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0화: 세무조사(2)
지그시 웃음을 지었다.
정문 의경 정도는 가지고 놀아야 하는데 깐깐하게 나오자 오민철이 짜증이 난 것이다.
오민철은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화를 삭히고 있었다.
마침내 근무교대를 했다.
“빨리가. 빨리, 뛰어 임마.”
다른 근무자와 교대하자마자 의경은 안쪽으로 급히 들어갔다.
“빠져 가지고 자식들.”
오민철이 인상을 썼는데 새로 교대한 의경이 인상을 썼다.
“아저씨 거긴 우리 경찰서 구역입니다. 두 걸음 밖으로 나가 기다리세요.”
“얌마, 경찰서 땅 좀 밟으면 안되냐? 이것도 법에 걸리냐고?”
“그건 아니고.”
“그럼 됐어 자식아. 어린놈의 자식이 버릇없이.”
그때 안쪽에서 낯익은 사내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다.
“오 이사님!”
오민철은 웃으며 밖에 있는 권총수를 가리켰다.
“대표님!”
채불수 팀장은 오민철과 악수를 했고 다가오는 권총수와도 힘껏 손을 잡았다.
“언제 오셨습니까?”
“지금 막 오는 길입니다.”
오민철이 대답했는데 채불수 표정이 밝지 못했다.
단번에 마음이 불편한 상태라는 걸 알아본다.
“그렇잖아도 몇 번 전화를 할까 했지만 워낙 바쁜 분이기도 하고 이곳과 시차가 잘 맞지 않아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차라도 한 잔 하시죠.”
그러면서 채불수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미류나무라는 커피숍 간판을 가리켰다.
세 사람은 횡단보도 앞에 섰고 금방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 틈에 섞인 세 사람이 커피숍 안으로 사라졌다.
한편 권악수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굳어 있었으며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으며 피우는 것이 뭔가 굉장히 못마땅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이봐요. 김국장,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상대는 국세청 조사4국장 김진태였다.
한마디로 지금 한참 서류를 분석하고 살피지만 그다지 나올 것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가 블랙잭 세무조사 때리기 위해 얼마를 투자하는 줄 압니까? 자그마치 10억이 넘어요. 당신한테만 들어간 돈이 3억이야.”
자신이 직접 만나 건네주었다.
‘3억입니다. 모자라면 더 말하세요. 놈을 잡기만 해 주시면 됩니다’
어군에서 식사를 하며 오만 원권으로 3억을 전달했다.
김진태는 자신있게 걱정 말라고 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오랜 세무공무원의 노하우까지 더해지면서 김진태는 자신감을 보였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건질만 한 건수가 없다는 것이다.
“찾아봐요. 눈을 까뒤집고 찾다보면 있을 겁니다. 당신 말처럼 털어 먼지 안 나는 놈 어딨어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진태 표정은 딱딱했다.
수모도 이런 수모가 없다.
국세청 조사4국은 그야말로 세금 탈루기업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이름하여 저승사자라고도 불릴 만큼 한번 그들의 조사가 들어가면 온전할 기업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만난 사람이면, 특히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허리를 숙인다.
사회는 보직이다.
들어온 첩보를 바탕으로 기습적으로 훑기도 하지만 세무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들어간다.
옛날처럼 정권 차원의 세무조사는 없어졌지만 누군가 근거가 있는 투서를 하면 종합적으로 살피고 판단하여 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쾅!
김진태는 권총수를 떠올리며 구둣발로 책상을 걷어찼다.
“어린새끼가.”
이를 갈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3억이란 거액을 받아 챙겼으니 자신은 권악수 손아귀를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이다.
딸칵!
한참 블랙잭에서 가져온 장부와 자료들을 조사하는 요원들 방으로 들어선 김진태는 큰 소리로 말했다.
“찾아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기어이 잡아야 한다고.”
직원들 모두 굳어진다.
자신들도 이미 이번 세무조사는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냄새 맡은 것이다.
귀에 익은 팝송이다.
영화 킬링필드 마지막 엔딩 장면 배경음악으로 나오던 비틀즈의 이매진의 노랫소리에 굳어 있던 채불수 표정이 조금 환해진다.
중학교 때 단체 관람으로 봤던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자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밝아진 것이다.
“나 참!”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권총수의 말이다.
채불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잘하면 못 만날 뻔 했습니다. 지금 발령 대기에 있거든요.”
“왜요?”
“위에서 그렇게 하라는데 무슨 수 있습니까? 잘 아는 선배가 그러는데 지방으로 갈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경찰 인사는, 그중에서도 강력계 형사들은 거의가 그 지역 경찰서만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민철이 눈을 좁혔다
채불수는 커피를 후루룩 소리내어 마셨다.
“지방이라면 무조건 좌천이라고 봐야 합니까?”
“좌천이라기보다는 쫓겨 가는 거죠.”
오민철의 질문에 채불수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피살된 대한신문 사회부 윤칠수 기자와 같이 있었다는 것이 좌천의 이유이자 전부라고 하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고 내가 계속 현미정에 대한 수사를 포기하지 않자 위에서 많이 불편한
거죠.”
쭈욱!
권총수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우리가 현미정씨 구속영장을 몇 번 청구한 줄 압니까? 무려 네 번입니다. 알겠지만 웬만해서는 두 번 이상은 청구하지 않죠.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진행하고 검찰에 넘기는게
편하니까.”
“담당검사가 누구였습니까?”
“박일도라는 새파란 놈인데 아무리 봐도 그놈 작품 같지는 않고 부장이나 차장들도 크게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최승재가 상당히 정치적이란 평을 받고 있죠.”
“최승재는 누굽니까?”
“지검장입니다. 권철태 대통령 시절에 승승장구했고 그쪽과는 잘 통하죠.”
그쪽은 권악수를 의미했다.
“박일도와 부장 차장 검사까지는 의심가는 부분은 없다?”
“전혀 의심권 밖에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판단은 그렇습니다. 지검장이거나 아니면 역시 권철태 정부시절 쭉쭉 뻗어나간 검찰총장이 냄새를 풍기긴 하는데 워낙 지고무상한 분들이니
함부로 이상하다고 떠들고 다닐 수는 없고.”
비아냥거리듯 채불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죄송합니다. 숟가락으로 떠먹기만 하면 될 만큼 증거까지 만들어 줬는데 구속 시키지 못해서.”
채불수는 정말 미안한 표정을 했다.
“그 말이 맞네. 대한민국 법은 딱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얘기.”
오민철이 웃는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권력 앞에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현실이 어이없기 때문이다.
“권철태가 대통령 할 때 지검장 총장 모두 고속도로를 탔다면 과거 그의 부정이나 드러나서는 안 될 짓거리들을 많이 덮어줬다는 뜻 아닐까요?”
“정치인만큼 검사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없죠. 검사 또한 출세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적 후견인이 있어야 하고.”
“서로 물고 물려 있군요?”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걸 거야.”
침묵하던 권총수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이라니?”
오민철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권총수를 바라본다.
그러자 대답은 채불수가 해주었다.
“아버지 밑에서 출세길 달렸다고 아들에게까지 충성하지는 않죠.
전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거래는 분명 다를 겁니다.”
“권철태 시절에는 권철태만 봐줬고, 권악수는 다르다. 새로 거래를 만들지 않는 이상 특혜가 상속되지는 않는다는 거야?”
오민철이 권총수를 바라본다.
“그렇지.”
“그렇다면 권악수가 아버지때와는 별개로 새롭게 사임당 신씨를 쳐먹였다는건가.”
오만원권, 즉 돈을 말한다.
권총수는 커피를 마셨다.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다.
“경찰관 인사 발령은 누가 냅니까?”
“위에서 내리지.”
오민철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 바라본다.
“어느 선에서 결정하느냐고, 경찰청장이 강력계 팀장 인사까지 관여 하지는 않을 것 아냐?”
“발령날 때 종이쪽지를 보면 경찰서장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 위에서 사인이 나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죠.”
“종로경찰서장 출신이 어디요?”
“경찰대학입니다.”
“지역을 묻는 것입니다.”
“서울로 알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얘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권총수가 주로 질문을 했고 채불수는 설명하듯 자세히 말해 주었다.
권총수의 질문이 많아진다는 건 아직 확실한 전략을 세우거나 좋은 해결책을 찾아 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경찰로부터 아파트 주차장 CCTV 복사본을 넘겨받아 살폈다.
대한일보 윤칠수의 피살 사건으로 추정되는 새벽 12시30분부터 1시30분까지의 화면을 집중적으로 보았는데 권총수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찾았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윤칠수의 차량이 멈추자 주차 번호쪽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묘하게도 주차장 CCTV와 한 번도 두 사람의 얼굴이 마주치지 않았다.
우연인지 아닌지 의도적인지는 아직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계속 화면을 등지고 있었다.
무려 십여 차례 반복 재생하여 봤지만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CCTV와는 등을 돌린 상태에서 움직였다.
행동까지 너무 자연스럽다.
탁!
화면을 멈추고 권총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소파에 앉은 오민철은 노트북을 자신쪽으로 돌린 뒤 혼자서 반복 재생하기 시작했다.
딸칵!
권총수는 답답한 듯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가 닫힌 문을 열고 밖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그러나 바람에 연기를 고스란히 얼굴을 덮어 씌우며 실내로 들어왔다.
“잠깐 와봐.”
오민철이 화면을 보면서 불렀다.
권총수는 피우던 담배를 끄고 오민철 옆으로 앉았다.
오민철이 노트북을 권총수 쪽으로 돌리며 말한다.
“자세히 보자고.”
동영상을 아주 느리게 돌린다.
마치 부분 동작처럼 두 사내의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그렇게 다섯 번을 돌린 뒤 오민철이 말했다.
“뭘봤냐? 보이는 것 없어?”
자신은 중요한 걸 발견한 눈빛이었다.
“완벽하잖아.”
오민철이 자신있게 말한다.
“뭣이 완벽해?”
“카메라를 등지는 행동이 말이야. 카메라 위치를 알고 있지 않다면 이토록 행동하나 하나 할 때마다 카메라를 등지고 할 수가 있냐고.”
파앗!
권총수 눈이 빛나면서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봐 봐. 어색한 동작 하나가 없어. 두 사람 모두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등진단 말이야.”
몇 번을 돌려보던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푸르스름한 빛이 쏟아졌다.
차랑한대가 아프트 경비실 앞에 멈췄다.
경비실 문이 열리고 육십 가량의 사내가 나와 묻는다.
“어디 가십니까?”
“잠깐 차 좀 여기 세우고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검정색 벤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권총수였다.
“누구와?”
“선생님과 잠깐.”
그러면서 차단기를 밀고 들어갈 듯 다가가자 재빨리 안에 들어가 스위치를 눌러 올린다.
경비실 옆으로 차 두 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 라인이 그려져 있었지만 차는 없었다.
핸들을 잡고 있는 오민철은 후진으로 그곳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권총수 역시 조수석에서 내렸고 두 사람은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경비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잠깐 들어가시죠.”
그러면서 오민철이 제 집인 양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