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7화: 코만도(1)
권총수는 관광차에서 내리듯 밴의 앞문으로 느긋하게 내렸다.
그제서야 오민철은 안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죽음이 왔다갔다 하는 전장에서 피우는 담배 맛은 가히 천하일미(天下一味)다.
쏟아지는 비가 담뱃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손으로 덮으며 담배를 빨았다.
슈우욱!
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몸을 날려 경비실 옥상에 내려앉았다.
“형, 고생했어요.”
자신과 달리 오민철은 완전이 푹 젖었다.
그러나 얼굴은 환했는데 모처럼 자신이 제대로 역할다운 역할을 했다는 것에 기분이 좋은 것이다.
“이제는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어.”
권총수 역시 담배를 피워 물고 말했다
“지원병력이 계속 올 수도 있다는 거야.”
“나도 그렇게 보고 있어.”
그러면서 바닥을 보았는데 브라우닝 기관총의 실탄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200발이 들어가는 박스 다섯 개를 가져왔다.
두 박스를 비웠으니 아직 600발이 남아 있다.
오민철이 그냥 갈기는 것 같아도 최대한 조준사격을 하여 의미 없이 날아간 총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두 번째는 반란이야.”
“누군가 이쪽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걸 알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내가 보기엔 후자의 가능성이 높아. 야망이 있는 놈이라면 이 보다 더 확실한 기회는 없을테니까.”
“허면 그 놈이 지원병력을 막을 수도 있겠군?”
“그거야. 우리에겐 좋은 일이고.”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건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방치하는 것 아냐?”
오민철이 담배를 버리면서 저택을 돌아보았다.
프레드를 너무 오랫동안 내버려 두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는데 걱정할 것 없다는 행동이다.
폭풍우가 거세지만 결코 자신의 감각을 벗어나 어디로 도망친다거나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안에 정리하고 나올 테니까 고생 좀 더 해.”
권총수는 그대로 날아갔다.
권총수가 내려선 곳은 저택 뒤였다.
차라리 공사장이다.
지뢰와 부비트랩이 터지면서 불도저로 갈아엎어 놓은 듯 구덩이가 패이고 흙탕물이 흘러다닌다.
처마에서 조금 내려와 조그만 창문 두 개가 보인다.
욕실 환기창이다.
러시아에서도 그렇고 파리에서도 두목들 집은 창문이 적었다.
창문이 있긴 하지만 전부 방탄이었는데 원거리 저격을 피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스으윽!
권총수의 몸이 떠올랐다.
슥!
손으로 창문을 당기자 잠기지 않은 듯 쉽게 열렸는데 설마 이 좁은 곳으로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 하지는 않는 것이 분명했다.
스르르!
권총수의 몸이 가늘어지며 순식간에 욕실 안으로 빨리듯 들어가 버렸다.
굳이 축골신공이나 잠영술을 펼치지 않아도 반로환동의 경지에 이르면 틈이 아닌 이런 공간 정도는 능숙하게 빠져나가고 들어간다.
욕실은 넓었다.
욕조는 수영을 해도 될 만큼 컸는데 수건을 비롯한 샤워용품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딸칵!
소리가 나지 않게 강기로 막을 형성한 뒤 문을 열었다.
작은 복도가 나타난다.
누군가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빨리 오지 않고 뭐하느냐, 자갈루 당신 이럴거야. 나한테 이러고도 그 자리 지킬 수 있을 줄 알아.
자갈루라는 말에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아는 자갈루는 코만도 5인 평의회 멤버중 한 사람이다.
동명이인이 몇 있고 그중 세 명이 묘하게도 고위 관료들이어서 아직 누가 평의회 멤버인지 정확히 규정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프레드의 통화 내용을 들으면 5인 평의회 자갈루는 바로 리우 경찰청장이다.
경찰청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개자식!”
부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복도를 흘러 권총수의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스으으!
권총수는 초상비를 펼쳐 바닥을 밟지 않고 날아갔다.
거실 앞에 내려선 권총수는 천천히 들어섰다.
약간 뚱뚱한 체격의 사내가 어디론가 다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쳐죽일 놈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전화를 다시 끄더니 재차 번호를 눌렀다.
꾸욱!
단축 버튼을 누르고 다시 귀에 대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다 멈칫했다.
입구에 우뚝 선 권총수를 발견한 것이다.
창가에 서 있던 프레드는 재빨리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권총을 잡기 위해 소파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꽈당!
몸을 날려 소파를 건너뛰던 프레드가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재빨리 일어나 책상으로 손을 뻗어갔다.
스으으!
그러나 그가 쥐고자 했던 권총은 강력한 흡인력에 의해 공중을 날아 권총수 손에 잡히고 말았다.
능공섭물(凌空攝物).
내공 수위에 따라 끌어당기고 밀어 낼 수 있는 물건의 무게도 달라진다.
현재 권총수의 내공 수위면 중장비 기계들이 움직이는 무게 정도의 물건은 충분히 이동시킬 수 있었다.
탁!
권총을 쥔 권총수는 탄창을 꺼낸 뒤 마지막 한 발 남은 약실의 실탄을 전방 창문을 향해 발포했다.
툭!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방탄 유리답게 서릿발 같은 흠만 낸다.
권총을 한쪽으로 던져 버린 권총수는 자신의 글록19를 꺼내더니 돌아섰다.
계단에서 누군가 급히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푸슉!
슈슈슉!
올라오던 두 명의 사내가 계단을 굴러 떨어졌는데 수행 경호원 파블로와 루이스였다.
“아직 두 명이 더 있군.”
권총수는 아래층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탄지신통이 펼쳐졌다.
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기어검처럼 이제는 지풍도 얼마든지 곡선으로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쉬이이!
탄지신통은 계단을 내려가 자신들이 죽여야 할 대상을 찾는다.
“으음.”
하는 미세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마혈이 제대로 제압된 것이다.
권총수는 프레드를 향해 권총을 들어올렸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프레드를 죽임으로 FBI청부는 완성되는 것이다.
“잠깐!”
프레드가 다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나와 거래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 사막의 흑새? 천만 달러를 당장 현금으로 주겠소.”
집안 어딘가에 천만 달러가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아, 아니 1억 달러.”
권총수가 대답을 하지 않자 한 방에 열 배가 올랐다.
“카이드(보스).”
권총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선과 악에 대해 논할 자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코만도가 끼치는 해악이 너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건 그들의 잣대이고 기준이오.”
“어쨌든 그런 사람들의 의뢰를 받았으니 그들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난 당신과 전혀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2억 달러!”
푸슉!
소음기가 불을 뿜고 푹하는 소리에 이어 프레드의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주르르륵!
미간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내린다.
프레드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다.
입술이 움직였으나 밖으로 나오는 말은 없었다.
퍼억!
프레드는 소파위로 벌렁 넘어졌다.
권총수는 계단을 내려와 1층으로 내려갔다.
예상대로 두 사내가 마혈이 제압되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난 사람은 딱 한 명뿐일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경비실 솔베스만 살려 보내주었다.
그런데 마혈이 제압된 두 사내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
콰아앙!
권총수의 몸이 방탄유리를 뚫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사람이 뚫고 나간 형태 그대로 깨진 유리를 보며 마혈이 제압된 두 사내는 놀란다.
“어어!”
움직이지 않던 두 사내가 팔을 들어 보이고 목을 돌린다.
슥!
한쪽에 놓아둔 AK를 잡으려다 멈칫했다.
권총수가 자신들을 살려줬다는 사실에 생각이 닿은 것이다.
두 사내는 멍하니 권총수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봤다.
빗발은 조금씩 가늘어졌고 바람도 처음보다 훨씬 약해졌다.
단번에 경비실 옥상으로 올라간 권총수는 브리우닝 기관총을 어깨에 멨다.
실탄박스를 챙긴 두 사람은 경비실 옥상을 내려가 왔던 길로 돌아갔다.
여전히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
워싱턴 FBI 본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은 지금 전면 벽에 걸린 대형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코만도 우두머리 프레드의 저택을 비춰주고 있었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시신들을 나르고 있는데 한도 끝도 없다.
“도대체 몇 명이 죽은 거야?”
마약전문부서인 제7국장 테일러가 눈살을 찌푸렸다.
브라질 현지에 있는 케인으로부터 받은 연락에 의하면 사망자가 마흔을 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케인이 말한 마흔은 집안에 있는 프레드의 경호원들이다.
브라질 경찰은 지원을 왔다가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문 밖 조직원들까지 합하면 70명이 넘을 것이라고 계속 반복 뉴스를 보내고 있었다.
“테일러, 캐인과 통화 가능할까요?”
테일러는 재빨리 핸드폰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듯 잠시 기다리는 듯하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잠깐 기다리게 국장님께서 통화를 원하네.”
테일러는 핸드폰을 크리스 국장에게 건네주었다.
“캐인, 캡틴과 연락이 됩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어디 있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걸 보아 곧바로 브라질을 떠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후로의 구체적인 계획은 언급 하던가요?”
“없었습니다. 다만 아직 일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연락이 닿는다면 전화 한 통 해달라고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크리스 국장은 몇 마디 더 남기더니 전화를 끊었다.
사무실로 들어온 크리스 국장은 창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딸칵!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고 이내 창문을 향해 뿜어낸다.
딸칵!
그때 문이 열리고 제7국장 테일러가 따라 들어섰다.
테일러는 적당히 다가오더니 빈 의자 하나를 꺼내 주저앉았다.
슥!
테일러는 주머니에서 껌 한 개를 꺼내 밀어 넣고 씹는다.
“정말 놀랍다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왜 이제 사막의 흑새를 그토록 찾고 극찬한지 알겠습니까?”
이번 작전을 소개했을 때 테일러는 반대했다.
자신도 사막의 흑새에 대한 소문은 들었으나 혼자서 코만도를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의 능력을 보지 않은 이상 누가 믿겠습니까?”
“하긴 나도 그랬죠.”
“대단합니다. 무시무시하군요. 코만도라는 그 무자비한 마약조직을 이렇게 거덜 내버리다니.”
“본인이 아닌 제3자를 통해 들었는데 CIA가 지난 수 년 동안 IS와 탈레반, 또한 이라크 반군지도자 상당수를 제거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사막의 흑새 때문이라더군. 전 대통령과도
안면이 깊고 현 대통령과도 브라질에서 통화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크리스의 표정이 밝았다.
미국의 마약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는 코만도의 아마존 공장들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30퍼센트까지 떨어졌던 현 대통령의 국정 수행능력이 순식간에 50퍼센트대로 뛰어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목까지 제거했으니 아마 곧 여론조사가 있을 것이고 대통령의 인기는 치솟을 것이 뻔했다.
아무리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대통령의 인기가 높다보면 함부로 정책에 대해 제동을 걸지 못한다.
당장 여론이 들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실로 오랜만에 행복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대통령의 국장 장악력이 강해지면 자신의 입지도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