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72화 (572/651)

제572화: 그대로 그렇게(2)

알수가 없다.

개포동 근처 어디라면, 아니 청계산 일대라면 워낙 등산을 다녔기 때문에 한눈에 아는데 아주 낯설다.

“담배 하나 피우시죠?”

왼쪽 사내가 담배를 권했다.

차명렬은 멈칫하며 얼른 받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너무도 눈에 익은 모습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바로 자신들이었다.

수사관이 피의자를 데려와 취조를 할 때 자꾸 버티면서 아니라고 부인하면 무척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폭력이나 폭언을 사용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주 가끔씩 담배를 권한다.

담배는 둘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경계의 벽을 흔드는 묘한 마력을 갖고 있었다.

쌓인 고통을 토해내듯 담배 연기를 뿜으면, 그토록 닫혀 있던 피의자의 입이 술술 열리기도 하고 별 저항 없이 서류에 지장을 찍기도 한다.

그렇다고 두 사내가 검찰 수사관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차명렬은 담배를 쥐었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앉아요. 바쁠 것도 없는데.”

왼쪽 사내가 천연덕스럽게 자리까지 권한다.

잠깐 망설이던 차명렬은 왼쪽으로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지가 얇아서인가 금세 차가운 냉기가 엉덩이로 전달된다.

셋이 앉아 있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면 불안한 사람은 차명렬이다.

하다못해 자신들이 누군지 왜 여기까지 납치해 왔는지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이다’

차명렬은 상대가 심리전에 무척 밝고 뛰어난 사람들임을 알아보았다.

이따금 자신들도 피의자를 데려다 놓고 일부러 취조를 않고 방치하듯 상당시간 놔둔다.

눈빛도 보내지 않고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취조실에 방치해 놓으면 피의자는 더욱 긴장한다.

피의자의 심리를 흔들어 놓기 위한 계산인 것이다.

이들 역시 자신을 흔들어 놓기위해 일부러 말이 없는 것이 틀림없다.

하다못해 둘이라도 얘길 나눠야 하는데 자신에게 담배를 줬던 사내는 갑자기 뒤로 벌렁 누워 버리더니 ‘별 한 번 더럽게 많구나’하며 중얼거렸고 오른쪽 사내는 담뱃불을 끄고 미동도

않는다.

대리기사로 변장하여 자연스럽게 핸들을 잡았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왔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담배를 권하며 묵언 수행하는 스님처럼 말이 없다.

침묵의 사신이라는 소설이 있다.

책속 주인공은 말이 없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벙어리인 줄 알고 있었다.

그는 킬러다.

사람을 죽이고 돈을 버는 살인청부업자인데 입이 한 번 열리면 한 번 실수하고 두 번 열리면 두 번 실수한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

“흐음!”

차명렬은 자신이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아니 열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사람은 자신이다.

“당신들은 누구요? 난 검찰 수사관 차명렬이란 사람입니다. 나와 무슨 감정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였다. 계속 침묵하고 있던 오른쪽 사내, 대리기사가 입을 열었다.

“살인혐의는 벗을 것이라더군요. 죽일 목적이 아닌 잠시 저항을 제압할 목적이었는데 그만 뇌진탕으로 숨졌으니까?”

화악!

차명렬의 눈이 커졌다.

단번에 모든 것이 쏙 떠올랐다.

윤칠수 사건이다.

자신과 동료 수사관인 오세길이 저지른 윤칠수 사망사건을 말하고 있었다.

“혹시?”

눈을 빛내며 대리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느새 대리기사의 얼굴은 사라지고 낯익은 얼굴이 앉아 있었는데 권총수였다.

“사막의 흑새.”

권총수가 일어났다.

“사건 나기 이틀전에 당신과 오세길씨가 그 아파트 주차장을 답사 했더군요. 경찰에서는 그 부분을 놓쳤어요.”

권총수는 핸드폰을 작동하더니 당시 영상을 보여주었다.

핸드폰 속의 영상은 사건 이틀전 자신과 오세길이 답사차 갔었던 모습 그대로가 찍혔다.

“내가 누군지 알죠?”

권총수 표정이 차가워졌다.

“당신이 협조하면 나 또한 최대한 돕습니다. 하지만 불편하게 자꾸 튕기면 그땐 나만의 고유 방식이 있습니다. 전쟁터 방식이라는 건데 민간사회와 조금 다릅니다.”

전쟁터 방식이란 말에 차명렬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전쟁을 해본 경험이 없는 자신으로서는 그것이 어떤 방법인지 알 수가 없다.

그때 누워있던 오민철이 일어나더니 다가왔다.

“전쟁터 방식이라고 해봤자 별것 아닙니다. 그냥 때리고 마음에 안 들면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가 따당!”

오민철은 차명렬의 면전으로 손을 뻗더니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타탁!

오민철은 어깨를 토닥였다.

“수사관이니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알 것이고.”

차명렬은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권총수도 오민철도 또다시 침묵이다.

자신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차명렬은 어금니를 물었다.

자신들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사건 지휘체계를 보면 박일도 검사와 그 위로 부장, 차장에 이어 지검장, 그리고 총장까지도 물려 들어갈 수 있다.

“하루정도 기다려 줄 수 있소?”

빙긋!

권총수가 가볍게 웃었다.

“관련자들과 협상을 해볼 생각인 모양이군요? 그건 바보짓입니다.”

차명렬은 왜 그것이 바보짓이냐는 듯 권총수를 보았다.

“왜 바보짓인줄 아십니까? 그들은 검사입니다. 검사동일체, 결국 당신과 오세길씨에게 모든 걸 뒤집어 씌울 겁니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 힘을 갖고 있죠.”

휘청!

차명렬은 비틀거렸다.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검사는 결코 지지 않는다.

그들은 반드시 이기는 집단이고 저항하는 사람이 있으면 먼지 한 올까지 탈탈 털어 기어이 엮어 버린다.

자신이 직접 수사관으로 참여한 사건중 그런 일이 한두 번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검찰의 권력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모른다.

평소에는 검찰로 다니지만 위기가 닥치면 가차없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수사권과 기소권을 사용한다.

군대시절 아무리 생활관 청소를 깨끗하게 해도 내무검사에서 걸린다.

트집을 잡자고 마음 먹으면 트집 없는 곳이 없다.

사람은 더욱 그렇다.

슥!

스슥!

차명렬은 갑자기 주머니를 뒤졌다.

담배를 찾는 건데 담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술집에서 나올 때 이미 담배가 떨어졌다.

슥!

오민철이 다시 한 개비를 다시 내밀었는데 지금 보니 국산이 아니다.

“말보로 레드라는 담배요. 한번 피워보시죠. 묵직하니 넘어가는 맛이 괜찮습니다.”

오민철이 싱긋 웃었다.

담배를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차명렬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출근길이다.

박일도 검사는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 나와 골목을 내려갔다.

비좁은 골목은 출근 차량과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차량이 뒤엉켜 엉망이었다.

박일도는 유리를 내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골목을 확장한다는 구청의 발표가 있었지만 아직 공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출퇴근 시간에는 항상 서로 엉킨다.

퍼억!

가까스로 비켜 나간다 했는데 끝내 올라오는 차와 비키다 말고 부딪치고 말았다.

“에이!”

야구모자를 눌러쓴 차량 운전자가 인상을 썼다.

잘못은 박일도에게 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잠시 딴생각을 하다 핸들을 돌렸는데 맞은편 차가 지나가고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꿈틀!

박일도 이마가 찌푸려진다.

하필 피해 차량이 벤츠였기 때문이다.

한 번도 외제 승용차와 접촉사고를 내 본 경험은 없지만 들리는 말로는 작은 흠결에도 몇천 나온다고 했다.

빵빵!

좌우에서 빨리 비키라는 경음기 소리가 시끄럽다.

“일단 옮깁시다.”

라카로 바닥에 표식을 남기고 두 사람은 차를 뺐다.

약간의 공간이 있는 골목 한곳에 차를 세운 뒤 두 사람은 만나 명함을 주고받았다.

“전 명함이 없어서, 연락처를 드리죠.”

사내는 주머니를 뒤척였다.

하지만 종이가 있을리 만무하고 보다 못해 박일도가 자신의 명함 한 장을 더 꺼내 뒷면에 적으라는 듯 내밀었다.

사사삭!

재빨리 번호를 적어 건네준다.

“골목을 빨리 넓혀야지.”

사내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더니 밀린 차량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럼 수고하쇼.”

박일도가 몸을 돌릴 때 사내가 말했다.

“오늘 운 좋은 줄 아십시오.”

빙글!

박일도가 돌아섰다.

사내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어제 밤 내내 고민을 해봤는데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어느선까지 잘라야할지, 아니면 총장까지 모조리 엮어야 할지.”

박일도 눈썹이 꿈틀거린다.

“검사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검사님 생각 좀 들어보기 위해 이렇게 왔죠. 검찰청으로 찾아가면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박일도의 표정이 굳어진다.

강력사건만 수사하는 검사다.

직감적으로 자신의 신변과 연관된 일임을 간파하고 한걸음 다가온다.

“누구시죠?”

명함에 검사 박일도라는 글씨가 써 있는데도 이런식으로 나온다는 건 평범한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평범하지 않을 때는 평범하지 않게 대접해야 한다.

“요 밑에 스타복스 있던데 안 바쁘시면 커피 한 잔 하시죠.”

그러면서 권총수는 자신의 차량을 향해 걸어갔다.

이쪽의 대답도 듣지 않고 가는 권총수의 행동에 박일도의 표정은 더욱 굳어진다.

무슨 건수를 잡았기에 현직 검사인줄 알면서도 저토록 당당할까.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박일도는 남의 가게 앞에 바짝 세워둔 차를 몰고 골목 아래로 내려갔다.

중간에 스타복스가 있는 곳으로 빠지는 샛길 하나가 있다.

박일도가 들어섰다.

출근길 스타복스는 한산했고 아침일찍 노트북을 켜 놓고 공부하는 학생들 너댓이 보인다.

권총수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뭐 드시겠습니까?”

“커피 하죠!”

권총수는 계산대로 걸어가 커피 두 잔을 시킨 뒤 번호표를 들고 돌아왔다.

“궁금하시죠. 내가 누군지? 그리고 아까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말입니다.”

그때 벌써 커피가 나온 듯 안쪽에서 번호를 부르는 직원의 외침이 있었다.

권총수는 걸어가 커피 두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와 앉는다.

후룩!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권총수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동영상 한 개를 틀어 주었다.

“잘 보세요?”

박일도가 볼 수 있도록 핸드폰을 돌려주는 친절까지 베푼다.

멈칫!

핸드폰을 보는 박일도 눈이 빛난다.

동영상은 윤칠수를 몽둥이로 때리고 기절시킨 뒤 주머니를 뒤지는 사내들 모습이었다.

신물 나도록 봐왔던 영상이다.

“다 보셨으면 이것도 하나.”

권총수는 다시 핸드폰을 조작해 또 하나의 영상을 틀어 내민다.

“재미있을 것입니다.”

영상을 보던 박일도 눈이 커졌다.

그러나 권총수를 의식했는지 재빨리 표정을 고쳤으나 쉽지 않은 듯 얼굴 근육이 떨린다.

영상속 두 사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

자신과 같이 근무를 하는 차명렬과 오세길이다.

“어떻습니까?”

권총수는 영상이 끝나자 핸드폰을 가져오며 물었다.

“낯선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경찰이 검사를 아침부터 이리 저리 끌고 다니지는 못할 것이고?”

당신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두 영상 속 인물은 동일인들입니다. 인정하시죠?”

“글쎄 난 잘 모르겠소.”

권총수가 환하게 웃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윗분들에게 전달하십시오. 일주일의 시간을 드립니다.”

권총수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눈빛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