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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69화 (569/651)

제569화: 세무조사(1)

둥근 메달 속에는 성조기를 의미하는 희고 붉은 색의 선이 있고 가장자리로 13개의 별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쓰여 있는 신의, 용기, 진실(Fidelity, Bravery, and Integrity)이라는 선명한 글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FBI 명예요원임을 증명하는 골든메달이다.

권총수는 미소를 가득 물고서 크리스가 건네주는 골든메달을 받았다.

비록 몇 명 되지 않는 자리지만 지켜보던 사람들은 힘차게 박수를 쳐 주었다.

크리스는 FBI사상 명예요원은 권총수가 최초라고 했다.

백악관 사인까지 떨어졌다는 걸 강조했는데 그건 자신과 FBI뿐만 아니라 백악관, 즉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화기애애한 자리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 * *

채명천을 비롯한 블랙잭 간부들은 소스라쳤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정장을 한 사내 십여명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국세청 조사4국에서 나왔다고 했다.

국세청 조사4국이라는 말에 채명천은 아찔한 충격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사내들이 흩어지고 각 층마다 놀라고 당황하는 직원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이잉!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명천 역시 당황하여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쾅!

강순태 경리과장이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이사님 국세청 세무조사라니 이게 뭡니까?”

채명천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주먹을 쥔 오른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사님, 갑자기 무슨 세무조사냐구요?”

“내가 그걸 어찌 아나.”

채명천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를 꺼내더니 피워 문다.

드르륵!

창문을 열어젖히고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두 눈이 깊게 잠겼다.

“국세청에서 들이닥칠 일이 없잖습니까?”

경리과장이다.

회사내 자금 이동 상황을 총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서류를 조작하거나 뭔가를 숨긴 건 단 한 건도 없다.

물론 거래하는 회계사무소에서 깔끔하게 맡아 정리하기 때문에 이렇게 들쑤시고 시끌벅적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대표님이 따로 사용하는 비자금 뭐 그런 것 있나?”

채명천이 돌아서서 물었다.

“대표님께서 그런 짓 할 분입니까?”

“회계사무소에 연락은 했나?”

“물론이죠. 별일 없을 것이라고 하긴 했습니다만...”

“왜 그러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회사 어디 있느냐는 거죠.”

가장 무서운 말이다.

제 아무리 법을 잘 지켜도 털면 경미한 내용 일지라도 위반 사항은 나온다.

“혹시!”

강순태의 눈이 반짝 거렸다.

“지금 세무조사 말입니다. 그 사람 작품 아닐까요? 권악수.”

파팟!

채명천이 깜짝 놀란다.

권악수가 출소한지는 오래됐다.

그동안 신문지상에서 거의 사라졌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말에 의하면 천왕은 오늘부터 새로 태어났다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고 기업 경영에 전력투구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

권총수는 떠나면서 천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살피라고 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다.

권악수는 여전히 위험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아니겠지!”

채명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거야. 바보가 아닌 이상.”

잠을 자는 것도 아닌 눈을 뜨고 있는 호랑이(권총수) 꼬리를 밟을 이유가 없다.

“권악수라면...”

강순태는 확신하는 듯 눈을 빛냈다.

“그렇지 않을 거야. 권악수가 그렇게 멍청한 사람인가. 그렇지는 않을 거야. 건드렸다가 개 피봤는데 설마?”

채명천은 확신을 하면서도 워낙 지저분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말의 불안감을 비쳤다.

권악수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절대 건드려서는 안되는데 너무 멍청하다는 것이 문제다.

권총수는 굉장히 자제하고 참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그쪽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개심할 생각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심지어 현미정 같은 경우는 보육원시절 악착같이 권총수를 찾아내 죽여 없애 버렸어야 했는데 하면서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보다 못해 자신이 짐승은 절대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옆에서 강조했지만 권총수는 이쯤에서 끝내고 싶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권악수라면 충분하다’

채명천이 내린 결론이다.

권악수라면 또 다시 선전포고를 하고도 남을 인간이다.

부욱!

채명천은 담뱃불을 끄고 핸드폰을 들었다.

한밤중이겠지만 전화로 사실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술기운을 몸 밖으로 배출 시키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눕자마자 잠이 들었으나 진동으로 해 놓은 전화 벨소리에 금방 눈을 떴다.

액정에 채이사라는 글씨가 나타나자 곧바로 지풍을 날려 스위치를 켰다.

객실이 환해지고 권총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긴 지금 몇 십니까?”

“오후 2시가 막 넘었습니다.”

워싱턴은 깊은 새벽이다.

채명천은 잠시 망설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무조사에 대해 말을 전했다.

세무조사라는 말에 권총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디라고 합니까?”

“국세청 조사4국이라고 하더군.”

권총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협조할 것 있으면 최대한 협조 하세요. 뉴저지주 훈련장을 들렸다 가려고 했는데 나중으로 미뤄야겠군요. 아침 먹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잠이 깬다.

잠시 가만 앉아있던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객실 창문으로 다가갔다.

곧 아침이 될 것인데도 도시의 불빛은 잠들 줄 모르고 있었다.

‘세무조사’

여지껏 뉴스를 통해 듣기만 했던 일이 자신 앞에 벌어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재벌들처럼 비자금이니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돈을 해외로 빼돌리는 일은 없다.

“으음!”

권총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인천공항에 워싱턴에서 날아온 국적기 한 대가 착륙했다.

비행기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 바다속으로 태양이 서서히 잠겨 들고 있었다.

권총수는 석양을 등지고 사람들과 나란히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대 쪽으로 걸어갔다.

옆에는 오민철이 있었지만 역시 굳어 있고 간간이 권총수의 표정을 살피기를 반복했다.

워싱턴을 출발해서부터 지금까지 권총수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입국장을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채명천과 홍보이사 정태경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우리 대표님 역시 최고이십니다 하며 엄지 손가락을 곧추 세우며 환영할 채명천이 굳은 얼굴로 다가온다.

권총수는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태경 홍보이사가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잘 털어 갔습니까?”

흠칫!

채명천이 놀란 표정으로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말에 살기가 끼었다.

“이리 주십시오.”

정태경이 권총수의 손에 들린 캐리어를 빼앗듯 쥐었다.

권총수는 정태경에게 가방을 넘겨주고 청사를 걸어갔고 나머지는 재빨리 옆을 따르기 시작했다.

“조사 4국장이 누군지 알아 봤어요?”

“김진태라는 친군데 한음대학을 나온 서울 토박이 출신이더군. 형님은 현재 로펌 광명소속의 변호사고, 김동설이라고.”

김동설이라는 말에 권총수가 걸음을 세웠다.

동부지검장을 지낸 강골 공안통이다.

공안이란 말 그대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의미한다.

즉 공안부 검사라고 하면 대중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는 수사 검사라고 보면 맞다.

문제는 이들이 시국사건과 대공문제에 손을 대면서 정권 앞잡이 노릇을 해왔다는데에 있고 그중 김동설은 가장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과거 그에게 조사를 받고 유죄를 받았던 사람들중 상당수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이끌어 낸 것을 보면 그의 수사가 얼마만큼 무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가 옷을 벗은 것도 지휘 아래 있던 검사 하나가 피의자를 폭행하여 숨지게 한 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법복을 벗은 지 얼마되지 않아 곧바로 전관예우라는 황금의 방석을 깔고 3년 만에 백억이 넘는 수임료를 벌어들인다.

“잘 아는 사람이야?”

오민철의 질문에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몰라요. 언젠가 텔레비전 토론인가를 통해 한 번 본 것이 전부죠. 기억하는 건 이빨이 무척 거칠었다는 것이고, 그 사람 여의도에도 들어갔었죠?”

“들어갔지, 강남쪽에서 출마하여 두 번인가 당선된 것으로 알고 있네.”

더이상 권총수는 아무 말도 않고 걸어갔다.

주차장에는 회사 소유의 밴이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운전기사가 재빨리 내려와 권총수에게 인사를 하고 정태경과 오민철의 손에 있는 캐리어를 차에 실었다.

부우웅!

모두가 승차하고 밴이 주차장을 출발했다.

채명천은 그동안 있었던 모든 것을 보고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권총수가 한 가지에서 반응을 보였다.

그건 피살당한 대한신문 사회부 윤칠수 기자였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차안의 모두가 긴장한다.

권총수가 다시 설명 듣기를 원한다는 건 그 사건에서 이미 냄새를 맡았다는 뜻이다.

채명천은 차분하게 윤칠수 기자가 죽었던 얘기를 시작했다.

당시 언론보도까지 자세히 전하고서야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검정색 밴 한 대가 종로경찰서 앞에 멈췄다.

재빨리 정태경 이사가 내려 문을 열어 주었고 권총수와 오민철이 내린다.

“이 짐은 일단 사무실로 옮겨 놓으세요.”

기사를 향해 오민철이 말했다.

“먼저들 가세요.”

오민철이 손을 들어 올렸다.

밴이 떠나고 권총수는 경찰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지키고 있던 의경이 가로막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강력2팀 채불수 팀장을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약속은 되셨습니까?”

“옛날 전화번호가 바뀌었더군요.”

그런 사전 연락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의경은 난색의 표정을 했다.

“약속이 안 된 상태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신 원하면 메모 정도는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권총수는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전경에게 건네주었다.

“전해주시죠.”

“알겠습니다.”

권총수는 돌아섰다.

차안에서 채불수와 몇 번 통화를 시도했으나 없는 전화번호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자식들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인터폰이라도 한 번 해주지.”

오민철이 인상을 쓰며 의경을 돌아보았다.

의경은 자신의 근무가 끝나면 그때 전달해줄 모양이었다.

확!

오민철이 갑자기 돌아서더니 의경을 향해 걸어갔다.

“어이 의경, 우리 대표가 준 명함 지금 좀 빨리 가져다 주면 안되나. 그렇게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잊어버리면 어쩔건데?”

“걱정 마십시오. 우리는 안 잊습니다.”

“근무 교대 언제야?”

급기야 오민철은 인상을 쓰며 노려본다.

“30분 남았습니다.”

“30분! 좀 더 빨리 어떻게 안되냐?”

의경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카악!

오민철이 가래침을 뱉으며 의경을 노려본다.

“아저씨 거기 서 있으면 안되요. 좀 더 밖으로 나가 계세요.”

“나가면 될 것 아냐. 왜 성질을 내고 지랄이야.”

의경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지금 공무집행 방해하는 겁니까?”

“아휴 저걸 그냥 콱, 얌마 나도 707근무시절 위병 근무 경험이 있어서 잘 아는데 너무 그러지 마. 좆도 아닌 것이.”

707이란 말에 의경의 눈이 커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던 권총수는 둘의 입싸움에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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