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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73화 (573/651)

제573화: 반역의 눈동자(1)

권총수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 위에 부장, 차장, 그리고 지검장은 물론 총장까지 모두 합심하여 현미정이 얽인 사건 영장 발부를 막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윤칠수 기자 사망사건 역시 총장에게까지 보고가

됐다고 난 봅니다. 당신을 출발해서 총장까지 이른바 지휘라인이 순순히 범죄를 고백하고 자수를 하면 넘어가겠지만 그렇지 않고 잔머리를 쓴다거나 버텼다가는 한 판 크게 벌어집니다.”

권총수는 약간 웃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쁘거나 즐거워 웃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권총수는 커피 잔을 들고 일어났다.

“아, 참 자동차 수리는 내가 할 테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권총수는 계산대로 가더니 테이크 아웃 할 수 있도록 일회용 컵에 커피를 담아 나갔다.

권총수가 나갔지만 박일도는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5분여 그렇게 있더니 핸드폰 녹음기능을 켰다.

권총수와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다.

화악!

박일도 눈이 커졌다.

아무리 녹음 버튼을 눌러도 권총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틀림없이 녹음을 했다.

그런데 단 한 마디도 들어있지 않는 것이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별것도 아닌데.’

권총수의 전음이 파고들자 박일도는 어깨를 움찔했다.

마치 전화기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귀에만 쏙 들려왔다.

박일도는 다시 한 번 녹음재생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지만 권총수에 대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녹음이 됐으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카드가 된다.

협박 공갈에 출근길을 의도적으로 막았으니 공무집행 방해도 된다.

하지만 권총수는 무형의 강기로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만 전달되도록 차단해 버렸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출근을 하여 사무실에 앉아 아침 사건을 복기하고 있던 박일도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과 권총수가 마주 앉아 차를 마셨다는 것이었다.

‘녹음은 아니어도 CCTV라면’

동영상을 확보하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해 얼마든지 사건을 만들 수 있었다.

재빨리 전화기를 들고 말했다.

“오늘 영장판사가 누군지 알아봐.”

전화를 끊은 박일도 얼굴에 생기가 돈다.

반격의 카드를 찾아 낸 것이다.

박일도는 영장을 발부 받아 스타복스를 찾아가 영상을 확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영상을 본 박일도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권총수의 모습이 찍혔다.

하지만 좋아할 일은 아니었는데 뒷 모습 뿐이었다.

분명 커피를 주문하고 받아오면서 돌아섰으므로 CCTV에 얼굴이 찍혔어야 한다.

그런데 찍힌 얼굴을 본 박일도는 또 한 번 신음을 토하고 말았다.

노인이다.

권총수가 아닌 족히 칠십은 됐음직한 노인이 커피를 주문하고 커피를 받아 자리로 가고 있었다.

한 가지 더욱 놀랄 일은 그때 근무했던 스타복스 여직원의 말이었다.

‘내 기억에는 칠십이 넘은 노인분께서 두 잔을 주문했고 가지고 그쪽으로 간 것으로 압니다’

자신은 권총수와 얘기를 나눴는데 카메라와 직원은 칠십 노인을 보여준다.

환면술(幻面術)이다.

분신술이라고도 부르지만 얼굴만 바꾸기 때문에 환면술이 맞는 말이다.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것이다.

박일도는 어금니를 깨물며 스타복스에서 철수했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침 결재를 모두 끝내고 잠시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오민철이 들어섰다.

“어제가 일주일째잖아.”

무슨 연락 있느냐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웠다.

“충분한 기회를 주었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건 죽여주십시오 하는 외침 아니겠어?”

“그러게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야.”

오민철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내가 뭐랬어. 그런 족속들은 피가 우리와 다르다니까. 자신들이 무조건 최고인줄 알고 있어. 자신들은 흠결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담배를 끈 권총수가 입을 열었다.

“어제 밤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아?”

“어제 밤?”

오민철은 사무실에 있는 달력을 보았다.

그냥 평범한 목요일이다.

사건 사고도 크게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애기한 그대로 됐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듯 권총수를 바라보던 오민철이 갑자기 놀란다.

화악!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정말?”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검찰수사관 차명렬과 오세길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계속 출퇴근을 했다.

물론 권총수를 통해서 박일도를 만나 동영상을 제시하고 자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로(生路)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박일도를 비롯한 검찰 윗선의 생각은 달랐다.

두 수사관을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만의 범행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대신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 할텐데 어느 정도 액수를 요구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징역을 살고 출소한다고 하여 모든 것이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다.

평생 그 두 사람에게 자신들은 약점을 잡히고 살아야 한다.

남의 손에 삶을 저당 잡혀 산다는 것처럼 비참하고 두려운 건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 뿐이다.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권총수가 가만히 둘 리 없다.

“10시쯤 왔더만?”

“누구야? 두 수사관을 죽이기 위해 온 놈들은?”

킬러가 왔다는 권총수에 말에 오민철이 묻는다.

“연변에서 왔다던데.”

조선족이라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참치회집 어군을 운영하는 마석춘의 도움을 받아 칼을 잘 쓰고 몸이 빠른 사내 십여명을 부탁했다.

차명렬과 오세길 둘에게 다섯 명씩 경호를 붙인 것이다.

“그놈들 잡혔겠네?”

오민철이 침을 삼켰다.

“안전하게 모셔놨지. 아마 두 사람이 태평스럽게 출근을 한 오늘 검찰청이 한바탕 뒤집어지겠지. 죽었어야 할 둘이 출근 도장을 찍었으니.”

“갑자기 굉장히 재밌어 지는데.”

오민철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난리가 났겠는데, 검찰청에 구경이나 갈까.”

오민철이 침을 삼켰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 뒤를 오민철이 쪼르르 달려갔다.

차는 인천으로 달려갔다.

사무실을 떠난지 한 시간 조금 지나 부둣가에 있는 단층짜리 창고 앞에 멈췄는데 입구의 철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권총수는 차에서 내려 벨을 눌렀다.

그러자 창고 안쪽으로 있는 조그만 사무실 문이 열리고 모자를 쓴 경비가 걸어왔다.

“오셨습니까?”

권총수를 알아보며 고개를 숙인다.

덜컹!

철문이 열리고 권총수와 오민철은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는 재빨리 대문을 다시 닫고 이번에는 창고 문을 열어 주었다.

냉동창고는 두 개의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반 공장과 다를바 없고 안쪽으로 거대한 냉동고가 따로 있다.

그 안에 여름철에 잡힌 대서양 참치를 보관하는 것이다.

즉 이곳은 어군 소유의 냉동창고였다.

경비는 창고 문만 열어주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탁!

권총수는 입구에 있는 불을 켰다.

창고 안은 조용했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곳에 네 명의 사내가 알몸으로 묶여 있었다.

먼저 다가간 오민철이 묶인 사내들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아이 자식들 목욕 좀 하고 다니지.”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코를 막았다.

“인상도 더럽고.”

팔목을 묶은 밧줄을 풀기 위해 애를 쓴 듯 손목 주위로 핏물이 묻었고 바닥에도 듬성듬성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퍼억!

오민철이 다짜고짜 대머리 사내를 발로 찼다.

“허억!”

“자식아 이름 말해야 할 것 아냐?”

“와 멘시 중구 엔.”

중국어로 말을 하자 오민철이 대번에 눈을 부릅떴다.

“이 새끼가 어디서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너 조선족인지 알아. 한국말로 해.”

“와 멘시 충구 엔?”

“이런 씹새끼가.”

주위를 둘러보던 오민철이 도끼를 발견하고 다가가 거머쥐었다.

가끔 냉동실에 달라붙은 얼음을 깨는 용도로 사용하는 도끼였다.

퍼억!

오민철은 시멘트로 된 바닥에 위력 시범을 보이듯 힘차게 내리쳤다.

파팍!

하는 소리가 들리며 시멘트 일부가 깨졌다.

빠악!

다시 한번 내려치자 시멘트가 깨지면서 작은 구덩이가 만들어졌는데 오민철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은 놈이 짱개야. 이상하게 짱개를 보면 그냥 죽이고 싶어. 너 중국 놈이니까 죽어라. 고구려 연개소문 장군님께서 너희들 손에 운명하셨지. 내가 제일 존경하는

화끈한 연개소문형님의 원수를 갚겠다.”

오민철은 도끼를 들어 사내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잠깐 조선족이오. 나 조선족이라니까요!”

뚝!

내려치던 도끼가 머리 위에서 멈췄고 사내는 눈을 질근 감았다.

“난 평화주의자다. 하지만 흥분하면 살인주의자로 바뀐다. 두 번 묻게 하지 마라?”

“내가 왜 거짓말을 합니까?”

오민철이 도끼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이름?”

“오화복.”

“오씨야? 어디 오씬데?”

“낙안오씨.”

“뭐 낙안 오씨라고.”

오민철 자신도 낙안오씨다.

“솔직히 말하지. 나도 낙안 오씨야. 즉 너와 난 문중 사람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최대한 예우를 해주겠다. 문중 사람끼리 얼굴 붉히지 말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자는 뜻이야.

알겠나?”

“항렬이?”

“문중이면 됐지 무슨 항렬까지 따져 콱.”

오민철 집안은 오씨중 항렬이 낮다.

서로 따져봤자 보나마나 조카뻘 정도 될 것이 뻔했기에 가로 막은 것이다.

“어제밤 죽이려고 했던 인물들 누구의 사주를 받았지?”

오화복은 멈칫하며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면서 다른 세 명의 동료를 돌아보자 오민철이 도끼를 다시 바닥에 찍었다.

쿠웅!

시멘트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제법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말하는 놈은 살고, 말하지 않는 놈은 골통을 쪼개 버리겠어. 너희들에게도 포함되는 질문이란 말이야. 알아 들었나?”

오민철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안 되겠군. 이 자식들이 내가 누군지를 아직 모르는군.”

발목이 묶여 꼼짝 못하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한 번에 자를 수 있을까.”

도끼날로 발목의 찍을 부분을 이리저리 재기 시작했다.

도끼날을 통해 전해지는 차가운 냉기가 온 몸을 얼게 만들었다.

“한 번에 발목 두 개를 동시에 잘라 버리려고 했더니 안되겠군. 하나씩 자르는 게 정확하겠어.”

스윽.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올린 오민철이 힘껏 내리쳤다.

하지만 사내는 눈만 감았을 뿐 입을 열지 않았고 오히려 오민철이 발목 근처에서 도끼를 멈췄다.

“어랏. 이 자식 진짜 한번 해보자는 건데.”

오민철이 싸늘한 시선으로 도끼를 다시 들어 올릴 때 권총수의 전음이 흘러나왔다.

‘다리 잘려도 말하지 않을 놈이야’

한마디로 체면 구기지 말고 물러서라는 뜻이었다.

오민철은 작정하고 나섰다.

권총수 옆에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지 봐왔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도 추궁하면 효과적인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오늘 또 다시 실패했다.

‘형 낙담할 필요 없어’

오민철은 입은 걸어도 마음은 딴판이다.

너무 착하다.

품성이 모질지 못하기 때문에 방법이 서투르고 당연히 상대의 입은 열리지 않게 되어 있다.

고문기술자란 말이 있다.

누구든 고문은 할 수 있으나 기술자란 말을 들을 정도면 완전히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상대의 고통에 오히려 즐거워하며 가학적이고 사이코적 성향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아무나 고문을 기술적인 경지로까지 끌어 올리지는 못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오민철이다.

“형 잠시 쉬어.”

교대하는 형태로 오민철을 물러서게 한 뒤 권총수는 묶인 네 사내를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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