민철이 핸들을 잡았다.

차는 골목을 빠져나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화기가 쉴새가 없다.

지검장 최승재를 포함한 박일도 검사, 부장검사 오해동, 차장 검사 정모석 모두 재판을 받고 있는데 그들에 대한 소식이 들어오고, 천왕그룹 임시 주총을 다음 달 초에 열기로 했다는

정보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권총수는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왼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었는데 머릿속에 가득차 있던 사람들이 한 명 한 명씩 지워지고 있었다.

자신이 워낙 분명한 증거를 검찰에 제출했고 조금이라도 미진한 구석이 있을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유철수 검사 역시 지방대 출신 검사로서 받은 그동안의 수모를 이번 사건으로 확실히 씻겠다면서 박일도와 오해동, 차장검사 정모석은 몰라도 최승재는 중형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벌컹!

그때 문이 열리고 오민철이 들어왔다.

“얘기 들었어?”

뭐냐는 듯 돌아보았다.

“현미정 사건 1심 선고가 조금전 내려졌어. 8년 받았대.”

현미정이 지은 살인교사 및 여러 범죄에 비해 형량은 세지 않았지만 재벌 사모님 치고는 중형임에는 분명했다.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 총동원 되었지만 워낙 권총수를 죽이기 위해 사전 모의과정이 분명한 증거로 남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고 오민철이 덧붙였다.

“곧바로 항소 하겠군.”

“그렇겠지.”

권총수는 벗어 놓았던 윗도리를 들었다.

“형 같이 갈거야?”

“어디가는데!”

“궁금하면 따라와!”

문을 열고 나가는 권총수를 재빨리 따라간다.

골프장이다.

차라리 초록색 양탄자다.

쳐다만 봐도 눈이 맑아 질듯한 잔디가 깔리고 우거진 숲은 이제 봄의 절정을 향해 달리는 꽃들로 넘친다.

쓰으으!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작은 공이 매섭게 날아가고 있었다.

“나이스 샷!”

동료들이 격려하듯 소리와 함께 멀리 날아간 공은 페어 웨이에 떨어졌다.

골퍼는 동료들을 향해 고맙다는 듯 가벼운 미소와 목례를 했다.

파란 풀밭을 걸어가는 골퍼들의 얼굴은 밝고 즐겁다.

골프장 휴게실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전 골프를 치던 세 사내 역시 큰소리로 떠들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따라 의도한대로 공은 날아갔고 실수라고 할 만한 플레이는 없었다.

특히 김공수는 다른 두 사람보다 말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골프 20년 만에 처음으로 홀인원을 기록했다.

나주수와 조도막은 게임은 접대 차원에서 져 주었지만 홀인원은 별개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김공수를 극찬하며 축하해주고 있었다.

“금덩어리 푸짐하게 씌운걸로 멋진 트로피 하나 만들겠습니다.”

“핫핫핫! 이상하게 두 분과 라운딩을 하면 공이 좋아집니다. 오늘은 그렇고 내일 어떠십니까? 내가 저녁 대접하겠습니다.”

홀인원도했으니 자신이 사야했다.

“차관님께서 사주신다면 무조건 아멘으로 화답해야죠.”

“행복합니다.”

두 사내는 열정적으로 아부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참을 더 얘기를 나누던 세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먼저 김공수 차량이 주차장을 떠났다.

차는 골프장을 나와 왕복 2차선 국도로 접어 들었다.

서울을 가려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김공수는 방향지시등을 켰다.

이윽고 차량 두 대가 지나가자 도로에 들어서더니 김공수는 속도를 높였다.

빠르게 달리던 차가 속도를 늦춘다.

전방이 급커브길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났고 사고 많은 지역이라는 글씨도 보인다.

차량은 속도를 완전히 떨어뜨렸다.

이윽고 코너 깊숙이 돌아가는데 갑자기 교통경찰관 복장을 한 사내가 길을 막았다.

멈칫하며 브레이크를 밟는데 교통경찰이 흰장갑을 낀 손으로 차를 도로가로 빼라는 신호를 했다.

김공수는 무슨일인가 싶어 이마를 찡그렸고 교통경찰은 길을 비켜주지 않으며 계속 빼라는 손짓을 했다.

김공수는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경찰의 막무가내 지시에 어쩔수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차를 앞으로 전진하여 길가에 세운다.

김공수는 유리를 내리고 백미러로 다가오는 교통경찰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요?”

김공수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안전벨트 맸고 속도 위반 없고, 중앙선도 넘지 않았는데 뭘 위반했다는 거요?”

“위반한 것 많습니다.”

“뭘 위반했다는 거요?”

“아니 운전자가 모르면 어떡하자는 겁니까? 면허증은 어떻게 따셨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뭘 위반했냐고 묻잖아. 내가 법을 전공한 사람이야. 도로교통법 하나 모를까. 말해봐. 내가 위반한 것이 뭔지?”

그러자 내려다 보던 교통경관이 왼손으로 앞문을 잡고 허리를 낮췄다.

김공수는 검은 선글라스 속에 자신의 얼굴이 투영되는 것을 발견했다.

“법을 전공했다는 분이 뭘 위반한지를 모르면 어떡합니까?”

“지금 뭐하자는 거요? 나 법무부 차관 김공수란 사람입니다. 현장근무하는 교통경찰의 태도가 이게 뭡니까?”

“뭘 위반했는지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그럼 내 입으로 말해드리죠.”

그때 승용차 한 대가 뒤로 다가오더니 멈췄다.

그리고 앞문이 열리고 운전사가 내렸는데 정장 차림이었고 담배 한 갑을 교통경찰에게 내민다.

“골프장에 없어서 시내까지 나가 사왔어.”

교통경관은 사내가 건네주는 담배를 받았는데 말보로 레드였다.

틱!

익숙하게 비닐을 벗겨내고 한 개비 꺼내 물더니 라이터를 켰다.

“형 차 잡아 놓고 뭐하는데?”

형이라는 말에 김공수 눈이 가늘어졌다.

선배님, 아니면 경장님 이런식의 호칭이 있어야 한다.

“자기 법 위반한 걸 몰라?”

권총수가 인상을 썼다.

“모를 수도 있지. 모르면 직접 위반 사실을 설명해 드리고 말이야.”

오민철이 히죽 웃었다.

“차관님 권악수 풀어주는 댓가로 10억 받았죠?”

“으헙”

김공수는 소스라쳤다.

“몰라요? 기억 안납니까? 안 나면 필름 잘돌아가도록 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당신들.”

“공직자가 어떤 도움을 주고 돈을 받으면 안되죠. 차관님 아직도 위반한 것이 없습니까?”

교통경찰로 변장한 오민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쯤 장웅철 변호사를 상대로 검찰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을 겁니다.”

장웅철 얘기가 나오자 김공수 눈이 커졌다.

그렇잖아도 요즘 돌아가는 형국이 아슬아슬했다.

최승재 지검장이 구속되면서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자신을 향한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온 신문이 현미정의 영장을 묵살한 최승재와 그 라인들을 흔들고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은 한줄도 없었다.

사실 자신은 현미정과는 별개다.

잠시 중단됐던 권악수 사면에 대한 로비를 자신이 했고 장관의 사인을 받아 풀어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금전이 오고 간 걸 알았을까.

딸칵!

김공수가 안전벨트를 풀더니 문을 열고 내리려고 하자 권총수가 막았다.

“앉아 계세요. 내릴 것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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