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68화 (568/651)

제568화: 코만도(2)

곳곳에 가로등이 켜지고 리우 시내는 점차 화려한 네온사인에 덮이기 시작했다.

부우웅!

아스팔트로 포장된 차선 없는 골목길을 차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골목 좌우로는 단독주택이 몰려 있는 리우의 부촌이다.

집집마다 거의 경비를 두지 않는 사람이 없고 방범 시설이 요새로 생각될 만큼 철저했다.

차는 속도를 떨어뜨리며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졌다.

여전히 위압적인 대저택들이다.

높은 담장과 골목길을 내려다보고 있는 CCTV가 괜히 지나가는 사람을 움츠리게 한다.

끼이익

골목 중간쯤 회색벽돌로 된 담장 옆으로 차가 멈췄다.

라이트가 꺼지고 잠시 후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정장 차림의 사내가 내렸다.

적당한 체격에 쉰 중반 정도로 보인다.

차에서 내린 사내는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집 대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집안 차고에 넣는데 오늘은 곳곳에 빈자리가 많아 그냥 바깥에 주차하는 것이다.

사내가 대문의 벨을 누르기 위해 손을 뻗는데 탁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푸슉!

휘청!

마치 오른발을 헛딛은 사람처럼 사내의 몸이 흔들거리더니 그대로 넘어졌다.

넘어진 사내는 자신의 옆구리를 만져보는데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으윽!”

신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이를 악물고 시선을 들어 다가온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불빛을 등지고 있어 용모는 알 수 없다.

두 명이다.

가까이 다가와서야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처음 본다.

그런데 한 명의 사내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사...사막의 흑새.”

권총수는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제 있었던 프레드의 경찰력 지원을 거부한 건 잘하신 일입니다. 물론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해서 그리 하셨겠지만, 어쨌든.”

소음기가 끼워진 권총을 사내에게 겨눈다.

“그래서 편히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코만도 5인 평의회 위원님.”

푸슉!

총알은 정확히 이마를 뚫었다.

죽은 후에도 자갈루 청장은 눈을 뜨고 있었다.

“욕심이 많으면 떠나는 발걸음이 원망스럽지. 그래서 눈을 뜨고 죽는다더군.”

오민철이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도무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다.

비록 비서 겸 경호원이 같이 동행하지만 불안했다.

견고한 성 같았던 프레드가 죽고 어젯밤 자갈루 경찰청장이 집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이며 당선 가능성이 유력한 재무장관 카날레스는 안절부절 못했다.

5인 평의회 위원중 남은 사람은 자신과 헤수스 비서실장 뿐이다.

그나마 헤수스는 대통령궁인 플라나우투에 하루종일 처박혀 있다가 출퇴근 시간에만 잠시 밖으로 나올 뿐이다. 게다가 경호실 소속의 경호요원의 경호를 받는다.

대통령처럼 엄중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경호원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실력을 지녔다. 그래서 전화로 그쪽 솜씨 좋은 경호원 한 명을 부탁했는데 자기소관이 아니라면서 곤란하다고 한다.

문득 카날레스 입가에 실소가 떠올랐다.

코만도 5인 평의회 위원중 한 명이므로 같은 식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헤수스가 매몰차게 거절하는 건 뭘까.

오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답은 금방 나온다.

철저히 돈으로 뭉쳤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권력을 제공하고 프레드는 달러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프레드가 죽자 각자도생의 길 말고는 방법이 없다.

거절은 한 마디로 나 살기도 바쁘다는 뜻이다.

딸칵!

문이 열리고 수행 경호원 겸 비서인 몰리나가 나타났다.

카날레스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는데 벌써 퇴근 시간이었다.

“저녁 스케줄 있나?”

“오늘은 없습니다.”

카날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뒤숭숭하고 불안할 때는 일찍 집에 들어가 쉬는 것이 가장 좋다.

화악!

옷걸이에 걸어 놓은 외투를 걸치고 책상 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잊은 건 없는지 다시 한 번 스윽 책상과 주위를 훑어보곤 열린 문을 향해 걸어갔다.

몰리나는 주차장에 있는 승용차를 본관 현관 앞에 대기 위해 내려갔을 것이다.

복도를 걸어갔다.

퇴근을 하는 다른 부서의 직원 몇이 카날레스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지나간다.

카날레스는 일일이 그들의 눈웃음을 받아 주었다.

오른쪽으로 꺾어지고 현관로비가 나타났다.

멀리 회전문 밖으로 차 한 대가 주차해 있는데 몰리나가 서 있었다.

카날레스는 회전문을 밀고 차로 걸어갔다.

몰리나가 뒷문을 열어 주었고 카날레스가 차에 오르자 문을 닫는다.

이윽고 운전석에 오른 몰리나는 차를 출발 시켰다.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툭!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스르륵!

와이퍼가 한 번 움직이며 묻은 빗방울을 모조리 닦아내자 신호가 바뀌었다.

부우웅!

차는 빠르게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잠깐 잠이 들었다.

카날레스는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창문 밖으로 불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여긴 어딘가?”

“거의 도착했습니다.”

“어딜 가는데 말인가?”

몸을 틀어 좌우를 살필 때 차가 길 오른쪽으로 빠졌다.

덜컹!

비포장 도로였다.

“몰리나! 허헉”

룸밀러를 보던 카날레스가 별안간 소스라쳤다.

몰리나가 아닌 전혀 낯선 사내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

끼이익!

차가 멈추고 권총수는 룸미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권총수는 자연스럽게 차 밖으로 내렸고 카날레스는 사색이 되었다.

카날레스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간파하고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하려했다.

그때 귓가로 한줄기 음성이 들린다.

‘전화하면 더 빨리 죽습니다’

카날레스는 소스라치며 핸드폰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침착하기 위해 주먹을 쥐고서 오른쪽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개의 담뱃불이 보인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더 있다는 뜻이다.

어떡하지.

카날레스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몰리나를 대신해 핸들을 잡았다는 건 그는 이미 죽었다고 봐야 했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건 분명 나올 때는 몰리나 얼굴이었다는 것이다.

카날레스는 다시 허리를 구부려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운 뒤 조심스럽게 192를 눌렀다.

“여보세요. 장관님!”

조용했기에 긴급 요원의 목소리가 제법 똑똑하게 들렸다.

“장관님!”

“도와주시오.”

“곁에 누구 있습니까?”

“상대는 아직 모르겠소. 캄캄하여 장소도 어딘지...”

“저희가 파악한 위치는 리우 서북쪽 56번도로 체리턴 공원 입구입니다.”

체리턴 공원이란 말에 번쩍 정신이 든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즉시 구조대를 보내겠습니다.”

재빨리 통화를 끊고 앉아 있는데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권총수가 문을 열고 내려다본다.

“전화하면 빨리 죽는다고 했잖습니까?”

스윽!

권총수가 권총을 내밀었다.

받으라는 뜻이다.

카날레스는 거절을 하려고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권총수가 건네준 권총을 오른손으로 쥘 수밖에 없었다.

끄으으!

악착같이 버텼으나 팔이 자신의 목을 향해 꺾어지고 그 바람에 총구가 목젖에 닿는다.

“으헉!”

무슨 의미인지 알았기에 카날레스는 소스라쳤으나 소용없었다.

권총수는 무형의 강기를 이용해 카날레스 오른손 검지를 당겼다.

타앙!

총소리가 울리며 카날레스는 뒷좌석에 벌렁 쓰러졌다.

권총수는 죽은 카날레스를 내려다보더니 문을 닫았다.

“형 갑시다.”

오민철과 권총수는 어둠속에 있는 포드 익스플로러를 끌고 현장을 떠났다.

둘이 떠나고 20분 정도 지났을 때 사이렌을 울리며 구조대와 경찰차가 도착했다.

차문을 열어 뒷좌석에 죽어있는 카날레스를 발견한 모두는 소스라쳤다.

브라질의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다.

그가 죽은 것이다.

다음 날 또 하나의 뉴스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헤수스가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것이다.

경호원은 정확히 그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갔다.

헤수스의 아내는 즐겁게 저녁식사까지 했고 자신은 먼저 안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어나 보니 욕실 커텐 고리에 넥타이로 목을 맨 남편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타살의 흔적을 전혀 찾아 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크리스 국장은 몇 번을 사무실을 서성거렸다.

이보다 더 확실한 마무리는 없다.

이건 인간의 작품이 아니다.

신일지라도 이토록 완벽하게 거대마약조직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5인 평의회 멤버가 모두 제거되었을 뿐 아니라 기회를 노리며 반란을 꿈꾸던 언더보스 여섯 명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코만도는 하루아침에 무주공산(無主空山:주인 없는 산)이 되어 버렸다.

“최소한 3년,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분오열되어 쪼개질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높다고 봐야죠.”

제7국장 테일러가 말했다.

“내전이라도 일어난다는 거요?”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 들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프레드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 없는 이상 수십 개 조직으로 쪼개질 것이 뻔합니다.”

대형조직은 쪼개질수록 좋다.

조직이 작아지거나 여러개로 나눠지면 시장을 놓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다.

더욱이 코카인 제조 기술자는 한정되어 있고 그들을 빼앗기 위한 사생결단의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싸움이 일어나면 경찰이 개입할 수밖에 없고 자동적으로 많은 조직원들이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마약조직은 급속히 쇠퇴한다.

싸움이란 노출이고 그건 범죄자를 추적하는 경찰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택시 한 대가 워싱턴 트럼프 호텔 앞에 멈췄다.

호텔 도어맨이 도착하는 택시 뒷문을 열어주고 권총수와 오민철이 내렸다.

두 사람이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캐인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정장을 한 캐인을 보며 오민철이 말했다.

“웃는 모습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브라질에서의 캐인은 오로지 마약조직 소탕을 위한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더욱이 적지 않은 부하요원들이 코만도 조직원들에게 희생당하면서 웃음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드럽고 환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눈 캐인은 둘을 안쪽으로 데려갔다.

1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웨이터가 룸으로 안내를 한다.

특별히 준비한 룸인데 문이 열리고 들어서자 크리스 국장과 마약전담국 제7국장 테일러가 보인다.

간단한 음료와 과일만 있다.

그런데 권총수가 들어가면서 종업원들이 음식을 담은 카터를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리스 국장은 호텔 주인은 투박하고 불친절한 사람이지만 이곳 요리는 매우 신선하고 따뜻하다고 했다. 백악관 주인을 지낸 트럼프가 이곳 호텔 주인이었다.

어느 정도 음식이 차려지고 크리스는 식사를 권했다.

모두가 앉아 저녁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많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와인이 몇 차례 돌았고 크리스가 직접 따라주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크리스가 작은 가방을 열더니 자색의 포장된 상자를 꺼냈다.

뚜껑을 열자 유리로 된 액자가 나왔고 그 안에는 상장 같은 종이 하나가 들어있다.

그리고 블루 화이트 레드의 삼색 끈에 매달린 둥근 메달 한 개가 눈길을 끌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