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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75화 (575/651)

제575화: 벗기고 보니(1)

수사관이 아니면 누굴까.

이복상은 온갖 잔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지만 정확하게 짚이는 곳이 없었다.

휘익!

바로 그때였다. 아무도 예상못한 공격이 왔다.

이복상이 책상 위 유리 재떨이를 거머쥐더니 채 3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권총수 얼굴을 향해 던졌다.

3미터면 코앞이다.

결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거리다.

탁!

하지만 재떨이는 어느새 권총수의 오른손에 잡혔다.

흠칫!

이복상은 깜짝 놀랐다.

3미터가 모자라면 모자랐지 넘지 않는 짧은 거리다.

더욱이 자신의 주특기가 단검 던지기다.

10미터 이내면 어떤 표적도 정확히 원하는 부위에 꽂아 넣는다.

실력대로라면 지금쯤 재떨이는 권총수의 얼굴을 정확하게 찍었어야 한다.

피를 흘리며 강한 충격에 비틀거릴 권총수를 상상했는데 전혀 아니다.

“많이 던져본 솜씨군요. 흔히 강호에서는 비도술(飛刀術)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한 적엽비화의 수법이라고도 하지요.”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할 얘기들이다.

휘익!

재떨이가 날아왔다.

이복상은 피하지 못했다.

뭔가 날아오는 것 같았고 한 순간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쿵!

소리를 내며 기절해 버린다.

끄어어!

허걱!

거의 초죽음이 되어 있던 두 사내가 자지러질 듯 놀랐는데 기절한 이복상의 몸이 강시처럼 공중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경악할 일이 일어났다.

권총수가 걸어가는데 뒤에 둥둥 뜬 채 따라가기 시작했다.

쾅!

사무실 문이 닫혔다.

두 사내는 너무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한 탓인지 아무소리 못하고 거의 넋이 나간 얼굴로 닫힌 문만 바라보았다.

벚꽃이 조금씩 떨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사방은 꽃이고 또 꽃이다.

눈을 뜬 이복상은 자신이 화려한 벚꽃나무 아래 누워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얼굴이 깨질 듯 아프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얼굴에 가져다 댄 이복상은 소스라쳤다.

출혈은 멈췄지만 얼굴에 묻어 굳은 피가 손가락에 묻어 나왔기 때문인데 그제야 모든 기억이 떠오르며 정리된다.

벌떡!

얼굴 이외에는 다친 곳이 없어 몸을 일으키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흠칫!

잡초가 덮인 작은 공터였다.

그 공터 끝 바위에 두 사내가 앉아 담배를 피우며 도란도란 얘길 나누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이복상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른쪽 사내에게 재떨이로 얼굴을 맞았고 이후 기억은 없다.

“어 일어 나셨잖아.”

오민철이 바라보며 웃는다.

“자리 어떻습니까?”

오민철이 앉은 곳에서 일어나 주위 공터를 가리켰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습니다. 여긴 사유지가 아닌 국유지 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북한산 자락입니다. 국립공원내에서는 취사행위는 물론 식용이나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나물이나

버섯 체취가 일체 금지되어 있죠. 특히 명당 자리라고 하여 몰래 시신을 매장하면 안 됩니다.”

멈칫!

세상 쓴맛 단맛 볼만큼 봤다.

오민철의 말은 아무리 법이 그러해도 아차 싶으면 이곳에 묻어 버릴 것이라는 뜻이다.

“흠!”

이복상은 속으로 숨을 삼켰다.

국내 최대폭력조직중 한 곳인 신동방파 행동대장으로 활동하다 5년전 사채업을 하면서 사업가로 돌아선 것이다.

아직 동방파에 적을 두고는 있지만 조직에서 자신의 일을 관여하지는 않는다.

가끔 옛 동생들이 찾아오면 용돈 한 푼씩 쥐어 보내고 필요할 땐 그들의 도움을 받는 정도이다.

아직 이복상은 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재떨이에 얼굴을 맞아 완전히 뭉개져버렸다.

맞은 즉시 병원에 실려가도 본 얼굴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를 만큼 큰 상처인데 이토록 오랫동안 방치된다면 얼굴은 거의 개떡 수준일 것이다.

잔뜩 부어 오른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당신에게 청부한 사람 있죠? 내 생각에는 서초동쪽에서 부탁했을 것 같은데?”

서초동은 검찰을 지칭한다.

알고 있다.

더구나 건달세계에서 나름 한 신화를 쌓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신을 이토록 뭉개 버릴 정도면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무조건 안다 모른다는 식의 대답은 절대 안 된다.

최대한 협조하면서 기회를 노려야 한다.

하지만 이복상은 권총수가 기절한 자신을 공중에 띄워 사무실 밖으로 데려 갔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연변 흑룡회 칼잡이들을 불러 들인 건 당신이 맞죠?”

권총수의 질문에 이복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빠악!

권총수가 풀숲에 있는 커다란 돌덩이를 주워 머리를 찍었다.

“컥!”

“입으로 대답 하셔야 합니다.”

주르륵!

엄청난 피가 흘러내린다.

고개 좀 끄덕였다고 한 방에 머리를 깨버렸다.

“마...맞소.”

“의뢰한 사람이 누굽니까?”

이복상은 본능적으로 슬쩍 눈을 내리깔고 권총수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오른손에 돌덩이가 쥐어져 있다.

돌덩이를 놓지 않고 있다는 건 자신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다시 찍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빠악!

잠시 주저하고 있는데 눈앞이 번쩍하며 별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아픈 것이 아니라 뜨겁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속에 잠시 머리를 넣었다 꺼낸 듯 뜨겁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열기는 고통으로 바뀌었다.

온 머리가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갈 것 같으면서 수많은 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미치도록 아프다.

칼도 맞아 봤고 몽둥이로 집중 구타도 당해 봤지만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다.

“아아아!”

입을 다물었는데도 어느새 벌려져 있고 탄식에 가까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프다.

너무 아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작전은 소용이 없어진다.

즉 상황에 맞춰가며 대답을 하고 기회를 엿보아 도망을 친다거나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사장님께서는 대답하기 싫나 봅니다? 형 뭐하고 있어? 빨리 파.”

말이 떨어지자마자 오민철이 숲속으로 걸어가더니 삽을 들고 나왔다.

미리 준비한 듯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는데 묻어 버리겠다는 분명한 행동이다.

“지난번처럼 대충 파지 말고 좀 깊이 파.”

지난번이라는 말에 이복상의 눈이 커졌다.

그건 사람을 죽여 묻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뜻이다.

퍽퍽!

오민철은 힘차게 삽질을 했다.

죽는다는 것이 뭘까.

온통 칼과 쇠파이프 뒤덮인 도산검림(刀山劍林)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누군가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자신의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살벌 하고도 섬뜩한 일이었다.

“당신은 브로커 역할 밖에 한 것이 없잖습니까? 누구보다도 법에 대해 잘 아실 분이?”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며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그러다 보니 법에 대해서는 상당히 안다고 자부하는데 그걸 말하는 것이었다.

파팟!

이복상의 눈이 빛났다.

이제 보니 그렇다.

자신의 중개인 역할 말고는 다른 일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설혹 법정에 선다고 해도 3년 이하일 것이다.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집행유예도 가능하다.

더군다나 두 명의 검찰 수사관이 살해된 것도 아니니 법정에 서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건 걱정할 것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절대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얘기죠.”

벗어날 수 있는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문석도요.”

“형 그만 파.”

권총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민철이 삽을 집어 던지고 헉헉 거렸다.

“나쁜놈, 자백 하려면 빨리 하지. 거의 다 팠는데.”

오민철이 인상을 쓰며 담배를 물었다.

피곤하다.

하루 종일 시달렸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꼬이고 있었는데 오후 4시까지 연락이 되던 이복상의 핸드폰이 꺼져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건방진 새끼 감히.”

자신의 전화를 피하다니 참을 수가 없다.

이런 일로 인해 뒤틀린 심사를 다스리는 술좌석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 털어 놓고 하소연 할 수 없는 일이므로 혼자 삭히고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커어!

소주 한 병을 모두 비우고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주인이 소주를 가져다주었고 병을 잡으려는데 누군가 낚아채듯 가져간다.

따악!

익숙한 동작으로 마개를 딴 사내가 자신의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잔잔한 웃음을 짓는다.

“마시면서 내 얘기를 들으시죠. 문 수사관님에게 이번 사건을 지시한 사람이 누굽니까? 심심해서 문 수사관님 혼자서 일을 벌였을 리는 없고 누군가 쓸 만한 칼잡이 없는지 알아보라고

했을 텐데요.”

문석도의 표정이 굳는다.

“한 가지만 귀띔해 드리죠. 연변친구들, 이복상 모두 내 수중에 있습니다.”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거꾸로 훑어왔다는 뜻이다.

“너무 걱정 마세요. 문 수사관님도 단지 지시를 받고 따랐을 뿐이니까 감옥살이 할 일은 없을 겁니다. 또한 표적이 된 차동렬과 오세일 수사관이 조금 다치긴 했지만 살해된 것도

아니고.”

눈 앞에 앉은 마흔 중반의 사내는 자신의 행동이 별일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 역시도 그걸 모르는바 아니다.

단지 범죄자의 일부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지은 죄보다 더 큰 두려움을 만들 뿐이다.

그중 당장 옷을 벗게 되면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진다.

아마 자신과 같은 이 시대의 가장들이 어떤 일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걱정하는 일일 것이다.

“직장이 걱정된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직장을 주겠다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 문 수사관님 한 명 정도 일할 자리는 많습니다.”

팟!

눈 앞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혹시! 권총수씨?”

“어쩌시겠습니까?”

부인도 긍정도 않고 묻는다.

퇴근을 하려는데 갑자기 정모석 차장검사가 불렀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정모석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는데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빈 의자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통화가 끝난 정모석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한참을 망설이는 듯 했다.

심호흡을 몇 번 토해내고 입을 열었다.

“문 수사관.”

“예 차장님!”

정모석은 다시 말을 멈춘다.

자리에 앉지도 앉고 사무실을 왔다갔다하며 서성거리는 걸 보면 매우 중요한 얘기인 듯 싶었다.

“아는 사람 있소? 솜씨 좋은 친구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치켜떴다.

“깔끔하고 은밀하게 정리 할 수 있는 사람 말이오. 솜씨 좋은 친구로? 타인의 입을 아주 잘 닫게 하는 사람이면 더욱 좋고.’

“없애는 겁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부탁합니다.”

그건 분명히 살인을 의미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온 지 기억을 할 수 없을 만큼 놀랐다.

얼굴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동료 수사관을 제거하기 위해 칼잡이를 알아보라는 차장검사의 말은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이틀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는 시간을 갖고 난 문석도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이복상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연변 흑룡회 멤버들의 입국은 그렇게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차장 정모석이 지시한 모든 것이 녹화되어 있었다.

핸드폰이 발달하면서 친한 친구라고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특히나 자신 같은 조직사회의 사람들은 만약을 대비해 윗사람의 지시를 철저히 녹음한다.

그 녹음이 이제 권총수의 손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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