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6화: 침투(2)
언뜻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타초경사(打草驚蛇)의 계략을 닮았다.
초소를 빠져 나오다 보니 모두가 마당가운데로 몰린 형국이 되었고 오민철이 놔둘 리 없다.
두두두두!
일부 사내들은 폭발이 일어난 정원으로 다시 뛰어들기도 했다.
아무런 은폐 엄폐물이 없는 마당 한가운데에서, 커다란 정원석 뒤에 몸을 숨긴 채 총을 갈기는 오민철을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폭발은 도미노 형태로 일어났다.
수류탄이 지뢰를 건들면 그 지뢰가 터지며 근처 지뢰를 자극한다.
그러다 보니 아직 터지지 않는 지뢰가 있었고 다급히 정원으로 뛰어든 일부 사내는 늦게 터진 지뢰와 부비트랩에 의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형!’
부지런히 갈기고 있는데 귓속으로 권총수의 전음이 들려왔다.
“나머진 내가 처리할 테니까 브라우닝을 경비실 옥상에 설치해.”
드르륵!
십여 발을 바짝 당긴 뒤 오민철은 경비실 쪽을 향해 달려갔다.
프레드는 미친 듯 전화기를 붙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 리우시내에 있는 부하들을 일제히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와. 총이고 수류탄이고 있는 대로 챙겨 와.”
“이런 미친 놈아 달려오라고 하면 올 일이지 말이 많아. 당장 부하들 무장시켜 출발 해.”
전화를 끊은 프레드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되어 있었다.
바깥이 잠시 조용해진 것에 입구에 서 있는 두 명의 수행 경호원중 한 명인 파블로를 향해 말했다.
“왜 조용해. 바깥 상황 확인해.”
파블로는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모조리 커텐을 쳐버렸는데 슬며시 틈새로 살폈다.
방탄 유리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향해 총알이 날아와도 단번에 뚫릴 일이 없으니 괜찮은데도 괜히 등골이 서늘해진다.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정원은 사라졌다.
폭발로 인해 크고 작은 구덩이가 지천이고 뽑힌 나무가 바람에 날려 저택 앞마당은 그야말로 한바탕 폭격이 지나간 것 같았다.
재빨리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갔다.
일층 역시 두 명의 경호원들이 AK를 들고 있었는데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구에 의자와 책상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어때?”
파블로의 질문에 왼쪽 귀아래 빨간 사마귀가 있는 사내가 대답했다.
“우리도 잘 모르겠어.”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우라질.”
같이 있던 다른 사내가 투덜거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는 버텨야 돼.”
파블로의 말에 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못했다.
파블로는 무전기를 이용해 혹시나 하며 각 초소장을 호출했다.
“A초소, B초소, C초소.”
그러나 응답하는 초소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도대체 누가 왔는데 이렇게 쑥대밭을 만드는 거야?”
귀아래 빨간 사마귀가 있는 브루누가 물었다.
파블로는 커텐을 살짝 젖히고 바깥을 살피며 대답했다.
“사막의 흑새.”
“억!”
누군가 신음을 터뜨렸는데 브루누와 같이 일 층 현관을 지키고 있던 산토스의 눈이 커졌다.
“진짜?”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이런 날 단신으로 뛰어 들어올지 누가 알았겠냐고, 완전히 허를 찔린거야.”
파블로가 주위를 살필 때 돌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두!
총소리다.
하지만 AK나 M4와는 차원이 다르다.
육중하면서 둔탁했다.
소총은 절대 이런 묵직한 울림이 있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타타타탓!
총소리는 계속 들렸고 파블로의 눈이 커졌다.
“설마!”
불길한 생각이 든다.
오민철은 경비실 옥상에서 대문을 향해 엎드렸다.
빗물이 자꾸 시야를 가려 박스 하나를 머리에 덮어쓰고서 들어오는 혼다 SUV를 향해 브라우닝의 방아쇠를 당겼다.
장갑차 정도는 가볍게 뚫는 파괴력 강한 중기관총이다.
파파팍!
두 대의 혼다 차량이 산산이 조각났고 핏방울이 깨진 앞유리에 물감처럼 튀며 묻었다.
뒤에 있는 차량까지 순식간에 거덜이 났고 누구도 내리거나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몇 명이 탔고 모두 죽었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아무리 위력이 확실한 중화기지만 어딘가 한두 놈은 꿈틀대고 있을텐데.”
자신만만 권총을 뽑아들고 다가가다 역습을 당할 위험도 있다.
“이럴 땐 한 가지 뿐이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우두두두!
두두두두두!
두 대의 SUV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 작정인 듯 쏘아댔고 차가 거의 형체를 잃을 정도가 되어서야 멈췄다.
“적당히 쏴.”
권총수가 다가왔다.
“끝났어?”
“문을 열어줘야 들어가지.”
오민철이 멈칫했다.
강호의 고수의 입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언제 열어준다고 해서 들어가고 잠가 놓는다고 하여 들어가지 못했던가.
피식!
오민철이 실소를 터뜨렸다.
어차피 나오지 않을 사람들이니 지원병력부터 처리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다 녀석이 몰래 나와 도망치면?”
“그럴일 절대 없어. 내가 어디선가 숨어 노리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스으으!
말을 마친 권총수는 그대로 몸을 날려 박살난 두 대의 SUV옆으로 다가갔다.
권총수는 소음기가 끼워진 권총을 들고 앞차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네 명이 탔는데 모두 즉사다.
두 번째 차량으로 다가갔고 그곳에는 다섯 명이 있었는데 역시 피투성이 시신이 되어 있었다.
탁!
권총수는 트렁크에 엎어진 사내의 머리를 권총으로 툭 쳤다.
꿈틀!
죽은 듯 엎드려 있던 사내가 고통에 움직였다.
‘심장 맥박이 조금 불규칙 하긴 해도 당장 숨을 거둘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군.’
사내는 죽은 척하며 도망칠 기회를 엿보다 권총수에게 발각 된 것이다.
푸슉!
권총수는 뒤통수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사내의 머리가 깨지며 바닥으로 피가 흥건히 흐르기 시작했다.
홱!
권총수는 우렁찬 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려가는 트럭을 바라보았다.
잠시 기다렸지만 더 이상 지원병력을 실은 차가 오지 않으므로 돌아섰다.
스으윽!
허공을 날아 경비실 지붕위로 올라왔다.
타탁!
그 역시 돌격소총 SCAS를 조준한 채 엎드렸다.
그렇게 이분이 지났을 때쯤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리며 두 대의 승용차와 15인승 길다란 밴 한 대가 대문을 향해 다가왔다.
“통화가 안 됩니다.”
누군가 문을 열어달라고 근무자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냥 밀어!”
뒤에 탄 승용차 밖으로 한 사내가 고개를 내밀고 외쳐 말했다.
부우웅!
운전사는 악셀을 세게 밟았다.
육중한 대문을 무너뜨리려면 속도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권총수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푹!
총알은 선두차량의 유리를 뚫고 운전사의 미간을 뚫어 버렸다.
강철같은 대문을 밀고 들어가기 위해 속도를 높였던 승용차는 휘청하더니 왼쪽으로 꺾어졌다.
운전대를 붙잡고 있는 운전사가 왼쪽으로 쓰러지면서 핸들도 같이 틀어 버린 것이다.
쾅!
승용차는 왼쪽 난간을 들이 받고 나가더니 기암괴석의 절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쿵!
콰아앙!
튀어나온 바위와 절벽에 충돌하면서 차는 까마득한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오민철이 잡고 있는 브라우닝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승용차와 밴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다.
차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일반 소총도 아닌 중기관총의 공격에서 방탄장치라고는 전혀 없는 차 안에 있는다는 건 표적이 되겠다는 의미 말고는 없다.
그러나 나오지 못하는 건 중기관총이면서도 오민철의 사격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승용차는 운전자와 조수석 사내가 권총수의 조준 사격에 죽었지만 뒷좌석 둘은 좌측 문으로 내려 다행히 피했다.
하지만 밴은 승용차와 달랐다.
출입문이 하나뿐이다.
반드시 오른쪽 앞문을 통해 내리도록 되어 있는데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내리던 두 사내가 기관총에 패대기쳐지자 사내들은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창문으로 탈출을 꿈꿨지만 라이벌 조직이나 경찰의 기습을 대비해 안쪽으로 단단한 철판을 용접하여 대놨다.
겉에서 보면 유리창이 있지만 안쪽으로는 철판인 것이다.
그걸 알 리 없는 오민철은 총알을 쏟아 부으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 거렸다.
“설마 달랑 두 명만 태웠을 리는 없고.”
오민철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니들이 안 나온다면 내가 나오게 해주지.”
드르륵!
오민철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 더욱 집중적으로 사격을 해댔다.
“어어!”
그러다 어느 한순간 깨진 유리가 쏟아지며 드러난 검정색 철판을 발견한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저건 또 뭐야?”
티티팅!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맞는 탓에 총알이 철판을 때리며 퉁겨 나갔다.
“철판을 덧댔어.”
권총수는 두 번째 승용차에서 내린 두 명의 사내중 마지막 한 명까지 쓰러뜨리며 말했다.
앞 유리 역시도 운전석 앞으로만 약간 창문의 공간을 남겨 뒀을 뿐 전부 철판이다.
“이 새끼들 완전히 IS아냐.”
IS 전투차량 상당수가 민간 차량을 저런 식으로 개조했다.
“계속 방아쇠를 당겨.”
그리고 나서 권총수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가방을 뒤졌다.
아직 수류탄 두 개가 남아 있다.
슈우우!
60여 미터 가까운 거리를 순식간에 날아간 권총수는 열린 밴 앞문에 섰다.
자세를 낮추고 수류탄 두 개를 까 잠시 타임을 센 뒤 안으로 던졌다.
슈우욱!
퉁기듯 몸이 날아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쿠쿵하는 소리가 울리며 밴이 크게 요동을 했다.
붙어 있던 유리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한동안 몸서리치듯 차는 좌우로 흔들렸는데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몸을 피한 권총수는 어느새 다시 길다란 밴 앞으로 다가왔다.
콰앙!
번쩍!
천둥번개까지 치며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넷!”
거센 비바람이지만 권총수의 청각을 속이지는 못했다.
생존자는 네 명이다.
그중 두 명은 부상을 입은 듯 신음소리를 냈지만 나머지 둘은 호흡이 고르다.
그건 기관총과 수류탄 속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의자가 빼곡하다보니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스으윽!
입구 열린 문이 아닌 깨진 운전석 앞 창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문을 통해 들어가면 상대의 모습을 잠시 놓친다.
하지만 운적석 쪽에서 들어가면 정면으로 빤히 보고 있기 때문에 공격자 입장에서는 더 안전한 것이다.
피 냄새와 화약냄새가 엉켜 약간의 하수구 냄새가 맡아진다.
시체다.
시신들은 처참했다.
제 형상을 갖고 있는 시신을 거의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일부는 브라우닝에 맞아 죽은 듯 상처가 꽤나 컸다.
‘맨 뒤!’
권총수는 버스 바닥에서 몸을 띄운채 맨 뒤로 걸어갔다.
두 사내가 바짝 엎드려 있는데 어디론간 전화를 하고 있었다.
“다 죽었다고, 정말이라니까.”
권총수는 전화하는 사내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 소음기가 끼워진 글록 19를 겨눴다.
푸슉!
소음기 소리에 오른쪽 의자 밑에 숨어 전화하던 사내의 고개가 돌려졌다.
움찔!
자신을 돌아보는 권총수를 발견하고 사내는 사색이 되었다.
푸슉!
권총수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사내는 그대로 측면으로 쓰러졌고 권총수는 부상을 입고 신음을 흘리는 사내 둘을 찾아 역시 숨통을 끊어 주었다.
‘작전 끝!’
권총수는 전음으로 밴 안의 상황을 말했다.