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80화 (580/651)

제580화: 돌고 돌아가는 길(1)

한편 뒤뜰이라고 하지만 거리로 따지면 20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다 구급대원이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에 권악수 귀에 충분히 들어온다.

화악!

권악수의 눈이 커졌다.

지배인의 입에서 지금 자신이 소주병으로 장웅철을 때리고 찔렀다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옆에 있던 이원성까지 소스라친다.

마치 고자질하듯 자세히도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람들 진짜!”

이원성이 눈을 부릅떴다.

단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모를리 없다.

고가의 음식을 먹는 손님이라면 적당히 알아서 둘러대고 덮어 주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구급대원이 사라지는 소리가 들리자 권악수는 흥분하여 걸어나왔다.

“지배인!”

돌아서던 지배인이 몸을 돌렸다.

“당신 미쳤소? 제정신이야?”

“제가 뭘!”

“이런 개자식이 있나. 너 다친 장웅철이 내 부하직원이라는 것 알아 몰라?”

“모릅니다.”

“몰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천왕그룹 권악수 회장님입니다.”

“실려간 우리 장팀장 나와 여기 자주 왔잖아 이 자식아. 이런 한심한 지배인 새끼.”

그때 마석춘이 다가왔다.

“회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마사장 이게 뭐요? 지배인이란 친구가 이렇게 공과 사를 구별할 줄 몰라서야 원.”

그러면서 조금전 구급대원에게 자신의 행위를 고자질하듯 말한 지배인에 대해서 반복하듯 얘기하며 노려본다.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 지배인 사무실에서 대기해요.”

지배인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갔다.

마석춘은 연신 허리를 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제가 전화를 하여 지배인의 상황파악이 잘못됐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관할인 만큼 어군 사장인 내가 야기하면 이해해 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재빨리 번호를 누른다.

그리고 통화가 연결이 된 듯 환한 얼굴로 말했다.

“어군 대표 마석춘입니다. 조금전 저희 가게에서 불미스런 일이 생겨 출동한 것으로 아는데 사건 정황을 다시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잠시 뭐라고 하는 듯 듣고 있던 마석춘의 눈이 커졌다.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사건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마석춘이 다시 설명했다.

일이 순조롭게 되는 것으로 판단한 권악수 표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은 마석춘이 권악수를 향해 말했다.

“지금 들었다시피 우리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져 그렇게 됐다고 했죠. 경찰이 개입하면 제가 알아서 할테니 회장님께는 어떤 피해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마사장은 역시 달라요. 내가 이래서 여길 자주 온다니까?”

옆에 있던 이원성이 큰 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권악수와 이원성의 차량이 떠났다. 다른 직원과 나란히 서서 사라지는 차량을 보고 있던 마석춘이 돌아섰다.

“정말로 구급대로 전화한 건 아니겠죠?”

재빨리 지배인이 다가와 묻는다.

마석춘은 빙긋 웃었다.

“저 사람 틀렸어. 사람 안 될 놈이야.”

마석춘이 한숨을 쉬며 걸어 들어갔다.

조금 전 전화는 구급대가 아닌 권총수에게 한 것이다.

내일 아침 조간 신문에 권악수의 장웅철 법무팀장 폭행사건 소식이 대문짝 만하게 날 것이다.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누군가 찾아온 듯 밖이 소란스럽다.

권악수는 아직 잠이 깨지 않았는데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이원성 의원과 마신 술이 적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혼자 양주 반병을 더 비운 탓인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간 권악수는 소스라쳤다.

거실 소파에 하얀 백발의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바로 권철악의 부인이자 자신의 양모인 서옥선이다.

그동안 거의 연락을 않고 살아왔는데 갑작스런 방문에 권악수는 당황스러운 듯 우두커니 서 있다.

“이제 어미를 보고 인사할 줄도 모르니?”

어머니.

권철악이 살아 있을 때는 어머니였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이후는 큰 어머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요즘은 주식 몇주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간섭하고 통제하려든다.

휘익!

서옥선이 들고 온 신문을 던져 주었다.

얼떨결에 신문을 받아 든 권악수는 1면을 펼쳤다.

그러다 오른쪽 상단에 큼지막하게 사회면 머릿기사 하나가 들어온다.

‘재벌총수에게 두들겨 맞은 법무팀장’

권악수는 재빨리 신문을 넘겨 사회면을 찾았다.

‘육순이 넘은 법무팀장을 폭행한 재벌 총수’

자극적이다 못해 누가 보면 쳐 죽일 놈으로 보일 만큼 섬뜩한 제목이다.

기사를 읽어가던 권악수의 손이 경련을 일으킨다.

기사를 모두 읽은 권악수는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하얗게 굳었다.

자신은 무척 몸조심해야 할 때이다.

국가 경제 운운하며 힘들게 사면되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잔혹한 기사가 노출되면 이른바 빼도박지도 못한다.

“어쩔래?”

서옥선이 꼿꼿하게 앉아 물었다.

“여론이 널 가만 놔둘 것 같으냐?”

“아침부터 부아 돋우자고 왔습니까?”

서옥선이 고개를 돌려 서 있는 권악수를 바라보았다.

“그만 내려와라.”

“뭐라구요?”

“그 자리에서 그만 내려오란 얘기다. 이러다간 진짜 회사 거덜 나겠다. 더 이상 너에게 천왕그룹을 맡길 수가 없다.”

매서운 눈으로 서옥선을 쏘아보던 권악수가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

“어이가 없네.”

돌아서서 냉장고로 걸어간 권악수는 안에서 2리터짜리 생수 한 병을 꺼냈다.

딱!

하는 소리가 들리고 마개를 열더니 2리터짜리 생수를 통째 들고 마신다.

벌컥벌컥!

거의 절반 가까이 마시고 커어하는 소리를 내며 병을 입에서 뗐다.

스윽!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더니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손에 담배갑과 라이터를 들고 있다.

딸칵!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더니 식탁 의자 한 개를 끌어와 앉는다.

“큰 어머니.”

“법적으로는 네 어미다.”

“어머니, 마음대로 하세요. 날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쫓아 내보라구요. 어떤 놈이 어머니 겨드랑이를 살살 긁던가요?”

“이젠 말도 가릴 줄 모르는구나.”

“돌아가세요.”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기는 분명코 하고 가야겠다. 주주총회를 소집했다.”

주주총회라는 말에 권악수가 눈을 치켜떴다.

“지금이라도 모든 걸 사죄하고 물러난다면 옛 정리를 생각해 법적 처벌까지는 가지 않겠다.”

벌떡!

권악수가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법적 처벌?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군. 내 회사 내가 경영하는데 어떤 개자식이 법적 처벌을 한단 말입니까?”

“여기 있는 개자식이다.”

소파에서 일어난 서옥선이 권악수를 노려본다.

“집구석이 망하려면 개새끼가 사람으로 보인다더니 우릴 두고 한 말인 듯 싶구나.”

휘익!

서옥선은 몸을 돌려 현관으로 걸어간다.

“더 신세 망치고 싶지 않으면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관 앞에서 다시 한 번 쏘아붙이고 문을 닫았다.

쾅!

문 닫는 소리가 요란하게 집안을 울린다.

권악수은 꼼짝 않고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았는데 얼굴 근육을 실룩거렸다.

거머쥔 양 주먹을 부르르 떨며 금방이라도 쫓아 나갈 듯 시뻘건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칼로 자르듯 말했다.

“저 할망구도 뒈질 때가 된 모양이군.”

퍼억!

들고 있던 물병을 바닥에 패대기친다.

“재수없는 할망구.”

씩씩거리며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방안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가져온 권악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다 멈칫했다.

복잡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수완이 좋은 그는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또 다시 전화를 하려는데 이번에는 통화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바로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던 그를 어제밤 폭행했다.

그리고 지금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되어 실린 것이다.

‘빌어먹을’

투덜거리며 쥐고 있던 전화기를 소파위에 던지듯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서둘러 덮어야 한다.

그런데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시 전화기를 주워 번호 하나를 눌렀다.

“예 회장님!”

운전기사 양형모였다.

새벽같이 걸려온 전화에 양형모는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권악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말을 하려는데 입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주위에 사람이 없다고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에게 이런 막중한 사태를 수습하라고 시킨다는 건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회장님 말씀 하십시오.”

양형모는 명령만 내리면 불길 속으로라도 뛰어 들것처럼 단호한 목소리로 일을 시켜달라고 말한다.

탁!

전화를 끊었다.

권악수는 분노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지혈을 시키고 머리와 목쪽에 CT를 찍었지만 큰 이상은 없었다.

그리고 집에서 아내가 준비해 온 식사로 아침을 해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

양치까지 마친 장웅철은 아내가 가져온 양복을 꺼내 입었다.

“어딜 가는데요?”

“누워 있을수록 사건은 커질 거야.”

“아니 그래서 지금 그 몸으로 검찰에 출두 하겠다는거에요?”

“이미 벌어진 일이니 서둘러 마무리해야지.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쓸데없는 유언비어만 만들어져.”

지금은 병실에 누워있을 때가 아니라 서둘러 일처리에 나서야 한다.

여기 있으면 권악수쪽에서 사람을 보내 피곤하게 할 것이다.

양 아버지 권철악 때부터 이어온 인간관계 운운하며 이번 사건은 물론 검찰 조사까지 잘 가려달라고 부탁하면 마음이 약해질 수 있다.

덮고 넘어갈 일이 있고 징역살이를 해도 반드시 깨끗하게 정리해야 할 일이 있다.

그동안 권악수의 심부름이었지만 너무도 많은 비리와 범죄를 저질렀다.

솔직히 이제 그만 내려놓고 싶다.

이른바 양심의 가책을 느껴 힘들었다.

“여보!”

아내 진혜미를 바라보았다.

“설마 날더러 검찰청까지 태워 달라는 건 아니겠죠?”

“미안하오.”

“맙소사!”

진혜미의 눈이 커졌다.

“남편을 검찰청에 태워다주는 마누라는 지구상에 나 진혜미 말고는 없을 거야.”

진혜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 역시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 걸 각오하고 있었다.

특히 권악수에게 당한 젊은 시절의 모욕은 아직도 소름끼칠 만큼 떠오르고 간직되어 있다.

아무리 잊고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증오만 더 키워졌다.

그렇게 장웅철은 아내의 차량을 이용해 이른 아침 검찰청에 도착했다.

예고없이 나타난 장웅철을 보며 막 출근한 최욱 검사는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선배님!”

“자네 검사되려면 아직 멀었군. 피의자에게 무슨 선배님이야.”

최욱은 머쓱한 표정을 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들어선 태우열 수사관의 눈이 커졌다.

“엇!”

그 역시 장웅철을 보고 놀란다.

“잠깐.”

양해를 얻고 최욱이 밖으로 나갔다.

직속상관인 유철수 부장검사에게 보고를 하려는 것이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일어나는데 거실 탁자에 놓아둔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린다.

권총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핸드폰을 쥐었다.

고문변호사 이충문이었다.

“어쩐일 입니까?”

“장웅철 법무팀장이 검찰청에 출두 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신문에 보니 권악수에게 소주병으로 맞아 중상을 입었다고 하던데 다친 몸으로 출두했다면 응어리진 걸 죄다 폭로하겠다는 것일까요?”

“글쎄요.”

잠시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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