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71화 (571/651)

제571화: 그대로 그렇게(1)

권총수까지 뒤따라 경비실 안으로 들어가자 더욱 놀란 표정으로 따라 들어왔다.

“경비실이 아담하고 좋습니다. 여긴 에어컨까지 설치되었군요. 입주민들이 아주 멋있는 분들인 모양입니다. 어떤 아파트는 전기세 아깝다고 에어컨도 설치해주지 않는다던데.”

두 사람은 벽 쪽으로 붙어있는 벤치 형태의 길다란 의자에 앉았다.

“우선!”

스윽!

권총수가 오만원권 열 장을 내놨다.

갑작스런 거액의 돈에 경비는 소스라치며 재빨리 창밖을 본다.

대낮의 아파트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긴 했으나 누구도 경비실에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

“뭐하십니까? 얼른 넣으세요. 눈치 보이잖습니까?”

“내가 왜?”

무슨 돈이냐며 잠시 주춤했다.

“일단 넣으세요.”

그제서야 경비는 돈을 주머니에 넣었는데 마른침까지 삼키는 걸 보면 상당히 긴장해 보였다.

“한 가지만 물어 보겠습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입주민이 아니면 주차장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까?”

“당연히 없죠. 입주민으로 등록된 차량만 차단기가 올라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럼 차가 아닌 사람은 들어갈 수 있군요?”

“사람도!”

들어갈 수 없다고 말을 하려는 듯 하더니 경비는 잠시 멈췄다.

사람이 걸어서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까지 막을 방법은 없다.

“주차장 바닥에 각 호수가 쓰여 있던데 반드시 그곳에만 주차를 해야 합니까?”

“예! 다른 집 주차 번호에 세우면 안됩니다. 한 집에 한 대씩 배정이 되었는데 두 대의 차량을 갖고 있는 집이 적지 않죠. 그래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주 정확한 행정입니다.”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CCTV 동영상 보관 기한은 어느 정도 됩니까?”

“넉 달 입니다.”

권총수는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오민철은 재빨리 핸드폰에 있는 캘린더를 펼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윤칠수가 사망한 날이 이날이니까 4개월이면 앞으로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

윤칠수 사망 운운하자 경비는 경찰로 판단한 듯 말했다.

“경찰이면 경찰이라고 하시지.”

멋쩍은 웃음을 지었는데 괜히 긴장했다는 행동이었다.

“아직 4개월이 안됐다면 당시 영상을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이윽고 경비는 컴퓨터를 느린 손으로 토닥이며 조작하더니 잠시후 화면속에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화면 상단에 날짜가 나왔고 계속 뒤로 돌렸다.

“이 날이 그날입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에 화면을 맞추어 놓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권총수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간 당일 화면을 몇 차례보던 권총수는 날짜를 하루 전으로 돌렸고 그때부터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화면을 살폈다.

오민철도 가까이 붙어 앉아 집중적으로 윤칠수가 살해된 장소만 보기 시작했다.

하루 전 날짜가 넘어가고 그 전전 날 화면이 나타났다.

“엇!”

두 사람은 동시에 놀라는 소리를 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1월15일에서 이틀 전인 13일날 화면에 두 명의 사내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경비실에서는 두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 했는데 주차장이 익숙하지 않는 듯 그들은 여기저기 기둥에 쓰인 변호를 살폈다.

한눈에 외부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행동들이다.

그렇게 주차구역을 찾으며 걸어가던 두 사내가 C구역 1112호라고 찍힌 주차라인에 섰다.

그리고 주위를 차분하게 살핀다.

이어 고개를 들고 천장에 달린 CCTV를 바라보더니 어떤 것은 직접 다가가 올려다 보기까지 했다.

“멈춰봐!”

권총수가 소리쳤고 오민철은 재빨리 화면을 정지시켰다.

“좀 더 당겨봐.”

화면이 당겨지고 고개를 쳐들고 CCTV를 살피는 두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프린터기 있습니까?”

권총수가 물었다.

경비가 있다는 대답을 했고 권총수는 오민철을 향해 말했다.

“일단 프린터로 두 사람 얼굴 사진 한 장 복사하고 USB가져 온 것 있지. 그걸로 다운 좀 받아.”

“옛썰!”

오민철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꽂았다.

드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두 사람의 얼굴이 비록 흐릿하지만 골격은 분명하게 프린터 되어 나왔다.

“끝!”

다운을 받았다며 오민철은 꽂은 USB를 뽑았다.

슥!

권총수는 지갑에서 오만원권 다섯 장을 더 뽑아 경비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두 사람은 경비의 배웅을 받으며 아파트를 떠났다.

퇴근을 하려는데 권총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채불수 팀장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겠다면서 재빨리 핸드폰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자신에게 온 메일을 열고 동영상을 끄집어 냈는데 깜짝 놀란다.

“조형사!”

조문철 형사를 불렀다.

“잠깐 와봐. 얼른.”

자리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며 일을 하던 조문철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왜요?”

가까이 다가온 조형사는 화면 가득 나온 두 사내를 바라보았다.

“낯익은 사람들 같지 않아?”

“글쎄요. 익기는 한데, 으음 동대문 투식이파 놈들 아닙니까? 왼쪽 놈 꼭 조투식이 오른팔 소주병 닮았는데.”

오래전 경쟁 조직에 포위가 되었을 때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양손에 소주병을 들고서 조투식을 구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소주병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채불수는 날카로운 눈으로 계속 화면을 노려봤다.

“가만!”

뭔가 생각 난 듯 눈을 좁히더니 상체를 세우며 팔짱을 끼었다.

“아 젠장. 미치겠네. 흐흐흠!”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는지 투덜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채불수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다.

“뭐하세요?”

그때 일을 보러 나갔던 김황식 형사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모니터를 보고 나서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우리 사건 엿 먹인 박일도 밑에 똘마니들 아냐?”

“그래!”

채불수가 기다렸다는 듯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맞아. 그놈들이야. 차명렬과 오세길이, 이제 분명하게 생각이 나는군.”

“저 두 사람이 왜요?”

김형사가 묻자 조문철 형사가 자초지종을 대답해 주었다.

권총수는 변호사 이충문과 마주 앉아 있었다.

이충문은 이번 세무조사건에 매달려 있었는데 아직까지 조용한 걸 보면 큰 꼬투리를 잡지는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어쨌든 국세청장까지도 개입했다는 것 아닙니까?”

“국세청장 재가 없이 무슨 수로 움직입니까?”

“지금 국세청장에 대한 세간의 평은 어떻습니까? 정치적 색깔도 그다지 강하지 않고 강직한 성품의 바른 생활의 사나이라고 하던데요?”

이충문은 빙긋 웃었다.

“설마 그런 소문을 믿습니까? 공직자는 거의 바른 생활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보면 됩니다.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잘보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명절

챙겨야죠. 생일날 챙겨야죠. 자신과 승진 경쟁을 벌이는 동료를 앞서기 위해서는 수시로 윗분들과 접촉해야죠. 그런데 맨 입으로 접촉합니까?”

권총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한국에서 출세는 본인이 어떻게 처세를 하느냐에 달렸다는 뜻이었다.

국세청장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다.

“권악수의 로비 수법을 보면 한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윗대가리에게만 먹이지 않는다는 거죠.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행동대장격에게도 과감한 투자를 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당연히 효과는 클 수밖에 없죠.”

지이잉!

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권총수는 채불수 팀장이라는 걸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인해보셨습니까?”

“예, 찾아냈습니다.”

“누구죠?”

“검찰 수사관들이었습니다. 박일도 밑에서 일하는 친구들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권총수는 전화기를 내렸다.

이충문이 무슨 전화인지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았는데 권총수는 한동안 꼼짝 하지 않았다.

갈비 익는 냄새가 구수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으며 수사관 차명렬도 초등학교 동창 십여 명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다.

유난히 초등 동창생 모임은 자주 이뤄지고 참석 인원도 많다.

중고등학교나 대학보다 모임 결성이 잘 이루어지는 건 아마 세상을 모를 가장 순수한 나이때 만난 기억때문인지도 모른다.

술잔을 부딪치며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은 즐거웠다.

불콰한 얼굴에 하나 둘 주름이 만들어져 가기 시작하는 나이지만 이 시간 만큼은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는 듯 했다.

하나둘 택시를 잡아 타고 떠나간다.

차명렬이 또 만나자면서 손을 흔들어 동창생들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사내가 다가왔다.

“대리 부르셨죠?”

청바지에 검정색 가죽 자켓을 걸쳤고 야구모자를 눌러썼다.

“벌써 왔습니까? 오늘 주말이라 시간 좀 죽이겠다 했는데 빨리 왔네. 저 차요.”

차명렬은 길가에 세워둔 자신의 차량을 가리키면서 자동차 키를 던져 주었다.

탁!

대리 운전사는 가볍게 키를 받더니 문을 열었고 차명렬이 탈 수 있도록 뒷문까지 열어준다.

예상 못한 기사의 서비스에 차명렬이 약간 놀란 듯 하더니 들어간다.

탁!

문이 닫히고 기사는 재빨리 차량 앞으로 돌아 운전석에 앉았다.

부르릉!

시동이 걸리며 깜빡이를 켰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핸들을 꺾어 나오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차명렬은 완전히 골아 떨어졌다.

도착했다고 운전사가 몇 번을 흔들고서야 깨어났다.

“아함 피곤해!”

차명렬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얼맙니까?”

고개를 들고 앞을 보다말고 멈칫했다.

조금전까지 있던 대리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차명렬은 주위를 둘러 보았는데 돌연 소스라쳤다.

자신의 집은 개포동이다.

그런데 주위로 불빛 하나가 보이지 않았고 자신을 태웠던 대리기사가 조금 떨어진 창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

좀 더 자세히 보자 담뱃불이 두 개였다.

자세히 보니 두 사람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차명렬은 당황했다.

전후좌우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불빛이라고는 담뱃불 말고는 없다.

차명렬은 재빨리 핸드폰을 찾았다.

없다.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살폈고 바닥까지 눈에 불을 켰지만 보이지 않는다.

후우!

숨을 내쉬며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자신은 지금 아주 위험에 빠졌다.

냉철해져야한다.

차명렬은 앞좌석 사이로 상체를 집어 넣고 위해 핸들을 자세히 보았다.

키가 없다.

키가 일정한 거리안에 있을 때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사내가 갖고 있다면 충분히 걸릴 거리다.

혹시 몰라 상체를 구부리고 핸들 옆 키를 눌렀다.

꾹꾹!

아무리 눌러도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아 키는 시동거리 밖에 있는 모양이었다.

뭐하는 놈들이지.

차명렬의 눈은 차분하게 가라 앉았다.

서둘고 급하게 행동해 봤자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현직 검찰 수사관을 납치할 정도면 평범한 놈들은 절대 아닐 것이다.

“으음!”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흘러나온다.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렇게 무턱대고 앉아 있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차명렬은 어금니를 물며 다시 밖을 보고 난 뒤 문을 열었다.

딸칵!

4월 말이지만 밤바람은 차갑다.

차명렬은 고개부터 돌려 주위를 살폈는데 어딘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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